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호 > 특집
비정규직이라고 ‘모성권’까지 비정규인건 아니다
등록일 [데이터가 없습니다]l최종 업데이트 [데이터가 없습니다]l 채새롬 (tofha7915@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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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월 현재 전체 임금근로자 1,573만1,000명 중 비정규직은 모두 577만3,000명이다. 전체 노동자의 1/3 이상을 비정규직이 차지하고 있다. 여성노동자의 경우 사정은 더욱 심각하다. 노동계 추정 전체 임금근로자 여성 중 비정규직 여성이 약 70%를 차지한다. 비정규직 형태가 여성 취업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이들의 모성권은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다. 모성권은 임신·출산·육아 뿐 아니라 여성성에 대한 가장 기본적이고 보편적인 권리다. 모성보호는 비정규직 자체의 제도적 문제에 가로막혀 있다.


비정규직 여성은 모성권 고려되지도 않아

비정규직 여성의 모성보호가 간단하지 않은 문제라는 점은 비정규직 제도의 특수성에 기인한다. 현행 비정규직보호법에 따르면 비정규직 고용 기업은 2년 동안 파견근로자나 기간근로자를 자유롭게 쓸 수 있다. 이명박 정부 이후 이 기간이 4년으로 늘었지만 실질적으로 비정규직의 고용계약은 여전히 1-2년 단위로 갱신되고 있다. 때문에 3개월, 6개월, 1년 단위의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은 비정규직 여성에게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제도다. 비정규직 여성이 출산이나 육아를 하게 되면 바로 해고에 직면하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규직여성들은 제도의 범위에 포함돼있지만 사회분위기상 이를 사용하지 못하는데 반해, 비정규직여성들은 제도 자체적으로도 가장 기본적인 모성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미혼의 생산직 노동자 A씨는 “우리는 육아휴직 자체가 없다”면서 “결혼이나 임신을 하면 회사를 그만둬야하는 분위기 때문에 결혼 결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최근 결혼한 동료는 결국 임신 때문에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한국여성노동자회의 2010년 ‘평등의 전화’ 상담 내역에 따르면 한 일용직 여성은 회사에 산전후휴가를 문의한 결과, “일용직이 산전후휴가를 신청한 경우가 한 번도 없어서 산전후휴가를 줄 수 없다”는 대답을 받았다. 결국 비정규직여성이 임신을 하는 경우 회사를 그냥 나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보험회사 계약직 여성 B씨는 출산휴가 당시의 상황을 털어놨다. B씨는 “애를 낳고 나서 3개월 산전후휴가를 쓰려고 하자 회사에서 그만두라고 했다”고 말문을 연 뒤 “가까스로 계속 다니고 있지만 동료나 상사의 눈치 때문에 여전히 힘들다”고 밝혔다.

이처럼 비정규직여성의 경우 임신은 곧 해고를 뜻하기 때문에 경력단절이 당연시된다. 콜센터에서 근무하는 C씨의 경우 회사에서 제도적으로는 명목상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보장해주고 있다. 그러나 C씨는 “직장을 계속 다니려는 사람 중에 육아휴직을 쓰는 사람은 한명도 없다”고 단언하며 “육아휴직을 쓰면 다시 일자리로 복귀하지 못하거나 복귀해도 원하지 않는 자리에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평등의 전화’ 상담 중 계약직으로 근무하는 한 학원여성교사는 학원으로부터 “육아휴직 후 복직한다면 현재의 위치보다 낮은 위치에서 훨씬 적은 임금으로 근무할 수밖에 없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면서 학원은 그에게 “권고사직을 받아들이면 실업급여는 받을 수 있게 해주겠다”고 제안했다. 비교적 일하기 좋은 환경의 비정규직이나마 보장받으려면 육아휴직은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는 현실인 것이다.



법적 ‘사용자’인 특수고용직은 고용보험 가입조차 안 돼 더욱 어려워

특수고용직의 경우 이보다 더한 상황에 처해 있다. 간병인, 학습지교사 등 특수고용노동자들은 사실상 고용주의 사업에 편입돼 있는 형태임에도, 고용주로부터 직접적 고용상태를 부정당해 노동자성이 전혀 인정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은 4대 보험의 적용을 전혀 받을 수 없다. 때문에 고용보험 상 당연한 권리인 산전후휴가와 육아휴직 모두를 제도적으로 완전히 거부당하게 된다.

재능교육 해고노동자 오수영 씨는 특수고용직의 모성보호 실태를 설명했다. 이들은 출산할 때 6개월 무급휴직을 쓸 수는 있지만 휴직 이후 복직할 수 없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학습지 교사는 많이 걸어 다니거나 계단을 자주 오르내리는 직업의 특성상 임신 초기에 유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휴직하고 싶더라도 마음대로 쉴 수가 없다. 오 씨 역시 “병원에서 유산할 것 같으니 쉬라고 했지만 대신 내 자리를 채워줄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임신 9개월 때까지 일을 해야 했다”고 임신 당시를 회상했다. 출산 이후라고 나아진 것은 없었다. 6개월 간 무급 휴직 후 복귀하자 회사가 그에게 수업을 배당해 주지 않은 것이다. 회사에서는 여러 핑계를 대고 재고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회사는 그녀에게 이를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출산 직후의 여성이 수업하기에 너무 넓은 지역을 할당하는 등 육체적으로 힘들게 하거나 수업을 아예 배당해 주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녀가 도움을 청할 곳은 아무데도 없었다.




제도적으로 소외된 비정규직 위해 정부가 나서야

오 씨는 “정부가 정책적으로 출산을 권장하지만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것은 전혀 없다”며 “출산을 장려하려면 제도에서 소외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정부의 안이 구체적으로 나와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비정규직여성은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이 제도적으로 전혀 보장돼 있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정부의 표면적인 출산장려정책만 믿고 출산을 할 수는 없다. 정부의 미비한 대책 때문에 비정규직여성은 가정생활과 직장생활을 병행하는 데 심각한 고통을 겪고 있다.

한국여성노동자회 신혜정 씨는 “비정규직 여성들이 현실적으로 산전후휴가와 육아휴직을 사용하기 어려운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법제도의 보완이 절실히 요구된다”고 주장했다. 실질적으로 임신과 출산 때문에 재계약이 거부되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신 씨는 “비정규직여성의 고용보험가입률이 현저히 낮아 무급으로 출산휴가를 사용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므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사회보험 가입률을 높여야 한다”고 역설했다.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의 고용보험 가입률은 36.2%이고 그나마 특수고용노동자는 고용보험에 가입할 수조차 없는 상황이다. 이들이 고용보험에 가입만 할 수 있더라도 제도적으로는 산전후휴가와 육아휴직을 보장받을 수 있게 된다. 그렇지 않고 이들의 정당한 노동권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모성보호는 사치일 수밖에 없다. 재능교육 해고노동자 오수영 씨는 “특수고용직의 고용보험 가입에 대해서 2008년에 문제제기가 이뤄진 적 있지만 의제화되지도 않고 수면 아래로 들어갔다”며 “특수고용직에게도 고용보험 가입이 보장되면 모성보호에 훨씬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비정규직여성에 대해 사회적 협약을 마련해서 이것이 대기업과 중소기업뿐 아니라 영세 사업장에도 적용돼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여성의 취업 형태 대부분 비정규직이고 영세 사업장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에 대한 구체적인 정책적 고려 없이는 모두를 포괄하는 출산, 육아 대책이 나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신자유주의적 경제 원리에 입각해 비정규직 제도를 정당화하고 있다. 기업에서 역시 경제적 비효율성을 이유로 비정규직 여성의 모성권을 보장해주기 힘들다고 말한다. ‘평등의 전화’ 상담 내역 중 기간제 학교교사를 임용하는 데 있어서 학교 행정실에서는 “재계약을 해야 할 시점에서 이미 출산이 예측되는 사람을 재고용하는 것은 예산낭비”라고 말하는 동시에, “출산휴가를 인정하면 유급휴가를 주는데다가 대체인력을 투입해야 하기 때문에 돈이 이중으로 드니 예산낭비가 뻔히 내다보인다”는 말을 했다. 비정규직 고용이 1,2년 단위로 갱신되고, 또 이들은 고용보험의 적용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문제가 개선되지 않는 한 이들 여성의 출산과 육아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비정규직 노동권과 그들의 모성권에 대해 근본적인 재고가 필요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