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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증보다는 화를 내자
등록일 [데이터가 없습니다]l최종 업데이트 [데이터가 없습니다]l 황용현 기자 (dydgus86@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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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짜증나”. 시도 때도 없이 내뱉는 한 마디. 셔틀버스 옆자리에 씨름선수 몸집을 가진 사람이 앉을 때도, 도서관 앞자리에 앉은 투명인간의 핸드폰 진동이 고독하게 울릴 때도, 시험기간 눈 앞의 깨끗한 전공책을 볼 때도 우리는 짜증이 난다.
이번에 쓰게 된 아파트 광고 기사도 시작은 ‘짜증’이었다. ‘래미안’에 사는 애인을 사랑스럽게 쳐다보는 그 녀석의 눈빛도, ‘내일 또 놀러 와도 돼?’라는 순진한 여자 아이의 말 뒤에 붙은 ‘창준이네 집은 래미안입니다’라는 광고카피도 짜증이 났다. 수시로 망가지는 엘리베이터를 가진 아파트에 사는 나로서는 ‘이놈의 아파트 때문에 애인이 없나’ 잠시 생각을 했지만, 아무래도 그건 아니었다.
기분이 나빠서 시작한 취재, 팩트를 모으고 취재원들을 만나면서 내 짜증은 점점 화로 변해갔다. 달팽이도 말벌도 제 집이 있는데, 만물의 영장 인간은 왜 1천5백만 명씩이나 집이 없을까? 아파트 값이 미친 소처럼 날뛰는데 정부와 국회는 도대체 뭐하는 거지? 첫 삽도 뜨지 않은 아파트를 팔아대는 건설사는 그렇다 치고, 사회의 목탁이라는 언론은 왜 광고주들의 뻐꾸기가 됐지? 끊임없이 의문이 생기고, 그 해답은 블랙홀처럼 빠져 나올 수 없는 어둠으로 향했다.
건설재벌의 횡포와 무사안일의 부패한 고위 관료, 그리고 개혁의 의지를 잃은 국회의원들과 광고비에 묶인 언론. 모든 문제가 그들로부터 비롯됐다고 말하긴 무책임하지만, 그것은 분명히 피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들은 화내지 않고 조용히 투덜거리는 대다수 우리들의 뒤통수를 지금도 열심히 치고 있다. ‘당신이 꿈꾸는 삶, '꿈에 그린'이 열어 드립니다’라며 아주 그럴싸하게 말이다.
우린 언제부터 화를 내지 못하게 됐을까. 화내면서 대들면 점수가 깎이던 중고등학교 시절부터일까. 아니면 그 이전,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 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던’때 부터일까. 이제는 짜증보단 화를 내자. 떡값을 맛있게 꿀꺽한 분들과 '희망으로 함께 가자'던 삼성에게, 부패한 한 당의 후보와 안쓰러운 미련이 남은 무소속의 후보에게도 당당히 화를 내자. 그래야 그들이 눈치라도 챌 것 아닌가.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계속 뒤통수 치다간 한대 맞을지 모르겠다는 사실을. 지금 화를 내자. 그냥 조용히 짜증만 내면 계속 뒤통수를 맞아 나중에 얼얼해질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