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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오래, 젊게
등록일 2019.04.17 22:46l최종 업데이트 2019.04.19 10:40l 최재혁 기자(coliu2@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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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대한 전시의 모든 것을 다 소개하려 노력했지만 완성된 기사에선 부득이하게 ‘기록 기억’ 전시의 몇 몇 부분을 뺄 수밖에 없었다. 그 중 하나는 3부로 넘어가기 직전에 있는 2부의 영상 자료였다. 영상은 중국에서 ‘위안부’ 생활을 했던 박영심이 2003년 11월에 자신이 있던 장소를 다시 찾아가는 모습을 담았다. 이미 풍경이 많이 바뀌었지만 박영심은 연구진의 부축을 받으며 천천히 공간을 되짚어 갔다.


  냉정히 말해서 영상은 나에게 어떤 추가적인 정보를 제공하지는 않았다. 기사 초고 서두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일본 정부는 반복해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책임을 부정해 왔다. 물론 이에 대한 비판은 지속적으로 이뤄졌다. 비단 한국 차원에만 국한되지 않고 국제사회 역시 인권 규범에 근거해 일본 정부에 몇 차례 권고를 내린 바 있다.’ 전시를 보기 전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이미 알고 있던 내용이었다.


  내가 인지하지 못했던 것은 ‘위안부’ 문제의 현장에 있었던 당사자들의 삶이었다. 영상 앞에서 도슨트를 맡은 연구원은 박영심에게 위안소 장소 방문은 쉬운 일이 아니었으리라고 설명했다. ‘위안부’ 생활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었기 때문이다. 연구원은 박영심이 2000년 여성법정에서 증언하기 위해 일본에 갔을 때 호텔에 걸려 있는 기모노를 보고 기절한 적도 있다고 덧붙였다. 어떤 마음으로 그가 중국을 다시 찾아갔을지 감히 헤아리기 어려웠다.


  ‘기록 기억’ 전시를 본 뒤 기사를 쓰기까지 걸린 시간은 이처럼 내 부족함을 깨닫는 경험의 연속이었다. 전시 초입의 지도가 생각보다 너무 크고 아득하게 느껴졌을 때, 증언하는 주체를 노인에서 청년의 모습으로 바꿨을 뿐인 ‘밋찌나’가 새롭게 보일 때마다 번번이 놀라야 했다. 그렇게 많이 놀랐으면서도 전후 생존자의 삶이 다소 소홀히 다뤄졌다는 지적을 받고 초고 일부를 황급히 수정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그래, 내가 아닌 타인의 삶을 무슨 수로 온전히 이해하겠어’라며 쉽게 체념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전시를 준비한 연구팀은 최소한 관람객이 비관하기를 바라진 않았을 것이다. 이해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위안부’ 생존자에게 다가간 결과물이 바로 전시일 터이기 때문이다. 마음을 다잡고 좀 더 오래, 젊게 살자고 되놰 본다. 아직도 모르는 사람이 있음을 인정하고 그의 이야기를 듣도록 노력하는 한,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서 아직 젊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