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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로스쿨을 향하여
등록일 2019.09.10 17:14l최종 업데이트 2019.11.04 18:45l 장승화(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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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스쿨은 오랫동안 논란의 대상이었다. 논란의 초점은 주로 로스쿨의 도입과 존폐에 맞추어졌다. 로스쿨 도입 논의가 시작된 것은 1990년대 중반이다. 치열한 찬반론 속에 쉽게 도입되지 않을 것 같던 로스쿨 제도는 2007년 갑작스레관련 법률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탄생되었다. 전광석화 같은 로스쿨 제도화 작업을 거쳐 첫 학생들이 입학한 것이 2009년 3월이다. 그 후에도 로스쿨은 존폐론에 시달렸다. 그 소용돌이 속에 어떻게 더 좋은 로스쿨을 만들 것인가의 문제는 정작 충분한 관심을 받지 못하였다. 로스쿨 제도 도입 후 10년이 지나가며 로스쿨 존폐론은 어느 정도 잦아들었다. 이제는 로스쿨 개선에 관한 더욱 치열한 고민과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러한 변화는 로스쿨 외부에서 강제되기보다는 로스쿨 내부에서 시작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이를 위해서는 자기 성찰을 통해전체 로스쿨 생태계의 건전성을 제고하려는 변화의 노력이 필요하다. 서울대 로스쿨은 이러한 변화의 선두에 서 있다. 변화의 키워드는 공적 마인드를 가진 인재 양성이다. 학생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몇 가지 예만 들어보자.

  서울대 로스쿨은 1학년 전공필수과목의 성적평가방식을 기존의 엄격한 상대평가방식에서 S/U 형태의 절대평가방식(1학년 2학기는 S+ 등급 추가)으로바꾸었다. 학점 귀재들이 모인 서울대 로스쿨 1학년의 경쟁은 악명 높았다. 동기는 함께 가는 동료가 아니라 이겨야 할 경쟁 대상이었다. 비슷한 능력과 성실성을 갖춘 학생들은 A+부터 D-(때로는 F) 등급에 강제 배치되었다. 이러한 경쟁에 대비하기 위한 학부 선행학습도 횡행하였다. 1학년 성적평가방식 변경은 친구를 배제하지 않고 함께 결승선으로 향하는 경험의 시간을 확보해 주기 위한 조치이다. 법학 공부가 낯설고 어렵다고 느끼는 학생들을 돕기 위한 변호사 펠로우들도 채용하였다. 각자 적성에 맞는 분야에서 능력을 개발하고 이를 인증 받을 수 있는 전공인증제도 기획하였다. 물론 경쟁이 없는 사회는 없다. 그러나 평생을 줄 세우기 경쟁 속에 살아온 학생들에게 잠시 숨을 돌리고 주변을 돌아보며 좀 더 큰 가치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주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서울대 로스쿨은 1학년 겨울방학 때 로펌 인턴 대신 공익 캠프를 계획하였다. 1학년 겨울방학 로펌 인턴은 이른바 로펌 조기 채용을 위한 절호의 기회였다. 대형 로펌에서는 겨울방학 시기에 로스쿨 1학년 학생들을 인턴으로 선발하여, 이들 중에서 가장 우수하다고 생각되는 학생을 가려내 조기에 채용을 하는 관행이 널리 퍼져 있었다. 1학년 1학기 성적이 로펌 인턴 선발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다보니, 로펌 취업을 염두에 둔 학생들은 1학년 1학기부터 높은 학점을 받기 위한 경쟁에 뛰어들어야 했다.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변호사의 사명(변호사법 제1조)에 대해 생각해볼 겨를도 없이, 학기 중에는 높은 학점을 받기 위해, 방학 중에는 로펌에서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야 했다. 로펌의 조기 채용 관행이 학생들에게 큰 스트레스가 되고 지나친 경쟁을 부추기는 상황에서, 서울대 로스쿨은 학생들이 적어도 1학년 재학 중에는 로펌 인턴을 하지 않도록 하였다. 1학년 겨울방학에 로펌에서 인턴을 하는 대신, ‘공익법무실습’ 과정을 도입하여 학생 전원이 공익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기틀을 마련하였다.

  이러한 움직임과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 공익법률센터 설립, 프로보노 활동 강화와 임상교육 강화이다. 미국 로스쿨에서는 모든 학생들이 일정 시간 이상의 경험학습(experiential learning)에 참여하여야 한다. 그리고 그 경험학습의 대부분은 사회·경제적 취약계층을 대상으자유롭게 펼칠 수 있는 학부 시절에, 우수한 학생들이 학점 경쟁에만 매달리지 않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독려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해왔다. 정량평가에 큰 비중을 두는 입시 정책 아래에서는 로스쿨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들 사이의 소모적 경쟁이 심화될 수  밖에 없었다. 학부 1학년 때부터 학점을 관리하고 로스쿨 진학에 적합한 ‘스펙’을 쌓는 것은 일반적인 현상이 되었다. 그러나 단지 학점을 잘 받기 위해서, 좋은 성적으로 로스쿨에 진학하기 위해서 학업을 해나가는 것은 학생 개인을 위해서도, 대학이라는 공동체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서울대 로스쿨은 학부 성적을 단순히 정량적으로 반영함으로써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을 시정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 지원자가 학부성적을 설명하도록 하는 자기소개서 항목을 마련하여, 지원자가 전공과목을 얼마나 충실히 수강하였는지, 단지 좋은 학점을 받기 위해서 수강 과목을 선택해온 것은 아닌지, 재수강을 통해 학점을 높인 것은 아닌지 등, 성적표에 나타난 평점평균만으로는 알 수 없는 지원자의 학부생활을 알아보고자 하였다. 2020학년도 입시에서는 더욱 정교하고 공정한 정성 평가 방식을 통한 입시 제도 개선을 모색하고 있다.

  200년의 긴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 로스쿨 제도와 비교하면, 도입 11년차에 불과한 우리 로스쿨 제도는 아직 걸음마 단계에 있다. 모든 제도가 그러하듯이, 로스쿨 제도도 도입 초기에 시행착오를 겪지 않을 수 없었다. 앞으로 로스쿨 제도가 우리 사회에 바람직한 모습으로 정착하려면 시간이 더 걸릴지 모른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사회 구성원들의 목소리를 듣고, 법률서비스의 수요자, 로스쿨 재학생, 로스쿨 지원자, 기성 법조인 등의 이해관계를 균형 있게 조절하는 노력도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로스쿨이 가지는 공적 기능을 기억하고, 이를 향해 우보천리의 자세로 나아가는 것이다. 최근 서울대 로스쿨이 도입한 여러 변화들이 그 첫걸음이 되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