List of Articles
  • [오감을 유지하자] 함께 말하는 증언, 채워 나가는 역사
    • 3·1 운동 100주년을 맞아 서울도시건축센터에서 ‘기록 기억: 일본군 ‘위안부’ 이야기, 다 듣지 못한 말들’ 전시가 열렸다. 서울시와 서울대학교 정진성 연구팀(연구팀)이 공동으로 주관한 이번 전시는 ‘위안부’와 관련된 연구 성과를 네 명의 인물을 중심으로 재구성함으로써...
    • 최재혁 기자(coliu2@snu.ac.kr)    2019.04.18
  • [오감을 유지하자] 좋아하는 것과 일이 하나가 되는 순간, '덕업일치'
    • ‘덕업일치’라는 말이 있다. 무언가를 열렬히 좋아하는 일, 즉 ‘덕질’과 직업이 일치한다는 의미다. 얼마 전, 한 뮤지션이 모든 ‘덕후’들의 꿈인 덕업일치를 이루기 위해 직접 공연을 기획해 무대에 올렸다. 이 스케일 큰 덕업일치의 주인공은 밴드 ‘브로콜리너마저’의 보컬이...
    • 이누리 기자(nuriztoa@snu.ac.kr)    2018.12.18
  • [오감을 유지하자] 영광의 올림픽, 그 빛에 가려진 사람들
    • 1988년,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의 서울에선 제24회 하계 서울 올림픽이 개최됐다. 성공적인 올림픽을 위해 7년여간의 기간 동안 이뤄진 서울의 대대적 변화가 그 바탕에 있었다. 서울역사박물관에서는 올림픽을 계기로 변화한 서울을 회고하는 <88올림픽과 서울>전이 열렸다. ...
    • 박세영 기자(precieuses@snu.ac.kr)    2018.10.24
  • [오감을 유지하자] 맨 몸으로 마주선 시대, 온 몸으로 밀고 나간 시
    • 김수영의 상은 확고하다. 그는 자유와 혁명, 참여의 시인이다. 이는 1974년, 평론가 김현이 김수영의 첫 시선집 《거대한 뿌리》에서 그의 ‘시적 주제는 자유’라며 제시한 인상이다. 또한, 7~80년대 그에 관한 연구가 자유와 참여라는 주제에 집중됐다는 사실이 보여주듯, 이...
    • 왕익주 기자(dlrwn3@snu.ac.kr)    2018.09.08
  • [오감을 유지하자] “사람이 사람을 심판할 순 없어”
    •    네 사람이 무대에 들어선다. 이들은 각각 배심원, 법무장관, 교도관, 사형수가 돼 연극을 시작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하나. 모두 범죄 피해자의 유가족들이라는 것이다. 자신의 가족을 죽음에 이르게 한 가해자가 이미 사형됐거나 그의 사형을 기다리는 이들은 사형제도와 ...
    • 허유진 기자(qq8779@snu.ac.kr)    2018.06.08
  • [오감을 유지하자] 몸 깊이 새겨진 폭력의 역사가 치유의 노래가 되기까지
    •   대한민국 정부 수립 70주년인 2018년.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등 국가적 폭력을 겪었다. 한국 근현대사 속 폭력은 개인의 일상을 파괴시켰지만, 그 개인은 역사를 몸으로 기억하며 고통 속에서도 삶이 주는 의미를 찾고자 노력했다. 작가 임...
    • 허유진 기자(qq8779@snu.ac.kr)    2018.04.12
  • [오감을 유지하자] 잊지 않을 밤들, 홀로코스트에 대한 기억
    • 홀로코스트로 희생된 사람들의 이름 사이로 보이는 홀로코스트 기념관의 전경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의 1월은 그 어느 때보다 분주하다. 15일, 마틴 루터 킹 탄생일을 맞아 워싱턴 곳곳은 인종 차별에 맞서 싸운 그를 기념하는 행렬로 가득 찼다. 그들은 불과 몇 십 년 ...
    • 배인환 기자(iabae128@gmail.com)    2018.03.08
  • [오감을 유지하자] 몸은 기억한다, 그리고 말한다
    • 난해하고 다가가기 어렵다. 행위예술(Performance, 회화와 조각 등 작품이 아니라 신체를 이용해 표현하는 예술)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이다. ‘역사를 몸으로 쓰다’ 전시는 이러한 거리감에 반기를 든다. 행위예술은 우리의 몸을 매개로 하기 때문에 우리의 삶이 녹아있을 수...
    • 송재인 기자(gooay@snu.ac.kr)    2017.12.02
  • [오감을 유지하자] 파독간호사, '노란천사'에서 정치적 주체로
    •   개별적으로 이주한 경우부터 1968년 ‘해외개발공사’를 통해 파견된 경우까지 모두 합하면, 1950-70년대에 만 명이 넘는 한국 여성은 독일로 건너가 간호사의 길을 택했다. 경제개발이 최우선이었던 당시 한국 정부에게 파독 간호사는 외화벌이와 청년실업을 한 번에 해결하...
    • 김가람 기자(1004grk@snu.ac.kr)    2017.10.22
  • [오감을 유지하자] 공간에서 공동체로
    • “나는 사진가이며, 산업 디자이너이며, 미디어 아티스트이며, 비평가이며, 역사가이고, 철학자이면서, 정치가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중 하나는 아닙니다.” 폴란드 출신의 미디어 아티스트 크지슈토프 보디츠코는 예술을 매개로 사회 문제들에 적극적으로 의문을 제기한다. ...
    • 허유진 기자(qq8779@snu.ac.kr)    2017.0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