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호 > 기고·칼럼 >오피니언
고통의 감각마저 불평등하다면
등록일 2019.10.21 19:02l최종 업데이트 2019.10.21 23:12l 조시현(경제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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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에 들어오기 전의 일이다. 세상은 언제나 무언가의 사건과 비극으로 점철되어 있으므로, 지금의 학교와 마찬가지로 그때도 집회는 열렸고 시위는 있었으며 농성장은 꾸려졌다. 그런 뉴스들을 볼 때마다 종종 이런 생각을 했다. 왜 이런 일들은 항상 누군가가 죽고 다친 뒤에만 보도되는 것일까.

  언제나 사람이 죽은 뒤에야 무언가가 바뀌었다. 그것만으로도 한탄스러운 일이지만 사람이 죽고도 바뀌지 않는 경우가 더 많았다. 작가 김훈이 올해 <한겨레> 칼럼에서 건설노동자들의 추락사 문제를 말하며 50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한데 내년이라고 무슨 별 볼 일이 있겠냐고 한탄 조로 물었을 때, 나는 감히 긍정했다. 그의 말대로 건설 노동자들은 내년에도 추락해 죽을 것이다. 내후년에도 죽으리라. 구조는 쉽사리 변하지 않을 것이다.

  바꾸자고 말하는 사람들도 이 사실을 잘 안다. 나름 사회부 학생기자라고 풋내기 티를 내며 이곳저곳 돌아다니던 때, 내가 만났던 싸우는 사람들은 늘 그랬다. 산업재해의 책임을 묻기 위해 농성장에서 수백 일을 버티고 기업의 건물 주위에서 피켓을 든다고, 잘 오지도 않는 언론들에게 보도자료를 뿌린다고 현실이, 구조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으리라는 것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힘들지 않으세요?’ ‘힘들죠. 그래도 이게 일상인데. 삶인데.’ 그들은 ‘꾼’들이었다. 누군가가 동료 학우를 ‘꿘’이라고 공격했듯 이들은 언론 보도에서는 그저 전문 시위꾼들이었고 사회 질서를 어지럽히는 분자들이었다. 물론 이들은 실제로 구조를 유지하려는 항상성에 맞서 어떻게 난장을 피워야 할지를 아는 사람들이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관찰자로 머물면서 그 사람들조차 자신의 피로와 고통에 무감해져 있다는 사실을 종종 발견했다. 하물며 현장에서 일하는 일반 노동자들은 어떨까.

  지난 8월으로 돌아가보자. 휴게실이라던 그곳을 들어서는 순간 숨이 턱 막혔다. 기름 냄새가 코를 찔렀고 금세 머리가 아파왔다. 302동, 제2공학관, 맨 끝. 가장 낮은 계단 아래 그 비좁은 공간. 자취방보다도 훨씬 좁은, 1.06평의 면적에 불과하다는 그 공간에서 3명의 노동자들이 대체 어떻게 자리를 잡고 휴식을 취할 수 있었을지 상상할 수 없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단 말인가? 그 죽음이 있기 전에 노동자들이 이런 휴게실에서 지내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을까?

  현장 노동자들은 초기에는 신호를 보냈다. 개선을 요청했으나 학교 측은 묵묵부답이었다. 밀폐된 공간이니 창문을 내겠다는 요청에도 허가조차 내주지 않았다. 직접 환풍기를 달아보는 등 자체적으로라도 개선을 위해 노력했지만 곧 한계를 맞았다. 무기계약직 전환 이후 사라진 근속수당으로 인한 저임금 문제까지 겹쳤다. 노동조합이라고 모든 문제에 다 빠르게 대처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노동자들은 곰팡이, 기름 냄새와 눕기조차 비좁은 면적, 더위와 습기가 가져오는 고통에 둔감해졌다. 학교 측이 내세우고 있는 단 하나의 주장, 병사인지의 여부는 나중 문제다. 죽음을 떠나, 근본적으로 누구도 이런 환경에서 생활해야 할 이유는 없다. 누구도 노동자들이 그런 환경에서 생활하도록 강제할 수 없다. 사망 사건이 벌어지기 한참 전에 문제는 개선되어야 했다.

  물론 서울대학교는 그럴 수 없는 조직이었다. 대신 그 전에 개선이 아닌 하나의 벼락같은 호통이 있었다. 기계·전기 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서며 도서관의 난방이 중단되자 그것이 응급실 폐쇄와 다를 것이 없다 일갈하던 지난 2월 <조선일보>에 실린 그 칼럼. 추상같았다. 감히 노동자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미래 인재들의 공부와 연구를 방해하냐는 것이었다. 그 추상같음은 법정 최저 임금조차 미달하던 노동자들의 기본급에 대해서는 눈을 감았다. 11차례의 교섭과 2차례의 노동위원회 조정을 거친 끝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한 합법적 파업이라는 사실에서는 시선을 돌렸다. 무엇보다 정확히 그 칼럼의 논리에 따라 제기되는 지속가능성의 문제에 그 추상 같음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한다. 그토록 중요한 학생들의 공부·연구 환경이라면, 그 환경을 유지하는 일을 하는 노동자들이 장기간 열악한 근로조건과 노동환경에 놓여 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을지. 과연 기계·전기 설비가효율적으로 관리될 수 있으며, 단순히 중단만이 아니라 안전사고의 위험이 더 커지지는 않을지.

  그 칼럼은 지금도 대답하지 못한다.  십수 년을 일했다던 한 기계·전기 노동자는 ‘새로 누가 들어와서 힘들다고 말이나 해야 알지, 오래 일한 사람들은 삶이 되어서 뭐가 문제인지도 못 느낀다’고 인터뷰에서 내게 말했다. 그는 별도의 공간 분리도, 냉·난방 시설도 없이 소파와 탁자만을 둔 채 기계들 앞에서 대기하고, 주기적으로 방진 마스크만을 낀 채 배관에 찬 석면을 제거하며 살아왔다. 꺼진 난방으로 인한 추위에 그토록 강하게 반응할 만큼 누군가의, 누군가들의 고통의 감각은 예리하게 살아있지만, 막상 파업에 나섰던 노동자들의 감각은 이미 시꺼멓게 죽어가는 상태였다는 사실 앞에서 그 칼럼은 영원히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물론 그 죽음에 책임질 수도 없을 것이다.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말처럼 그들과 무관하게, 노동자들에 의해 변화는 시작되고 있다. 세 평도 안되는 휴게공간을 여덟 명이 사용해야 했고, 업무의 강도로 인해 근골격계 질환에 시달리고 주사를 맞아 가며 일해야 했던 생활협동조합 노동자들은 값진 진전을 이뤄냈다. 학생들은 드러난 문제의 심각성에 분노하며 적극적인 연대에 나섰다. 반면 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서자 계약직 노동자들을 대신 식당과 카페 업무에 투입시켜가며 버텼던 학교와 생협 측은 결국 한 발 뒤로 물러서야했다.

  아마 전형적인 글이라면 이제 학교 측에 인식의 전환과 적극적인 노동환경 개선에 나설 것을 촉구하고 끝내는 것으로 마무리되겠지만, 그러나 이제 그런 글에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나는 안다. 대신 많은 학우들이 고통의 감각을 다시금 깨워가는 노동자들과 함께해줄 것을 부탁드리고 싶다. 학교의 정책결정자들과 현장의 노동자들 사이에는 결코 메울 수 없는 경험의 간극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일방적인 선의에 의한 개선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섣부른 단정이거나, 과격한 단언일까. 물론 여전히 누군가는 노동조합을 비난할 것이고, 또다른 누군가는 행정관 앞에 모여 구호를 외치는 노동자들을 보며 생경함과 거부감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부디 많은 학우들이 지난 십수 년 간 이어져 왔던 문제를 학교가 자발적으로 해결한 적은 결코 없었다는 사실에도 주목해주길 바란다. 8월의 사건이 없었더라면 청소·경비, 생협, 기계·전기를 비롯한 이 모든 문제들이 드러나지 못했으리라는 사실에도 두려움을 느껴주길 바란다. 그리고 그 문제를 지금, 비로소 해결해 나가기 시작했다는 사실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