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호 > 문화
너는 아직도 소주만 마시니? 침묵하던 우리 술, 새로운 길을 모색하다
등록일 [데이터가 없습니다]l최종 업데이트 [데이터가 없습니다]l 김가해 기자 (observance@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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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빚어낸 아름다운 우리 술.


대학가 주변의 술집은 항상 학생들로 붐빈다. 그리고 그들이 친구 혹은 연인과 함께 술잔을 기울이는 데에는 셀 수 없는 다양한 이유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들의 잔속에 담겨있는 술은 희석식 소주이거나 라거 맥주, 두 종류뿐이다. 사실 희석식 소주는 우리의 전통 증류식 소주를 왜곡해 현대화시킨 술이다. 알콜과 물의 끓는점 차이를 이용해 순수 알콜을 받아내는 증류식 소주에 비해 희석식 소주는 고구마 등에서 뽑아낸 알콜에 물·조미료·향료 등을 첨가한 것으로 다른 식품에서는 사용이 금지된 ‘사카린’이 사용되기도 한다. 다른 나라에서는 맥주 종류만 해도 적게는 수십 가지에서 많게는 수천 가지에 이르지만, 우리나라 내에서 생산·판매되고 있는 맥주는 라거 맥주로 통일돼 있다. 라거 맥주는 저온 숙성해 그 색이 맑고 장기보존이 용이하기 때문이다.

우리 땅에서조차 설 자리를 잃어버린 우리 술
이처럼 우리나라에서 술은 소비자가 취향에 따라 고를 수 있는 기호식품이 아니라 그저 취하기 쉽게 만들어진 정형화된 상태로 판매되고 있다. 이런 우리나라의 술 시장 구조에 대해 허시명 (, 의 저자) 작가는 “단품종으로 대량생산되고 있는 술은 더이상 기호식품이 아닌 것 같다”며 소비자의 취향이 아니라 공급자 위주로 개편된 현 상황에 문제점을 제기했다.

시인 박목월이 그의 시 에서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놀’이라고 노래했듯이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각 지방마다 고유한 술을 많이 담가 먹었다고 한다. 그런데 오늘날 그 많은 술들은 잊혀진 채 이렇게 단편적인 술이 우리의 잔을 차지해버리고 만 것이다. 허 작가는 “이러한 결과는 우리가 우리 술 보존을 소홀히 생각했기 때문이다. 일례로 러시아는 보드카, 영국은 위스키, 일본은 청주처럼 각각 대표하는 술이 있지만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내놓을 만한 술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키지 못했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이러한 틈을 타서 프랑스의 와인과 외국 맥주들이 우리나라의 술 시장을 급속히 잠식해 나가고 있다. 더군다나 그 영향은 술 소비시장에 국한될 뿐만 아니라 그에 따른 문화현상까지 주도하고 있다. 이미 주요 회사의 영업사원들은 와인을 통해 고객들의 관심을 끌기위해 프랑스의 포도 재배지역에서부터 포도 품종까지 외워야만 하는 사태까지 이른 것이다.
허시명 작가는 현재 술 소비시장 구조에대해 강한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아무 것도 모르던 우리 술, 제대로 알아보기
그렇게 우리네 삶과 함께하던 우리 술은 언제부터 이렇게 왜곡되기 시작했던 걸까. 사실 조선시대까지만 하더라도 여러 전통 증류식 소주가 전해졌으나 일제강점기 시대에 양조세를 받기 위해 일반인들의 술 제조를 금지시키면서 그 명맥이 끊어졌다. 국세청 기술연구소에서 다니고 있는 조호철 (의 저자) 씨는 “5천년 역사를 가진 우리 술이지만, 일제강점기 이후에도 많은 박해를 받다보니 오늘날까지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해방 후에도 식량 확보 차원에서 술에 쌀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양곡정책이 시행되면서 우리 술 자체가 삼십여 년 동안 단절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 이른 것이다. 당시 주류산업을 관리하던 국세청 기술연구소에서는 쌀을 사용할 수 없게 된 상황에서 술을 빚는 방법을 연구했고, 대체연료로 밀가루를 이용한 방법을 개발해 보급하게 되면서 밀가루를 사용한 막걸리와 약주가 새로 자리를 잡게 됐다. 그러나 거꾸로 쌀이 남아돌게 되자 1991년 이후 다시 쌀로 술을 만들 수 있게 됐다. 현재는 쌀을 이용하는 것을 장려하고 있는 형편이지만, 한동안 단절됐던 우리 술은 달라진 국민들의 입맛 때문에 인기를 끌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소주 또한 양곡에 의한 증류식 소주의 제조가 금지돼 지금의 희석식 소주로 바뀌게 됐다.
이번 학기 ‘우리 술을 찾아서’라는 이름의 신입생세미나 강좌를 개설한 김완배 (농경제사회학부) 교수 또한 “일제 강점기동안 식민지 정책의 일환으로 쌀로 술을 담그지 못하게 했지만, 그동안 음지에서 명맥이 유지되던 우리 술은 해방된 이후에도 쌀을 원료로 하는 술을 금지하는 등의 정부 정책 때문에 많이 보존되지 못했다”며 정부가 우리 술 보전에 힘쓸 여력도 없었고, 힘쓰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다며 힘줘 말했다.
그러나 요즘 와인의 심장질환 예방 효과와 함께 우리 술 또한 건강학적으로 우수하다는 연구가 나오면서 일반인들의 우리 술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김 교수는 “우리 술은 그 종류가 다양함은 물론 약재를 이용한 것들이 많아서 건강에도 아주 좋다”며 우리 선조들은 술을 즐기면서도 술이 몸에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을 염려해 좋은 약재를 넣어 몸에도 도움이 되는 술을 만들었다고 전했다.

“술은 재미있다.” 우리 술에 대한 대학생들의 관심을 강조한 김완배 교수.

작지만 큰 희망, 우리 술의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

사실 전통 방식 그대로를 고집하는 술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 좋은 우리 술이라는 것은 조상들이 만들어 먹었던 술 그 자체가 아니라 우리 농산물로 조상들이 마시던 술을 현대에 맞게 재해석한 것이라는 설명이 더 타당하게 받아들여진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배상면 주류연구소’의 배상면 회장은 평생을 우리 술 복원 사업에 힘쓰고 있다. 배 회장은 “우리 술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우선 농업을 경시하는 풍조부터 없어져야 한다”며 이야기를 꺼냈다. 술의 재료가 되는 농산물이 좋지 않은 이상 양질의 술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개발 중인 쌀 맥주는 그가 최근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분야이다. 쌀로 만들어질 이 제 3의 맥주는 우리 쌀을 이용하기 때문에 우리 농산물의 소비 증진에도 기여할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배 회장은 “가격측면에서도 소비자들에게 지금 판매되는 맥주보다 더 싸게 공급할 수 있을 것”이라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쌀맥주는 아직 개발 중인 상태이기 때문에 맛 측면에서 보완해야할 점이 남아있지만 조만간 시중에 선보일 계획에 있다. 이와 함께 배 회장은 “독일은 술 양조에 종사하는 사람만 20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우리나라는 술을 배우고 싶어도 마땅히 배울만한 곳이 많지 않다. 술을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독학할 수 있는 책들을 편집하고 번역하는 일을 꾸준히 해내 나갈 것이다”라며 앞으로의 또다른 계획을 밝혔다. 그는 술을 만들고 난 후 부산물에도 관심이 많아 술 찌꺼기를 사용해 식물을 키우는 등의 연구도 함께 하고 있다. 배상면 주류연구소의 박유미 연구원은 “우리 술이 기술적인 면에서 계승도 적게 됐을 뿐더라 상업화가 잘 되지 않아 영세한 사업장도 많다”며 현실적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러나 시대가 변화하는 흐름에 따라 노력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기대감도 함께 나타냈다.

하지만 우리 술을 현대화하는 데 한 평생을 바친 배 회장은 전통주 명인이 아니다. ‘전통주 명인’은 옛날방식을 고수하는 사람들에게만 주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김완배 교수는 “사람들의 입맛은 계속 변한다. 전통방식을 고집하기 보다는 현대인의 취향에 맞는 술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은 또한 우리 술을 세계화 할 수 있는 방법”이라며 이러한 현 정부정책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또, 우리 술 산업은 그 자체 이상의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농촌이 부활하는 것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술은 부가가치가 큰 가공품이기 때문에 예를 들어 사과 쨈보다 사과 술을 만드는 것이 농민들에게 큰 이윤을 남겨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일례로 배 회장은 고구마술을 개발해 농민대표에게 그 기술을 전수해주고 서로 협력해 술을 제조할 계획에 있다. 농민들 입장에서는 기업으로부터 배운 양조법덕분에 상품성 없는 고구마를 이용해서 큰 부가가치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우리 술 산업의 부흥은 이 땅에서 나는 농산물을 우리가 소비함은 물론, 수입 술을 대체할 수 있어 외화도 절약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전통술 복원에 힘쓰고 있는 배상면 주류연구소 배상면 회장.

우리 술의 부활, 과연 이뤄질 것인가
그렇다면 우리 술의 미래는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허시명 작가는 “섣불리 판단할 수는 없지만 우리나라는 풍부한 역사와 자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조금만 노력한다면 우리 술의 미래는 밝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술에 대한 정책적 관점부터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다. “술을 담배처럼 백해무익한 존재로 생각하면 술에 대한 정책의 방향이 완전히 달라진다. 정책입법자들이 무엇보다 술의 순기능을 산업적으로 어떻게 잘 운영하는지에 대해서 고려해야한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도 프랑스의 와인처럼 한국을 대표하는 명주를 만들어야 한다. 와인을 통해 프랑스가 문화를 팔듯이 한국도 우리나라의 명주와 함께 우리 문화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김완배 교수는 “무엇보다 우리 술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법적인 측면과 행정적인 측면에서 모두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예전에는 몇몇 소주회사들의 압력에 밀려 막걸리에 지역판매 제한제도를 시행하기도 했고, 집에서 직접 담가 먹는 가양주도 허락하지 않았다. 지금은 나아진 편이기는 하지만 다른 나라의 경우 술의 양에 세금을 매기는 종량세 체계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가격에 세금을 매기는 종가세 체계여서 우리나라가 좋은 술, 고급 술을 만들어 부가가치를 높이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최근에 주세법 일부개정 시행령에 우리 술에 대한 50% 감면을 채택했지만 그 효과는 미비해 생색내기용 미봉책에 불과한 것이라고 언급했다. 사실 대부분의 전통주 사업장들은 영세하기 때문에, 주류도매 허가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을 뿐만 아니라 허가를 받았다고 하더라고 유통에 들어가는 비용이 너무 비싸 가격측면에서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게 되기 십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김 교수는 “우리 술이 국민들과 어울리기 위해서는 쉽게 접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고 적정한 가격을 유지해야한다”며 이를 위해 국가적으로 영세사업장들의 공동유통을 추진해줘서 물류비용을 낮출 수 있게 하거나 따로 전통주 협회등에 지원을 해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배상면 회장은 효모를 농작물의 거름으로 다시 이용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대학생들은 우리 술에 어떻게 다가가는 게 좋을까? 허시명 작가는 자신과 가까운 곳에서부터 작은 관심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말을 시작했다. “솔직히 현재 우리 술의 가격이 학생들에게 부담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술은 내 몸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인 만큼 내가 먹는 술에 대해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해 생각해보고 나에게 어울리는 술을 찾아보려는 노력을 해야한다. 술은 기호음식이기 때문에 그 속에 자기 생각이 들어가 있어야 한다.” 덧붙여 허 작가는 적어도 자기지역의 술에 대해서 아는 것이 필요하고 그런 작은 관심이 우리 술을 이어가게 하는 힘이 될 것이고, 술자리의 대화도 더 풍성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조언했다. 지금 당신의 잔에 들어있는 술은 아직도 무색무취의 소주인가? 그 잔에 소주대신 깊은 향이 가득한 우리 술을 채워보자. 우리 술 한 모금이 무료한 삶을 좀 더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촉매제 역할을 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