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가, 한국 만화를 말하다 : 기획 : 서울대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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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년 3 월 제 103 호

 
 

만화가, 한국 만화를 말하다

::만화계 원로 이두호 씨와 신진작가 최규석 씨를 만나다

안효성 기자 / ans1@snu.ac.kr

한국 만화를 짚어보는 기획을 준비하며 <서울대저널>은 「임꺽정」,「머털도사」,「객주」 등 한국의 향취가 듬뿍 묻어나는 작품을 그려온 작가 이두호 씨와, 「대한민국원주민」,「100도씨」 등의 작품을 통해 익숙한 것을 낯설게 만드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는 작가 최규석 씨를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박하정 수습기자
 

이두호 작가가 만화를 그리기 시작한 지 5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만화는 그의 생활의 전부다.

바지저고리 작가, 이두호

어떤 계기로 만화가라는 직업을 택했는가?

제대하고 나서 배가 고파서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내 꿈은 화가니까 마음속으로는 만화가를 언젠가 그만두고 다시 화가가 되겠다는 생각을 해서 십여 년 헤맸다. 동료 만화가에게 돈을 줄 테니 2년간 내 만화를 그려달라고 말하고 좁은 방에서 유화만 그린 적도 있었다. 그런데 2년이 지나고 나니 다시 만화가 그리고 싶어졌다. 그 때 만화가가 되자고 결심을 했다. 어떤 만화가가 될 것인지, 평생 싫증 안 내지 않으면서 그릴 수 있는 것이 뭐가 있을까 한참을 고민했다. 그러다가 내가 처음 그린 만화도, 가장 잘 그릴 수 있는 만화도 우리 역사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전 역사를 그리기엔 범위가 너무 넓어서 조선시대로 한정짓고 그렇게 만화를 그려왔다.

조선시대 민중들의 이야기만 그려왔기 때문에 바지저고리 만화가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런 이야기만 그린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 무엇인가?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은 비슷하더라. 그래서 보통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기 시작했다. 궁중이야기를 잘 그리지 않은 것은 그걸 다룰 만큼 해박한 지식이 없었다. 또 궁중이야기보다 민중들의 이야기가 더 극적인 재미가 있었다.

만화가 생활을 하면서 느꼈던 즐거움과 아쉬움이 있다면

보람은 역시 책이 나올 때이다. 근데 그것도 3일만 지나면 없어진다. 만화가 생활을 하면서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것이 가장 아쉽다. 연재할 때마다 최선을 다하자고 다짐을 하지만 한 번도 최선을 다한 적이 없는 것 같다. “아 이거 정말 기가 막힌 작품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연재를 시작하지만 몇 번 그리다보면 이런 각오를 잊어버렸다. 그래서 항상 연재가 끝나면 주인공도 아쉽고, 이야기도 아쉽게 느껴졌다.

한국만화는 주로 일본만화와 자주 비교된다. 일본만화에 종속됐다는 평가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한국만화가 완전한 표현의 자유를 얻은 지 10년 밖에 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작정 일본만화와 비교하는 건 말이 안 된다. 일본 작가가 그리고 싶은 걸 마음껏 그릴 때 우리는 검열을 받으면서 그렸다. 예전에 내가 7살 아이가 추워서 뒷주머니에 손을 넣고 발을 동동 구르는 장면을 그린 적이 있었는데 이 장면이 심의에서 걸렸다. 7살짜리가 건방지다는 이유였다. 이런 잣대로 검열을 했으니 만화가 발전할 수가 있었겠는가? 표현할 것이 제한됐으니 매일 하는 이야기도 똑같았다. 그러나 이제 만화가들이 표현의 자유를 얻었다. 그림 그리는 재주는 이미 뛰어나니 이제 얼마나 재미있는 이야기를 잘 만드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출판을 근간으로 한 장르만화가 위기에 처하면서 웹툰이 만화의 주된 소통 창구가 되고 있다. 어떻게 평가하는가?

매체의 변화로 보고 있다. 물론 스크롤을 내리면서 보는 만화는 짧은 이야기에는 적합하지만 본격적인 만화를 구현하기에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기술이 점차 발전하면서 이 부분은 차차 극복될 것이라고 본다.

이전에는 둘리, 머털도사, 하니와 같이 한국만화하면 떠오르는 캐릭터가 많았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만화하면 떠오르는 캐릭터가 없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글로벌 세상에 굳이 한국만화 캐릭터를 고집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만화는 대중예술이니, 많은 사람이 보면 좋지 않은가. 나도 지금 머털도사를 다시 그린다면 해외에 나갈 때 좀 더 어필할 수 있는 방향으로 다시 그릴 것이다.

문하생 위주에서 대학으로 만화교육이 바뀌었다. 어떻게 평가하는가?

문하생으로 있으면 외골수로 배울 수는 있다. 그러나 문하생으로 있는 작가의 스타일을 그래도 이어받는다는 것은 단점이다. 그래서 나는 문하생들에게 ‘나중에 나를 잡아먹으라’고 이야기 한다. 자기세계를 가져서 나를 뛰어넘으라는 것이다. 대학교육은 프로정신을 가지고 배울 수는 없지만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우리 학교만 해도 똑같은 주제지만 이현세 선생님과 내가 하는 이야기가 다 다르다. 넓은 세계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좋은 만화가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우선 재미있어야 한다. 재미가 없으면 독자들은 만화를 안 본다. 회화는 자기가 좋으면 방에 걸어놓으면 그만이지만 만화는 그게 아니지 않은가. 물론 감동도 중요하다. 만화를 보고 남녀 간의 사랑, 조국과 민족, 형제애 등이 이런 것이구나 하고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처음은 재미를 주는 만화, 그리고 만화를 덮은 후에 어떤 느낌을 주는 만화가 좋은 만화라고 생각한다.

한국만화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어떤 방안이 필요한가?

나는 한국적인 냄새는 나야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주인공이 한복을 입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한국 사람만 가질 수 있는 정서가 만화 속에 표현돼야 한다는 의미다. 그렇게 되면 무엇을 그리든 상관이 없다. 한국만의 정서가 무엇인지는 그림을 그릴 만화가 스스로 찾아야 한다. 그리고 한국만의 정서를 찾기 위해서는 밑바탕에서 시작해야 한다. 내가 1학년들을 의무적으로 민속촌에 데려가 한복, 초가집을 그리게 하는 것도 그런 이유이다. 그렇게 그리고 시작하면 작은 것이지만 김치를 먹고 출발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작가 이두호에게 만화란 무엇인가?

내 생활의 전부다. 지금 보다시피 아침에 와서 그림을 그리고, 내일도 그림을 그릴 것이다. 지금 하고 있는 작업이 끝나면 캔버스에 만화를 그릴 것이다. 예전부터 꿈꿔왔던 작업이다. 마감에 대한 부담과 재료, 도구의 제약 없이 만화를 그려보고 싶다.

익숙한 것을 낯설게 만드는 작가, 최규석

 

최규석 작가는 자신의 만화의 장점을 "익숙한 것을 낯설게 만드는 것"에서 찾았다.

한국만화가 작년으로 100년을 맞이했다. 소감을 말해 달라.

내가 종사하고 있는 직업군이 시작된 지 100년이 됐구나 정도로 생각한다. 100년이면 굉장히 짧은 시기다. 아직까지 도전해볼만한 부분이 많다는 생각은 든다. 한 1000년 쯤 되면 똑같은 것만 계속 해야 되지 않겠는가.

신선한 소재의 만화가 많은 것 같다. 이런 만화들을 창작한 계기는 무엇인가?

특별한 계기는 따로 없다. 다만 계속해서 반복돼왔던 이야기들은 웬만하면 안하려고 한다. 장르의 법칙들을 다시 재구성해서 옛날에 나왔던 것과 이야기는 다르지만 사실은 똑같은 만화를 창작하는 것에는 별로 재미를 못 느낀다. 내가 재미를 느끼는 것은 익숙한 것을 안 익숙한 것으로 만드는 일이다. 그러다보니 수많은 아이디어들 중 신선한 소재와 형식을 고르게 된다. 예를 들어 ‘습지생태보고서’는 반전개그만화의 형식에 주제를 집어넣었고, ‘대한민국 원주민’은 이야기가 안 될 것 같은 이야기를 이야기로 만들어보고 싶은 욕심에서 시작한 작품이다.

최규석 만화의 장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재밌는 작품, 독자들의 삶이나 생각에 긍정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작품, 다른 만화가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작품이 내가 만화를 그릴 때 가지는 목표다. 이 목표들을 웬만하면 한 작품 안에 종합하려고 노력한다. 물론 작품들마다 좀 치우치는 부분이 있다. 그런 것들이 작가 최규석이라는 특징을 만드는 것 같다. 그리고 이것 외에 내용면에서도 섞이기 힘든 것을 많이 섞으려고 한다. 다양한 것들이 한 곳에 뭉쳐져 있다는 느낌이 내 만화의 장점인 것 같다.

만화가로서 보람과 고충은 무엇인가?

다른 예술 장르에 비해 압도적으로 노동량이 많다. 연재작가의 경우 하루 3시간 자며 작업에만 매진한다. 실제 생활을 보면 지옥 같다. 만화가들이 밤새서 일한다고 하면 밤새서 일한 것이다. 보람이라고 하면 만화는 굉장히 다양한 분야의 재능이 같이 들어가는 영역이다. 영화의 경우 감독이 지시를 하긴 하지만 연기는 배우의 몫이다. 하지만 만화는 그림을 그려서 연기를 하니깐 작가가 감독과 연기 모두 직접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다양한 분야의 재능들을 혼자서 한 지면 안에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한 명이 많은 분야의 일을 해낸다는 것이 만화의 보람이다.

만화가의 고충을 알면서도 만화가가 된 것인가?

고등학교 때 동네 유명한 만화가 형의 생활을 보고 알고 있었다. 그 형의 생활을 보고서 작업 많이 안 하는 작가가 된 것 같다. 데뷔한 지 몇 년인데 책도 몇 권이 안 나왔다. 대학시절 때 주간 10페이지 이상 연재하는 시스템에는 들어가지 말자고 생각했다. 개인적으로 그런 생활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만화가 일본만화와 스타일이 비슷해진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는가?

동아시아권에서 만화가 일본만화와 비슷해지는 경향은 어쩔 수 없다. 어릴 때 자기를 즐겁게 해줬던 스타일의 만화를 창작하는 것이다. 그것을 두고 문제가 있다 없다 이야기하는 것은 힘들다. 물론 다양성 면에서는 걱정이 된다. 일본의 경우 도라에몽 같이 오래된 형식의 만화와 최신의 만화가 함께 공존한다. 한국의 경우 일본의 최신 유행 하나만 따라가고 있다. 이것은 독자와 작가 모두에게 좋지 않다. 독자들은 다양한 만화를 볼 기회 자체를 빼앗긴다. 작가들은 독자들의 취향 변화에 따라 작가 전체의 생존이 위협받는 취약한 구조에 노출된다. 독자들의 취향이 변하면 하나만 고집하던 기존 작가는 도태될 수 밖에 없다.

한국만화가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는가?

일단 사회보장이 잘 돼야한다. 만화가들만의 복지가 아니라 일반적인 복지를 말하는 거다. 복지가 잘 안 되면 중간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고 작품의 질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일본의 경우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만화 창작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있다. 하지만 한국은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활을 유지하려면 만화 창작을 할 시간이 없다. 이렇다보니 만화를 포기할지 말지를 결정할 시기가 금방 찾아온다. 10시간씩 아르바이트를 하고 자투리 시간에 만화를 그리는 어려운 시기를 2년만 겪게 되면 끝까지 만화하려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래서 나는 복지가 만화의 경쟁력을 위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창작자들에게 공부하는 문화가 정착되면 좋을 것 같다. 창작자라해도 시야가 굉장히 좁은 경우가 많다. 조금만 공부하면 재미있는 분야가 많은데 그걸 보지 못한다. 그러다보니 창작할 수 있는 소재도 제한된다. 공부하는 문화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전문가 집단에서 지식을 쉽고 재밌게 풀어내는 문화가 먼저 만들어져야 한다. 하지만 한국은 아직까지 그런 점이 부족하다.

한국만화의 미래를 전망해본다면?

한국 만화의 미래만 떼어놓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그냥 상식들이 통용된다면 만화도 크지 않겠느냐고 생각을 하는 주의다. 아까 말했듯이 복지만 잘되면 문화계도 더 좋아질 것이고, 만화도 함께 좋아지지 않을까? 물론 이런 것은 있기는 하다. 예전에 내가 대학을 다닐 때만해도 만화학과의 재능이 넘치는 학생들이 게임회사로 많이 갔다. 그런데 요즘은 웹툰으로 많이 진출한다고 하더라. 인재가 모이고 있는 것이다. 인재가 모이면 결국 한국만화도 발전할 것이다.

100도씨 이후 어떤 작품을 구상중인가?

차기작으로 수채화로 그린 짧은 만화책을 구상하고 있다. 가난한 고등학생들의 이야기이다. 자학개그가 난무하는 웃긴 이야기를 준비 중이다. 개인적으로 억압받는 자들의 웃음은 긍정과 부정의 요소 모두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힘든 사람일수록 항상 그 상황을 재밌게 만들기 위해서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점이 있다. 그런 유머들로 점철되지만 현실은 점점 나빠지기만 하는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최규석에게 만화란 무엇인가?

목표이다. 더 잘하고 싶은 것. 더 좋은 걸 만들어내고 싶은 것. 만화 외에는 욕심을 부려본 영역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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