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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살아 가기와 만들어 가기 『현대물리학의 최첨단』
등록일 [데이터가 없습니다]l최종 업데이트 [데이터가 없습니다]l 차병직(변호사, 참여연대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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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고 있는 곳은 지구다. 여기서 태양의 가장 바깥쪽 행성 명왕성까지는 1초에 30만 킬로미터를 달리는 빛이 5시간 20분 정도 가야 하는 거리다. 빛이 1년 동안 움직이는 거리는 엄청나다. 태양을 제외한 항성 중 제일 가까운 프록시마는 4광년 떨어진 곳에 있다. 가장 빠른 우주선을 타면 1만 년 걸린다. 태양계가 속한 은하계 끝이 대략 3만 광년이라면, 안드로메다 은하계까지는 230만 광년이다. 우주라는 공간에는 그런 은하계가 줄잡아 1000억 개는 있다고 본다. 이런 우주를 때로 우리 마음속에 품는다. 그리하여 진지하고도 역설적으로 인간의 마음은 우주보다 무한하다고 말한다.
짧은 개인의 일생에서라면 또 모르지만, 무한한 마음의 여로에서 한 권의 책이란 너무 심하다. 열 권 정도라면 또 모르겠다. 대학 시절에 심취했던 노자의 「도덕경」에다 소설 몇 권, 그리고 법철학이나 사상서 한두 권에 마지막으로 젊은 통찰로 가득한 콜린 윌슨의 『아웃사이더』를 덧붙일 수 있겠다. 인생에서 단 한 권의 책이길을 결정해 주거나 충격적 깨우침을 얻게 했다면, 그 주인공은 대단한 행운아인 셈이다. 돌이켜 보면 나는 그리 운이 좋지 못했다. 책도 많이 읽지 못했거니와, 생각할 때마다 영향을 받은 책이 달랐다. 그래서 그 기준대로, 지금 이 순간에 의미를 지니고 떠오르는 책을 골랐는데, 게리 쥬카브의 『현대물리학의 최첨단』이다.
쥬카브는 물리학자가 아니다. 그런데 실험실에서 열린 물리학자들 회의에 끼어들어 묘한 경험을 했다. 물리학자들의 이야기를 모두 알아들었을 뿐 아니라, 그들의 토론 내용이 마치 신학인 줄 착각할 뻔했다. 그리고 이 책을 썼다. 현대물리학이므로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이 중심이고, 글을 쓰고 책을 발간한 70년대 말을 기준으로 최첨단이므로 초끈이론 따위는 없다. 물리학자 아닌 사람이 쓴 물리학 이야기를 법학도가 읽은 까닭은 물리학의 거장들이 괜찮다고 했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이해할 수 있는 평이한 언어로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이 물리학이라 말한 사람은 아인슈타인, 하이젠베르크 그리고 슈뢰딩거이다.
20세기의 문이 열리기 직전에 행한 토머스 영의 실험에 의하면 빛은 틀림없는 파동이었다. 빛을 하나의 틈으로 내보냈을 때 결과는 보통의 예상대로였다. 다시 두 개의 틈새로 내보냈을 때 스크린에 비친 모양은 명암이 엇갈린 띠 모양이었다. 두 틈새로 나온 빛이 파도처럼 서로 간섭한 탓이었다. 하지만 1900년대가 시작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막스 플랑크와 앨버트 아인슈타인에 이르러 빛의 성질은 입자라는 점이 분명했다. 그러면 도대체 틈새 실험은 어떻게 된 것인가. 유명한 사고 실험이 이루어졌다. 그 결론은 혼란이나 다름없었다. 결과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모호하지만, 물리학자들이 세상을 설명하기에는 명쾌해졌다.
관찰하지 않을 때 빛의 알갱이는 두 틈새 중 어느 하나의 틈을 빠져나갈 것이다. 그런데 관찰을 하는 순간 광자는 하나의 틈만 빠져나간다. 그것은 빠져나가지 않은 나머지 틈을 막아버린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스크린에 비치는 결과는 두 개의 틈을 동시에 열어 두었을 때와 같다. 논리적으로 설명이 어렵다. 적어도 우리의 언어로 설득이 가능하려면, 관찰하는 행위가 빛 입자의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밖에 없다. 놀라운 일이다.
그러다 보면 이것 저것이 얽혀 이해가 된다. 상대성이론이니 불확정성의 원리니 하는 거창한 모델도 평상의 언어로 표현이 가능하다. 무엇이든 운동량과 위치를 동시에 정확히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둘 다 추정할 수밖에 없고, 어느 한쪽을 많이 알면 다른 쪽은 그만큼 더 모르게 된다. 물리학자들은 세상의 본질을 알고 싶어 했다. 물질의 구성 요소를 쪼개고 또 쪼갰다. 더 이상 나눌 수 없다던 원자가 쪼개지고 쿼크가 나타나더니, 마지막엔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려는 경향'의 경계가 불분명해졌다. 세상을 정확히 알 수 없다는 것이 가장 명확한 결론이다. 그리고 이 책이 선사한 황홀한 선물은 이것이었다. 모든 것은 관찰하는 순간에 결정된다. 사람마다 다르고 시간마다 다르다. 따라서, 어느 순간 내가보는 대상은 그것이 애당초 객관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보이는 것이 아니다. 보는 순간 내가 그 대상을 창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 책을 손에 넣게 된 경위가 분명하지 않다. 어쨌든 법과대학에 다니던 시절이었고, 고려대학교 부근의 헌책방에서 샀을 것이다. 물리학 이야기라면 요즘 유행하는 리처드 파인만도 있고 요네자와 후미코도 있다. 특별한 방법으로 묘사한 『시인을 위한 물리학』이나 『양자 나라의 앨리스』도 흥미롭다. 하지만 그 시절 쥬카브의 글은, 자연과학 서적을 거의 읽지 않던 나를 사로잡았다. 내가 읽었던 낡은 책의 부제는 번역자가 임의로 「불교 사상과의 만남」이라 붙였다. 뒤에 다른 출판사에서 원제를 그대로 살려 『춤추는 물리』(The Dancing Wu Li Masters)라고 개정판을 냈다. 쉽게 썼다고는 하나 당시 양자역학의 이론은 쉽게 들어오지 않았다. 다만 마지막의 황홀한 결론만 선명히 가슴에 새겨졌다. 그리고 오랫동안 잊고 법률가로, 시민운동 단체의 일원으로 분주한 세월을 보냈다. 문득 헤아려 보니 이십오륙 년 전의 일이다. 근년에 시작한 「법과 문학」 강의에서 이 책을 떠올렸다. 우리의 진실이 무엇인가 하는 물음 때문이었는데, 광대무변의 우주와 원자보다 작은 미립자 사이에서 결론의 방향은 여전히 이 책이 제시해 주었다. 세상은 우리가 어떤 질문을 던지느냐에 따라 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