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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진보에 우선한다
등록일 [데이터가 없습니다]l최종 업데이트 [데이터가 없습니다]l 김은진 기자 (kej1209@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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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나에게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나는 ‘체 게바라 평전’이라고 대답한다. 체 게바라가 다른 혁명가와 차별화되는 이유는 그가 ‘이상을 꿈꾸는 리얼리스트’였기 때문이다. 이상과 현실은 공존이 힘든 법이라 사람은 종종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끝이 보이는’ 곤란함에 처하곤 한다. ‘끝이 보인다’ 고 표현한 이유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현실에 순응하는 쪽을 선택하기 때문인데 대학이라는 공간은 어느 정도 ‘현실’이라는 중력이 상대적으로 적게 느껴지는, 그래서 효율성보다는 평등성을 외치는 것이 허락되어지는 곳이다.

『서울대저널』의 모토는 ‘진보를 외치는 참 목소리’이다. ‘진보’라는 개념은 무척 달콤쌉싸름한 것이어서 혁명을 이야기할 때의 전율스러움과 동일시되지만 실상 그 개념은 매우 모호하다.『서울대저널』은 방학 때마다 장기간의 세미나를 하는데 ‘과연 진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는 매번 토의의 주제가 되곤 한다. 결론은 ‘진보란 정의되지 않는 것, 그러므로 기자의 역할은 진보가 아니라 진실을 추구하는 것’으로 나온다. 많은 학생들의 (그게 무의식적이든) 진보라는 가치의 내용이 불변이라는 믿음은 환상이다. 이를 테면 FTA문제에 있어 농민 보호가 무조건적으로 옳은 일이 될 수 없고, 어제는 진보로 취급되었던 일이 그 다음에는 상황이 바뀔 수 있다. 때로는 촉망받는 젊은 농부의 분신자살, 늙으신 할아버지의 뜨거운 눈물에 흥분하지 말고 진실을 바라본다면 조금 더 다른 결론이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자, 진보의 비규정성, 그리고 우리가 갖는 정보의 한계성으로 인해 ‘추상적 진보’ 대신 ‘진실’을 추구한다면 그게 ‘구체적 진보’라는 결론이 나왔다. 그렇다면 이 진실의 대상은 무엇일까? 필자는 얼마전 경제부를 제안했고 지금 6명이 함께 경제팀에서 활동 중이다. 진보를 외치는 일부 사람들은 돈이 관련된 문제는 진실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돈이 떠오르는 경제 분야는 심리적 배설구가 될 수 없는지도 모른다. 경제는 추악한 자본주의의 산물로 검열의 대상이고 정치, 사회, 문화 등과는 차별화되는 영역인가? 대답은 ‘그렇지 않다’ 이다. 어디 인간의 삶이 그렇게 딱딱 어느 분야로 나뉘는 것이던가. 많은 사회적 문제들이 궁극적으로는 경제적 동기에서 파생되며 인간은 경제와 그 역사를 함께 해 왔다. 이번에 재테크 기사를 쓰면서 만난 한 학우는 ‘경제신문을 자유로이 읽을 수 있는 내공’을 묻는 필자에게 경제 신문을 많이 읽을 것을 조언한다. “정치 신문을 오랜만에 보면 무슨 말 하는지 하나도 모릅니다. 비일상적인 용어들이 많지요. 그것과 똑같습니다.” 진실과 편견은 다른 문제이다. 편견을 없애기 위한 최소한의 시도는 해봄직 함하다.

대학은 낭만이라고 하던가. 많은 (추상적)진보론자들은 점점 중력을 받아들이는 법을 깨닫게 된다. 어찌 보면 처음부터 우리가 사는 온 천지가 중력의 영향권 아래 있었으니 이것이 괴로운 현실인지, 아니면 우리 삶의 중립적인 무대인지도 헷갈리기도 한다. 아무튼 대다수가 취직 걱정에 시달리고, 안정적인 직장을 향한 행보를 시작한다. “운동은 거창한 것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삶의 미시적 실천, 이를 테면 학교 화단에 꽃을 심었다면 환경보호를 외치는 것보다 더 큰 운동입니다” 수습기자 시절 수습 인터뷰 과제로 만난 한 전직 운동 간부(?)의 말이다. 어쩌면 ‘운동’보다는 ‘스포츠’가 더 대중적인 ‘진보’일지도 모를 일이다. 재테크를 위해 공부하는 사람들의 열정이 경직된 진보론자보다 더 생생할지도 모를 일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