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학생회 없는 관악의 봄 : 학원 : 서울대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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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년 3 월 제 103 호

 
 

총학생회 없는 관악의 봄

::53대 총학생회, 불신을 딛고 세워질 것인가

최우영 기자 / luckerk1@snu.ac.kr

서울대학교 총학생회가 만들어진 이래 사상 초유의 재선거 무산사태가 벌어졌다. 당장 총학생회 부재로 인한 문제점들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들이 많다. 문제는 재선거 과정 내내 끊이지 않았던 선본들 및 선관위의 갈등과 필연적으로 야기된 학생들의 불신이다. 조각난 학생사회 신뢰회복의 길은 요원해보이기만 한다. 재선거 무산사태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갖고 있지 못한 학생들마저 캠퍼스를 가득 메운 소문과 자보 공방전을 지켜봤다. 이제 소강상태에 빠진 갈등을 거름삼아 관악 학생사회는 재건될 수 있을까.

 

선거가 파행으로 치달으며 허공에 날아간 8254명의 투표용지가 담겨있는 투표함. 선관위원들이 사퇴서를 쓰던 4시간 동안 학생회관 라운지에 방치돼있었다.

38:25:22 실망과 불신의 시작

총학생회에 대한 본격적인 불신은 2009년 11월 선거에서 시작됐다. 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의 사전 투표함 개봉여부를 놓고 개표가 연기되던 가운데 ‘Yes, We Can’선본에서 선관위실 내부 녹음파일을 공개했다. 선관위의 도덕성 논란 및 ‘Yes, We Can’선본의 도청 적법성 여부에 대해 기나긴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선거관리위원장 박진혁 (경제 06) 씨를 비롯한 선관위는 총운영위원회의 사퇴 권고를 받고 총사퇴했으며 새로이 구성된 선관위는 재투표를 공고했다. 당초 출마했던 5개 선본 중 ‘권리찾기’와 ‘R-evolution’선본이 사퇴한 가운데 진행된 재투표는 결국 투표율 미달로 무산됐다. 이후 열린 전학대회에서 52대 총학생회는 명예탄핵을 당했다.

무산 이후 학내 언론들로 구성된 진상조사위원회(조사위)는 녹음된 파일을 증거로 채택하고 조사를 시작했다. 녹음된 파일 속에는 ‘38:25:22야’, ‘완패네 완패’, ‘누구누구 예상이 맞았어’ 등의 대화들이 있었다. 이는 선관위와 정치적인 맥을 같이 하는 ‘리본’선본을 위해 선관위가 임의적으로 투표함을 개봉하고 표를 조작했다는 의심을 불러일으켰다. 선관위장 박진혁 씨는 “녹음된 파일 속의 목소리가 제 것이라고 명시적으로 말한 적은 없다”는 일명 ‘명시 드립’ 등으로 학내 커뮤니티인 스누라이프에 연일 회자되며 많은 이들에게 혹독한 비판을 받았다. 7개월 여가 지난 지금까지 스누라이프 인기태그에서는 ‘박진혁’을 찾아볼 수 있다. 박진혁 선관위원장은 이 모든 논란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다 올해 3월 8일 조용히 군입대했다.

많은 학생들의 분노와 실망감은 비단 온라인 뿐만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터져 나왔다. 당시 졸업을 앞두고 마지막 투표를 했던 안경목(응생화 03) 씨는 두 번의 투표 모두 허공으로 날아간 데 대해 아쉬움을 토로했다. 안 씨는 “조국의 미래를 묻거든 고개 들어 관악을 보라는 말이 생각났다. 20, 30년 뒤 정치판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아 매우 씁쓸했다”며 총학생회 선거과정에 대해 실망감을 숨기지 않았다. 이병일(경제 05) 씨는 도청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이 씨는 “초원복집 사건이나 노회찬의 삼성 X파일 사건이 연상돼 기분이 불쾌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지혜(작물생명 08) 씨는 학생다운 순수함이 없는 선거였다고 질타했다. “총학생회를 통해 좋은 학교를 만들겠다는 사람들로 보이지 않았다. 대의가 아닌 각자의 이익을 위해 선거에 임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재선거를 둘러싼 갈등

올해 4월 많은 학생들의 우려와 기대 그리고 관심 속에 진행된 재선거가 진행됐다. ‘R-evolution’선본 입후보 이후 연석회의 집행부 활동을 하던 이규열(농경사 06) 씨가 선관위원장을 맡았다. 이규열 씨는 서울대저널과의 선거신문 인터뷰 당시 “작년 선거에서 중도 사퇴한 후보의 한 사람으로서 학우들 앞에 책임을 지는 한 방식으로 선관위원장을 맡았다”고 밝혔다. ‘R-evolution’선본, 전 선관위와의 연계성에 대한 대중적 추궁을 당했던 ‘리본’선본을 제외한 ‘권리찾기’, ‘민중의 벗’, ‘Yes, We Can’선본은 재출마했다. ‘Yes, We Can’선본은 유일하게 정후보를 교체하며 ‘새판짜기’라는 새로운 선본명으로 선거에 임했다. 세 선본은 선거기간 내내 선관위와 갈등을 빚었다.

 

53대 총학생회 재선거 정책간담회 현장. 과연 이 곳에 모인 이들 중 누가 선거의 파국을 짐작이나 했을까.

첫 갈등의 불씨는 ‘새판짜기’선본의 사전선거운동 징계 여부였다. 채상원 정후보의 개인 명의 자보 “나는 오늘 대학을 거부한다. 아니 싸움을 시작한다.”가 발단이었다. 해당선본 측에서는 개인명의 자보마저 사전선거운동으로 규정한다면 학내의 일상적인 정치활동들을 억압하는 일이라며 반발했다. 그러나 선관위는 선본등록 이후 자보가 철거되지 않은 점과 선거선전물과 자보제목의 일치성 등을 근거로 징계를 결정했다. 이후 ‘권리찾기’선본은 두 번의 선본장 연석회의 지각 및 공동유세 지각으로 연속 징계를 받았다. ‘민중의 벗’선본은 후보약력 제출시기 미준수 및 허위사실 유포 등으로 징계를 받았다. 투표소 설치기간에는 인력 및 시간 미준수로 인해 세 선본 모두 동시에 징계를 받기도 했다.

선관위와 선본간 갈등은 연장투표 종료시점인 4월 29일 밤 12시 직전에 고조됐다. 선본들은 투표율 50%를 넘기기 위한 녹두투표소 설치 및 심야 투표를 주장했고 선관위는 원칙에 어긋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애초 선거신문을 통해 “표를 쥐어짜는 선거를 하지 않겠다”던 이규열 선관위원장과 선관위는 결국 연장투표 마지막 날 야간투표소를 설치했다. 선본들이 전례에 따라 주장했던 녹두투표소 설치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선본들은 전례를 주장했고 선관위는 원칙을 주장했다. 결국 투표율 50%를 넘겼다는 선관위의 판단 이후 선본들은 개표절차를 위해 총학생회실로 모였다.

그 후 더 큰 문제가 불거졌다. 외부에 이유를 밝히지 않은 채 선관위 회의는 4월 30일에도 계속 됐으며 그 이유는 5월 1일 3시 경 밝혀졌다. 선관위 측에서 재학생 투표인원 16640명을 16440명으로 오집계한 사실이 드러나며 투표율이 50%가 넘지 않게 된 것이다. 일부 선본은 재연장투표를 주장했고 선관위는 시행세칙을 근거로 반대했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회의는 1일 새벽 6시 경 ‘4월 30일 기준의 대조명부 기준’에 대해 합의되면서 일단락되는 듯 했다. 30일 기준 명부를 채택할 경우 휴학생 340여 명이 명부에서 제외되면서 근소하게 투표율 50%가 넘는 것으로 예상됐다.

학생사회, 점점 늘어가는 상처

5월 1일 명부대조가 끝난 후 개표만을 앞둔 시점에서 선관위와 선본들 간 ‘마지막이라 예상됐던’ 회의가 열렸다. 선관위에서는 개표가 늦어진 데 따른 경과보고 및 휴학한 후보들의 신상에 관한 공고를 하겠다고 말했다. 선본 측에서는 선관위가 ‘자의적인 자보’를 게재하기 전에 선본들에게 사전 논의를 거치자고 말했다. 이를 검열 및 통제로 받아들인 선관위원들은 선관위의 위상과 권한이 심각하게 침해됐다고 판단했다. 이날 선관위원장을 사퇴한 이규열 씨는 사퇴입장을 밝힌 글에서 “범죄자 취급을 받았다”며 분노를 표했다. 이후 고혜정(사회교육 08) 씨를 제외한 선관위원들은 모두 사퇴의 변을 남기며 선관위를 사퇴했다. 선관위원 중 한 명이었던 신철우(소비자아동 07) 씨는 “선관위의 노력이 선본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업신여겨졌다는 느낌을 받는다 ”며 이규열 씨 이전에 이미 사퇴를 한 상태였다. 선관위원들이 회의를 한다며 사퇴문을 쓰던 12시부터 16시 동안 8254표가 들어있는 투표함들은 학생회관 라운지에 방치돼 있었다.

 

“그간 이어져온 무의미한 신뢰회복 논의보다 차라리 이 기회에 세칙보완과 같은 실질적 결과를 남기는 것이 낫다”는 이경환 씨.

고혜정 씨 외의 선관위원을 충원하기 위해 단과대학생회장 연석회의(연석회의)가 열렸으며 새로이 6명이 재선관위에 합류했다. 연석회의 공동의장인 공대 학생회장 오나영(컴퓨터공학 07) 씨가 선관위원장을 맡았고 사회대 학생회장 이지윤(인류 07) 씨가 부위원장을 맡았다. 새로 모인 선관위 회의는 5월 1일부터 시작되어 휴회와 개회를 반복하며 5월 4일 새벽까지 3일간 진행됐다. 그 과정에서 이전 선관위원들에 의해 결정됐던 ‘30일 명부를 기준으로 한 투표율 계산’은 폐기됐다. 선관위의 결정은 ‘16일 명부’를 기준으로 한 원안으로 변경됐다. 이 과정에서 오나영 씨는 ‘30일 명부안’을 줄기차게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직권상정을 주장했다. 나머지 선관위원들은 직권상정시 전원사퇴를 하겠다고 하며 오나영 선관위원장을 압박했고 결국 5월 4일 새벽 오 씨는 선관위원장직을 사퇴했다. 이후 선관위에서는 16일 명부채택·선본들의 이의제기 수용불가·선거무산공고 등을 의결하고 회의를 종료했다.

마라톤과 같았던 회의가 지속되는 동안 학내의 여론은 요동쳤다. 이규열 씨는 4일 새벽 인터넷에 2번째 글을 올려 선본들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학내 커뮤니티에는 간간이 선본들을 옹호하는 글들도 올라왔으나 이미 입장을 밝힌 선관위의 입장을 지지하는 글들이 많았다. 또한 2009년부터 이어져온 총학생회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했음을 보여주는 글들도 눈에 띄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민중의 벗’선본은 ‘원칙에 따른 개표를 촉구한다’는 자보를 학내 곳곳에 게재했다. ‘새판짜기’선본도 자보를 통해 그 어느 때보다 선관위의 선거성사 노력이 부족했음을 질타했다. 특히 이규열 전 선관위원장에 대해 “명부를 누락시킨 과오는 인정하지 않고 흑색선전을 통해 선본들에게만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총학생회는 살아날 수 있을까

결국 서울대 총학생회가 부활한 이후 처음으로 총학생회 없는 1학기를 맞이하게 됐다. 이미 대동제 및 장비대여 등 총학생회의 일상 업무는 연석회의가 진행했다. 다만 선거과정 전반을 보며 쌓인 학생들의 다양한 실망감들은 이후 총학생회 건설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양수연(소비자아동 06) 씨는 “출마한 선본들 모두 였다. 신뢰도 신뢰거니와 공약도 매력적인 것이 없었다. 선거를 망치고 엄한 선관위만 괴롭히며 변명으로 일관하는 모습, 그리고 무산된 결과가 안타깝다”며 이번 총학생회 선거를 바라봤다. 하지만 애초 기대가 별로 없었기에 실망감도 그렇게 크지는 않다고 덧붙였다. 이동현(원예생명 04) 씨는 “스누라이프를 읽어보면 사람들이 얘는 이래서 싫고 쟤는 이래서 싫다는 말들을 한다. 그래서 투표 안 한다는 사람들도 많았고 선관위가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서 선거를 무산시킨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씨는 더 이상 서울대를 대표하는 단위를 사람들이 원치 않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대표자 선출에 무관심한 학생들에게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반면 ‘권리찾기’선본의 부후보였던 이경환(물리 05) 씨는 선거과정 및 자보들을 통한 논쟁들이 나쁘지 않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이 씨는 “총학생회에 대해 더 이상 나빠질 신뢰도 없었다고 생각한다. 신뢰를 회복하자는 지루한 담론들보다는 실제 결과물을 내는 과정이 실질적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휴학생조항 및 투표율조항 등에 대해 예전부터 논의가 있었고 학생들의 관심이 몰린 지금 처리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는 투표율조항이 논의되는 김에 온라인투표와 같은 매력적인 정책들도 함께 다뤄졌으면 좋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5월 26일 수요일 19시 총학생회실에서는 연석회의·선관위·선본들 및 몇몇 학생들이 모여 53대 총학생회 재선거 공동선본평가 대중 토론회를 진행했다. 선거시행세칙 상의 선거권 및 피선거권 조항·익명자보 제재·게시판 쿼터제에 따른 선관위 업무부담·선거참여패널·사전선거운동금지 존속여부·투표소 지킴이 등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그 외 실무적 평가로는 선관위의 역할과 원칙에 대한 논의 및 연건캠퍼스 투표함 설치, 그리고 온라인 투표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전자명부 도입여부와 투표율 50% 조항 및 연장투표 조항에 대해 이경환 씨가 발제하기도 했다. 이날 논의된 사항들은 오는 11월 진행될 53대 총학생회선거에 영향을 미칠 예정이다.

이번 선거 결과가 무산이기에 11월 선거 역시 4월과 마찬가지로 ‘53대 총학생회 선거’다. 작금의 갈등 및 불신들을 딛고 오는 11월 총학생회 선거에서 53대 총학생회가 탄생할 수 있을지 학내외의 시선이 모이고 있다.

 

파국으로 끝난 총학생회 선거결과를 보여주듯, 5월 말까지 총학생회실은 선거모드다. 오는 11월 53대 총학생회가 이 방으로 들어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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