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호 > 사회
동반성장, 중소기업에겐 여전히 머나먼 길 동반위, 단가 후려치기·고급인력난·기술 유출 삼중고 현실 반영해야
등록일 [데이터가 없습니다]l최종 업데이트 [데이터가 없습니다]l 진지헌 (jinjihon2320@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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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기업 구조의 고질적인 문제로 오랫동안 지적돼왔던 ‘대기업·중소기업간 불균형’은 동반성장위원회 출범 이후 다시 물 위로 떠올랐다. 동반성장위원회가 ‘동반성장’ 정책을 발표할 때마다 국내 기업인들과 정치·경제관련 인사들, 누리꾼들 사이에서 치열한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결국 이명박 대통령까지 나서 임기 내 동반성장에 대한 의지를 강력히 피력함에 따라 동반성장 정책들은 순차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지난 4월 삼성그룹, LG그룹, 현대자동차, 포스코 등 국내 대기업들은 협력업체들과 공정거래·동반성장 협약을 맺고 상생 경영에 나설 것을 다짐했다. 그러나 동반성장 정책의 수혜자인 협력업체와 중소기업들 사이에서는 동반성장 정책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섞인 시선들이 공존하고 있다.

동반성장위원회, 중소기업의 반응은? “글쎄요…”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는 협력업체 A사는 동반성장위원회에 일반제조업 분야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 신청서를 제출할 계획이다. 만약 신청서가 채택될 경우 A사는 회사규모가 연 7% 이상 성장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A사 대표 김 모씨는 동반성장위원회에 대해 “그동안 적극적인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고, 국민들의 애국심에 호소하며 제품을 팔아온 대기업들에 깔려있던 중소기업들에도 드디어 활로 모색의 길이 열렸다”고 환영의 뜻을 내비쳤다. 김 씨는 “구체적인 세부계획과 추진방향이 명확해져야 하겠지만 취지 자체만으로도 중소기업 업계 내에서는 많은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모든 중소기업들이 A사처럼 동반성장위원회의 정책에 환영하는 것은 아니다. 삼성전자 2차 협력업체인 B사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추진하는 동반성장의 취지에는 기대가 크지만, 이것이 일회성, 정치적 목적으로 사용된다면 중소기업 경영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며 “추진과정에서 협력 대기업과의 관계가 틀어질 수 있고 법제화 과정에서도 많은 진통이 예상돼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A사 대표 김 모씨 역시 “강력한 추진이 이뤄지지 않으면 공염불이 될 수 있다”며 “정부와 동반성장위원회가 준비를 철저히 하고 전문가로 구성된 인력을 갖추고 정책을 시행하지 않는다면 제자리걸음에 불과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4월, 국내 대기업들은 협력업체들과 동반성장 협약을 맺고 상생 경영에 나설 것을 다짐했다. 그러나 중소기업 업계에서는 협약의 실효성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다. ⓒ헤럴드경제


실제로 대기업들과 협력업체가 동반성장 협약을 맺은 지 한 달이 지났지만, 협력업체들이 느끼는 동반성장 정책의 실효성에는 종류와 규모에 따라 온도차가 있다. 의 5월 13일 보도에 따르면, 삼성 1차 협력사 모임인 ‘협성회’의 이세용 대표는 ‘5월부터 삼성이 현금성 결제대금 지급횟수를 월 2회에서 3회로 늘렸다’며 ‘삼성 계열사의 각 사장들이 직접 협력사를 찾아와 애로사항을 묻는 등 어느 때보다도 더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B사처럼 대기업과 2차 이하의 협력 관계를 맺고 있는 업체의 경우는 아직까지는 상황이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B사의 관계자는 “정부 주도 하에 대기업들이 동반성장을 외치고 있지만 이는 일부 1차 협력업체에 해당하는 이야기”라며 “아직까지는 전혀 변화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고 불만 섞인 어조로 말했다.

중소기업 경영, 생산할수록 늘어나는 것은 적자와 한숨뿐?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수직적 관계와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자는 취지에는 대다수의 중소기업들이 공감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동반성장위원회가 추진하는 정책들이, 중소기업이 겪는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전망은 밝지 않은 편이다. 동반성장위원회가 추진하는 정책들이 당장 직면하고 있는 현장의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 기대하기 어려운 까닭이다.
부품 부문 협력업체인 C사의 사장 김 모씨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과 15년간 거래를 해오면서 빈번하게 무리한 요구에 시달렸다. 한 대기업은 얼마 전 C사에 7~8년 전에 맺은 부품단가를 그대로 적용하여 계속해서 납품할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김 씨는 “사업장 최저임금은 매년 인상되는데 반해, 대기업이 요구하는 단가는 임금 인상률, 자재인상분이 전혀 적용되지 않아 도저히 수익이 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언제 도산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어쩔 수 없이 납품 단가를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기계류를 취급하는 협력업체 D사 역시 비슷한 어려움에 처해있다. D사의 사장 정 모씨는 “납품단가 인하요구는 매년 정기 행사”라며 “납품 단가를 인하하지 않으면 제품을 반납해라, 협력업체를 바꾸겠다 등의 협박을 매번 들으면서도 아무 대꾸도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기업은 매년 8~10%의 수익률을 이룬다고 하지만 그와 상생해야 할 협력업체는 역으로 적자만 보고 있다”며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입장에서 생산을 해봐야 늘어나는 것은 적자와 은행 부채뿐이니 일할 의욕이 나지 않는다”고 한탄했다.
대기업, 중소기업 간 불균형 문제는 국내 기업 구조의 고질적인 문제로 오랫동안 지적받아 왔다. 중소기업은 대기업과의 수직 관계에 따른 원가 후려치기, 인력유출, 기술유출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다.ⓒ한국은행

인력 수요 양극화에 따른 고급인력난 및 타 회사로의 빈번한 이직 역시 중소기업이 직면하는 커다란 문제이다.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실시한 2010년 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동일 분야 이직률은 제조업의 경우 기술직 10.5%, 연구직 9.0%, 기능직 12.3%이며 그 원인은 대기업 및 타 기업의 스카우트와 열악한 근무조건이 꼽혔다. B사의 사장 최 모씨는 “신규인력을 채용해 회사 기술을 익히도록 교육시키더라도 수개월 내에 대기업으로 스카우트 되는 경우가 빈번하다”며 “상대적으로 더 좋은 복지와 임금을 보장하는 곳에 가겠다는데 무턱대고 막을 수도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기술 유출로 인한 중소기업의 피해 사례 역시 급증하고 있다. 2009년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기업으로부터 기술 자료를 요청받은 중소기업 가운데 22.1%가 기술탈취나 유용을 경험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피해를 겪고서도 대기업과의 관계 때문에 말하지 못하고 속병을 앓는 경우가 많다. 의 2010년 8월 11일 보도에 따르면, 김문선 중소기업기술정보진흥원 차장은 “실제로 기업 분쟁 자문을 해보면 절반 이상이 기술 유출 피해를 겪은 경험이 있지만 신고나 법률상담을 해주겠다고 하면 대개 거절한다. 거래기업을 밝히면 영업 판로가 막혀버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중소기업 업계 일각에서는 대기업 내부의 실적 지상주의와 대기업, 중소기업 사이의 수직적 관계의 존속이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C사의 사장 김 모씨는 “대기업 오너들이 상생 경영을 추구한다고 하더라도, 밑에서 일하는 임직원들은 실적을 위해 협력업체에 원가절감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며 “을의 입장에 있는 협력업체는 어쩔 수 없이 대기업의 요구를 들어주고, 그러다 보니 이익을 내지 못해 돈이 없고, 돈이 없어 직원 복지가 열악하니 인재가 없고, 인재가 없으니 비전이 없는, 불안한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다”고 한탄했다.
중소기업 업계에서는 경영난의 가장 큰 원인으로 적정한 납품 단가 미반영을 들었다. 이런 점에서 동반성장위원회의 초과이익공유, 동반성장지수계량화 등의 정책은 본질적인 접근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대한상공회의소

이런 점에서 동반성장위원회의 정책은 본질적인 접근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불공정한 갑을관계가 존속하는 한 동반성장위원회가 현재 추진하는 초과이익공유제나 동반성장지수 산정과 같은 제도 역시 사실상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B사의 관계자는 “추진 중인 제도들은 환영할만한 일이나 대기업의 입김이 절대적으로 거센 현 상황에서 과연 실효성을 거둘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며 “산업 구조의 개선을 통해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수직적 관계가 아닌 파트너로서의 협력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말했다.
또한 동반성장위원회가 추진하는 거시적인 형태의 제도 마련보다는 당장 중소기업 업계의 발등에 떨어진 문제 해결이 우선이라는 의견도 있다. C사의 사장 김 모씨는 “거래선 변경 등의 압박에 의한 납품 단가 인하와 기술 유출, 인력 유출 등과 같은 대기업의 불법적인 횡포가 현재 중소기업이 닥친 가장 시급한 문제”라며 “적정한 구매가 반영과 하도급 분쟁 해결책 마련이 동반성장의 우선과제”라고 주장했다.
B사의 관계자 역시 현재 중소기업의 경영난에 대해 “이는 단순히 중소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산업의 중추적인 허리 역할을 하는 중소기업이 버티기 힘든 사회적, 경제적 환경이 이대로 지속된다면 중소기업 뿐 아니라 국내 기업 전반의 공멸을 가져다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