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노조, 정권에 걷어차이고 자본에 뺨 맞다 : 특집 : 서울대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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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년 3 월 제 103 호

 
 

방송노조, 정권에 걷어차이고 자본에 뺨 맞다

::방송노조 언론의 공공성을 지키기 위한 2라운드 돌입

안효성 기자 / ans1@snu.ac.kr

이래경 기자 / reflection4627@snu.ac.kr

Box start

만약에...(있을 법하지 않은 일들)

#1 오늘은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하루 일과를 정리하며 세상에 눈뜨기 위해 텔레비전을 켰다. 9시가 됐고 앵커는 뉴스를 진행하기 시작한다. “이 대통령은 오늘…” 대통령의 얼굴이 보인다. 대통령의 오늘 아침, 점심, 저녁 식단은 무엇인지 대통령이 누구를 만났는지 따위의 내용이 흘러나온다. 그리고 삽질은 잘 돼가고 있으니 국민 여러분은 걱정 마시라는 마무리 인사와 함께 다음 천안함 뉴스로 넘어간다. 다음날 저녁 9시, 그리고 그 다음날도 앵커의 시작 인사는 똑같다. “이 대통령은 오늘…”

#2 ‘검찰과 스폰서’ 시리즈가 제작되고도 방영되지 못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이유는? 변호사 출신 미국 대통령이 방한하는데 그가 대한민국 사법기관의 안 좋은 면모를 볼 수도 있고, 그럼 국가적 망신이라는 것.

#3 방송사가 파업을 했다. 대화로 타협하려 했으나 계속되는 거짓말에 사람들은 촛불을 들었다. 촛불은 꺼져버렸고 노조는 단식투쟁에 들어갔다. 며칠 후 말이 통하지 않는 사장은 몸으로 말하려 하는 사람들을 경찰을 동원해 끌어내고는 회사로 유유히 들어간다.

역사는...(일어난 일들)

#1 ‘땡전뉴스’가 있었다. 전두환 대통령 집권기 신군부의 지시로 각 방송사는 대통령 관련 소식을 뉴스 첫머리에 내보내야 했다. 요일은 다르지만 ‘땡’하는 소리와 함께 시작한 9시 뉴스의 ‘전두환 대통령은 오늘…’이라는 멘트는 365일 변함없이 한결같았다. KBS는 대통령 영상만 다루는 전용 편집실을, MBC는 ‘땡전뉴스’ 전용 편집실을 만들었다. 뉴스에서 일 순위로 다뤄야 하는 내용은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이었다.

#2 1990년 9월 4일 PD수첩의 ‘그래도 농촌을 포기할 수 없다’ 편이 불방됐다. 예고방송까지 나갔지만 남북고위급회담을 이유로 사장은 방송이 나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북쪽의 사람들이 남쪽 농촌의 현실을 보게 되면 자칫 국가의 위신이 실추될 수 있다는 사유였다. 그 다음 해 1월, 50회 예정으로 인기리에 방송되던 대하드라마 ‘땅’(극본 김기팔, 연출 고석만)은 경영진의 지시로 중도하차했다. 정치권 부자들이 빈부격차를 조성하고 있다는 내용의 드라마는 제 빛을 발하지 못했다.

#3 1992년 10월 검찰과 경찰은 여의도 MBC를 둘러쌌다. ‘공정방송’과 ‘해직자 복직’을 내건 노조에 대한 사측의 대응이었다. 이완기 노조위원장 직무대행 등 노조 간부 11명이 연행됐다. 노조원들은 눈물을 흘리며 ‘임을 위한 행진곡’, ‘흩어지면 죽는다’ 등의 노래를 불렀다.

Box end

있을 법하지 않은 일들이 일어났다면

ⓒ미디어스
 

1992년 MBC 파업에 참가한 노조원들.

‘있을 법하지 않은’ 일들이 실제로 ‘일어났던’ 과거가 대한민국 언론사에 존재한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 92년 MBC 파업당시 사무국장을 지낸 김평호 단국대 교수(언론정보학)는 당시의 상황을 비상식이라는 단어로 요약했다. 권력과의 독립성을 특징으로 하는 언론사에 공권력이 개입할 줄은 몰랐다고 한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이런 일은 반복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막무가내’. 2010년의 대한민국을 진찰하고 그가 내린 진단서이다. 또한 이번 MBC 파업을 맥락없이 ‘정치투쟁’으로 일색하려는 이들에게 던지는 쓴 소리이기도 하다. 김 교수는 1992년 당시를 떠올리며 결코 지금이 그 때보다 나아지지 못했다고 했다.

1992년, 정권의 입맛에 맞는 편파보도에 대응하여 MBC 노조는 국장 추천제를 제의했다. 방송의 공정성과 관련된 3개의 국장(편성국장, 보도국장, TV기술국장)을 민주적인 의견수렴 과정을 거친 후 사장이 임명하는 제도였다. MBC 사측은 인사권 침해라며 제안을 거부했고 해고된 노조 간부 안성일, 김평호 씨의 복직도 거부했다. 사측은 단체교섭에 거듭 불응했다. 노조의 불만은 곪아갔고 결국 터졌다. 1992년, 대한민국 언론 역사상 일명 ‘50일 투쟁’으로 알려진 52일간의 최장기 MBC 파업은 이렇게 시작됐다.

당시 노조위원장 직무대행을 지낸 <미디어 오늘> 이완기 사장은 20년이 흐른 지금도 1992년 10월을 기억했다. 공권력 투입 하루 전날, 그는 언론노조연맹 권영길 위원장 만났다. 10월 2일 파업 한 달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이용해 공권력이 개입될 것이라는 정보를 얻었고 파업중단여부를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노조가 한 달 동안 파업하면서 구성원들의 결의가 높아졌다. 공권력의 개입으로 노조가 와해되면 여태까지의 공적이 모두 날아갈 위기였다”고 이 씨는 회상했다. 그렇지만 그는 파업을 강행하기로 했다. 노조가 제기했던 ‘공정방송’과 ‘해직자 복직’ 중 어느 것도 이루지 못한 상태였고 또 다시 같은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당시 조합원들의 의식은 공권력이 들어오면 단결돼 더 고양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말하며 “당시 MBC 노조의 조직력을 믿었다”고 밝혔다.

이 사장은 1992년과 2010년 MBC 파업을 둘러싼 상황이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공교롭게도 1992년 파업을 할 때 대통령 선거 석달 전이었던 것처럼, 2010년의 파업은 지방선거를 두달 앞두고 시작됐다. 노사갈등도 지금처럼 심한 상황이었다. 다만 그는 지금의 상황을 “언론사 노조들의 힘이 약해졌다. <한겨레>나 <경향신문> 말고는 이번 파업에 침묵했다”면서 90년대에 비해 요즘이 오히려 언론사가 파업하기 힘들어졌다고 평가했다. 그는 “다른 언론에서 주목해주지 않으니 노조가 제기한 의제에 대해 대중이 알 길이 적어진다”면서 정부와 사측이 ‘무대응’의 지연작전을 펼치는 상황에서 현장복귀를 택한 MBC 노조의 선택은 올바른 것이었다고 말했다.

“언론노조의 싸움은 이제부터”

 

<미디어 오늘> 이완기 사장은 “현장 복귀를 택한 MBC 노조의 선택은 올바른 것"이라며 이번 MBC 파업을 평가했다.

이완기 사장이 현장복귀를 올바른 판단이라고 여기는 다른 이유는 MBC 노조원들의 파업을 통해 얻은 언론인으로서 의식 때문이다. 이완기 사장은 “파업을 통해 조합원들이 방송의 공공성과 노조의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을 것”이라며 이번 파업이 남긴 다른 성과에 대해 이야기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최상재 위원장도 같은 생각이었다. 최 위원장은 “이번 파업을 통해 지난 10년간 편하게 산 언론인들이 각성할 계기가 마련됐다”고 평가했다. 가시적인 성과는 얻지 못했지만 언론의 독립성을 지킬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최 위원장도 이번 파업을 실패라고 평가하진 않는다. 오히려 그는 “진짜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올 하반기에는 종편채널권자 선정 등 언론의 시장화와 관련된 굵직한 일들이 몰려있기 때문이다. 최 위원장은 “지방선거 이후 언론의 사유화를 추진하는 정책에 맞서 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며 “지난 2년 반 동안의 투쟁 기간은 이 싸움을 위해 내부를 각성시키는 과정이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큰 싸움을 앞두고 있지만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 MBC파업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정권과 경영진이 귀를 막고 듣지 않으면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할 가능성도 크다. 최 위원장도 “방송 공공성에 대한 노조 측의 문제제기를 전혀 들으려고 하지 않는 정권과 경영진을 상대로 싸움을 하기가 쉽지 않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언론 노조 간의 연대도 이전처럼 쉽지 않다. 이완기 사장은 “매체 간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방송사 노조들이 자사이기주의에 빠지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방송사 간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자사의 이익에 부합하는 부분은 사측에 의사에 따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매체 간 경쟁의 강화는 사측에게도 부담이다. 성공회대 최영묵 교수(신문방송학과)는 “정부가 뉴미디어 진출 허가, 종편채널권자 선정 등 언론사의 이익과 직결되는 권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언론사에서는 정권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격화되는 경쟁 속에서 생존을 위협받고 있는 언론사의 입장에서는 정부가 가진 당근을 거부하기가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서울대저널 채새롬
 

전국언론노동조합 최상재 위원장은 "지난 2년 반동안은 내부를 각성시키는 과정이었다"며 앞으로 있을 싸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언론의 공공성을 지키는 싸움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지만 최상재 위원장은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그는 “사실상 정당제도가 심각하게 무너진 상황에서 언론이 민주주의를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며 언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언론이 권력을 감시하는 기능을 하지 못한다면 국민들의 삶이 암울해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최 위원장은 “언론인과 시청자들이 연대해 저항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최영묵 교수도 “언론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용하려는 것은 모든 정치권력의 속성”이라며 “결국 언론의 공공성과 독립성을 지킬 수 있는 것은 방송인과 시청자 밖에 없다”고 말했다. 언론인들이 내부에서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고 시청자들은 이런 문제제기를 지지하고 여론을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제도를 만들더라도 끊임없이 감시해야

최상재 위원장이 말한 ‘진짜 싸움’에서 이기더라도 노조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게 남는다. 방송의 공공성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를 마련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완기 사장도 “92년 파업의 결과로 사측과 공정방송을 위한 여러 제도를 만드는 것에 합의했지만 사측은 합의 내용을 잘 이행하려 하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제도가 완비돼 있더라도 지킬 의지가 없다면 무용지물이라는 이야기다. 사실 방송의 공공성을 지키기 위한 제도적 틀은 이미 마련돼 있다. MBC 사장 선임 과정에서 많은 물의를 빚은 방송문화진흥회(이하 방문진)도 정치권력으로부터 방송의 공공성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 중 하나이다. 최영묵 교수는 “정권과 MBC의 유착관계를 끊고, MBC의 공익성을 강화시키기 위한 제도로 출발했다”고 방문진의 취지를 소개했다. 하지만 방문진이 정권의 이해를 대변하는 인사로만 구성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방송과 상관없는 인사가 방문진 위원장으로 선임되거나, 방문진이 MBC의 프로그램 내용의 편향성 등을 문제 삼는 등의 잡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최영묵 교수는 “방문진에 MBC의 경영을 감시하는 기능이 있는 것은 맞지만 프로그램 내용에까지 개입하는 것은 과도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방문진이 애초의 취지와 다르게 정권의 입맛에 맞게 MBC를 운영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었다.

이런 방문진의 문제점에 대해 그는 두 가지 해결책을 제시했다. 우선 여야가 직접 방문진 이사를 선임하는 현 제도를 개선하는 방안이다. 우선 현 제도를 여야가 방문진 이사를 선임하는 위원들을 추천한 뒤 이 위원들이 방문진 이사를 결정하는 것으로 바꾼다. 그리고 방문진 이사 후보를 선정할 때 는 정치권력과 연관이 있는 사람을 배제하는 등의 엄격한 조건을 적용한다. 방문진 이사 선정에 이중삼중의 안전장치를 마련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제도적인 개선도 중요하지만 정치권력이 개입할 때 이를 비판하고 견제하는 자체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제도만이 모든 해결책이 될 수 없음을 강조했다. 제도가 아무리 잘 마련돼 있더라도 이 제도를 지속적으로 실천할 수 있도록 하는 건강한 내부 구성원들이 없다면 정권이나 사측에 의해 언제든지 제도가 무력화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방송사 노조의 중요성이 여기에 있다. 이완기 사장이 “방송의 공공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방송사 노조가 건강해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공정 방송을 위한 제도를 만들고 유지하는데 방송사 노조의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92년 파업을 이끈 선배로서 이완기 사장은 “방송의 공공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치열하게 싸워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물론 힘든 싸움이다. 정권은 귀를 닫고 있고 자본으로부터의 압박도 거세다. 최상재 위원장도 “앞으로 다가올 큰 싸움 때문에 잠이 잘 오지 않는다”고 말한다. 한편, 방통위는 5월 18일 종편채널권자 선정 일정을 공고했다. 발표된 일정에 따르면 늦어도 12월이면 사업자가 선정될 예정이다. 최 위원장이 말한 “진짜 싸움”은 이미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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