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의견]20대 특집을 읽고 : 고정코너 : 서울대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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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년 3 월 제 103 호

 
 

[독자의견]20대 특집을 읽고

심다슬(국문 08)

한국 나이로 20세가 된 작년, 사람들이 나이를 물을 때마다 어색함을 무릅쓰고서라도 굳이 ‘이십 살’이라고 대답했었다. 실체 모를 낭만에 흠뻑 젖은 ‘스무 살’이란 말은 내게 직접 와 닿는 성격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의 이십 살은 크고 작은 사건과 상념들이 자객처럼 매복해 있다가 덤벼들었고, 확신과 환멸과 또 다른 확신이 교차했으며, 낯선 감정과 관념이 번뜩이고 명멸하기를 반복했던 시기였다. 특히 진로에 대해 갈대처럼 고민하며 초조해하고 막막해했던 그때, 낭만과 즐거움은 존재했지만 그 순도가 100%인 적은 없었다. 그때 고등학교 선생님들의 장밋빛 약속을 원망했던 것도 같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20대의 미래를 마냥 부정적으로 전망하거나 20대에게 정치적 무관심과 보수화의 책임을 묻는 담론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스무 살의 낭만도 믿기 어려웠고, 20대를 정치 위기의 주범으로 몰고 싶지도 않았으며, 연령 기준만으로 특정 집단을 규정하는 것에 대해서도 회의적이었던 나는 20대에 관련된 이야기에 별 기대나 관심을 갖지 않고 지내왔다.

이제 만으로 나이를 세어도 앞의 ‘2’자를 피할 수 없게 된 지금 <서울대저널> 102호의 20대 특집을 읽었다. 여러 20대들이 낭만과 번민이 뒤섞인 속에서 여러 모로 자기를 탐색하고 있었다. 이때 스무 살의 낭만이라는 거품뿐 아니라 20대의 현실에 대한 체념의 먹구름도 걷어낸 서울대저널의 차분한 보도 덕에 평소 시큰둥하게 바라보았던 20대 담론에 대해 반발감 없이 접근할 수 있었다. 스스로의 경험과 생각이 공유될 수 있다고 믿고 공론화를 시도하기보다는 개인적 해결책만을 찾곤 했던 나와는 달리, 20대 모두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사유하며 다양하게 활약 중인 사람들을 엿볼 수 있었던 것도 좋았다. 특히, ‘88만원 세대’라는 세대규정 방식이 20대 내부의 다양한 정체성을 함몰시킨다고 생각하던 차에, 특정 세대 안에 여러 유형이 존재한다는 박권일 씨의 세대유형론을 접하고 88만원 세대론에 대한 오해도 다소 해소할 수 있었다. 여러 모로 <서울대저널>의 20대 기획은 20대라는 세대 규정에 대한 편견과 무관심을 덜어준 계기가 되었다. 다만 옥의 티는 몇 군데 남아 있었다.

먼저 49~51면에 걸쳐 제시된 설문조사 결과에 대해 더 자세한 정보가 제공되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설문 대상이 서울대생이라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설명이 없었는데, 58면의 기사에서처럼 설문 시기나 표본 수집 방식 등의 정보, 특히 표본의 수와 그 분포가 제시되었더라면 통계의 신빙성을 높일 수 있었을 것이다. 또 49면을 보면, 20대를 정의내리는 것이 조심스럽다거나 따로 정의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는 전상진 및 박권일 씨의 의견은 충분히 부연되어 있어 논리 이해가 쉬운 반면, 20대라는 세대 및 그들의 문제를 규정하는 것이 가치가 있다는 박연 씨의 주장은 설명이 누락되어 있어서 그 발언의 앞뒤 맥락을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뷰 진행시 박연 씨의 해당 견해에 대한 설명을 부탁하여 그 내용을 지면에 반영하였더라면 서로 다른 양측 의견을 더욱 균형 있게 실을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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