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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자연의 존엄한 생존을 위하여 페트라 켈리 『희망을 위해 싸우 다: 폭력 없이 녹색미래로』(1983).
등록일 2016.06.13 18:15l최종 업데이트 2016.06.13 18:15l 한정숙 교수(서양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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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녹색당은 후기 산업사회의 정치 사회구조와 삶의 방식에 대한 성찰에 바탕을 두고 68혁명 후 여러 갈래로 펼쳐졌던 새로운 사회운동의 흐름들이 모여 결성된 정당이다. ‘생태주의, 풀뿌리 민주주의, 사회적 공정성, 비폭력’을 기치로 내걸었으며 지금까지 전 세계의 녹색정치를 선도하고 있다. 녹색당 창당과 초기역사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인물은 “녹색 잔 다르크”라고도 불리는 페트라 켈리(Petra Kelly)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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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트라 켈리.


  페트라는 불의의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1992년까지 반핵평화운동·환경운동 부문에서 국제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지도자 중의 한 사람이기도 했다. 그녀는 1947년 서독 바이에른 주에서 태어났으며 가족을 따라 1960년 미국에 건너가 중고등학교와 대학을 미국에서 마쳤다. 미국에서 68운동 시기를 보내면서 베트남전 반대운동을 목격하고 간디, 헨리 데이빗 소로우, 마틴 루터 킹의 비폭력적 시민 불복종 운동의 이념에 매료되었으며 평생 이들의 가르침을 실천에 옮기고자 노력하였다. 페트라는 1970년대 초반 유럽으로 돌아와 유럽연합기구에서 활동했으며 국제 평화운동, 생태주의운동의 지도자로 명성을 쌓은 후 동료들과 함께 1980년 1월 녹색당을 창당하기에 이른 것이다. 당시 그녀는 녹색정치의 철학을 “여성주의, 생태주의, 비폭력주의”로 요약하였다.1 페트라 켈리는 한국에서는 잘 알려진 편이 아니다. 한국어로 번역 출판된 페트라의 저서로는 《희망은 있다. 평화로운 녹색의 미래를 위하여》 (이수영 옮김, 달팽이, 2004)가 있다. 이 책은 켈리의 연설문과 수상문을 모아 1983년에 출판되었으며 원제는 《희망을 위해 싸우다: 폭력 없이 녹색미래로》이다.2 수록된 글들은 1970년대와 80년대 초반의 반핵평화운동, 환경운동의 당면과제와 원칙을 다루고 있다. 반핵운동은 탈원전운동과 핵무기반대운동을 포괄하며, 원전과 핵무기가 초래하는 생명 파괴에 대한 저항을 뜻한다. 이 책이 씌어진 당시 서독은 냉전의 한복판에 놓인 채 미소 양진영의 군비경쟁에서 양산되는 최첨단 살상무기의 배치현장이 되고 있었다. 나토는 중거리 핵미사일을 서독에 배치하기로 결정했고 평화운동 진영의 필사적 저항에도 불구하고 이를 실행에 옮겼다. 원자력 발전 문제는 어떤가. 미국 쓰리마일 아일랜드 원전에서 방사능물질 유출사고가 일어났지만 피해자에 대한 정확한 집계조차 없이 진상이 은폐되고 있었다. 페트라는 원자력 발전사고로 인한 신생아사망률 증가에 가슴아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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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트라 켈리 《희망을 위해 싸우다》(1983)의 표지.


  페트라는 핵에너지 사용과 소아암의 관계를 추적하면서 소아암을 앓는 어린이 환자들을 위한 특별시설인 ‘어린이 별나라’라는 기구를 설치하기도 했다. 반핵 평화운동과 소아암환자 지원 운동이 하나로 연결된 것이다. 그녀의 동생 그레이스(페트라의 어머니 마리안네가 재혼한 남편 존 켈리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가 소아암을 앓다가 열한 살의 나이로 사망하였는데, 페트라는 미군 장교였던 존 켈리가 히로시마 원폭투하 한 달 만에 히로시마에 발령받아 근무하면서 방사능물질에 노출된 것이 그레이스의 병으로 이어졌으리라 추측했다.


  페트라는 핵군비 확장을 꾀하는 동서 진영의 권력자들을 맹렬히 비판하면서 녹색미래를 창조하고자 했다. 그녀는 “우리에게 미래가 있다면 그것은 녹색입니다”라고 말했는데, 이를 위한 수단은 비폭력이어야 한다고 보았다. “비폭력은 인간이 자기 자신과 인간이라는 자신의 종과 화해하는 것, 자연과 우주와 화해하는 것이다”3라는 페트라의 말은 영성(靈性)을 중시했던 그녀의 내면의 신념을 보여준다.


  《희망은 있다》를 읽을 때 받는 기시감은 대단하다. 화학물질과 소아암의 관계에 대한 그녀의 지적을 읽으면 최근 뉴스를 읽는 것 같다. 동일한 문제가 변검술을 쓰듯 모습만 달리해가며 눈앞에 버티고 서 있는 듯하다. 페트라는 그럼에도 희망을 위해 싸우자고 동료인간들을 격려한다.


  타인의 고통을 함께 느끼고 함께 아파하는 데서 새로운 사상이 태어난다. 페트라는 어린 동생의 암투병과 죽음을 지켜보면서 삶을 위한 정치의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개인적, 일상적 문제에서 출발하여 사회 전반의 문제를 위한 성찰의 단초를 찾아내고 보편적인 사상으로 나아간 것이다. 그녀의 지원을 받았던 한 미국토착민(인디언) 부족 대표는 그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그녀를 착한 마음의 여자라 부릅니다. 그녀는 쓰러진 나무의 말을 듣고 말을 걸 수 있는 숲속의 외로운 소리입니다.”


  20세기 독일은 적어도 세 명의 뛰어난 여성 정치사상가를 배출했다. 폴란드 출신이지만 독일 사회민주당의 지도자로 활동하면서 군국주의와 전쟁에 맞서 싸웠던 로자 룩셈부르크가 20세기 초를 대표한다면, 나치의 박해를 피해 망명한 후 전체주의의 본질에 대한 탐구에 몰두했던 한나 아렌트는 다소 보수적인 입장에서 20세기 중반을 풍미한 정치철학자였다. 페트라 켈리는 20세기를 닫고 21세기로 나아가는 길목에서 지구와 인간과 모든 생명의 평화롭고 존엄한 생존을 위한 녹색정치의 길을 모색하였던 사상가, 운동가로 기억될 것이다.


1 새라 파킨, 《페트라 켈리, 나는 평화를 희망한다》 김재희 옮김 (양문, 2002), 214쪽.
2 Petra Kelly, Um Hoffnung zu kampfen: Gewaltfrei ineine grne Zukunft (Lamuv-Verlag, Bornheim-Merten, 1983)
3 페트라 켈리, 《희망은 있다. 평화로운 녹색의 미래를 위하여》 이수영 옮김 (달팽이, 2004), 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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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숙 교수(서양사학과) 서울대학교를 거쳐 독일 튀빙겐 대학에서 러시아 혁명기 농업경제사상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여성사, 러시아사, 우크라이나사에 대해 저서와 논문을 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