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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은 놀면서 할 수 있는 학문이에요”라고 말하는 그의 표정에서는 어릴적 강릉의 자연을 사랑했던 시골 소년의 모습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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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골 소년이 있었다. 고향이 강릉인 그는 어머니의 열렬한 교육열 덕에 어린 시절부터 고향을 떠나서 서울에서 학교를 다녔다. 하지만 소년은 방학만 되면 동생들을 내버려두고 새벽같이 역으로 달려가 강릉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유년시절 그는 강릉의 시원한 물줄기, 흙냄새 나는 감자, 솔나무 길을 항상 가슴 속에 안고 살았다. 소년이 중학생이 됐을 때 그는 어느새 친구들 사이에서 시인이라고 불리고 있었다. 백일장에서 장원을 하며 문예반에 들어간 소년은 시인을 꿈꿨다. 그러던 소년에게 색다른 기회가 찾아온다. 미술시간 숙제로 비누조각으로 불상을 하나 깎아갔고, 조각을 본 미술선생님은 기어코 소년을 미술반에 집어넣었다. 시간이 흘러 어느새 소년도 대학에 진학했다. 그의 전공은 문학도 아니고 조소도 아닌 동물학이었다.
자연을 사랑한, 시인을 꿈꾼, 조각에 소질을 보였으나 동물학과로 진학했던 이 소년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환경운동가? 작가? 생태연구가? 그는 이 모든 것을 하고 있다. 그 소년이 바로 학문 간의 소통을 주장하고, 대중과 과학자의 소통을 가능하게 한 최재천 교수다.
“통섭은 두 학문의 유전자를 받아들여 새로운 자식이 태어나는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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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나무가 하나로 합쳐지는 건 불가능하지만, 두 나무 사이에서 씨가 떨어져서 싹이 올라오는 것은 가능하죠. 이렇게 새로운 새끼가 태어나는 과정이 통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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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대중들에게 ‘최재천’이라는 이름은 다른 무엇보다 ‘통섭’으로 유명하다. 그는 통섭이라는 개념을 10여 년 전 처음으로 한국에 소개했다. 지금은 통섭이란 단어가 익숙하지만 불과 10여 년 전에는 ‘통섭이 무엇이냐’며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사람이 많았다. 통섭이라는 단어는 최재천 교수가 윌리엄 윌슨 교수의
통섭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허허’ 웃으며 조심스레 운을 뗐다. 그는 “통섭은 자연과학의 환원주의적 방법론을 가지고 인문학, 사회과학 등 여러 학문 간의 만남을 주선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그는 융합과 비교해 통섭의 특징을 집어냈다. “융합은 본래의 구성요소가 완전히 녹아 새로운 형태로 변하는 것이에요. 그렇지만 통섭은 구성요소가 자신의 주체를 유지하면서 새로운 학문이 태어나는 과정입니다. 융합이 두 요소가 하나로 섞이는 화학적인 결합이라면, 통섭은 부모 학문의 유전자를 받아들여 새로운 자식이 태어나는 생물학적인 과정이죠.”
그는 “오해가 많은데···”라고 말끝을 흐리며 통섭에 대한 여러 오해에 관해서도 입을 열었다. 그는 “사람들이 통섭에 대해서 무조건적으로 학문 간의 담을 없애버리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담장을 고치며’라는 시에서 ‘좋은 담이 좋은 이웃을 만든다’는 구절이 있어요. 담이 아예 없으면 그것은 이웃이 아니라 한 집안이죠. 그러나 서로 완전히 다른 구성요소가 한 집안이 됐다고 마냥 행복한 일은 아니잖아요? 그러니 서로 간의 담은 필요한 존재인겁니다. 다만 담의 높이를 낮추어서 서로 넘어다닐 수 있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한국은 아직 통섭에 대한 준비 미비, 그러나 희망은 존재
최재천 교수는 통섭학문과 통섭연구를 강하게 외치고 있지만 아직 한국의 상황이 그에 대한 준비가 돼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그는 우선적으로 문·이과로 나누어진 고등교육의 문제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문·이과로 나누어져서 한쪽만 배우고 대학에 오게 됩니다. 사회학과 학생한테 양자역학을 수강하라 그러면 할 수 있는 학생이 거의 없어요. 원천적으로 학문 간에 넘나듦이 불가능하도록 고등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겁니다”라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또한 그는 학생들의 수학능력 자체에 대한 문제도 지적했다. “학생들이 수학능력시험을 보고 대학교에 들어왔으면 수학능력자여야 할 텐데, 막상 대학교에 들어온 학생들을 보면 수학능력자가 없어요.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능력이 너무 부족해요.” 이어 최 교수 미국의 학생들과 우리나라의 학생들을 비교했다. “서울대학교 학생들과 하버드대학 학생들 중에서 무작위로 100명을 뽑아서 미적분 문제를 풀어 보라고 하면 장담컨대 서울대학교 학생들이 더 많이 풀 겁니다. 하지만 한 달의 기간을 주고 풀어오라고 하면 하버드대학 학생들이 더 많이 풀어 와요”라며 차이점을 지적했다. 그는 교육의 문제 뿐 아니라 대학교의 시스템도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교수 위주의, 그리고 융화가 불가능하도록 짜여진 대학의 학제도 통섭을 방해하고 있는 요소라고 비판했다.
그럼에도 그는 대한민국에서의 통섭학문에 대한 가능성도 제시했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어느새 틈새에서 싹을 틔워 비집고 올라오는 것은 못 말려요”라며 가능성에 대한 희망을 보였다. “동양인의 핏속에는 전체를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이 존재해요. 특히 대한민국 사람들이 태생적으로 워낙 번잡스럽잖아요. 네 일이 내 일이고, 내 일이 네 일이고요. 구조적으로 어느 정도만 뒷받침되면 미래에는 충분히 희망이 있다고 봅니다.”
현실참여는 학자로서 당연히 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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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연구하는 분야는 경쟁없는 분야입니다. 그러니 아무래도 사회문제 등에 관여하는 데에는 일각을 다투는 분야의 학자들 보다 유리하죠.” |
최재천 교수는 학자로서의 연구 말고도 다양한 사회 참여로 대중들에게 인지도를 얻고 있다. 그는 과학자로서는 드물게 환경문제, 여성문제, 고령화문제 등 다양한 사회 이슈에 대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런 다양한 사회활동 때문에 일부에서는 그를 ‘현실참여형 학자’라는 호칭으로 부른다. ‘현실참여형 학자’라는 호칭을 언급하자 그는 우선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쑥스러운 얘기인데요. 미국에서 공부를 할 때는 이러한 학자의 현실 참여가 당연한 일이었어요”라고 머쓱하게 답했다. “지도교수님인 윌슨 교수님의 경우도 논문도 많이 쓰고 강의도 열심히 했지만, 한 해에 한 두 권씩은 다양한 주제에 대해 책도 쓰고,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강연도 열고 했어요”라며 “학자라면 으레 그렇게 해야 하는 줄 알고 그렇게 했죠”라고 활발한 현실참여의 배경을 밝혔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학문외적 활동이 한국에서는 ‘당연한’ 활동이 아니었다. 그가 한국에 돌아왔을 때는 학자의 현실참여에 대한 좋지 못한 시각도 많았다. “선배교수님들이 저를 보고 처음에 ‘자네를 한국으로 데리고 올 때는 기대가 어마어마했는데 왜 그렇게 밖으로만 싸돌아 다니냐’고 꾸중을 하시곤 했죠”라며 회상했다. 이어서 “처음에는 굉장히 황당했어요. 제가 밖으로 놀러다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제 할 일을 하지 않고 다른 활동을 하는 것도 아니었거든요”라며 당시의 심정을 밝혔다. “그래도 이제는 많이 변했어요. 학자의 현실참여 자체가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학자들은 별로 없는 것 같아요”라며 변화된 현실을 언급했다. 다만 “논문은 논문대로 쓰고 활동은 활동대로 하려니 이중삼중으로 고달플 뿐”이라고 토로했다. 이렇게 이중삼중으로 바쁜 상황 속에서도 그는 웃으며 “열심히 잘하고 있어요”라며 자신의 일에 애정과 확신을 드러냈다.
시간 관리의 비결은 ‘미리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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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서재는 책으로 가득하다. 그는 연구활동을 하면서도 꾸준히 대중들과 소통할 수 있는 여러 저서들을 집필하고 있다. |
이렇듯 최재천 교수는 연구하랴, 강의하랴, 글 쓰랴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할 만큼 다양한 활동을 하며 많은 일을 맡고 있다. 최 교수 자신도 “워낙에 번잡스러운 사람이에요. 하루에 한가지만 하라면 심심해서 못 살 것”이라며 자신이 바쁘게 살고 있는 것을 인정했다. 사람들은 최재천 교수가 굉장히 여유도 없이 바쁜 생활을 할 것이라고 짐작한다. 하지만 오히려 그는 심적 부담없이 여유롭게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잠은 주무시면서 일을 하냐는 질문에 그는 “언젠가 책으로 내려고 했는데”라고 너털웃음을 보이며 자신의 시간 관리 비결을 공개했다. “간단히 얘기하면 미리 하는 겁니다. 미뤄서 마지막 순간에 하나 3일전에 하나 동일한 시간을 투자한다고 볼 수 있잖아요. 미리 해두면 조금씩 시간이 날 때 마다 계속 검토를 할 수 있으니까 작업의 질도 좋아지고 심적으로도 여유로워 집니다.” 그는 이러한 시간관리 비법을 미국 유학시절 하버드 대학교 학생들에게 배웠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하버드 학생이면 공부벌레로만 알고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아요. 그 학생들 별 짓 다해요. 쏟아지는 과제 속에서 파티하면서 놀고, 봉사활동하고, 취미생활하고, 학생회하고, 뭐하고, 또 뭐하고... 하루에 열 가지 정도를 하고 살아요. 그래도 미리미리 계획을 세워서 해야 할 일들을 다 해가면서 생활해요. 봉사하러 가기 전에 다음 주 과제 미리하고, 아르바이트하고 온 뒤에 그 다음주 과제하고, 이런 식으로요.” 그는 “능력은 다 비슷비슷하잖아요. 성공을 결정짓는 것은 ‘누가 시간 관리를 잘하느냐’에서 나는거죠”라며 현대사회에서의 시간관리 능력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최재천 교수는 자신도 대학생 시절에는 “마지막 순간까지 할 일을 미루고, 결국은 못해내는 경우도 많았다”며 고백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에게 할 일을 미루는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는 자신의 컴퓨터 모니터를 가리키며 “전 이번주의 일 다 했어요. 지금은 다음주 업무를 하고 있어요”라고 웃으며 말했다. 덧붙여 “한번 미리 미리 당겨서 일을 해보세요. 못 믿겠으면 한 번 해봐요”라며 자신의 시간 관리 비결에 자신감을 내비쳤다.
“젊은 시절에는 마음껏 방황하라”
최재천 교수는 작게는 생물학자, 크게는 학자로 자신의 적성을 정확하게 발견한 좋은 예다. 이러던 그도 한 때는 자신의 불투명하던 진로에 대해 고민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는 사실 의예과 진학을 희망했으나 의예과에 떨어지고 동물학과에 가게 된 것이다. 그랬던 그였기에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대학생 시절 최재천 교수는 직접 시인을 찾아가보고, 방송국의 앵커에게도 가보고, 외교관도 만나보면서 적극적으로 자신의 진로를 탐색했다. 그는 자신의 길을 찾지 못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적극적으로 찾으라”고 충고를 한다. “많은 학생들이 시간을 너무 안일하게 보내요. 대학교 시절의 시간은 길을 찾으라고 사회에서 인정해준 시간이에요. 그 시간을 잘 이용해야죠.” 그는 자신의 길을 찾기 위해 학생들에게 ‘아름다운 방황’을 하라고 주문한다. “대학생 시절에 방황하는 것은 욕 안 먹어요. 이런 세계도 들여다보고, 저런 세계도 들여다보고 적극적으로 방황해보세요. 그리고 두 갈래 길에서 충분히 고민해보세요. 양쪽 모두 고민하지 않고 너무 일찍 한쪽 길로 들어서면 오히려 늦어서 후회할 수도 있어요.”
그는 또한 다양한 경험을 해볼 것도 요구했다. “젊은 시절 여러 분야에 가서 다양한 경험을 해보세요. 여러 곳을 봤다는 그 경험이 인생의 길목, 길목에서 이상하게 힘이 되요. 세상 살아보면 정말 묘해요. ‘어떻게 그런 것이 도움이 될까’ 하는데도 우연한 기회에서 도움이 되요.” 최교수는 덧붙여 자신의 경험을 들려줬다. “저 같은 경우에 대학생 시절 우연한 기회에 사진을 접하게 됐는데, 그때는 제가 열대 정글을 헤치고 다니면서 동물들 사진을 찍게 될 줄 몰랐죠.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누구보다도 더 많은 경험을 해보는 것은 어마어마한 무기죠. 젊을 때의 경험은 크기에 상관없이 언제든지 싹을 틔울 수 있는 겁니다. 나이 들어서는 경험할 기회도 없고, 눈치 보여서 하기 힘들어요. 신기할 정도로 젊은 시절 경험은 버릴 게 하나도 없더라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