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호 > 특집
무관심과 차별 속 성소수자의 외침 혐오를 걷어내고 평등을 얻기 위한 유권자 운동
등록일 2017.03.09 01:31l최종 업데이트 2017.03.10 19:59l 이재은 기자(ssje15@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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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제20대 총선 당시 9개의 성소수자 단체와 이를 지지하는 개인들이 모여 ‘레인보우보트(Rainbow Vote)’ 캠페인을 시작했다. 이들은 성소수자 유권자 운동의 일환으로 ▲‘차별금지법’ 제정 ▲‘군형법’ 상 추행죄 폐지 ▲동성결혼 법제화 등 11개의 정책 요구안을 제시했다. 정의당, 노동당, 녹색당, 민중연합당 등은 전면 찬성했으나 자유한국당 (당시 새누리당),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등 주요 원내교섭단체 정당은 무응답으로 일관했다. 결국 총선 이후 11개 요구안 중 단 하나도 법으로 제정되거나 정책으로 채택되지 않았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 수많은 대선후보자들이 정치적 공약과 비전을 제시하고 있지만 성소수자의 권리에 대한 공약은 찾아보기 어렵다. 주류 정치권이 외면하는 성소수자의 목소리는 무엇인지 살펴봤다.


차별 받지 않을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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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4월 1일 구로역 앞에서 레인보우보트 구성원들이 11대 요구안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레인보우보트



  성소수자들이 가장 강하게 요구하는 정책은 차별금지법 제정이다. 차별금지 법은 성별, 장애, 병력, 나이, 출신 국가, 인종, 언어, 출신지역, 신체조건, 혼인여부, 임신과 출산, 종교, 정치적 의견, 성적 지향, 학력, 사회적 신분 등을 이유로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합리적인 이유가 없는 차별을 금지하는 내용의 법안이다. 2007년 노무현 정부 때부터 차별금지법 입법이 시도됐다. 그러나 종교계와 일부 시민사회의 반발로 성적 지향, 학력, 출신 국가 등 7개 항목이 제외된 채 법제처 심의가 진행됐고 첨예한 대립 끝에 차별금지법은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이후 2010년부터 거의 매년 차별금지법이 국회에서 논의되거나 발의됐지만 입법되지는 못했다. 최근 유력 대선 후보인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와 안희정 후보는 차별금지법 제정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차별금지법은 성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뿐 아니라 사회의 다양한 소수자와 약자의 차별을 방지하고 규제한다. 그러나 이 법은 ‘동성애’ 차별금지법으로 잘못 알려졌고 정치인들마저 이에 흔들리며 법 제정을 미루거나 외면하고 있다. 레인보우보트의 정욜 씨는 “누구나 소수성과 차이를 갖고 있는 만큼 차별을 받았을 때 이를 해소할 방법을 마련하는 창구”라고 차별금지법 제정의 의의를 설명했다.

  성소수자 차별과 관련해 논란이 되는 또 다른 법은 군형법 추행죄 92조 6항이다. 이 법은 “제1조 제1항부터 제3항까지에 규정된 사람[즉, 군인, 군무원 등]에 대하여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라고 규정한다. 헌법재판소는 2016년 7월 이 조항에 합헌 결정을 내렸다. “군의 특수성을 고려했을 때 이 조항이 평등원칙을 위배하지 않는다”라는 이유였다. 하지만 이에 따르면 합의된 동성 간 성관계를 맺은 사람들은 물론 군에서 발생한 강제 성추행 사건의 피해자도 처벌 대상이 된다. 성소수자들은 해당 조항이 실질적으로 동성애를 처벌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두 병사가 합의 하에 한 성행위가 이 조항에 의해 처벌받은 적도 있다.

  이밖에도 성소수자 단체들은 ▲국가 차원의 성소수자 인권 기본계획 마련 ▲ 성소수자 표현, 집회, 결사의 자유 침해하는 국가기관의 행정 개선 ▲무자녀, 과도한 외과적 수술 등의 조건을 강요하지 않는 ‘성전환자 성별변경 특별법’ 제정 등을 제시하며 성소수자들을 동등한 시민으로 인정하고 차별 받지 않는 삶을 보장할 것을 요구했다.


가족을 꾸릴 권리

  한국에서는 남녀 한 쌍의 결혼과 그들의 출산을 통해서만 가족이 구성될 수 있다. 동성의 애인이나 동성 친구 사이 등 이와는 다른 관계의 동거인들은 사회에서 가족으로 인정되지 않고 그에 따라 가족으로서 얻을 수 있는 혜택도 받지 못한다. 2014년 11월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은 법률혼 관계 이외의 동거인들이 복지정책 등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하는 ‘생활동반자관계법’을 발의했다. 이 법안의 목적은 동성의 애인 관계를 포함한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인정하 고 이들에게 동등한 사회적 권리를 부여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법안 역시 동성 결혼 법제화를 반대하는 종교계의 반발에 의해 입법이 무산됐다.

  또 다른 사안으로 동성결혼 법제화가 있다. 동성결혼 법제화 논의의 핵심은 평등권이다. 레인보우보트의 정욜 씨는 “동성애자든 이성애자든 결혼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만약 결혼을 원한다면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할 수 없어서는 안 된다”라고 밝혔다. 작년 총선 당시 녹색당에서 동성결혼 법제화를 공약으로 내세웠으나 원내 의석을 차지하지 못하면서 무산됐다. 게다가 생활동반자관계법이 무산된 시점에서 동성 결혼 법제화는 요원하다. 그럼에도 정 욜 씨는 두 법안에 대한 토론이 동시에 진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성소수자 뿐 아니라 다양한 삶과 가족의 모습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계기가 될 것이라 기대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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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0대 총선 레인보우 유권자 선언 결과 ⓒ레인보우보트



소외 없이 교육받을 권리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배제는 교실에도 존재한다. 2015년 3월 교육부가 발표한 ‘성교육 표준안’은 인권 침해 및 성차별적 내용으로 논란을 빚었다. 여러 성소수자 인권단체들은 성교육 표준안이 청소년 성소수자를 문제적 존재로 규정하고 성소수자에 대한 무시와 혐오를 드러낸다며 거세게 비판했다. 이에 2017년 1월 교육부는 성교육 표준안을 수정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이번 수정안 역시 성소수자에 대한 언급 자체가 없다는 지적을 받았지만 교육부는 “사 회적으로 합의가 필요한 사항이어서 중장기적 논의가 필요하다”라며 성소수자 내용을 포함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성소수자 인권단체들은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성 괴롭힘을 예방하고 다양한 가치를 고민할 기회를 주기 위해 다양한 성적지향 및 성별정체성을 존중하는 교과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해왔다.


혐오 받지 않을 권리

  성소수자들은 혐오폭력을 방지하는 법안과 헌법상 정교분리 원칙에 따른 국정활동을 요구하기도 했다. 성소수자는 일상 속에서 직간접적 혐오표현에 빈번히 노출된다. ‘게이’, ‘호모’ 등 동성애자를 대상화하고, 성적으로 희롱하는 말이 놀림의 표현으로 온오프라인에서 무분별하게 사용된다. 뿐만 아니라 종교계가 노골적으로 성소수자를 범죄나 질병으로 규정하기도 했다. 2016년 3월 30일 ‘서울대학교 기독교수협의회’는 ‘임상의학적 관점에서 본 동성애자’라는 주제로 예배를 진행했다. 서울대학교 성소수자 동아리 ‘Queer in SNU’는 소수자 혐오를 제도적으로 묵인하고 지원한다며 이 행사를 거세게 비판했지만 해당 행사는 예정대로 진행됐다.

  국회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수많은 국회의원들이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 탈동성애, 전환치료 등을 주제로 개최되는 행사에 국회를 대관해주고 함께 참여하기도 했다. 더구나 정치인들이 직접 정교분리 원칙을 어기고 성소수자를 배제하고 혐오하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의원은 “차별금지법 등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 ‘동성애 법’은 자연과 하나님의 섭리에 어긋나는 법이다”라고 발언한 바 있다. 또 새누리당 이혜훈 의원은 “하나님의 나라를 한 순간에 무너뜨리는 법안이 나오고 있으며 동성애는 물론 종교에 대한 차별도 금지하는 입법이 시도되고 있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2015년 ‘UN 시민적·정치적 권리규약 위원회’는 한국 성소수자들의 인권 실태가 심각하다는 점을 지적하며 성소수자를 직간접적으로 배제하고 혐오하는 상황을 개선하라 권고했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상황을 개선할 방침을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았고 국회에서 최근까지도 반(反)동성애 행사가 개최되는 등 문제는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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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레인보우보트가 제시했던 11개 요구안은 오래 전부터 제시됐고 그 내용은 2017년 대선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예정이다. 그러나 이번에도 정치인들은 성소수자 이슈를 피하고 있다. 레인보우 보트의 정욜 씨는 “성소수자 인권에 대해 두려움 없이 목소리를 내는 정치인이라면 다른 중요한 사회 문제와 인권 문제에도 뚝심있게 목소리를 낼 용기 있는 사람일 것”이라며 정치인과 비성소수자 유권자 모두 성소수자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갖길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