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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것이 상식인가
등록일 [데이터가 없습니다]l최종 업데이트 [데이터가 없습니다]l 문지선 기자 (mnjsn@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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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기자로서 92호를 내고 나서 내게는 두 번째 책이 되는 93호다. 92호가 발간됐을 때는 뿌듯한 마음에 두 권쯤 집에 쟁여 두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은근한 홍보(?)도 했는데, 93호는 그럴 수 없을 것 같다. 물론 어떤 호라도 나는 소중하게 여길 것이다. 그러나 이번 호의 발간에 마냥 뿌듯할 수만은 없는 이유는 무엇보다 93호를 취재하면서 그 동안 내가 당연하다고 알고 있던 것들에 두꺼운 먼지가 쌓여 있는 것을 보게 됐기 때문일 것이다.
기획 기사의 화재 부문 내용을 취재하기 위해 찾아간 본부 관리과에서는 자료 협조 요청을 극구 거부했다. 그런데 거부의 이유라는 것이 화재 사고 내용들이 알려지면 학교의 명예가 실추될 것이고 관리과에게 왜 그런 내용을 알려줬는지에 대한 책임을 물어온다는 것. 이와 함께 이미 다 덮은 지난 화재 사고를 왜 들춰내야 하느냐는 물음이 되돌아왔다. 그러면서 화재 예방 대책을 얼마나 열심히 세우고 있는지만을 설명했다.
국민으로서 국가 행정이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를 알권리가 있다는 지극히 기본적인 상식은 차치하고서라도, 화재 안전은 학교 구성원들의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인데 이보다 학교의 명예를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인가. 그리고 관리과의 책임은 화재의 원인을 얼마나 정확히 밝혀 사고를 잘 예방하느냐보다도 일어난 사고를 얼마나 잘 덮느냐에 있는 것인가. 화재 중에는 구성원들의 부주의로 일어난 것도 있을 것이고, 시설의 미비로 일어난 것도 있을 것이다. 어떤 경우든 구성원들이 그 내용을 정확히 알아야 경각심을 갖고 자신의 안전할 권리도 주장할 수 있다. 그런데 정작 위험에 노출된 학교 구성원들, 특히 학생들은 자신이 어떤 위험에 처해 있는지도 제대로 알 수 없다. 한편 화재 예방을 그렇게 철저하게 하고 있다면 왜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는지는 절대 보여줄 수가 없는 것일까.
같은 날 저녁, 기륭전자 비정규직 여성들의 투쟁에 사진기자로 동행했다. 인터뷰한 한 여성에게 ‘부담스러우시면 사진 찍지 않으셔도 된다’고 말씀드렸으나 그녀는 상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리고 있는 상황을 그대로 전했다. 90일을 굶은 사람에게 ‘언제 굶으라고 강요했느냐’는 반응이 돌아오는 상황, 사람들이 1000일이 넘도록 (단식)투쟁을 하는데도 제대로 사건이 알려지지 않아 같은 동네인 구로주민들마저 사태를 제대로 모르는 상황... 이것도 덮어두면 되는 문제일까.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됐으면 한다’는 그녀의 말이 아득하게 들린 것은 이제 ‘상식’이 무엇인지조차 모호한 사회가 됐기 때문은 아닐까 한다.
‘상식’은 극히 자명해서 정상적인 일반인들이면 누구나 납득할 수 있을만한 지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나는 이제 ‘정상적인 일반인’이 누구인지, ‘납득할 만한 자명한 지식’이 무엇인지 혼란이 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하나만은 명확하다. 명백히 있는 일을 없는 일로 만들려는 쪽일수록 진실이 밝혀졌을 때 더욱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