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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퍼 유전자가위로 세상을 바꾼다
등록일 2015.06.06 19:57l최종 업데이트 2015.06.26 14:11l 김진수 교수(화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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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인 티모시 브라운은 불행이 겹쳤으나 엄청 운이 좋은 사람이다. 8년 전 그는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된 상태에서 백혈병에도 걸렸다. 두 가지 치명적 질환을 동시에 앓게 되었으나 그는 좌절하지 않고 일단 백혈병을 치료하기 위해 조혈모세포 이식 수술을 받았다. 그런데 백혈병만 완치된 것이 아니고 신기하게 바이러스도 없어졌다. 세포의 기증자가 CCR5라는 바이러스 수용체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백인들 중 백 명의 한 명 비율로 CCR5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있어 에이즈 바이러스에 대한 수용체가 만들어지지 않지만 건강에는 아무 문제가 없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미국 생명공학 회사, 상가모(Sangamo Biosciences)는 이에 착안하여 유전자가위(programmable nuclease)를 이용한 임상시험을 하고 있다. 즉 에이즈 환자의 면역세포에서 CCR5 유전자를 잘라 제거하면 바이러스가 더 이상 감염하지 못 해 에이즈가 치료된다는 것이다. 만일 이 치료제가 미국 FDA의 승인을 받는다면 인간의 유전자를 수술하여 질병을 치료하는 최초의 사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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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가위로 유전자 수술해 질병 치료

 유전자가위로 DNA를 수술해 암, 에이즈, 혈우병을 치료하고 멸종위기에 처한 바나나를 구할 뿐 아니라 모기와 같은 해충을 박멸한다. 만들기가 어려워 소수의 연구자들만 사용했던 제1, 2세대 유전자가위를 대체하는 새로운 제3세대 크리스퍼(CRISPR) 유전자가위가 개발되면서 전 세계 생명과학자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세상을 바꾸고 있다. 

 2013년 1월, 서울대 연구팀과 미국의 연구팀 네 곳이 각각 독자적으로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를 이용한 인간 및 동물세포 유전자 교정 사례를 처음 보고한 이후 불과 2년이 지난 현재, 하루가 멀다 하고 이 기술을 이용한 논문들이 발표되고 있으며 국내외 언론을 통해 연구성과가 보도되고 있다. 짧지 않은 생명과학 역사에서 이처럼 빠른 시간 내에 이렇게 널리 활용된 신기술은 찾아보기 어렵다. 최근 학술지 <사이언스>는 이를 크리스퍼 혁명이라고 표현했다. 유전자가위는 무엇이고 이 혁신적 도구가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유전자가위는 특정 유전자 염기서열을 인식해 절단하는 인공 효소로서 인간 및 동식물 유전자에 돌연변이를 유도하거나 교정하는 용도로 사용된다. 세포에 유전자가위를 도입하면 특정 유전자 DNA의 두 가닥을 모두 끊어 이중나선절단을 일으킨다. 이중나선절단은 자연적으로도 흔히 발생하는 DNA 손상으로서 모든 세포는 이를 효과적으로 수선하는 복구 체계를 가지고 있다. 유전자 교정 기술은 바로 이 복구 과정을 이용해서 특정 유전자에 맞춤 변이를 일으키거나 교정하는 방법이다. 

 이를 이용하면 혈우병과 같이 특정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일어난 부분을 수술하여 원상복구할 수도 있고 질병의 원인이 되는 유전자를 잘라내 제거할 수도 있다. 마치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버그를 발견하여 수정하듯이 생명과학자들이 손쉽게 인간 및 동식물의 유전자를 마음대로 리프로그래밍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지난 수십억 년 동안 유전자의 진화를 거쳐 탄생한 인류가 이제 유전자의 프로그래머가 된 것이다.

 유전자가위 기술은 분화만능 줄기세포에 도입되어 수많은 유전병 치료에 기여할 수 있다. 유전병의 원인이 되는 유전자는 1만 개에 달하고 신생아의 1%는 유전질환을 가지고 태어난다. 유전병 환자의 체세포로부터 분화만능 줄기세포를 손쉽게 만들 수 있으나 이 세포는 유전병의 원인이 되는 돌연변이를 그대로 가지고 있다. 이를 유전자가위를 이용해 교정하면 면역거부반응을 일으키지 않는 환자 맞춤형 세포치료제로 사용될 수 있다.

 유전자가위 기술은 가축, 농작물, 어류의 개량에도 활용된다. 구제역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는 돼지, 광우병에 걸리지 않는 소, 곰팡이 질병에 피해를 받지 않는 바나나와 포도, 밀 등을 생산할 수 있다. 에이즈 바이러스의 감염을 막기 위해 환자 면역세포에서 그 수용체 유전자를 제거하듯이 감염에 필수적인 유전자를 잘라 변이를 일으킨 동식물을 만드는 것이다. 또한 질병 내성에 국한하지 않고 영양성분이 개선되거나 가뭄에도 잘 견뎌내는 농작물을 만들 수도 있다. 특히 외부 유전자를 도입하지 않고 유전자가위로 동식물 자체의 유전자에 변이를 도입하게 되면 GMO로 규제 받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 결과 인류의 먹거리가 유전자가위 기술에 의해 바뀌게 될 것이다. 

 생명과학자들이 크리스퍼 유전자가위의 개발에 열광하여 다양한 목적으로 이 도구를 사용하게 되면서 이 새로운 혁명적 기술이 가져올 인류의 미래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즉 유전자가위를 환자의 세포에 도입해 유전자수술을 하는 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환자의 자녀에게 유전질환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생식세포 또는 수정란에 도입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치명적 유전자 결함을 가지고 있는 부모의 입장에서 그 돌연변이를 자녀에게 물려주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일단 생식세포 또는 수정란에서 유전자 교정을 할 수 있게 되면 유전질환을 치료하는 목적에 그치지 않고 외모, 성격, 지능 등을 개선하는데 남용될 수도 있다. 그 결과 영화 <가타카(GATTACA)>에서 예견하듯이 미래에는 평범한 인간과 유전적으로 강화된 인간이 갈등관계를 형성하게 될 수도 있다. 최근 중국의 연구진이 최초로 인간 배아에 유전자가위를 도입한 결과를 발표하면서 이에 대한 논란이 더욱 커지고 있다. 늦기 전에 생식세포 유전자 교정을 어느 선까지 허용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이 글은 <한국경제신문>에 게재된 “김진수의 유전자 이야기” 1-4편을 축약한 것임을 밝힙니다. 




김진수 교수(화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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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화학부 교수이자 기초과학연구단(IBS) 유전체교정 연구단장. 1994년 이후 MIT 박사후연구원, ㈜툴젠 공동창업자 및 대표이사, 서울대 교수로 근무하면서 유전자 교정에 널리 쓰이는 제1, 2, 3세대 유전자가위를 개발하였다. 현재 이를 이용해 혈우병 등의 유전자치료와 멸종위기에 처한 바나나 살리기 프로젝트 등 다양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