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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외교학부, 어디서 무엇이 돼 다시 만났나 반세기만의 통합, 완성되지 못한 밑그림
등록일 [데이터가 없습니다]l최종 업데이트 [데이터가 없습니다]l 최정훈 (cogito0724@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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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대학과 달리 유독 서울대학교에서는 정치학과와 외교학과를 나누어 운영해 왔다. 하지만 지난 4월 교수 평의원회 본회의에서 정치외교학부 통합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되더니 결국 5월에는 두 학과가 정치외교학부로 공식 통합됐다. 정치학과에서 외교학과가 독립돼 나온 1959년 이후 반세기 만의 일이지만 통합 이후 모습이 아직 확정되지 못해 학생들에게서도 염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정치·외교학과 등의 통합 논의를 보도한 1968년 <대한일보> 기사. 두 학과가 분리된 이래 줄곧 재통합론이 대두됐으나 공식 통합은 지난 5월에야 이뤄졌다.


통합되는 학문, 늘어나는 동문?
이번 통합에는 ▲관련된 두 학문을 연계하는 교과과정을 만들고 ▲과거에 비해 축소된 정원을 증가시켜 양과의 위상을 높이자는 요구가 그 배경으로 지적된다. 이규황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총동창회(총동창회) 회장은 “오늘날은 학문이 융합돼 학제적으로 연구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한 뿌리에서 나온 정치학과 외교학도 함께 공부해야 큰 발전을 이룰 수 있다”면서 “현재 두 학과 인원은 사회에서 활동하기엔 너무 적어 인적 자원의 수도 늘어나야 한다”고 통합의 정당성을 설명했다.
하지만 정치·외교학과 동창회가 통합을 추진한 실제 이유는 입학 정원을 늘림으로써 동문의 사회적 영향력을 키우려는 쪽에 있다. 총동창회에서 통합을 추진하기 위해 꾸린 위원회의 이름이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승격 및 입학증원 추진위원회’(위원회)라는 사실에서 이 점이 단적으로 드러난다.
위원회가 꾸려질 무렵이던 2008년 12월, 총동창회는 결의문을 발표해 양과를 통합하고 신입생 정원을 늘려야 하는 것에 대한 정당성을 주장했다. 결의문에서는 ‘모과가 정치·외교 두 학과로 나뉘면서 발전은커녕 정원 각 27명의 군소학과로 전락’했으며 긴 세월에 걸친 두 학과의 정원 감축으로 인해 양과가 ‘존폐가 걸린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에 처했다고 극단적으로 묘사했다.

모과(母科)를 로스쿨 학생 양성소로 전락시킨 ‘결의문’
결의문에서는 ‘2009년은 로스쿨 원년으로 법대가 신입생을 뽑지 않아 우리 양과의 정원을 늘릴 절호의 기회’라며 법대 폐지에서 생긴 잔여 정원을 확보할 의지를 보였다. 뿐만 아니라 로스쿨을 ‘학부에서 정치·외교·철학 등 인문학을 연수한 뒤 진학하는 곳’이라 규정하고 ‘학부 승격은 우수 인재를 유치하고 명문학과로 부활하는 계기’라고 전망했다. 즉 정계나 법조계로 진출할 학생을 다수 끌어오기 위해 정원을 늘려야 한다는 논리다.
결의문에서 정치학과 외교학이 학문적으로 결합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주장한 대목은 없었다. 총동창회가 학문적 융합보다도 양과가 한때 보여준 영향력을 회복하기 위해서 학부 승격을 추진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미 본부에서는 법대 정원 300명의 절반을 자유전공학부 정원에 배정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양과를 통합과 동시에 학과 정원을 늘리려는 계획을 실현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해졌다. 2008년 12월, <정치·외교학과 동창회보>(<동창회보>) 85호에서는 ‘나머지 150명의 정원을 신설될 정치외교학부의 신입생 증원에 배정하도록 서울대학교 측과 교육과학기술부 그리고 기획재정부를 상대로 강력한 접촉활동을 벌일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때도 <동창회보>는 같은 호에서 자유전공학부의 신설과 관련해 ‘정치학과, 외교학과가 학부로 합칠 경우 로스쿨 준비할 사람들이 몰려올 것이라는 예상은 조금 빗나가 버렸다’, ‘바꿔 말하면 로스쿨 가고 싶은 사람은 (신설된) 자유전공학부 학생’이라는 홍사덕 의원(한나라당)의 발언을 실었다. <동창회보> 86호에 따르면 홍성목 당시 동창회장은 자유전공학부에 배정된 인원의 일부를 정치외교학부로 재배정해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동창회보> 89호에는 홍 회장이 장기적으로 학생 정원이 200명에 이르러야 한다고 피력한 주장이 실렸다.

통합 추진에 비해 너무도 짧은 준비 기간
총동창회에서는 학과를 통합하기 위한 학문적 방향보다는 정원을 얼마나 늘릴지를 논의하기 위해 오히려 더 많은 모임을 열었다. 교수진이 위원회에 포함돼 있긴 하나 정치인이나 경제인이 위원회의 대다수다. 입학 정원 추진에 초점을 맞춰 통합을 진행했기에 공식적인 통합 이후에도 구체적으로 결정할 일이 많아 남아 있는 실정이다.
총동창회 수석 부회장인 박찬욱 교수(정치학과)는 “학부 수업 시간에 동문이 와서 가르치는 것은 아니니 동창회에서 새로운 교과를 짜지는 않는다”며 “동창회에서 말한 학문적 통합이란 국내 정치와 국제 정치를 모두 알아야 서로 이해에 도움이 된다는 상식적 수준의 주장”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통합에 동문의 영향력이 컸다”면서도 “동문은 일단은 합치고 보라는 요구를 했을 뿐 통합하고 나서 구체적 내용에 관여하는 건 아니다. 앞으로 해결할 문제가 많다”고 덧붙였다.
양과를 통합하자는 의견은 수십 년 동안 잠재적으로 있어 왔다. 하지만 양과의 공식 통합은 5월 10일에 이뤄졌고 통합 발족식은 6월 3일에 있었다. 이전까지 정원 증가에만 초점을 맞춘 나머지 구체적인 학부 운영 계획을 짜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임혜란 교수(정치학과)는 “아직 논의가 본격화되지 않아 다음 학기가 시작해야 논의를 재개할 것 같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유홍림 교수(정치학과)는 “발전위원회가 꾸려져 몇 차례 회의가 진행됐다. 진척은 적었지만 큰 틀에서 수업 이수 방식 등 기본적인 내용은 합의된 상태다”라고 설명했다.
합의된 내용에 따르면 2학년에 정치외교학부에 진입하면 공통 교과를 이수해야 한다. 하지만 유 교수는 “기존에 두 학과에서 학년별 이수 교과를 따로 두다가 통합하게 돼 조정할 필요가 있다. 공통 이수 과정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논의해 커리큘럼을 조정해야 한다”며 2학년 수업의 내용을 정하는 단계가 아직 남았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옥연 교수(외교학과)는 “특히 외교학과에는 2학년 2학기에 해외에서 교환 과정을 밟는 학생이 많다. 이상적으로는 1년간의 공통 교육 과정이 있어야 하는데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게 과제다”라고 현재 논의의 난점을 토로했다.
3학년부터는 다시 정치학 전공 또는 외교학 전공으로 나뉜다. 이에 대해 이옥연 교수는 “통합됐다가 굳이 다시 전공별로 가르는 이유에 관한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이는 50년 넘게 정치학과와 외교학과가 각기 다른 강조점을 두면서 특화해 온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유홍림 교수도 “통합이 장기적으로 가면 정치외교학을 전공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지금은 과도기기 때문에 전처럼 따로 전공을 나눠 교과를 이수한다”고 종래의 운영 방식을 부분적으로 유지하는 이유를 말했다.

10.48%에 그친 학부생의 소속 변경률
통합에 대한 학생들의 반응은 어떨까. 사회대 행정실에서는 “학생의 소속 변경 여부가 이분법적으로 통합에 대한 찬반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아직 찬반을 공식적으로 조사한 자료는 없다”며 소속 변경 비율을 곧바로 통합안에 대한 태도로 해석하는 것을 경계했다. 하지만 정치외교학부로 소속을 변경한 학생의 비율은 매우 적었다. 8월 17일 현재 학사 과정에 있는 재적생은 정치학과가 168명, 외교학과가 204명이다. 그 가운데 정치외교학부로 소속을 변경한 학생은 각각 31명(18.45%)과 8명(3.92%)이다. 양과 전체에서 소속을 옮긴 학생은 10.48%에 그쳤다.
외교학과의 경우 공지가 잘 되지 않은 점이 소속 변경 비율이 낮은 이유로 지적되기도 한다. 외교학과 조교실에서는 “외시를 준비하거나 교환 과정에 있는 학생이 많아 정치학과보다 소속 변경률이 저조하다. 행정실에 문의해 추가로 소속 변경 신청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외교학과 홈페이지에는 9월 17일까지 소속 변경이 가능하다는 공지가 올라와 있다. 사회대 교무행정실에서도 지난 소속 변경 기간에 변경을 신청하지 않은 학생은 “희망자에 한해 소속 변경 기회를 부여하겠다”고 밝혔다.
학생과 괴리돼 진행된 통합의 결과로 8월 17일 현재 정치외교학부로의 소속 변경률은 무척 저조하다.


학생과 괴리된 통합 논의의 한계
학생들이 소속 변경을 망설인 이유는 다양했다. 그중에서도 두 과가 가진 학과 내 학생 교류 방식의 차이가 큰 요인이 됐다. 소속을 변경하지 않은 김은덕(정치 09) 씨는 “정치학과에서는 자치활동을 하고 외교학과에서는 국제교류세미나를 하는 등 학과 특색이 다른데 통합되면 어떻게 조화해 나갈지 궁금하다”며 “통합된 학부에 한 번에 늘어난 후배와 어떻게 가까워져야 할지도 부담이다”라고 우려를 표했다. 김 씨는 “소속 변경 기회가 한 번쯤 더 주어질 것 같다는 주변의 말 때문에 결정을 미룬 면도 있다”고 덧붙였다.
문지예(외교 09) 씨도 “통합했다고 해도 실질적으로 두 과는 교류가 많지 않고 독자적으로 활동한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함께 해도 나중에 다시 갈라질 텐데 우리 후배가 아닌 듯 느낄 수도 있다”며 오래도록 상이했던 활동이 갑자기 합쳐지기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문 씨는 “통합 때 교수와 학생 사이에 이야기도 없었고 사안에 대해 함께 논의하지도 않았다. 의견도 교환되지 않고 결정된 것 같다”고 학생과 유리된 채 진행된 통합 논의의 한계를 지적하기도 했다.
정치외교학부로 소속을 변경한 고효정(정치 09) 씨 같은 경우도 “소속을 옮기면 앞선 선배들과 단절되는 것이라 고민이 많았다. 과에서 소속 변경을 하려는 사람도 생각보다 적었다”며 우려했다.

“물리적 통합에서 화학적 통합으로”
서울대 내외 교수들은 정치외교학부가 장기적으로 화학적 통합이 돼야 한다고 봤다.
하지만 서울대 내외 교수들의 반응은 낙관적이다. 서울대 정치학과 출신인 임혁백 교수(고려대 정치외교학과)는 정치외교학부의 통합이 “바람직하다. 오히려 만시지탄의 감이 있다”며 환영했다. 임 교수는 “정치와 외교가 통합된 대학에서 근무해 보면 국내 정치와 국제 정치를 연계해서 유기적으로 파악하게 된다”며 “학부에서는 통합적으로 교육해 전반적 교양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 대학원처럼 세부적으로 전공을 택하는 방식은 잘못됐다”고 의견을 피력했다. 임 교수는 이어 “두 과가 통합됐는데도 다시 전공을 나누는 계획은 과도기적으로는 이해한다. 장기적으로는 물리적 통합에서 화학적 통합으로 가야 한다”고 갈 길을 제안했다.
박찬욱 교수는 “정치외교학부는 지금 조직적으로만 통합된 상태다. 교수가 은퇴하고 새로 임용되는 등의 시간을 거쳐 통합이 완결될 것”이라며 장기적인 안목에서 통합이 진행되리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새 정치외교학부 안이 정작 내년부터 실행될 것을 목표로 하는 만큼 정치외교학부의 기본 틀을 규정할 당장 다음 학기 교수 간 논의의 중요성은 명확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