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월 22일 MBC 인기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의 200회 특집이 방송됐다. ‘왕의 귀환’, 무한도전의 7주 만의 복귀에 언론들이 붙인 수식이다. 17.2%의 시청률로 동시간대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고 역시 무한도전이라는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불과 얼마 전 MBC를 대하는 태도와 오버랩된다. 천안함 사태라는 거대 이슈에 가려진 측면이 있었다지만 주요 언론이 보도한 ‘MBC 파업’은 말그대로 최소한에 그쳤다. 송지훈(사회과학 10) 씨는 “평소 신문을 훑어보는 편인데 MBC 파업에 대한 상세한 기사를 찾기 힘들었다”며 MBC 파업이 축소 보도된 점에 아쉬움을 토로했다. 사실 이번 파업은 MBC 노동조합이 파업을 강행한 이유와 그들의 요구에 대한 사측과 정부의 반응보다는 ‘MBC 예능의 결방’으로 주로 회자됐다.
총파업은 39일간의 투쟁을 끝으로 형식상 종료됐고 프로그램들은 정상 방송되고 있다. 그렇지만 조합원들은 사상 최대의 징계를 받았고 앞으로도 이들 노조의 행보는 순탄치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왕의 귀환에 감탄하기 전에 생각할 일이 남아있다. 왕은 왜 떠나야 했으며, 이들 위에 군림하고 있는 진짜 왕은 누구인가? MBC 파업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 ⓒDaum 카페, <힘내라 MBC> | |
김재철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는 MBC 노조의 모습. |
#1. 2010년 4월 5일 MBC 파업 시작
지난 4월 5일 MBC 서울지부가 파업에 들어갔다. 파업의 목표는 정권의 MBC 장악 진상규명 및 MBC 김재철 사장의 퇴진이었다. 김 사장은 청와대 낙하산 인사로 알려진 황희만 보도본부장의 자리를 박탈하겠다는 약속을 어기고 그를 부사장으로 임명하려 했다. 또한 김재철 사장은 이른바 ‘큰집(청와대) 조인트 발언’으로 문제시된 김우룡 전 방문진 이사장을 고소하겠다는 약속도 지키지 않았다.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김우룡 전 이사장이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MBC 이번 인사는 김재철 사장 혼자 한 게 아니라, 큰집이 김 사장을 불러다가 ‘조인트’까고 (김 사장이) 매도 맞고 해서 만들어진 인사”라며 “이번 인사로 MBC 좌파 대청소는 70~80% 정도 정리됐다”고 말한 것이 알려지면서 MBC 구성원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계속되는 거짓말이 MBC 파업의 도화선에 불을 당긴 것이다.
민주언론실천위원회(민실위) 양효경 간사는 “김재철 사장이 최소한 김우룡 전 이사장에 대한 민, 형사 소송만이라도 해주길 바랐다”고 밝혔다. 조인트를 까인 직접적 피해자로서 김 사장이 소송을 걸면 검찰에서 고소인인 김재철 사장과 피고소인 김우룡 방문진 이사장 2명을 모두 소환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대질심문이 가능해져 ‘큰집 조인트 발언’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진상규명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김재철 사장은 선친이 지금은 소송을 걸지 말라고 했다는 이유로 일을 지연시켰다. 선친의 발언은 김우룡 전 이사장에게만 적용된 듯, 김재철 사장은 아무렇지 않게 MBC 노조를 고소했다.
이에 대해 양 간사는 어느 정도 예상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YTN의 사례도 있고 파업을 결의하면 감수해야 할 부분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번 경우는 “집행부 중 전임 간부는 2명 빼고 다 고소를 당하고 업무방해금지가처분신청의 수위도 높다”며 비판했다. YTN 구본홍 사장 경우 그의 출근을 막는 노조에 대항하여 조합 집행부에 한 회당 천만 원, 간부들에게 백만 원씩을 물리는 소송을 냈다. 반면 지금 김재철 사장은 조합 집행부에 한 회당 2천만 원 조합 간부들은 2백만 원을 내게 했다. 김 사장의 출근을 저지할 때 한 번에 5천만 원 넘게 노조에서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다. “똑같은 초식을 쓰되 조금 더 악랄한 방식을 쓴다”고 양 씨는 분노했다.
이에 MBC 보도부문 사원 252명이 김재철 사장을 선배로도 인정하지 않겠다는 성명서까지 발표했다. “자신이 계속 ‘선배’라고 하면서 우리와는 대화로 문제를 풀어나가려는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 선배라면 후배 등에 칼을 꽂을 수 없다”고 양 간사는 말했다. 그는 “현직에서 같이 일했던 사람들까지 김재철을 선배로 인정하지 않겠다고 말한 것은 더 이상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신뢰가 남아 있지 않았다는 뜻”이라며 김재철 사장이 알아서 자리에서 물러나기를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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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효경 간사는 “김재철 사장은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신뢰를 저버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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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010년 5월 13일 MBC 총파업 중단
‘촛불 문화제’, ‘파업 뉴스데스크’ 등으로 파업의 열기가 고조돼 가던 중 5월 10일 비상대책위원회가 파업 일시 중단과 함께 현장 투쟁으로의 전환을 결정했다. MBC 조합원들은 명분없이 파업을 접을 수 없다며 반발했다. 나흘간의 총회에서 노조 집행부는 12일 총사퇴 의사를 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노조가 분열될 수 없다는 총의에 따라 13일 조합원들로부터 재신임을 받고 사퇴 방침을 철회했다. 그리고 MBC 노조는 파업을 중단했다.
파업이 중단된 뒤 만난 MBC 이근행 노조위원장은 오랜 단식투쟁으로 지친 모습이었다. 현장투쟁을 하겠다고 했지만 순탄치 않아 보인다. 방문진 이사장은 김우룡 씨에서 김재우 씨로 교체됐고 뉴스데스크 앵커는 권순표 씨에서 권재효 씨로 교체된 상태다. 이 위원장은 방문진 이사장 교체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과의 학연으로 이어진 사람이고 스스로를 ‘구조조정 전문가’라고 말하는 사람이 선임된 것은 당연히 ‘MBC를 손 봐야 한다’, ‘어떤 형태로든 옥죄라’는 의도로 봐야 한다”며 MBC에 들어오는 외압의 가능성을 시사했다. 또한 “권순표 앵커 교체는 파업 직후에 일어났기 때문에 노조 조합원에 대한 보복인사라는 의혹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하면서 “오랜 시간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라는 보도국의 입장을 반박했다. 사실 뉴스 앵커는 스타성을 가지고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의 눈에 익어야 하기에 쉽게 바뀌지 않는 자리다. 그는 “회사가 임명한 앵커를 1년 만에 교체하는 것은 자신들의 인사가 잘못됐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가”라며 계속 문제제기를 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이근행 노조위원장은 현장으로 돌아온 뒤 언론 본연의 공정성을 지키기 위해 투쟁을 계속해 나간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그는 “현 정권 들어 광우병 파동과 촛불정국을 거치면서 MBC에 대한 탄압이 본격화된 상황”이라고 말하면서 공정방송을 위해 군사정권에 저항하며 생긴 MBC 언론노조로서 현 정권에 대항할 의지를 보였다. 이에 타파해야 할 문제가 방문진과 정권의 유착관계다. MBC는 주식회사 형태로 운영된다. MBC를 통제하는 장치가 방문진이고 주식을 가장 많이 보유한 대주주로서 방문진 이사들이 주주와 다름없는 권리를 행사하는데 이사들의 과반수를 정부가 임명하고 있다. “정권-방문진-MBC로 이어지는 수직적 지배구조를 깨뜨려야 중립적이고 공정한 방송이 가능하다”는 것이 이 위원장의 요점이다. 이에 파업의 직접적 목표였던 방문진 개혁과 MBC 장악 진상조사는 현장 투쟁에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사안이 된다.
MBC의 현장투쟁은 ▲공정보도강화 특별위원회 ▲PD수첩 사수 및 프로그램 공영성 강화 특별위원회 ▲노조 탄압 분쇄 특별위원회 ▲지역 MBC 사수 특별위원회 ▲방송문화진흥회 개혁과 MBC 장악 진상조사를 위한 특별위원회 설치와 같은 사안에 초점을 두고 진행된다.
| ⓒ서울대저널 채새롬 | |
“상식만이라도 남아있길 바랐다”며 정권에 아쉬움을 토로하는 MBC 이근행 노조위원장. 오랜 단식으로 지친 모습이다. |
#3. 지난 39일을 돌아보며
이번 MBC 파업을 돌아보면서 민주당 최문순 의원은 ‘잘했다’는 반응과 함께 사회적 현안들에 대한 적극적이고 공정한 보도를 통해 현장투쟁에 힘써달라고 전했다. 최 의원은 “이번 파업은 단기적인 승패와 관계없이 언론인들 스스로 언론의 독립을 지키려한 시도였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언론의 독립성’이라는 추상적인 가치를 내건 싸움이라 임금 문제나 근로조건 문제와 달리 가시적인 성과를 알기 힘들지만 반드시 일정 시간이 지나면 그 결과가 드러난다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이번 파업이 다른 언론사에서 크게 다뤄지지 않아서 사회적으로 크게 주목받지 못한 점에 대해 그는 “동업자들끼리의 문제라 크게 다루지 않았던 것 같다”며 유감을 표했다. 보수 언론들과 사실상 정권의 통제를 받는 국영 방송 KBS는 물론, 민영방송 SBS와 같은 지상파 매체로부터 외면 받았던 지난 한 달여에 걸친 시간에 대한 평가다. <미디어오늘>이 4월 5일부터 5월 3일까지 전국단위 아침신문 9개 중 MBC 파업 관련 주요 보도(기사·사설·칼럼)를 분석한 결과, <한겨레>는 17건 <경향신문>은 14건을 보도한 반면 <한국일보>는 6건, <동아일보>는 5건, <중앙일보>는 4건, <세계일보>는 4건, <서울신문>은 2건을 보도하는 데 그쳤다. <국민일보>와 <조선일보>는 각각 1건에 불과했다.
최 의원은 현 정권 들어 MBC 파업을 비롯해 YTN사태와 같은 굵직한 파업이 많이 발생하는 현실에 대해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가 훼손됐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정권이 언론을 현대건설의 홍보실 정도로 생각한다. 헌법정신보다도 효율성, 자본 중심의 사고체계에 익숙한 정권이 언론의 비판을 거추장스러운 부분이라고 보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러한 정부의 태도에 대해 “입법, 사법, 행정부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제 4부의 권력인 언론의 본질을 인식하지 못한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언론 독립의 필요성을 망각하고 언론을 정권의 휘하에 거느리는 것은 “결국 국가 존립에도 해가 될뿐더러 결국 자기들에게도 이득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최 의원의 견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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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순 의원은 “언론은 정부의 홍보실이 아니다”라며 언론을 대하는 정부의 태도를 비판했다. |
#4. 2010년, 끝나지 않은 투쟁 39일+α
MBC 파업 당시 언론의 소극적인 보도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성원은 뜨거웠다. MBC 사내·외 성원금은 1억 5천만 원을 돌파했다. 예능 프로그램이 결방돼도 좋으니 ‘시대의 마지막 희망’으로서 MBC 노조가 힘내야 한다는 지지글이 잇따랐다. 국민들이 한 언론사를 언론 공정성을 수호하는 최후의 보루로 여기게 된 데에 대해 이근행 MBC 노조 위원장은 “국민들이 절망하고 있다는 뜻”이라 진단했다. 국민들의 지지는 절망적인 한국 사회에서 MBC로부터 희망을 발견하고픈 마음이 표출된 현상이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 위원장은 이어 “언론은 언론의 기능을 다할 뿐 최종 선택은 국민들이 하고 그 선택만이 권력을 바꿀 수 있다”며 선거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사람은 말로 해서 안 되면 글을 쓰고, 그래도 안 되면 노래를 하고, 노래도 안 되면 춤을 추고, 몸으로 말 한다” 이근행 노조위원장이 단식에 들어가면서 했던 말이다. MBC는 지난 18일 노조 집행부 및 조합원 42명의 징계대상자를 확정했다. 이근행 노조위원장을 비롯한 집행부 18명과 직능단체장 8명, TV제작본부 보직 부장 12명, 조합원 4명이 징계 대상이다. 1992년 MBC 역사상 최장기 파업 때에도 조합 집행부 15명이 징계 대상이었고 9명만 징계를 받았다. 추후 MBC 노조는 재심을 신청할 예정이고 만일 대량해고가 발생하면 다시 총파업에 돌입할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말을 했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거짓말이었다. 말이 안 통해 결국은 몸으로 말한 MBC 노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이번엔 ‘징계’라는 서늘한 외마디 처벌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