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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주의의 유령
등록일 [데이터가 없습니다]l최종 업데이트 [데이터가 없습니다]l 조홍진 기자 (zeno@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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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룸바를 만났다. 본격적인 취재의 시작이었다. 언론의 스포츠 군사주의라는 대략적인 주제로 기사를 기획한 건 몇 달 전부터였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봐도 관련 전문 연구자도, 언론 스스로 자성을 촉구하는 글도 없었다. 확신은 떨어져갔다. ‘내가 말도 안 되는 트집을 잡는 건 아닐까? 이건 정말 문제가 아닌 건가? 스포츠라면 어쩔 수 없는 건가?’ 사실 내부 기획회의에서부터 내 발제에 대한 반응은 시원치 않았다. 별 문제도 아닌 걸 갖고 괜한 트집을 잡는다는 식이었다.
확신은 더더욱 줄어들었다. 인터뷰한 일선지 기자를 비롯한 어느 누구도 내 문제의식에 대해 크게 공감을 표하지 않았고, 언론의 군사주의적 스포츠 보도 행태에 대해 인터뷰하고자 하던 노력은 오히려 인터뷰 과정에서 상대를 설득하는 것으로 변질됐다. 그만큼 오늘날 한국 언론이 스포츠 보도에서 군사주의적인 용어를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사용하고 있다는 이야기에는 생소하다 못해 아예 뜬금없다는 반응이 태반이었다.
문득 생각이 미쳤다. 우리 일상이 워낙 군사주의적이라 문제라고 못 느끼는 건 아닐까. 먼저, 대학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선후배 관계가 있다. 한국에서 ‘선배’와 ‘후배’가 맺는 관계는 군대 내에서 ‘선임’과 ‘후임’의 관계와 몹시 닮아 있다. 전자는 으레 몸에 밴 습관으로 후자 위에 군림하고, 후자 역시 습관에 따라 지나칠 정도로 스스로를 낮추게 된다. 이 가시적 권력 관계는 언뜻 사회를 유지하는데 효과적으로 보이지만, 사실 ‘윗 사람’이 ‘아랫 사람’의 인격을 무시하는 것과 다름없다.
일상적인 군사주의는 또 있다. 한 때 온라인 공간을 풍미했던 ‘가드 올려’라는 유행어. 도대체 가드를 올려서 무얼 하겠다는 걸까? 이런 말을 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대부분 우스갯소리 정도로 치부하지만, 그 웃음 뒷편에는 마음에 안 들면 폭력으로 해결해버리겠다는 군사주의적 사고가 엿보인다. 섬뜩하다. 지금 이런 얘길 꺼낸 나 역시 ‘가드 올려’야 하는 건가?
사실 이 모든 것은 군사주의와 아무런 연관이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정상 사회가 그저 망상에 빠져 있는 한 사람의 삐딱한 시선에 그렇게 비치는 것뿐일지도. 하지만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일찍이 우리에게 ‘사유하지 않음이 폭력’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줬다. 지금 우리는, 모든 것을 당연하다 여기며 사유를 기피하고 있진 않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