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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그들의 입을 열고 막았나
등록일 [데이터가 없습니다]l최종 업데이트 [데이터가 없습니다]l 최정훈 (cogito0724@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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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학생이세요?” 인터뷰를 요청하며 자기소개를 하면 이런 물음을 받곤 한다. 그렇다고 대답하면 일개 대학생을 상대하는 것이니 안심해도 좋겠다는 듯한 표정이 돌아온다. 그러다가도 인터뷰를 진행하다 보면 상대는 돌연 불안해하며 “어떤 방향으로 쓰실 건데요?” 하고 몇 차례 되묻기 마련이다. 자기 의견을 한창 말하다가도 아차 싶었는지 의도를 해명하거나 방금 발언은 보도하지 말아달라고 덧붙이는 경우도 있다.
물음을 던지고 듣고만 있는 ‘일개 학생’에게 이렇게 경계심을 갖는 것은 왜일까. 아마추어 기자 개인이 아니라 기자 뒤에 있는 다른 힘을 의식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힘이란 물론 취재원의 발언을 수많은 사람에게 퍼뜨릴 수 있는 언론의 능력을 말한다. 언론의 능력을 의식하는 것은 자기 의견이 잘못 전해져 여러 사람의 오해를 살까 걱정하기 때문이다. 언론의 힘은 그 뒤에서 독자가 ‘알게 된다’는 것의 무서움에 있는 셈이다.
이런 힘 같은 것이야 아랑곳하지 않는 이들도 얼마든지 있다. 김형오 의원은 국회의장의 신분으로 출신 학과의 학부 승격과 입학 증원을 위해 몇 년 동안이나 실력을 행사했다. 하지만 그 노력의 의의를 짧은 통화로라도 학내에 소개해 달라는 요구는 거절됐다. 인터뷰를 요청하면 “나이도 어린 사람이 어떻게 의장 직책에 ‘님’자도 붙이지 않느냐”는 젊은 비서의 ‘윤리 훈계’만 지겹게 반복됐다.
인터뷰 거절에 나름의 이유는 있었을 것이다. 미디어법을 강제로 통과시켰다는 ‘비윤리적’ 행위를 이유로 이 전직 의장에 대한 징계안이 최근 회부된 것이 비서 말대로 “요즘 바쁘시다”는 이유가 아닐까 추측해 볼 뿐이다. 관련 발언을 거부했다고 보도해도 관계없다는 듯, 기자나 독자를 의식하기는커녕 ‘무시’할 수 있는 것은 그도 나름대로 못지않게 큰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일 테다. 일부 교수도 학과 이익을 위한 행사에는 정치인·기업인과 나란히 참여하는 데 부지런하다가도 그 행사에서 뭘 논의했는지 취재 요청을 하면 “아는 게 없다”, “내 담당이 아니다”라며 회피했다.
한편 아무 힘도 없기 때문에 인터뷰를 꺼리는 이들도 있었다. 학내 정산소와 나들문 직원 다수는 해고될까 염려해 인터뷰 요구에 손사래를 치는 일이 많았다. 보도하지 말아달라는 요청이 나중에 들어와 파기한 발언도 한둘이 아니다. 그런 중에도 ‘조장’급인 한 직원은 앞서 인터뷰에 응한 다른 직원에게 “기자에게 근무 환경을 제보해 위기를 불러 왔다”는 혐의를 씌워 그를 사실상 해직시킬 뻔한 일도 있었다. 그 작은 부스 안에도 엄연히 권력 관계는 있었던 것이다.
모순된 현실을 취재해 보도하려는 시도 자체에 이미 기존의 모순이 개입해 방해하는 것을 보면 기사를 쓰는 목적이 새삼 의아스럽다. ‘권력 관계가 현상을 유지하고 마는 건 아닐까’ 하는 체념이 드는 것이다. 결국 고민 끝에 원론으로 돌아가 단순하고 유치한 결론을 내렸다.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기자는 사실을 알려야 하는 사람이고 ‘알게 된다’는 것은 그 나름의 힘을 가질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