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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의 제8일: 20세기 과학 혁명가들의 이야기
등록일 2015.12.16 17:39l최종 업데이트 2015.12.16 17:40l 이현숙 교수(생명과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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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ighth Day of Creation>(창조의 제8일), commemorative edition
저자 Horace Judson | 출판사 Cold Spring Harbor Laboratory Press | 연도 1996
(첫 판은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79년)


  20세기 끝자락, 영국의 소도시 캠브리지로 유학을 갔다. 어릴 적 사촌오빠의 책장에서 훔쳐 읽은 “무서운 아이들”이란 유학생들의 에세이 모음이 이 모험의 발단. 캠브리지 물리학도의 도전과 좌절에 대한 이야기는 영국식 고상함을 동경하던 나를 자석처럼 이끌었다. 네이처 뒷면의 장학금 광고를 보고 몇 군데 지원을 했고, 다행히 지원을 받게 된 것이 계기이다.

  내가 도착한 곳은 현대 생물학인 분자생물학이 시작된 곳, 캠브리지의 분자생물학 연구소 (Medical Research Council, Lab. of Molecular Biology, Cambridge) 였다. 사람들은 대부분 캠브리지의 MRC라 부르고 우리는 LMB라고 불렀다. 지금까지 LMB에서만 30명이 넘는 노벨상 수상자가 나와 단일 연구소로는 세계 최다 규모인지라 노벨상 수상자의 산실이라고 우리 언론에도 보도된 바 있다. 몇 년 전 LMB의 역사서가 출판되었는데 이 책의 제목 또한 “모든 층에 노벨상 수상자 (A Nobel laureate on every floor: history of Medical Research Council, Lab. of Molecular Biology, John Finch)”이다. 이 연구소에서는 노벨상 수상자들과 실험실에서, 복도에서, 카페테리아에서 부딪힌다. 좋은 점은, 노벨상 수상자들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비슷한 능력의 사람이라고 여기게 된다는 점이다.

  우여곡절 끝에 정한 연구실에 들어가자마자 지도교수님은 내게 책 한 권을 권하셨다. 다음의 간곡한 부탁과 함께.“ 그 책은 내가 정말로 아끼는 책이니 다 읽고난 후 꼭 돌려주기 바란다. 그 책을 읽고 나는 의사 대신 분자생물학을 하기로 결심했었지.” 창조의 제 8일. 전직 타임지 기자 호레이스 저드슨이 분자생물학의 태동을 생생하게 기록한 과학사의 명저이다. 저드슨은 몇 년 동안 직접 당사자들을 만나 인터뷰하며 이 책을 썼고, 그래서 600여 페이지를 읽는 동안 독자들은 분자생물학을 시작한 사람들의 과학에 대한 열정과 경쟁을 만나게 된다. 당시 나는 캠브리지 대학 출판부에서 나온 11판을 읽었지만 지금은 미국의 콜드 스프링스 하버 연구소 출판부 (Cold Spring Harbor Laboratory Press)에서 기념판이 나와있는 all-time best seller이다.

  책을 받은 순간부터 단숨에 나는 이 책의 매력에 빠져들었고, 저녁에 집에 가자마자 책을 집어 들기를 3일, 단숨에 읽어나갔다. 첫 장을 넘기고 밤을 세울뻔했던 그 첫날 밤의 감동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책장을 넘겨가며 나는 알게 되었다. 왜 잘 나가는 의사였던 지도교수가 기꺼이 병원을 때려치우고 돈도 벌지 못하는 박사학위부터 다시 시작하게 되었는지를. 그 분은 그 책을 내게 건냄으로써 말하고 계셨다. 너는 지금 분자생물학의 역사의 한복판에 와 있는 행운을 누리고 있노라고. 왜냐면, 창조의 제 8일의 가장 중요한 무대는 캠브리지의 MRC, Cavendish 연구소와 미국의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으로 내가 어떤 길을 걷기를 원하시는지도, 조금은 알 수 있었다.

  창조의 제 8일에는 그 이름을 듣기만 해도 가슴이 뛰는 막스 페루츠, 프란시스 크릭, 제임스 왓슨, 쟈크 모노드, 라이너스 폴링, 로잘린드 프랭클린, 시드니 브레너...이루 다 말할 수 없는 거인들이 총출동한다. 1950년대, 영국과 미국에서 물리학자와 화학자들은 새로운 생물학을 시작하였다. 이들은 유전자를 물리화학적 물질이라 믿고 유전의 비밀을 밝히는 세기적 경쟁에 뛰어든 이들이었다. 유전자는 마이더스의 금과 같아서 유전자에 한 번 손을 댄 사람들은 DNA에 미쳐버리게 되었다. DNA 이중 나선의 비밀과 분자생물학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후, RNA의 발견, 단백질의 구조를 밝히게 되면서 DNA가 유전 정보이며, DNA로부터 RNA가 전사되고 그 다음 단백질이 합성되며, 단백질이 생명 현상을 담당하는 일을 하는 것이라는 센트럴 도그마(Central dogma) 가 탄생한다.

  저드슨의 글을 따라가다 보면 당대 과학 혁명가들을 생생하게 만나게 된다. 오늘날 진리 탐구는 뒤로 한 채 돈과 승리의 경쟁만을 일삼는 이들이 많은데, 분자생물학의 설립자들을 만나게 되면 과연 과학적 진리란 무엇인가 새삼 질문하게 되고, 나의 현재의 질문이 타당한 것인지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된다. 그래서, 이 책은 나를 보게 만드는 “과학자의 거울”이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내가 분자생물학도라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또, 과학은 질문하는 것이고 소통하는 것이라 믿어 오로지 생각과 토론을 통해 유전 정보의 해독 방법인 triplet codon을 풀어낸 크릭과 브레너의 방이 있었다던 LMB의 그 5층에 내가 있다는 사실에 너무나 행복했었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기 전까지는 세상은 물리학의 시대였다. 생물학은 개체의 관찰을 기록하는 데 머물러 있는 듯 했다. 다윈의 진화론은 너무나 획기적이었으나 그것을 더욱더 쪼개어 물리나 화학처럼 분자적 수준에서 논리적으로 타당하게 설명하는 일은 아직 시도조차 되고 있지 않았었다. 그러나 2차 세계 대전을 겪고 난 후 사람들은 변했다. 신을 믿지 않았고 유물론은 대세였다. 이 틈에 물리학자와 화학자들은 드디어 생물학에 뛰어든다. 유물론적 세계관에 따라 유전자는 분명 물질이라고 생각됐고, 그 물질의 구조를 알게 된다면 생명의 가장 큰 특징, 유전의 비밀을 밝힐 수 있다고 믿기 시작했다. 창조의 제 8일은 분자생물학이 탄생한 그 시점의 서사시이다.

  분자생물학의 설립자들은 당당했고 자신만만했다. 그러면서도 다른 이들의 연구 결과에 귀를 기울였다. 언제나 누가 뭘 발견했더라는 소문이 있었고, 그것을 보러 가기 위해 캠브리지에서 런던까지 수십 번을 왕복한다. 그 뿐이랴. 미 대륙의 실험실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영국 캠브리지에서는 어떤 실험 결과가 있는지 이들은 온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경쟁이 너무 심한 게 아니냐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이것은 모든 중요한 발견을 갈망하는 사람들의 본질적 태도이다. 이 대자연의 진리를 누가 봤다고 하면 나도 보고 싶은 법. 이기는 것보다 진리가 무엇인지가 더 궁금하므로... 데이터를 믿고, 증거에 따라 움직인다. 정교하고도 영리한 실험 방법을 세우고 모두 다 궁금해하지만, 아무도 가지 않은 그 길을 가장 먼저 가서 개척하려는 이들. 바로 분자생물학자들이다.

  나는 지금도 가끔씩 이 책을 펼쳐 든다. 주로 길을 잃었을 때이다. 책을 쭉 넘기다보면 언젠가 쓴 메모와 특별히 가슴을 울렸기 때문에 밑줄 친 구절들을 발견한다. 과학자가 되어 가고 있다는 것만으로 가슴이 뛰었던 그 때로 돌아가면 내 앞의 어려움은 어느 샌가 내가 도전해야 하는 상대일 뿐이란 것을 깨닫게 된다. 지금은 모든 것이 불안한 불확실성의 시대라고 한다. 젊은이들은 무모한 꿈도 꾸어보아야 하련만 이 시대는 어찌된 영문인지 쉽사리 꿈과 도전을 말하지 못하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좌로도 우로도 치우치지 않는 진리 탐구의 과학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생물학의 시대라는데 우리 교육의 맹점으로 인해 자신의 과학적 지식이 짧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필독으로 권한다. 1979년부터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청춘들이 이 책으로 인생이 바뀌었는지, 한 번 경험해 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