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꼬레아]우리 시대의 인권에 물음표를 던지다 : 고정코너 : 서울대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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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년 3 월 제 103 호

 
 

[NGO꼬레아]우리 시대의 인권에 물음표를 던지다

::인권을 공부하는 사람들, ‘인권연구소 창’

안효성 기자 / ans1@snu.ac.kr

ⓒ인권연구소 창
 

날카로운 창과 열린 창을 동시에 형상화한 인권연구소 창의 로고.

인권이 말로만 넘치는 시대다. 어느 순간부터 인권은 그저 좋은 것으로, 우리가 반드시 추구해야 할 것으로 이야기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인권이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잘 보이지 않는다. 막연히 좋은 것으로만 간주하고 내용을 채우는 것을 게을리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한국 사회의 인권이 후퇴하고 있다는 소리가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얼마 전 한국의 표현의 자유와 인권 실태를 조사하기 위해 방한한 프랭크 라뤼 유엔 특별보고관은 한국에서 인권의 후퇴가 국제적인 우려를 낳고 있음을 확인시켜줬다. 인권이란 ‘말’은 넘치지만 구체적인 내용과 실천에 대한 고민이 모자란 지금, 인권의 내용을 채우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곳을 찾았다. ‘인권연구소 창’이 바로 그곳이다.

인권을 위해 열린 창과 찌르는 창

‘인권연구소 창’은 2000년 ‘인권운동사랑방’에서 인권운동연구소로 출발했다. ‘인권운동사랑방’에서 인권에 대한 연구를 계속해오다 2007년 ‘인권연구소 창’ 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새롭게 출발했다. 이렇게 ‘인권운동사랑방’에서 독립한 이유에 대해 류은숙 연구활동가는 “뜻이 달라서 독립한 게 아니라 인권운동을 더 풍성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인권운동사랑방’도 자체 조직을 키우는 것보다는 인권운동에 필요한 각자의 역할을 다하는 새로운 단체를 만들어 인권운동을 풍성하게 하는 것이 애초의 목표였다. 그래서 류은숙 씨는 “새로운 지붕을 만들면 그 지붕 밑으로 새로운 사람도 모인다”라는 생각 아래 인권을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 ‘인권연구소 창’을 만들었다. 기자가 연구소의 이름을 ‘인권연구소 창’이라고 붙인 이유에 대해 묻자 류 씨는 “창에는 크게 열린 창과 찌르는 창의 이중적 의미가 있다”고 설명해줬다. 크게 열린 창은 인권에 대해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지향한다는 의미다. 날카로운 창에는 한국사회에서 인권에 대한 오해를 날카롭게 찌르는 창이 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그래서 인권연구소 창의 심벌도 공부를 상징하는 원고지와 펜을 각각 열린 ‘창’과 꽂는 ‘창’으로 형상화 했다.

인권연구소 찌르고자 하는 인권에 대한 잘못된 인식은 무엇일까? 류은숙 씨는 “공공성에 대한 논의 없이 개인이 갖는 권리로만 인권이 사용되거나 전쟁을 정당화 하는 논리로 오용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인권을 공부해야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류 씨는 “한국에 인권이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한 90년대만 해도 인권을 말하는 것 자체가 진보적인 의미를 가졌다”고 회상했다. 장애인들이 이동권이 우리의 인권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나 고교생들이 두발의 자유를 인권의 이름으로 주장하는 것 자체가 굉장한 힘과 급진적인 의미를 가졌던 것이다. 그러나 2000년대에 와서 사정이 바뀌기 시작했다. 테러와의 전쟁이 화두가 되면서 이라크 침공이 인권을 위한 전쟁으로 정당화됐다. 전쟁 반대의 가치 위에서 성장한 인권이 전쟁을 합리화하는 수단으로 전락한 것이다. 그리고 인권이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쓰이면서 인권의 의미는 ‘누구에게 어떠한 권리가 있다’는 것으로 협소해졌다. 권리에 대한 논의만 있고 누가 어떤 책임을 가져야 한다는 논의가 사라졌다. 이렇게 의무에 대한 논의가 사라지면서 권리의 과잉 시대가 왔다.

인권이 필요한 사람이 인권을 공부하다

류은숙 씨는 인권을 공부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90년대와 달리 2000년대에는 우리가 쓰는 인권이 누굴 상대로 어떤 목적으로 사용되는지 명확하게 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계에서 인권에 대한 연구 성과가 넘치기를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류 씨는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인권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 스스로 인권에 대해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고 처음 인권을 공부하기 시작한 배경을 설명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인권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을 하는 사람들 중심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인권의 뿌리와 역사 그리고 현안에 대한 쟁점에 대해서 세미나와 강좌를 진행해왔다.

현재는 ‘법치주의’와 ‘연대’에 대한 세미나를 하고 있다. 하반기에는 ‘연대’에 관한 세미나를 통한 결과물도 책으로 나올 예정이다. ‘연대’에 관한 책을 내는 것은 한국사회에서 연대에 대한 논의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류 씨는 “자유, 평등, 연대는 인권의 3대 요소다. 자유와 평등에 대한 논의는 많지만 연대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빈약하다”고 지적했다. 소수자 권리를 비롯해 많은 인권 현안에서 인권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연대’가 필요하지만 ‘연대’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말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그래서 ‘인권연구소 창’은 ‘연대’의 의미와 역사, 내용과 사례에 대해 공부하고 이 결과물을 책으로 내서 많은 사람에게 ‘연대’의 중요성을 알리는 작업을 시도하기로 했다.

함께 인권을 공부할 사람이 필요해

 

류은숙 씨는 "인권에 대한 말은 많이 쓰이지만 실제로 나아진 것은 없다"고 한국의 인권실태를 평가했다.

인권에 대해 다양한 공부를 하고 있는 ‘인권연구소 창’에는 다양한 주제만큼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다. 인권변호사, 인권단체활동가, 자원활동가들이 관심 있는 주제를 찾아서 함께 공부한다. 자원활동가라는 생소한 단어에 대해 류은숙 씨는 “생계나 학업 때문에 전임으로 활동하지는 못하지만 생활 속에서 인권운동을 실천하고 자기 시간을 쪼개서 공부하는 사람들은 모두 봉사자가 아니라 활동가”라며 의미를 설명했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이 모여들지만 의외로 류 씨는 연구소를 운영하는데 어려운 점으로 “사람이 가장 필요하다”는 점을 꼽았다. 인권운동에 대해 기본적인 공부를 하고 인권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피해자들과 공감의식을 갖고 활동하는 사람들을 만드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류 씨는 조급해하지는 않는다. 사람이라는 것이 기계처럼 일정시간을 투입했다고 그 수치만큼 결과물을 내놓지 않을뿐더러 시간을 오래 쓴다고 함께 일하는 사람이 된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류 씨도 “이렇게 오래 인권 운동을 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류 씨가 인권운동을 시작한 것은 92년, 인권이라는 것 자체가 생소한 시기였다. 이렇게 인권이 생소한 시기에 인권운동을 시작한 이유에 대해 류 씨는 “대학졸업 후에 학생운동을 하면서 하던 일을 사회에서도 내 삶과 이어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다가 인권운동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인권운동이 생소한 만큼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고, 그만큼 오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전히 계속되는 ‘창’의 고민들

인권운동을 18년간 해온 류은숙 씨가 평가하는 한국의 현재 인권 상황은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류 씨는 “인권이라는 말은 많이 나오지만 실제로 나아진 것이 없는 사회”라며 학교생활을 단적인 예로 들었다. 학교에서 물리적 폭력은 이전보다 줄었을지 몰라도 언어폭력은 훨씬 심해지고 정교화됐다. 또한 학생들 간의 폭력은 인권문제로 몰아가면서 교사가 학생들에게 가하는 폭력 문제는 덮어주기에 급급하다. 학생을 폭행한 교사에 대해서는 감싸기식 징계가 일반화돼 있다. 피해자인 학생이 상대적으로 어리다는 이유로 교사가 학생들에게 가하는 폭력은 정당화되고 있는 것이다. 류 씨는 “이런 이중적인 접근을 벗어나는 게 중요하다”며 “인간이라면 누구나 맞아서도, 때려서도 안 되며, 이는 공부할 필요가 없는 기본적인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경향신문
 

피의자 신상 공개 등 가해자의 인권에 관련된 논쟁은 인권운동이 당면한 큰 고민거리이다.

학교 밖에서도 인권문제는 여전히 우리 사회의 과제이다. 흉악범죄와 관련된 처벌강화론과 가해자 인권이 최근 문제가 됐다. 처벌강화론이 고개를 들면서 인권이 가해자의 인권과 시민권을 후퇴시키는데 사용되고 있다. 김길태 사건이 대표적이다. “당해도 싸다”라는 논리 아래 가해자의 인권은 무시되기 십상이다. 하지만 가해자 인권 보호를 주장하면 가해자와 피해자 인권을 동일시해 가해자를 옹호한다는 비난이 쏟아진다. ‘인권연구소 창’이 가장 고민하는 것도 이 문제이다. 류 씨는 “‘가해자는 당해도 싸다’는 말이 피해자들에게서 나오는 것은 심정적으로 공감할 수 있지만 국가기관이나 언론이 나서서 부추길 일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가해자들을 확실히 검거하고 처벌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전자팔찌 도입이나 피해자의 얼굴 공개로 강력범죄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류 씨는 “국가가 국민이 폭력과 불평등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사회를 건설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안전보장이라는 명목의 인권침해를 정당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안전’을 강조함으로서 국가권한의 강화는 물론이고 인권, 공공성, 민주주의의 이슈를 후퇴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런 문제의식 아래 ‘인권연구소 창’에서는 최근 끝장토론도 벌였다. 인권이 오용되지 않기 위해서 인권운동가들이 처벌강화론에 대해서 어떤 시각과 태도를 가져야하는지 고민해보자는 취지에서다.

성찰의 힘이 인권의 밑거름

인권이 위협받고 있는 사회에서 인권을 다시 정립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류 씨는 “인권이 우리의 노력 없이 하늘에서 떨어진 것처럼 생각하는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권은 왜 인간이 인간답지 못하는가에 대해 분노하고 슬퍼하는데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류 씨는 “인권은 공부와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한 공부처럼, 인권의 향상도 인간이 처한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그 해답을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류 씨는 “슬퍼하고 분노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구조와 원인으로부터 인간이 느끼는 모욕과 억압이 나오는지를 알아봐야 한다”며 인권공부가 가지는 의미를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대학생들에게 “자신들의 놓인 상황이 온당하고 정의로운 것인지 성찰할 것”을 요구했다. 성찰의 힘이야 말로 인권의 밑거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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