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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과 A교수 파면 운동에 관해 서울대학교 학우들께 드리는 말씀
등록일 2019.04.19 14:19l최종 업데이트 2019.05.31 09:34l 이수빈(인문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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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우 여러분 안녕하세요! 제36대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학생회장 이수빈입니다. 서문과 A교수 사건으로 학교가 꽤 시끌시끌합니다. 학생에게 성폭력과 갑질을 저지른 교수가 정직 3개월을 권고 받았습니다. 사실 많이 식상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작년, 우리는 사회학과 H교수와 수의대 H교수를 목도했고 1년 내내 싸워왔습니다. 그러나 사회학과 H교수는 끝내 정직 3개월을 받았고, 수의대 H교수는 다음 학기에 학교로 돌아올 지도 모릅니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A교수가 또 다시 정직 3개월을 선고받는다 해도, 그저 ‘우리 학교가 그렇지 뭐..’ 하고 지나갈 수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더 이상 우리의 싸움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얘기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사실 저 역시 인문대 학생회장이 아니었다면 그랬을 것 같습니다. 내 삶은 바쁘고 피곤한데, 연대는 내 시간과 힘을 쏟도록 만듭니다. 심지어 내가 힘을 쏟았다고 해서 이곳이 바뀔 거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모든 것, 집회와 기자회견, 천막농성과 같은 행동들은 이미 작년에도 수없이 진행됐는데, 올해 우리가 무엇을 더 바꿀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기다리는 봄이라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길래, 이토록 추위에 떨어야 하는 것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바뀐 것이 아무것도 없지는 않은 듯합니다. 제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은 4월 3일인데요, 어제인 4월 2일에는 인문대학 학생총회가 있었습니다. 총회에는 260여명의 인문대학 학우들이 참여했습니다. 총회를 소집하고 준비할 수 있었던 기간이 3주가 채 되지 않았는데도, 수많은 학우들의 참여 덕분에 7년 만에 인문대학 학생총회가 성사되었습니다. 1안인 ‘서문과 A교수 퇴출 요구의 안’은 98.06퍼센트의 찬성으로 가결되었습니다. 우리는 역사를 써 나가고 있습니다.

  총회가 끝난 후, 저녁 7시부터 행정관 앞에서 <A교수 파면특공대 출동> 집회가 있었습니다. 늦은 시간이었는데도 500여명의 학우들이 추위를 이겨내고 A교수 파면을 외치기 위해 행정관 앞에 서 주셨습니다. 수많은 단과대의 학생들이 모여 한 목소리로 징계위원회에 A교수 파면을 외쳤습니다. 홍보할 수 있었던 기간이 2주 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수많은 학우들이 자발적으로 행정관 앞으로 나와주셨습니다. 3월 둘째 주에 있었던 <A교수 파면을 위한 첫 걸음> 집회에는 250여 명의 학우들이 오셨는데, 2주 만에 두 배가 넘는 학생들이 행정관 앞에 모인 것입니다. 우리의 목소리는 점점 커져나가고 있습니다.

  3월 4일 피해자의 자보가 학내 곳곳에 게시된 후, 인문대학의 학우들은 자발적으로 피해자의 자보를 10개 언어로 번역했습니다. 피해자는 온 세상에 A교수의 만행을 알리고 싶다고 말씀하셨고, 인문대학의 학우들은 자신이 공부하고 있는 언어로 이를 번역하여 직접 연대의 표시를 나타낸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배워왔던 지식으로 피해자와 연대하고, 우리가 배워왔던 지성으로 이 추위와 싸워나가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이 개강 후 한 달 만에 진행되었습니다. 날씨가 점점 따뜻해지고 있는 것이 느껴집니다.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걸어나갈 것임을, 우리의 목소리는 점점 커져나갈 것임을 압니다. 그리고 이 한 걸음 한 걸음이 모여 역가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저는 인문대 학생회장으로서 오늘 (4.3) 정오부터 A교수의 파면 결정이 날 때까지 무기한 단식에 돌입합니다.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겁이 많이 납니다. 하지만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어 주저앉지 않고 나아갈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총회를 준비하며, 파면특공대 집회를 준비하며, 주저 앉고 싶은 순간이 많았습니다. 혼자 울었던 적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함께 걷고 있던 사람들의 손을 잡고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어떤 순간에 한없이 약합니다. 하지만 약한 순간에, 서로가 서로의 손을 잡아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모두 평생 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피해자와 연대하고, 서로의 손을 붙들고 계속 앞으로 걸어 나갈 것입니다. 

  우리는 함께하기에 더 강하고, 절대 과거로 돌아가지 않을 것임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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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빈(인문 17)
인문계열 17학번 이수빈입니다. 현재 제36대 인문대학 학생회장 직을 맡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