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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한 것은, ‘사소한 변화’
등록일 [데이터가 없습니다]l최종 업데이트 [데이터가 없습니다]l 신혜정 기자 (lotofyou@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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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1 이번 기사를 쓰는 과정에서는 통화가 많이 필요했다. 특히 바다 건너 일본과의 국제 통화. 기사를 준비하려고 거의 매일매일 종일 학교에서 살다보니 집 전화는 못 쓰고. 만만찮은 비용을 감수하고서라도 내 핸드폰으로 통화를 시도하려 했지만 알고 보니 국제전화가 제한된 요금제. 그래서 여기저기서 핸드폰을 빌려 쓰다가 그것도 여의치 않아 공중전화를 택하기로 했다. 그런데, 공중전화를 쓰려고 생각해보니 도통 학교 안에서 공중전화를 본 기억이 없는거다. 아무리 생각해도 없었다. 핸드폰이 있어서, 그동안은 찾아볼 생각도 안했다. 학교에 공중전화가 없나.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왜 없냐고, 학생회관에도 있고 중앙도서관에도 있고 여기저기 있다고 당연한 듯 대답했다. 그래서 보니까 학생회관에 있더라. 덜컥덜컥 내려가는 카드 돈에 가슴이 서늘해지기도 했지만 어쨌든 필요는 채울 수 있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일어난 것은 그렇게 학교 안에서 공중전화를 사용하고 나서였다. 1년 넘게 학교에 다니는 동안 모르고 있었던 학내 공중전화의 존재들이 자꾸 눈에 들어오는거다. 알고 보니 내가 매일 지나던 인문대 1동 터널에도, 편지 부치고 소포 부치러 가던 우체국 옆에도, 음료수 마시고 샌드위치 사먹던 중도 매점에도, 정말 여기저기에 있던 공중전화들이 이제야 눈에 들어왔다. 사소한 일이지만 내겐 그게 정말 마법 같이 느껴졌다. 공중전화에 대해서만은 장님이었던 내가 눈을 떠 그것들을 보게 된 것. 그 변화의 원천은 내 마음일 것이다. 신경 쓰지 않았던, 알아보려 생각하지도 않았던 것에 대해 인식하고 관심을 가지게 된 것. 그 사소한 마음의 변화가 나로 하여금 1년여 간 깨닫지 못한 것들을 알려준 것이다.
내게 있어 일본 국민들의 생각과 입장과 그 배경도 이와 같았다. 독도 문제에 관해서, 역사교과서 문제에 관해서, 야스쿠니 신사참배 문제에 대해서, 자위대와 평화헌법에 대해서, 또 천황제에 대해서 등등등 나는 그저 막연히 ‘일본은 왜 저래’라고 생각해왔다. 이러한 사안에 대한 일본의 입장은 알지 못했다. 생각해보지 않았고 알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내 주장이 옳았기 때문이다. 적어도 이러한 사안에 있어서 나에게‘일본'의 이미지는, '아집과 이기에 차 근거없는 주장과 행동을 하는 이상한 집단'으로 굳혀있었다.
일본 사람들을 만나고 여기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보면서 나는 예의 그 '사소한 마음의 변화'를 겪었다. 그 '이상한 집단'에 대해, 그 집단 자체와 주장에 대해 인식하고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러고 나니 그동안 알 수 있었지만 알지 않았던 사실들이 '앎'으로써 다가왔다. 도대체 밑도 끝도 없는 것 같아 이해할 수 없었던 그들의 주장에도 그 입장이 있었고, 근거가 있었고 배경이 있었다. TV나 신문에서 보는 일본인이 일본 전체를 대표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양한 의견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공중전화가 있는지 없는지도 몰랐을 때 내게 있어서 통화는 불가능했다. 서로의 입장을 알지 못하면 대화는 불가능하다. 논의는 평행선을 달린다. 서로에 대해 우선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알고자 하는 것이, 아는 것이 정상적인 대화를 가능케 할 것이다. 한일관계를 가로막고 있는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는 가능성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