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호 > 특집
'농민이 살아야 농업이 산다!' 농민생활보장과 농업안정을 향한 농민들의 외침
등록일 2017.03.08 16:29l최종 업데이트 2017.03.10 19:59l 정지훈 기자(fighter1441@snu.ac.kr), 이재은 기자(ssje15@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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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농업정책(농정)의 키워드는 ‘개방’이다. 자유무역이 국제무역의 기조로 자리 잡으면서 반도체, 자동차 등의 수출이 국가경제에서 더욱 중요해졌다. 수출을 위해서 농산물 개방은 감내해야 할 조치였고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이후 개방을 축소하는 방향의 정책은 없었다. 


  개방농정으로 밀려오는 해외 농산물과 가격경쟁을 하면서 농산물 가격은 폭락했고 대다수 농민들은 안정적인 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게다가 그들이 지금껏 필요하다고 외쳐 온 농업지원도 받지 못했다. 이번 촛불집회에 트랙터를 몰고 상경한 농민들의 강경한 행동 이면에는 이런 생활의 어려움이 담겨 있다. 그들의 외침은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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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집회 당시 트랙터를 끌고 상경하는 농민들 ⓒ뉴스핌



핵심은 농민들의 생활안정


  개방농정으로 타격을 입은 농민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생활안정책이다. 대표적으로 국가수매제를 도입하는 방안이 있다. 농산물 개방 이후 농산물 가격이 낮게 책정돼 농민들은 투자한 비용만큼의 수입도 얻지 못하는 상황이다. 또 작황이 나쁘면 해당 농산물을 수입해 공급하기 때문에 가격이 떨어지지만 작황이 좋아도 자연 공급량이 많아져 가격이 하락한다.


  물론 정부에서 각종 수매사업을 실시하고는 있지만 농민들은 정부의 수매량이 미미하고 수매가격도 너무 낮다고 지적한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현재 수매비축사업 대상품목은 콩, 마늘, 고추 세 개뿐이다. 저장성 없는 농산물을 수매하는 출하조절사업이 별도로 있지만 그 대상품목인 무, 배추 등을 모두 포함해도 주요 농산물을 포괄하지 못한다. 쌀의 경우 정부가 연간소비량의 17-18% 수준을 공공비축제를 통해 수매하지만 수매가가 낮은데다 공공비축 규모도 충분치 못해 농민들의 생활을 뒷받침하기엔 부족하다.


  2012년 10월 이런 한계를 보완하는 ‘국민기초식량보장법안’이 발의됐지만 국회의 임기가 만료돼 폐기됐다. 이 법은 쌀, 밀, 콩 등 주요 곡물을 비롯해 채소, 과일, 한우 등의 주요 농축산물을 국가가 계약재배를 통해 수매하는 조항을 담는다. 또 정부와 농민, 소비자로 구성된 ‘국민기초식량보장 위원회’를 설치해 객관적인 생산비에 근거한 농산물 수매가격을 결정하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한다. 농민들은 이 법을 제정할 것을 다시 요구하고 있다.


  농민들은 이와 함께 농민수당을 신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경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소장은 “국가수매제만으로는 농민들의 생활안정을 보장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국가수매제는 국가가 농산물을 수매하는 가격범위를 정해 가격안정을 도모한다는 점에서 가격정책의 성격을 띤다. 그러나 단순히 가격안정이 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농산물 시장가격 자체가 워낙 낮게 책정돼 있어 농민들이 충분한 소득을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보완책으로 농민단체들은 농민수당을 신설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국가수매가 농민들에게 적어도 생산비 이상의 소득을 보장한다면 농민수당은 농민들의 안정적인 생활을 뒷받침한다. 전국농민회총연맹 측은 농민수당의 세부 내용은 아직 조율 중이지만 농가소득보장을 위해서 농민수당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했다.


  한편 농민들은 생업을 유지하는 데 자연재해 대책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자연에 의존하는 농업의 특성상 자연재해는 심각한 위협이기 때문에 재해대책은 안정적인 농업환경을 조성하는 데 중요하다는 것이다. 재해대책을 명시한 농어업재해대책법이 존재하지만 농민들은 이 법이 재해를 실질적으로 보장해주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이종혁 정책부장은 “농(어)업재해대책법은 피해 보상의 범위가 지나치게 좁고 단순 피해복구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라며 이 법의 한계를 설명했다. 


  현재 자연재해로 농작물이 죽었을 경우 해당 농작물을 키우는 데 투입된 요소를 고려해 실비보상이 이뤄진다. 하지만 이는 실질적인 보상이 아니다. 농민들은 수확한 작물을 판매해 얻은 수익으로 생업을 이어가고 다음 파종을 준비한다. 그런데 단순히 종자값, 비닐하우스 보온에 들어간 전기비용 등 재해가 발생한 시점까지 투입된 요소만을 보상하는 대책으로는 농민들의 생활이 유지되기 어렵다. 장경호 소장은 “적어도 농작물을 다 키웠을 때의 기대수익 정도를 보장해줘야 농민들이 다음을 기약할 수 있다”라면서 현 제도의 미비점을 짚었다.



이해하기 어려운 정부의 밥쌀 수입


  개방농정으로 인해 피해를 입는 국내 농업 분야에서 쌀을 빼놓을 수 없다. 농민들은 특히 밥쌀용 쌀을 수입할 의무가 없는데도 수입을 계속하는 정부를 비판하며 밥쌀 수입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쌀의 용도는 크게 가공용과 밥쌀용으로 나뉜다. 한국은 WTO가 출범한 1995년부터 2004년까지 10년간, 쌀 시장을 완전히 개방하지 않는 대신 일정량의 가공용 쌀을 의무적으로 수입했다. 이어 2004년에 이뤄진 쌀 협상에서는 쌀 시장을 개방하지 않는 기간을 연장하면서 전체 쌀 수입량의 30%를 밥쌀용 쌀로 수입하게 됐다.


  2014년 7월 정부는 2015년부터 수입쌀에 관세율 513%를 매겨 다른 국가들처럼 쌀 시장을 개방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에 따라 시장을 개방하기 전에 적용됐던 밥쌀 의무 수입 조항도 삭제했다. 그런데 정부는 여전히 밥쌀을 수입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농식품부) 측은 가공용 쌀만 수입할 경우 국내산과 외국산의 차별을 금지하는 WTO의 최혜국대우원칙을 어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른 국가들은 쌀 용도를 구별하지 않고 수입하는데 우리나라만 밥쌀을 지키자고 가공용 쌀만 수입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에 장경호 소장은 “쌀 시장 개방 이후 쌀 수입 여부는 한국이 알아서 결정할 수 있다”라며 농식품부의 해명을 반박했다. 그렇지만 농식품부는 현재의 수입쌀 관세율이 최고 수준이라 이의를 제기하는 국가들이 있다며 이 관세율을 유지해 국내 쌀 시장을 최대한 보호하려면 사실상 밥쌀 수입을 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전국농민회총연맹 이종혁 정책부장은 “이전에는 밥쌀을 의무적으로 30% 수입하는 조항 외에도 국가별 쌀 수입 쿼터, 수입하는 쌀의 용도까지 규정하는 조항도 있었다. 그러나 이 조항들이 쌀 개방으로 없어졌는데도 정부는 쌀 개방 이전과 비슷한 절차로 쌀 수입을 진행한다”라고 비판했다. 정부가 자국 농민들의 사정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지 않는다는 주장과 함께 그는 “외국의 경우 WTO 체제 안에서도 자국이 우선인 경우가 많은데 우리 정부는 반대로 WTO 눈치를 너무 많이 본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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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적인 쌀 수입에 시위하는 농민들 ⓒ한국농정신문



농민이 살아야 하는 이유: 식량안보


  농민 생활안정과 개방농정 축소라는 농민의 요구는 그저 시대에 뒤처진 푸념일 뿐일까. 농민의 삶과 농업은 식량안보라는 주제와 맞닿아 있다. 2016년 농림축산식품주요통계에 따르면 2015년 대한민국의 전체 곡물자급도는 채 25%가 되지 않고 사료용을 제외한 곡물자급도는 50.2%다. 전반적으로 곡물 수입의 비중이 크지만 이는 현재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 한국의 경제력으로 모자라는 식량을 충분히 수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곡물자급도가 낮은 현 상황은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 경제위기를 포함한 각종 위기상황에서 안정적인 곡물재고율(소비량 대비 재고량)을 유지하는데 위험이 따르기 때문이다. 고려대 식품공학과 이철호 명예교수는 “UN 식량농업기구(FAO)에서는 두 달분의 식량을 항상 보유하고 있을 것을 각 국가에 권고한다”라며 이 경우 재고율이 약 18%정도라고 밝혔다. 그런데 재고량이 해외 수입에 크게 의존하는 구조일 경우 곡물파동을 견디기 어렵다. 곡물파동이 발생한 2007년에서 2008년 사이의 세계 곡물재고율은 17% 내외를 기록했고 2012년에는 18%대였다. 세계 곡물재고율이 FAO의 권고수준을 간신히 유지하는 위기상황에서 국가들이 식량을 안정적으로 수출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전문가들은 곡물파동의 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강도는 세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만큼 농민과 농업을 지원하는 정책을 통해 식량자급 수준을 높일 필요가 있다. 이철호 교수는 “한국은 위기 때만 식량안보를 언급하고 그 시기가 지나면 농업정책 입안에는 관심이 없다”라며 꾸준한 ‘농업 살리기’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2016년 제20대 총선을 앞두고 농민단체들은 앞선 문제들을 지적하며 농민들의 생활보장, 농업환경 안정 등을 정책 요구안으로 제시했으나 지금까지 관련 정책이 입안되지는 않았다. 조기대선 국면을 맞이해 이들은 농정대개혁안 마련 토론회를 개최하는 등 또 한 번 농업정책을 제안하기 위해 중론을 모으고 있다. 농가소득보장, 개방농정 폐지라는 핵심 주장은 여전하다. 다만 이와 함께 ▲농민들의 농지소유 확대 ▲지속가능한 농업 마련 ▲여성농민이 주체가 되는 농업에 대한 지원 ▲통일을 대비한 농업공동체모델 수립 등이 논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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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산물은 인구를 부양하고 수많은 산업재료로 쓰인다는 점에서 국가의 기간산업으로 분류된다. 지금껏 국가를 지탱하는 척추 역할을 했던 농민들은 해결되지 않는 어려움에 점점 지쳐가고 있다. 변화가 기대되는 바로 지금, 그동안 그들을 너무 소홀하게 대하지는 않았는지를 돌아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