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소리와 함성 소리가 땅을 들썩이고 있던 홍대의 토요일. 바깥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이국적인 멋으로 무장한 홍대의 한 네팔 음식점에서 방송작가 노옥환 씨를 만났다.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안녕”하고 말했다. 늦은 밤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DJ의 부드러운 음색이 생각났다.
고등학교 시절, 사진과 연극에 빠져 미친 듯이 대학로를 배회하곤 했다는 낭만적인 이과생 소녀는 이제, 40대를 훌쩍 넘긴 나이로 방송계에서는 뼈 굵은 방송작가가 되었다. 그녀는 지난 20년 동안 <병원 24시>, <사람과 사람들>, <현장르포 제3지대> 등 굵직굵직한 휴먼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냈다. 서두는 이제 그만, 이제 그녀의 삶을 함께 들여다보며 이야기를 더 나누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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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따라 경험따라 생각은 변하는 것이니까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단정하거나, 다른 사람의 의견을 배척하는 건 위험하다고 생각해. 내 인식의 한계를 좁혀버리게 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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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를 배회했던 낭만적인 소녀
조심스레 그녀의 유년시절을 묻자 별달리 부족한 것 없이 자란 유복한 집의 딸이었노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그녀의 생각은 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북한산을 자기 집 마당으로 삼는다는 친구들이 너무나 많았고 그 때부터 그녀는 ‘우물 안 개구리’에 감정 이입을 하기 시작했다. 유년시절 그녀는 무엇이든 잘 하는 소녀였다. 그러나 그림, 운동, 노래, 글짓기, 공부. 뭐하나 빠지는 것 없던 소녀의 자신감은 스무 살이 되던 해에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그래서일까, 그녀는 인터뷰 내내 ‘겸손’이라는 단어를 매우 강조했다.
그녀는 연세대학교 의생활학과에 입학했다. 디자인을 배우고자 들어갔지만 그녀의 생각과는 다른 학문이었다. 화학 기호와 갖가지 공식들에 머리가 아플 즈음 국문과 마광수 교수의 수업을 들었다. 글은 그녀의 건조한 삶에 물기를 주었다. 그리고 조금씩 글을 향한 꿈을 싹틔우기 시작했다.
유년시절을 조금 더 말해달라는 기자의 부탁에 그녀는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 “의대에 진학하고 싶었는데, 공부는 안하고 사진이랑 연극에 빠져 지냈어.” 겁 없는 호기심으로 마로니에 공원을 누볐을 그녀의 눈빛이 소녀처럼 반짝 빛났다. 그 때의 경험과 감수성은 현재 그녀가 하는 방송을 만드는 일에 참 기가 막히게도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그녀는 나지막이 말했다. “인생은 아무도 모르는거야.”
방송작가로서의 인생을 걷기까지
그녀는 글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전공과 연계해 패션의류잡지에 몸담고 싶었다. 하지만 덜컥 아이가 생겨버렸다. 아쉽게도 그녀는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아이를 양육하면서부터 TV를 가까이하게 됐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나라면 더 재밌게 만들었을 텐데’라는 생각이 머릿속 한 가득을 차지했다. 그러던 와중 방송작가를 양성한다는 ‘방송작가교육원’을 알게 됐다. 그녀가 ‘유레카’를 외친 순간이었다. 그녀는 이 순간을 기점으로 20년째 ‘방송’이라는 이정표를 따라 걷고 있다.
그녀는 “‘방송작가’라는 전문적 직업이 생긴 지는 사실 얼마 되지 않았다”며 “원래는 시인을 필두로 하는 정통문인들이 ‘겸업’의 개념으로 방송작가 일을 맡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어 86년도에서 88년도까지 방송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알음알음 데뷔하던 방송작가 루트가 90년대 들어 공식적으로 확장됐다. 그녀도 이 루트로 1991년도에 방송작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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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노옥환 작가는 EBS <세계테마기행>을 집필중이다. |
“방송사에서 이력서랑 원고를 가지고 오라는 거야. 나는 내가 고민한 아이템들도 몇 개 적어서 같이 들고 갔지. 내 아이템들이 참신했나봐. 바로 그 다음 날 아침 7시에 출근하라고 하더라고. 얼떨결에 시작하게 됐지.” 그녀의 인생은 운명의 연속이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사실 하나, 그녀는 운명을 마주할 때마다 항상 준비 된 상태로 운명을 마주했다.
사람의 소리를 그려온 20년
방송에 입문해서 맨 처음 맡게 된 프로그램은 스튜디오에서 진행되는 <아침마당>이었다. 그러나 스튜디오형 프로그램과 그녀는 궁합이 썩 좋지 못했다. 그녀가 있어야 할 자리에 패널이 있었다. 그녀가 전달하고 싶은 말은 패널의 입맛에 맞게 각색되었다. 그녀는 자신이 말한 메시지를 책임질 수 있는 다큐의 길로 접어들었다. 단편 휴먼 다큐를 시작으로 그녀는 꾸준히 다큐의 길을 걷고 있다. 작가의 생각을 한 컷 한 컷에 담을 수 있는 다큐를, 그녀는 “참 사랑하고 있다”는 말로 응집했다. 그러나 세상에는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는 일들도 존재하는 법. 특히나 방송은 PD와 작가의 호흡이 중요하다. 작가의 입맛대로 마음에 드는 프로그램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그녀는 “운 좋게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된 경우가 많다”며 웃음을 머금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그녀는 억세게 운 좋은 사람이다. 유복한 집안, 똑똑한 머리, 연달아 이어지는 좋은 기회들까지. 시련이나 고난이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인생사다.
하지만 그녀도 사람에 실망하고 돈에 놀라며 많은 고충을 느낀다. 그녀는 어두운 표정으로 <병원 24시>라는 프로그램에서 겪은 일화 하나를 소개해줬다. “아픈 아저씨 모습이 방송에 나가자마자 기부금 3000만원이 모였어. 그걸 부인에게 줬지. 근데 부인이 자식이랑 아픈 남편을 두고 도망을 가 버린거야. 이렇게 나쁜 사람이 다 있나 싶기도 하더라구.”
그녀는 입에서 또 다른 이야기가 슬그머니 나왔다. “제작비 협찬을 받기 위해서 모 대학생들의 해외자원봉사를 촬영해야했어. 명문대라고 소문난 대학인데 너무 실망했지. 한명이 ‘아니요’라고 하니까 이내 우르르 ‘아니요’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자신의 의견은 없는 사람들 같았어.” 어두운 식당 안이었는데도 그녀의 얼굴이 붉게 변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야. 지적 허영심에 차서 오만방자한 사람들. 딱 걔들이 그랬다고. 덥다고 그늘에 앉아 매니큐어를 바르질 않나.” 그렇지만 그녀는 이 모든 것들을 배움의 터로 바꾸어 버리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다. “사람이 싫을 때도 있지. 하지만 어쩌겠어요. 좋은 사람한테도 배울 것이 있지만 나쁜 사람한테도 배울 게 있는거지.”
반대로 가장 보람 있었던 적을 물었다. 그녀 얼굴에는 아직 사라지지 않은 붉은 기운이 남아있었다. 그녀는 주저 없이 말했다. “내가 만든 작품이 주위환기를 시켜줄 때, 그 때가 가장 보람 있지.” 작년, 그녀는 ‘도박’에 관한 주제로 다큐멘터리를 구성했다. 뇌와 도박을 연관시킨 이 프로그램은 각계의 호평을 받았고 관련단체를 만드는 데에도 큰 역할을 했다. “그래서 내가 이 일을 20년 째 하고 있어.”
조금은 불편한, 사실과 진실의 차이
그녀는 기자에게 문제 하나를 내줬다. “어떤 남자가 한 달밖에 살지 못한다는 시한부 선고를 받았어요. 할 수 있는 일은 병실에 링거 한 병을 맞으며 가만히 누워 있는거지. 가족도 포기했고. 3월이었어. 그런데 눈이 오는거야. 지금은 3월에 눈이 오는 게 대수롭지 않지만 그 때는 3월에 눈이 오는 일이 정말 신기했단 말이야.” 그녀의 설명은 여기서 끝났다. “자, 기자님이 카메라를 들고 있다면, 이 때 어떤 장면을 찍겠어?”
기자는 곰곰이 생각했다. 눈 오는 봄날의 풍경, 가만히 창밖을 바라보는 환자의 모습을 찍으면 어떨까.
“보통 사람들은 창밖을 보는 아저씨의 모습을 담을거야. 눈이 흩날리는 바깥 모습도 찍을거고.” 신통한 점집에 온 양 기자는 고개를 힘껏 끄덕거렸다. “그런데 말이야, 그 당시, PD는 더 이상 신지 못할 환자의 흰 운동화를 찍어 왔더라구. 링거 방울이 하나씩 천천히 떨어지는 장면이랑 함께.” 조금 숨을 고르다가 그녀는 말했다. “그게 리얼이야.”
그녀와 진실과 사실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팩트를 붙여놓는 것은 감동이 없는 장면을 연출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내가 앞에 말한 이야기에서 봐요. 눈이 오는 날 환자가 창밖을 바라보며 하루 종일 누워있는거. 그게 팩트야. 근데 진실은 슬픔이잖아. 팩트만 가지고는 슬픔을 다 드러낼 수는 없는거지. 어때, 조금은 불편하지 않아?” 그녀에게 ‘리얼’은 ‘진실’이다. ‘사실’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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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말한다. “ 남들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해요. 혼자만 똑똑해서는 할 수 없는 일도 있어.” |
소통, 이 시대의 대학생들에게 던지는 메시지
‘글로벌리더’라는 말이 화제다. 대학생들은 글로벌리더로 ‘키워지기’위해 오늘도 토플 학원에 간다. 해외 인턴이나 봉사활동 경력은 필수옵션이다. 거기다 유창한 제2외국어 실력까지 곁들이면 금상첨화. 그녀가 생각하는 진짜 글로벌리더의 요건은 뭘까?
그녀는 “진짜 글로벌리더의 필수조건은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남들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해요. 그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야.” 그녀의 소통에는 스펙도 없고 학벌도 없고 연줄도 없다. 다만 사람을 향한 애틋한 마음이 소통의 전부다. 그녀는 소통이 부족한 학생들에게 따끔한 일침을 고한다. “서울대 학생들이 똑똑하다는 건 알아요. 근데, 일을 하면서 서울대 사람들을 만나면 타협을 몰라.” 그녀는 덧붙였다. “이해하지. 살면서 실수나 결핍이 없었던 사람들이 많은데. 적어도 머리 쓰는 일에서 만큼은 말이야. 하지만 똑똑해서는 할 수 없는 일도 있어. 그러니까 소통을 해야 해. 혼자서만 세상 살지말고요.” 기자는 다시 생각했다. 그녀가 말하는 소통은 혹시 겸손의 다른 이름은 아닐까, 하고.
늦은 밤 홍대의 거리는 아궁이 속처럼 뜨거웠다. 그녀는 “저기에 사주 잘 보는 데가 있다"라는 말로 인사를 대신했다. 그녀의 뒷모습은 쿨했다. 기자는 그녀의 뒷모습 속에서, 그녀의 쿨하지 못한 사색의 날들을 읽을 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