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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 김진태의 만화 <보글보글>
등록일 [데이터가 없습니다]l최종 업데이트 [데이터가 없습니다]l 김영민 교수 (정치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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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종종 쉬고 싶다. 아닌 게 아니라, 밤에 제대로 쉬지 못하면 아침을 제대로 맞을 수 없다. 주말에 제대로 쉬지 못하면 월요일을 제대로 맞을 수 없다. 방학 때 제대로 쉬지 못하면 새 학기를 제대로 맞을 수 없다. 실로 쉬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쉬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우리는 얼마나 종종 불면과 숙취 끝에 월요일을 맞는가. 우리의 주말은 얼마나 종종 갑자기 찾아온 불청객으로 망쳐지곤 하는가. 그리고 우리의 방학은 왜 우리의 기대보다 짧은가.
그렇다면 잘 쉬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쉬기 위해서는 일단 열심히 일해야 한다. 무엇엔가 열심히 종사하지 않은 사람은, 잘 쉴 수도 없다. 열심히 종사하지 않은 사람의 휴식에는 불안의 기운이 서려있기 마련이다. 쉰다는 것이 긴장의 이완을 동반하는 것이라면, 오직 제대로 긴장해 본 사람만이 진정한 이완을 누릴 수 있다. 당겨진 활시위만이 이완될 수 있다.
대개의 경우, 학생에게, 그 긴장은 곧 공부를 의미한다. 이를테면 정해진 기간 내에 박사학위를 끝내야 하는 학생은 얼마나 긴장되는가. 필자가 박사논문을 끝내자, 지도하셨던 선생님 한 분이 말했다. 이제 얼마간 쉬게나. 나는 약간의 복수심을 섞어 대꾸했다, 그럼 선생님, 이제 쉬는 법을 가르쳐주세요. 쉬는 법을 공부하렵니다. 그 때 선생님은 오랜만에 웃었고, 우리는 쉬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는 대학/원 교육의 맹점에 대해서 입을 모아 개탄했다.
내가 권하는 쉬는 방법은, 우선, 연인의 무릎을 베고 자는 것이다. 그/녀의 무릎에 머리통을 대는 순간, 젖과 꿀이 질질 흐르는 달콤한 휴식이 당신을 덮칠 것이다. 그러나 연인은 가장 필요할 때 우리에게 없는 법이다. 연인이 우리 곁에 없을 때, 가장 적은 노력으로 최대의 휴식을 얻는 방법으로, 방바닥에 뒹굴면서 만화책을 보는 것을 추천한다.
그럼 저 많은 만화책 중에 무엇을 보아야 하는가? 나는 현대 한국을 대표하는 만화가로서 김진태를 꼽는 데 주저하지 않겠다. 을 통해 보다 대중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그의 대표작은, 작가 본인이 인정한 바 있듯이, 이다. 은 현대 개그만화의 금자탑이며, 지난 수십 년간 한국 문화에 축적된 각종 기호들에 대한 기지 넘치는 패러디이다.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악의 조직 ‘마그마’의 오락부장과 한판 대결로 시작하여, 오대양 육대주를 넘어 저 은하계까지 종횡무진 누비는 의 그 복합적인 스토리를 이 짧은 지면에 요약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김진태의 만화가 보여주는 영롱한 통찰을 몇 가지 소개해 보자.
황가두
김진태 만화의 단골 캐릭터인 대머리 황가두는, 대머리에게는 어떤 헤어스타일이 어울리는가, 라는 해묵은 문제에 대해 선명한 해결책을 제시해 주었다. 대머리가 멋진 헤어스타일을 유지하기 어려운 결정적인 이유는, 적은 수의 머리털로 넓은 이마를 커버해야 하는 데 있다. 적은 수의 머리털로 넓은 이마를 덮으려다 보니, 뭔가 턱도 없이 빈곤한 자원을 가지고 불가능한 임무를 억지로 수행하는 데서 오는 위기감이 머리통 위를 감돌기 마련이다. 황가두는 얼마 안 되는 머리털로 광활한 마빡을 덮어보려는 허망한 시도를 과감히 걷어치우고, 유일하게 풍부하게 자라는 뒷머리를 그냥 뒤쪽으로 마냥 길러 스트레이트 파마를 한다. 이러한 발상의 전환을 통해, 불가능한 임무를 억지로 수행하는 데서 오는 위기감은, 과감한 포기를 통해서만 얻어질 수 있는 비장미로 승화된다. 그러한 비장미는 황가두의 화려한 폭력과 잘 어울린다.
두 번째 지적하고 싶은 것은, 김진태 만화에 등장하는 단골 캐릭터들의 이름이다. 대표적인 예로, 귀여운 호색한 ‘깍귀’를 들 수 있다. ‘깍’두기의 귀여움과 까마‘귀’의 재수없음을 단 두음절어만 사용해서 종합해내는 작명실력은 김진태가 시인에 가까운 언어운용능력과 변증법의 대가임을 증명하고 있다.
셋째, 김진태는 표현하기 어려운 관념을 손에 잡힐 듯한 구체적인 시각적 대상물로 치환하는 놀라운 능력을 보여준다. 에 나오는 애잘뻬옹이란 캐릭터는 恨(한)이 맺힐 때마다, 울컥 흰 점액질을 토해낸다. 그 점액질은 어떤 강고한 물체도 부식시키는 강한 산도를 가지고 있어서, 그 점액질만 발사하면 그 어떤 악당, 그 어떤 역경도 쉽게 물리칠 수 있다. 쉽게 정의하기 어려운 한(恨), 번역하기 어려워 영어에서도 그냥 han이라고 표기하고 마는 그 오묘한 관념을, 점액질과 산도를 지닌 토사물로 형상화한다는 것은, 김진태가 소위 민족의 전통적 정서에 대해 얼마나 심도 깊은 이해를 가졌는지 웅변한다. 누군가 한을 점액질의 토사물이 아니라, 바삭거리는 포테이토칩에다 비유한다면, 그것은 또 얼마나 우리를 한 맺히게 할 것인가.
당신이 간절히 쉬고 싶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인의 무릎이 주변에 없을 때, 김진태의 만화를 읽는 것보다 더 효과적으로 쉬는 방법은 없다. 김진태의 만화를 읽으며 낄낄대다 보면, 어느덧 당신의 심신은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새로운 일에 착수할 에너지와 용기를 얻을 것이다.
누가 그랬던가, 휴식의 궁극은 죽음이라고. 쉬고자 하는 욕망의 끝에는 죽고자 하는 욕망이 도사리고 있다고. 만화책으로부터 우리가 휴식을 얻지 못한다면, 우리는 자칫 죽음을 통해서라도 휴식을 취하려 들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만화책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