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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식 사랑이란? STS적 시각에서 바라보다
등록일 2016.03.13 03:17l최종 업데이트 2016.03.13 03:18l 이두갑 교수(서양사학과/자연대 과학사 협동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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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컴퓨터 과학의 발달이 눈부시다. 이제 사람의 사고방식을 컴퓨터에게 가르치는 딥러닝과 인공지능의 발달로 체스, 바둑 등 여러 경기에서 인간의 복잡한 전략과 직관적 사고를 능가하는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나아가 인간과 단순히 상호작용하는 것을 넘어, 의사소통할 수 있고, 교감할 수 있는 영리한 사회적 관계 로봇(social robot)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제 인간과 대화할 수 있고, 인간의 감정이나 욕구의 변화에 반응할 수 있는 로봇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러한 사회적 로봇은 무엇보다 인간과 기계와의 상호작용을 근본적인 방식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애완 로봇과 상호교감하기도 하며, 외로운 아이들에게 친구가 되어주는 로봇들, 그리고 병약한 노인들을 돌보는 간호 로봇들은 단순히 인간의 명령에 따르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다.


  한 예로, 1999년 소니는 아이보라는 애완 로봇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 로봇은 외로운 사람들에게 큰 비용과 노력 없이 지속적인 상호 작용과 교감을 제공해주려는 의도로 개발되었다. 아이보는 특히 외로운 노인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이들은 마치 새로운 자식을 얻은 것처럼 아이보를 보살폈다. 소니가 생산을 중단한 2006년까지 무려 150,000유닛의 아이보가 팔려 나갈 정도였다.


  하지만 2014년 소니가 이 아이보 수리 센터의 문을 닫자 더 이상 로봇들을 수리할 수 없게 되었다. 영원히 작동할 것만 같았던 애완 로봇들이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던 것이다. 아이보의 주인들은 큰 슬픔에 빠졌다. 작년,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애완 로봇의 주인들은 한 사원에 모여 합동 장례식을 치렀다. 이들에게 로봇은 단순한 기계 이상의 존재였다.


  MIT STS 학과의 교수인 셰리 터클의 ‘외로워지는 사람들’은 묻는다. 이들이 믿는 것처럼, 아이보는 슬픔과 기쁨을 느끼고, 탄생과 죽음을 경험할 수 있는 생명을 지닌 존재였을까? 이들은 왜 아이보를 단순히 기계 이상의 존재라고 믿게 되었을까. 이들과 로봇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터클은 MIT의 로봇 연구실들이 개발한 애완 로봇과 돌봄 로봇들이 실제 병원과 양로원 등에 도입되는 과정을 분석하며 로봇과 인간의 ‘교감’에 대한 연구를 수행했다. 과학기술과 인간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STS적 시각에서, 그녀는 새로운 로봇과 작동 방식에서부터 사람들이 실제 로봇들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살펴본 것이다. 이를 위해 그녀는 과학기술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인류학적이고 정신의학적인 시각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기계와 ‘교감’한다고 생각하는지를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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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로워지는 사람들, 셰리 터클, 이은주 옮김(청림출판, 2012)



  터클의 이러한 융합 연구에 의하면, 사람들은 무엇보다 이들 로봇들을 자식처럼 돌보고, 로봇을 생명력 있고, 자신들을 보살펴주고 위해주는 존재라고 여기게 되었다고 지적한다. 일례로 병약한 아이에게 애완 로봇은 죽음에 맞설 수 있는, 전선과 건전지를 교체하면 다시 재충전되고 부활할 수 있는 희망의 친구가 되었다. 요양원의 외로운 노인들에게 로봇은 살아 있는 존재와 교감할 수 있는 친밀한 애정을 주는 존재이자 지속적인 보살핌을 주는 존재로 간주된다. 그렇다. 이들에게 로봇은 불평하지 않고, 충성을 다하며, 사랑하는 이를 학대하지 않는 인간보다 나은 존재이다.


  하지만 터클은 과학기술과 인간, 사회의 상호작용에 대한 STS 접근을 통해, 과학기술이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방식, 우리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보다 비판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음을 지적한다. 무엇보다 그녀는 우리가 인간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면서 로봇에게서 ‘최대치’를 뽑아내는 법을 배우고 있는지 않은가 반문한다. 그녀는 우선 인생의 가장 연약하고 의존적인 시기에 있는 사람들, 즉 아이들과 노인들을 보살피는 데 있어 로봇을 도입하려는 서구 각국들의 정책을 비판적으로 살펴본다. 로봇이 사람이, 사회가 이들에게 제공해줄 수 최상의 선택인지? 기술혁신에 대한 믿음으로 우리는 진정한 인간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우려하는 것이다.


  배신하는 연인, 쉽게 싫증을 느끼는 보호자들, 차갑고 계산적으로 타인을 대하는 사람들 속에서, 우리는 기계의 충직함과 지속적인 관계의 따뜻함, 즉 손쉬운 로봇식 사랑을 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랑의 노동이라는 것이 힘들고, 때로는 그 보상이 애매한 것이라는 점을 깨닫는 것이 보다 인간적인 것이 아닐까? 어려움과 갈등을 함께 고민하고, 인간이 지닌 한계와 인간관계의 아이러니를 성찰할 수 있고, 그리고 언젠가는 죽는다는 삶의 유한함에 대해 겸손함을 지니는 것이 진정한 인간의 모습이 아닌가? 터클은 묻는다. 로봇에 열광하는 우리는, 결국 인간적인 삶이 지닌 한계와 아이러니, 복잡함을 깨닫는 성숙한 감정과 깊은 관계로부터 도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과학기술학(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 STS)이란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사회변화를 다학제적 시각에서 바라보는 학문 분야이다. 이미 서구에서는 대표적인 융·복합 학문으로 자리 잡았으며, 이미 미국의 스탠포드대학과 같은 곳에서 STS 전공은 대학 전체의 5대 인기 전공 중의 하나로 떠올랐다. 하버드대는 지난 몇 년 동안 학생들의 요구로 STS학과의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서울대도 지난 해 STS 연계전공을 개설해 10여명의 학생들이 이에 관해 공부하고 있다. 과학기술과 법, 정책, 환경, 젠더 등 과학기술과 사회의 다양한 상호작용에 대해 분석하고 논의하는 수업들이 개설되고 있다. 터클의 글은 또한 서울대에서 개설되는 《인간학 개론》의 일부로 로봇시대의 인간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를 위해 사용되고 있다.



  이두갑 교수(서양사학과/자연대 과학사 협동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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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대에서 학사(지구환경), 석사(과학사)를 마치고 프린스턴대에서 역사학 박사를 받았다. 생명과학의 역사, 과학기술과 법, 환경 등과학사와 STS 교육 및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주요 저서로는 The Recombiant University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15)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