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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상한 진실
등록일 [데이터가 없습니다]l최종 업데이트 [데이터가 없습니다]l 권형구 기자 (hgsnls@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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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은 아직 지난 겨울입니다. 2009년 1월 20일 이후로 용산의 시계는 앞으로 간 적이 없습니다. 지난 겨울에서 시간은 멈춰 있습니다. 뜨겁던 지난 여름에도 용산은 겨울이었고, 모두가 넉넉해지는 추석에도 용산은 지난 겨울이었고 다시 찾아온 이번 겨울에도 용산은 지난 겨울이었습니다. “여기 사람이 있다”는 외침에 묵묵부답인 우리들도 여전히 지난 겨울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처음 용산을 방문했을 때의 일입니다. 유가족들이 생활하고 있는 ‘상호복집’ 건물 1층에서 무시무시한 연장을 들은 용역깡패들이 철거를 마치고 쏟아져 나왔습니다. 경찰의 제지에 유족, 전철연 회원들, 범대위 활동가들은 발만 동동 구를 뿐이었습니다. 철거에 항의하는 문정현 신부에게 돌아오는 것은 욕설과 발길질뿐이었습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흥분을 가라 앉히지 못하는 문정현 신부, 철거를 막으려는 세입자 할머니를 질질 끌어내는 용역 깡패, 철거를 막다가 부서진 안경을 들고 ‘내 눈 내놔. 이 나쁜 놈들아’를 외치며 울부짖는 아주머니, 손 놓고 구경하는 전경들. 제가 본 현장이었고 첫 취재에서 확인한 진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진실의 악취도 용역들이 건물내부에 뿌려 놓은 오물의 악취에 묻혀 사라져갔습니다.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멈춰선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한 우주 생명학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진실은 허구보다 괴상하다” 용산 관련 취재를 하면서 이런 괴상한 진실에 깜짝 놀라곤 합니다. 살기위해 오른 망루에서 싸늘한 주검이 되어 내려온 난쟁이들, 철거민들을 괴롭히는 용역의 폭력, 그러한 폭력, 욕설에 등급을 매겨 용역들에게 임금을 지급하는 조합사무소, 더 이상 약한 시민을 보호하지 못하는 경찰, 평범한 상인에서 투사가 되어버린 유족까지 모두 우리 사회의 일부인 괴상한 진실이었습니다. “진실은 허구보다 괴상하다”는 말이 스스럼없이 납득이 가는 이 현실에서 선택을 강요받습니다. “괴상한 진실과 마주 하느냐, 괴상한 진실에 고개를 돌리느냐”, 괴로운 선택입니다. 저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여러분께 강요할 수 없습니다. 제가 본 현장의 사진을 찍고, 취재원의 말을 담아 기사로 하여금 여러분들의 선택에 도움이 되게 할뿐입니다.

쉽게 답을 내리지 마세요.
다만 걱정되는 것은 당신이 한 쉬운 선택이 괴상한 진실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한번만 더 귀기울여 주세요. “여기 사람이 있다”는 난쟁이들의 외침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