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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리의 『페다고지』가 삶에 주는 무게
등록일 [데이터가 없습니다]l최종 업데이트 [데이터가 없습니다]l 曺興植(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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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에게 책을 소개하여 읽도록 권하는 일은 정말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인 만큼 또한 힘들고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나 자신의 경험을 다른 이에게 강요하는 듯한 감이 은근히 들기 때문이며, 또 한편으로는 내가 직접 저술한 책이 아닌 다음에야 그 책의 저술자의 뜻을 제대로 전하지 못함으로 인해 저술자의 뜻에 누를 끼치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이 나기 때문이다. 이러한 위험을 무릅쓰고 내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친 한 권의 책을 나의 경험과 함께 감히 서술해 보고자 한다. 부탁하건대 꼭 한번 프레이리가 저술한 『페다고지』를 읽어 주시길 빈다.

(2)
사실 예나 지금이나 입시에 매달려 있는 중등교육 처지에서 고등학교 시절에 사회문제에 대해 민감한 관심을 갖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사회적 행동을 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1960년대 말 고교시절에 군사교련에 대한 반대 입장의 교내 시위 경험을 딱 한번 가진 적이 있다. 그러나 이는 다분히 선배의 강요에 의한 것이라 자의식의 발로에 의한 주체적 실천이 아니었음은 분명하다.
1972년에 입학하여 당시 태릉 골짜기 공과대학 부지 한 귀퉁이 교양과정부에서, 그리고 2학년 때부터 현재 대학로인 동숭동 문리대 교정에서 『창작과 비평』의 글들과 함석헌 선생의 『씨알의 소리』, 한완상 교수의 『현대사회와 청년문화』, 리영희 선생의 『전환시대의 논리』 등을 읽은 후, 집중 토론하던 기억이 새롭다. 그리고 연구회라는 이름을 표방한 문리대 한 동아리에서 요즘은 전혀 문제시되지 않는 좌파 경향의 서적들을 열심히 숨겨 돌려 읽고 논쟁하고, 때로는 시위 현장에서 최루탄에 의해 흐르는 눈물을 쓴 소주로 달래던 절망의 시절이 눈에 선하다.
이런 절망은 서울대 종합화라는 미명 하에 사실상 데모대를 구석진 데로 몰아넣기 위해 캠퍼스를 관악산 골짜기에 쑤셔 넣은 1975년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관악 1기(1976년 2월 관악 첫 졸업) 졸업장과 함께 군대 제대 후 대학원에 진학하여 학문 후속세대의 대열에 들어섰어도 좀처럼 절망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특히 우리 실정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외국 사회과학 지식의 단순한 습득으로 인한 학문의욕 상실까지 겹쳐 더욱 절망에 빠져 갔다. 이러한 절망의 늪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 빈민지역인 낙골(현재는 난곡으로 알려진 신림 7동 일대 지역)에서 야학을 하는 등 전공과 관련된 사회복지활동에 꽤 많은 시간을 투입했지만 유신 시대 말년의 암울한 시대가 주는 중압감을 감당하지는 못하였다.
이러한 절망의 때에 프레이리의 『페다고지』 영문판과의 비밀스런 만남은 학문을 통한 희망의 길을 찾는 큰 계기가 되었다. 사람들은 억압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서 끊임없는 지도력의 투입을, 나 자신보다 외부로부터 구하려고 한다. 이 책은 그런 데서 오는 절망감 자체가 바로 허위의식임을 깨닫게 해 준다. 다시 말하여, 현실에 매몰된 ‘즉자적 인식’이 아니라, 현실 뒤의 배후를 통찰할 수 있는 ‘대자적 인식’을 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비판의식이자 의식화임을 깨닫게 해 준 것이다.
그리고 학문하는 게 혹시 억압적 상황에서 파생된 사회적 불만들이 오랫동안 축적되어 온 침묵문화의 결과는 아닌지, 혹은 소외나 지배구조의 현상유지 등을 위해 길들이는 교육의 재생산과정에 들어가 있는 것은 아닌지 등 심각한 자문을 하게 되었다. 그럼으로써 사회 및 세계의 인과관계와 그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나 자신의 잠재력을 분명히 인지하게 된 것이다.
사실상 페다고지를 저술한 파울루 프레이리는 교육의 궁극적인 목표는 진정한 개개인의 인간해방임을 알리고, 평생을 통해 이를 실천한 20세기의 대표적인 교육사상가로 손꼽히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 데카르트, 헤겔, 루소 등의 대사상가들의 사고와 실천적 경험을 밀접하게 연결 지어 인간의 내면적이고 심층적인 참다운 의식화 교육론을 제시했던 것이다. 브라질의 빈민지역 레시페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보아온 저자에게 그들의 굶주림과 고통은 언제나 인간해방의 숙제였다. 문맹 퇴치교육에 힘써 왔던 저자는 1950년대에 농민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과정에서 일상적인 용어와 생각을 이용해 교육하는 것이 매우 효과적이라는 점을 깨닫고 의식화교육론을 개발하였는데, 당시 저자가 가르친 학생들은 대부분 30시간의 교육만 받고서도 글을 읽고 쓸 수 있었다고 한다. 대개 인간해방, 의식화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가 공식적인 학교교육에만 충실히 해 온 사람들에게는 다소 거슬리는 면이 없지 않겠지만, 이 책을 꼼꼼하게 읽어보면 저자가 계급과 인종과 성과 지역과 종교적 차이를 벗어나 생명을 가진 모든 인간을 얼마나 열렬히 사랑하고 있는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물론 나의 대학 시절, 당시 불온서적으로 찍혀 있던 ‘피억압자들의 교육’이라는 부제가 달린 『페다고지』 영문판(72년 초판 발행)을 접하기란 상당히 어려웠다. 이 원서는 몇 년이 지난 1979년에 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협의회에 의해 비밀리에 번역 및 출판되어 노동운동, 야학 및 학생운동, 교사운동의 의식화 교재로 은밀히 활용되었다. 지금은 여러 출판사에서 잘 번역되고 해설된 책들이 많아 읽기가 훨씬 수월하다.

(3)
우리 사회에 엄존하고 있는 ‘억압받는 자들’과 함께 하는 것이야말로 내가 전공하고 있는 사회복지학이 갖는 존재가치임을 깨달아 지금까지 이를 실천할 수 있음은 바로 프레이리의 『페다고지』의 영향임을 부정할 수 없다. 특히 세계화의 영향에 따른 외환위기 이후 IMF 사태를 맞이하여 계층 양극화가 심각한 가운데, 저출산, 고령화라는 악재를 겸하여 갖고 있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단초를 이 책에서 구할 수 있게 됨은 큰 기쁨이 될 것으로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