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호 > 고정코너 >이한권의책
시간을 갱신한다? 미르치아 엘리아데(Mircea Eliade)의 <영원회귀의 신화―원형과 반복>
등록일 [데이터가 없습니다]l최종 업데이트 [데이터가 없습니다]l 윤원철 교수(종교학과)

조회 수:411


슈퍼맨 영화의 첫 편이었던가 싶은데, 마지막에 슈퍼맨이 자전하는 지구를 거꾸로 돌려서 시간을 되돌림으로써 죽은 친구를 되살리는 장면이 있었다. 그래, 그렇게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참 좋은 일이 많을 것이다. 혼란도 많겠지만…. 그런 일은 상상 속에서나 가능할 뿐이다.
그런가 하면 ‘시간이 멈춰지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노래하는 옛 대중가요가 있었다. 한참 행복하고 느긋한 기분에 빠져 그 상태가 끝나지 않기를 바랄 때라든가, 또는 반대로 제한된 시간 안에 일을 마무리해야 하는데 시간이 너무 모자라서 초조할 때, 또는 맞닥뜨리기 싫은 일이 시작되는 시간을 앞에 두었을 때 그런 생각이 언뜻 들곤 한다. 시간을 되돌리기는커녕 멈출 수도 없다는 가혹한 사실을 잘 알면서도 이룰 수 없는 소망을 읊조리는 셈이다. 그렇게 시간은 내 사정에 개의치 않고 엄정하게 진행되는 그 무엇으로 우리에게 경험된다.
한편 시간이 굉장히 빨리 흘러간다고 느낄 때가 있는가 하면 굉장히 느리다고 느낄 때도 있듯이, 또는 마취나 혼수상태 중에 있는 사람은 깨어난 뒤 누가 현재 날짜와 시각을 일러줘야만 다시 시간을 따라 잡을 수 있듯이, 우리의 경험 속에서 시간이 시계바늘의 진행속도처럼 일정하게 흐르지는 않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고 보니 시간이란 게 도대체 무엇인지 아리송하다.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의 말이 생각난다. “시간이 무엇이냐는 물음이 떠오르지 않는 동안에는 시간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막상 그 물음이 떠오르면, 도무지 모르겠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시간을 엄연한 실체로 경험한다. 밤낮의 순환 한 번으로 이뤄지는 하루, 달이 차고 이지러지는 과정 한 번으로 이뤄지는 한 달, 그리고 계절의 진행이 한 번 도는 것으로 이뤄지는 한 해... 이렇게 가시적으로 진행되는 시간의 흐름은 분명히 그 어떤 실체가 있는 듯도 하다. 하지만 그것도 기실은 시간이라는 실체가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천체의 현상이 진행되는 주기일 뿐이다. 그렇게 보니 이것만은 알 수 있겠다. 주위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인식을 포함해서 우리의 온갖 삶의 활동이 시간을 구성하는 것이지 시간이라는 객관적인 실체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그러니까 시간이 무엇이냐는 물음은 기실 삶이 무엇이냐는 물음인 셈이고, 그렇기 때문에 답이 아리송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시간을 돌고 또 도는 순환으로 경험하면서 동시에 직선적인 흐름으로도 경험한다. 바로 위에서 ‘주기’라는 것을 언급했는데, 그게 바로 순환이다. 하지만 또한 저 앞에서 언급했듯이 시간은 되돌릴 수 없이 직선적으로 내닫는 것이기도 하다. 같은 아침이라도 오늘 아침이 어제 아침과 똑같은 시점인 것은 아니며, 그렇더라도 아무튼 똑같이 아침이기도 하다.
시간을 그렇게 복잡하게 사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의미는 무엇인가? 그 복잡한 사연은 우리의 삶을 어떻게 조형해 내며, 우리의 삶은 그 복잡한 사연을 어떻게 표출하고 있는가? 미르치아 엘리아데(Mircea Eliade)가 〈영원회귀의 신화―원형과 반복〉(심재중 옮김, 이학사, 2003)이라는 책에서 바로 이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이 세상이 처음에 어떻게 해서 생기게 됐는지를 이야기하는 세계의 창세신화들을 보면 공통점이 있다. 혼돈(chaos)의 상태이던 것이 코스모스(cosmos)로 바뀌는 것이 창세인데, 혼돈이란 미분화의 상태이고 우주란 분화된 개체들이 의미망 속에서 질서를 이루는 것을 말한다. 인간은 그렇게 해서 시작된 “역사”(시간의 직선적인 흐름)의 고초와 공포와 절망을 살면서 또한 태초(illud tempus)의 시점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표출하며 살아가고 있음을 엘리아데는 지적한다. 새날, 새달, 새해에는 낡은 시간을 끝나고 생생한 시간을 새로 살기 시작함으로써 역사의 폭압과 고통을 극복한다는 것이다. 엘리아데는 이 책에서 우리 삶의 여러 가지 양상들을 그런 관점에서 풀이해주고 있다. 시간이라는 주제와 연관해서 산다는 게 뭔가라는 의문이 언뜻 일어난 이라면 이 책을 통해 의미 있는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엘리아데는 1907년에 태어나 1986년에 작고했으니 올해가 그의 탄생 100주년이다. 루마니아 출신으로 프랑스를 거쳐 미국에서 활동한 종교학자이다. 인도에서 공부하기도 했고, 소설도 여러 편 썼다. 시카고대학교 교수로 활동하면서 종교학의 이른바 시카고학파를 형성시켰다.
이 책은 전에 〈우주와 역사〉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판된 적도 있다. 엘리아데의 저서 중에 한국어 번역이 출판된 것으로는 이 밖에도 〈성과 속〉, 〈대장장이와 연금술사〉, 〈샤머니즘〉, 〈세계종교사상사〉, 〈신화·꿈·신비〉, 〈메피스토펠레스와 양성인〉 등이 있고 그의 소설 〈만툴리사 거리〉도 번역됐다. 프란시스 코폴라 감독이 Youth Without Youth라는 그의 소설을 바탕으로 해서 같은 제목의 영화를 제작 중에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