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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야, 문제는 수업권이야
등록일 [데이터가 없습니다]l최종 업데이트 [데이터가 없습니다]l 김상형 학원부장 (starbabykr@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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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정부는 역사의 지난 페이지에나 존재해야 할 악행을 몸소 보여줬다. 전경대가 방패를 들고 시민을 쫓는 모습은 1980년 광주를 연상시킬 정도로 충격이었다. 흑백 영상으로만 남아야 할 끔찍한 사건이 칼라로 재현되는 건 정말이지 소름 돋는 일이다. 이런 정부에 몸을 담았던 류우익 전 비서실장도 책임이 없을 수는 없다.

하지만 이번 학기에 학교로 복귀한 류우익 교수를 대하는 사회대 학생회의 태도는 다소 실망이다. 그들은 류우익 교수가 부끄럽다는 내용의 성명을 내고 피켓팅 시위를 벌였다. 이명박 정권의 실정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게 주된 논리였다. 그런데 학생회의 말처럼 류 교수가 나라를 말아먹으려 작정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 나름대로의 신념으로 세상을 좀 더 살만하게 바꾸고 싶었을 것이다. 그것이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고 해서 비난하고 배제하는 것은 이견까지도 아우를 수 있는 다양성이 무시됐다는 점에서 아쉽다. 학생들이 배타적인 자세로 일관한다면 실패가 두려워 정계로 진출할 교수가 몇이나 있을까 궁금하다. 이런 점에서 ‘교수가 정치를 한다는 것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학생회의 논리는 이율배반이다. 결코 이 지면을 통해서 류 교수를 두둔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정치적 업적에 대한 평가는 교수라는 직책과 별개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학생회는 류 교수의 도덕성을 물었다. 서울대 학우가 군홧발로 머리를 짓밟히는데도 침묵했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런데 이 비판도 다른 교수들과 형평성에서 어긋난다.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는데도 교수실을 지킨 분들이 어디 한둘인가? 류 교수는 비서실장이었다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학교 교수들 중에는 류 교수만큼의 발언력을 가진 분들이 많다. 비서실장으로서 잘 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이 평생을 몸담아왔던 교육현장에서 내쫓길만한 사유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성명서를 가만히 읽어보면 오히려 류 교수가 정부에 협조했다는 점이 학생회 입장에서는 가장 눈에 거슬리는 것 같다. 이명박 정권에 대한 분노가 하늘을 찌를 정도였으니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그래도 비판의 논거를 만드는 데 좀 더 신중했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류 교수를 무조건적으로 이명박 편으로 몰아세우고 비난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기 때문이다. 내 편 네 편을 가르는 정부, 여당과 다를 게 없어 보인다. ‘자기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이미 그것은 국민이 아니라 폭도며 빨갱이’라고 류 교수를 비판할 입장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념과잉의 사회대 학생회가 앞장서서 좌우를 가르고 있다는 점이 못내 아쉽고 씁쓸하다.

황희 정승은 백성들을 위해 어진 정치를 펼치다가 말년에는 모든 관직을 내놓고 고향에 내려가 학문과 후학들을 위해 힘썼다. 알고보면 그도 ‘폴리페서’였던 것이다. 오늘날에 비유컨대 정치에 참여했던 교수가 수년간 축적된 자신의 경험을 학생들에게 말해주는 것 역시 이상할 게 없다. 다만,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 학생들의 수업권을 침해한다면 그것은 중징계를 받아 마땅하다. 학생들이 ‘폴리페서’를 대할 때도 정치의 잘잘못을 가리기보다 수업권의 측면에 역점을 뒀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