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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에 오고자 하는 그대에게 건네는 편지
등록일 2019.09.10 17:24l최종 업데이트 2019.11.04 18:45l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 구슬아 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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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대학원에 오고자 하신다고요.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는데 잠깐 시간 좀 내 주시지요. 일단 제 소개부터 드리겠습니다. 저는 대학원에 발을 들인지 9년 정도 되었습니다. 문화학으로 석사 학위를 취득했고 지금은 동일 전공의 박사 수료 상태에 있어요. 여느 박사 수료자들처럼 글도 쓰고 강의도 하며 그럭저럭 살던 중 재작년부터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아마 의아하실 겁니다. “대학원생은 공부를 하는 학생 아니야? 그런데 노동조합이라니?” 이런 의문이 드실 거예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대학원생은 학위 과정 중에 다양한 노동을 합니다. 인문·사회계열의 경우 수업조교, 행정조교, 연구보조원, 학회 간사 등이 대표적이고요. 이공계열은 랩 소속의 학생연구원 신분으로 국가나 기업 발주의 연구 프로젝트(R&D)에 참여하게 됩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2015년 전국 실태 조사에서는 이런저런 형태를 통틀어 65% 이상의 대학원생이 학내근로를 수행하는 것으로 집계된 바 있습니다. 저 또한 수업조교, 연구보조원, 학회 간사로 일한 경험이 있고요. 오늘날 대학원생의 노동 없이 유지, 운영될 수 있는 대학 혹은 ‘학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렇듯 대학원생이 대학 및 학계에서 상당한 일을 하게 된 데에는 복잡한 역사적 맥락이 있습니다. 전국적인 대학(원)의 팽창이라든지, 국가 R&D의 적극적인 수주라든지, 연구재단 주도의 학회 평가 체계 개편이라든지. 하지만 여기서는 그 맥락들을 깊게 파고드는 대신 현재와 미래에 대한 이야기에 집중 해 보죠.

  안타까운 사실은 앞서 열거한 대학원생의 일들 가운데 대부분이 법·제도적 층위에서 ‘근로’로 인정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대학원생 행정조교의 근로자성 정도가 고용노동부의 행정해석을 통해 언급된 바 있습니다. 그 결과 학생연구원은 여타 연구소의 연구원들과, 행정조교는 교직원과, 수업조교는 교수와 동일하거나 흡사한 업무를 수행함에도 불구하고 노동법 및 사회보장제도의 적용에 있어 예외가 되곤 합니다. 요컨대 일은 일대로 하면서 적정 시급, 퇴직금, 휴가 등을 보장 받지 못하는데다 4대보험 미가입자 상태로까지 있게 되는 거죠. 그래서 대학원생의 처지는 이중으로 고단합니다. 일단 자기 공부를 할 시간과 여력이 부족해요. 일을 안하자니 한 학기 500만 원(사립대 평균)에 육박하는 등록금과 생활비를 조달할 길이 없습니다. 반년을 꼬박 일해도 버는 돈이 등록금에 비등하거나 못 미치는 금액인지라 생활비는 또 별개의 문제로 남지요. 대학원생이 사교육이나 서비스업 영역에서 ‘투잡’을 뛰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자기공부를 할 시간은 점점 더 없어지고……. 두 번째 고단함은 대학원생의 노동이 ‘제도 바깥의 노동’이다 보니 그 강도 및 내용, 범주는 물론 대가의 분배가 전적으로 대학본부나 교수의 재량에 의해 좌우되곤 한다는 점에서 옵니다. 특히 업무를 지시하는 상관이자 장학금 추천, 학술 성과 판단, 학위 논문 통과 등에 재량권을 지닌 지도교수로 인해 고통 받는 대학원생들을 많이 봤어요. 일 시키는 쪽과 일 하는 쪽, 이 양자의 관계를 다루는 공적 규범이 부재하는 상태에서는 이른바 ‘갑질’이 횡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팔만대장경 스캔 노예니 인분 교수니 하는 사건들에 대해 들어 보신 바가 있을 거예요. 물론 인격적으로 훌륭한 교수도 있습니다. 그런 교수를 만나면 다행인데 그게 뭐 자기 계획대로 되는 일은 아니고요. 대학본부가 운영의 편의에 따라 온갖 권한과 책임을 교수 개인에게 위임하는 와중에 비틀려 온 구조 자체를 바로잡지 않으면 근본적 개선을 기대하기 힘듭니다. 

  이미 대학원생의 삶 속에 노동이 실재합니다. ‘노동이 실재한다’는 것은 그에 따라 보장 받아야 할 권리 또한 존재한다는 의미죠. 요컨대 최저임금, 근로시간, 휴가 등에 관한 법적 규정은 ‘인간답게 살 권리’라는 헌법 상의 가치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학은 어째서인지 예외적인 공간처럼 치부되고 있어요. 정확히는 그러한 문제에 관한 대학사회 내부의 논의조차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적이 없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냥 관습대로, 관성대로 하는 게 운영을 하는 쪽 그러니까 대학본부나 교수들에게는 편한 일이잖아요. 행정 직원을, 교·강사를, 테크니션을 채용하는 대신 대학원생을 씀으로써 인건비 지출을 크게 절감해 오기도 했고요. 바꿔 말하자면 “그러면 안돼. 이제는 달라져야 할 때야.”라는 강력한 주장 없이 대학원생의 처우가 개선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그러한 주장은 대학원생 자신 외의 다른 출처를 가질 수 없을 테고요. 그래서 대학원생노동조합이 설립된 것입니다. 첫째, 대학원생으로 하여금 학업을 지속하기 어렵게 만드는 현실의 여러 모순들로부터 연구환경 개선을 위해 시급하게 해결되어야 할 보편적 과제를 도출하기. 둘째, 대학원생의 목소리를 한데 모아 입법부와 행정부에 제도 개선안을 제시하고 이것이 관철되게끔 압박하기. 마지막으로 대학본부 상대의 단체협상을 통해 근로·연구와 관련된 처우를 실질적으로 제고하기. 학문후속세대인 대학원생의 조건을 개선하는 가운데 종국에는 고등교육 및 연구 기관으로서의 대학(원)을 민주적이며 평등한 장소로 재구성하기. 대학원생노동조합의 목표는 이것입니다. 실제로 북미 지역에서는 1960년대부터 대학원생노동조합이 결성되기 시작, 지금은 미국 내에서만 총 10만 명 이상의 조합원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2년마다 대학본부와 단체협상을 진행하여 수업조교 및 연구조교의 임금, 의료보험 수가, 기타 업무 규칙 등을 결정합니다. 필요할 경우 집회나 파업과 같은 단체행동에 나서기도 하죠.

  노동조합은 일하는 이들에게 ‘우산’과도 같습니다. 그래서 말인데요, 대학원생노동조합의 조합원이 되시면 좋겠어요. 자신의 고충을 토로하고 더불어 해결 해 나갈 공동체의 존재는 큰 힘이 됩니다. 연구자가 되어 대학에 남고자 하는 분들도, 대학원을 잠시 거쳐가는 단계로 생각하는 분들도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어쨌거나 대학원에서 보내는 시간 또한 여러분의 인생에 소중한 한때니까요. 모두가 인격으로서 존중받고 마땅한 권리를 누리는 가운데 숙련을 쌓으며 학업에 전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실제로 지난 2년 남짓의 시간 동안 대학원생노동조합은 제보 받은 60여 건의 사안에 결합하여 피해를 입은 대학원생들과 함께 대응에 나서는 동시에 대학 내 인권 침해, 위계에 의한 성폭력, 인건비 착복, 연구윤리 위반 등을 예방·해결하기 위한 제도 개선안을 마련 해 왔습니다. 성과도 있었고요, 지금도 큰 목표를 향해 열심히 뛰고 있습니다.

  대학원에 오면 궂은 날이 많을 수도 있습니다. 미리 우산을 준비하세요. 지금 당장 내리는 비를 멈추게 할 수는 없더라도 혼자 맞지는 않게 할게요. 물론 조합을 통해 하나로 모인 대학원생의 목소리가 점차 커진다면 머지않아 맑게 개인 하늘을 보는 날이 올 겁니다. 그대의 건승과 건필을 바라며 이만 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