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호 > 특집
근로기준법은 뒷전, 생협이 밀어붙인 취업규칙 임금피크제 도입 당위성에 의문 제기돼
등록일 2017.03.08 20:24l최종 업데이트 2017.03.10 20:00l 박주평 기자(pjppjp2@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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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1월 5일, ‘생활협동조합(생협)’ 사무처의 임금피크제 도입을 규탄하는 대자보가 걸렸다. 12월 22일, 임시총회를 열어 ‘민주노총 전국대학노동조합 서울대학교지부(대학노조 서울대지부)’에 가입한 생협노조가 붙인 대자보였다. 대자보에는 저임금 직장인 생협에서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는 타당성과 취업규칙의 변경 절차에 대한 문제가 제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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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협의 임금피크제 도입을 규탄하는 ‘대학노조 서울대지부’의 대자보 ⓒ최한종 사진기자



선 의결, 후 동의? 막무가내로 변경한 취업규칙


  생협 사무처와 생협 노동조합은 2016년 5월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고 명예퇴직 요건을 강화하는 임금·단체협약(임단협)을 체결했다. 이후 사무처는 이를 근거로 이사회에 취업규칙 변경안을 상정했다. 임단협은 일부 노조원들에게만 적용되고, 일반직 노동자 전체에게 임금피크제를 적용하기 위해선 취업규칙을 변경해야 하기 때문이다. 당시 노조 측 협상대표였던 대학노조 서울대지부 이창수 생협노조 대표는 “임금피크제 도입에 반대했지만 사무처의 계속된 설득과 임금인상이 결부된 임단협의 지연에 부담을 느껴 도장을 찍었다”라고 말했다. 12월 26일에 열린 생협 이사회에서는 임금피크제 세부 내용의 수정을 전제로 취업규칙 변경안이 조건부 의결됐다.


  대학노조 서울대지부는 노동자 과반의 동의 없이 변경한 취업규칙은 무효라고 주장하고 있다. ‘근로기준법’은 노동자에게 불리하게 취업규칙을 변경할 경우, 사업자가 과반 이상의 노동자가 가입한 노조의 동의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과반 노조가 없는 경우 노동자 과반수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임단협 타결 당시 생협노조는 과반수가 가입한 노조가 아니었기 때문에 취업규칙을 변경하려면 노동자 과반수의 동의가 필요했다. 생협의 부이사장인 이준호 학생처장은 “취업규칙 변경안이 노동자 과반수의 동의를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이사들이 알았다면, 이사회에서 변경안이 의결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12월 29일, 생협 사무처는 취업규칙 변경의 형식적 요건을 갖추기 위해 노동자들의 부서별 투표를 종용했다. 생협의 갑작스런 시도에 이창수 대표는 3식당과 학생회관 식당 노동자들에게 ‘정확한 설명도 없는데 도장 찍으면 안 되지 않느냐’고 문자를 보냈다. 집단적인 반대투표로 사무처의 제안이 부결될 것으로 예상됐지만, 생협은 투표 결과를 공개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무처 김인옥 경영지원실장을 비롯한 생협의 관리직원들이 노동자들을 4~5명씩 그룹별로 만나 설득했다. 이창수 대표는 “일반 직원들에게는 간부와 마주앉아 면담하는 상황 자체가 부담이 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김 실장은 “명확히 반대의사를 표명하는 직원도 있었다”라고 해명했다.


  사무처 이웅기 총무팀장은 “임단협을 통해 임금피크제의 적용 대상인 정규직들의 동의는 얻었기 때문에 임금피크제를 실시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다”라는 의견을 밝혔다. 대학노조 최용락 조직차장도 “취업규칙은 과반수의 동의를 얻은 적이 없기 때문에 무효지만, 조합원들에 대한 임금피크제 적용은 법률적으로는 유효할 수 있다”라고 인정했다.



생협과 임금피크제의 잘못된 만남


  생협 사무처가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배경에는 2017년에 종업원 300인 미만 모든 사업장에서 정년을 60세로 연장하도록 한 ‘고용상 연령차별 금지와 고령자 고용 촉진에 관한 법률’이 있다. 같은 법률에 의해, 일정 연차에 도달하면 정년까지 임금을 줄이는 임금피크제의 도입이 가능하다.


  생협은 정년 연장에 따른 인건비 부담을 임금피크제 도입의 이유로 꼽았다. 김인옥 실장은 “식대가 2005년 이후 동결되고 판매사업부 매출이 하락하는 상황에서 정년 연장으로 인한 비용 부담을 덜 방법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임금피크제는 인건비 부담 완화보다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해 도입된 제도다. 기획재정부는 ‘공공기관 임금피크제 권고안’을 통해 ‘고임금 근로자의 임금 절약재원을 신규채용에 활용해 청년들에게 고용기회 부여’를 임금피크제의 목표로 제시했다. 하지만 생협은 임금피크제 도입을 추진하며 이와 연동된 신규채용
계획을 마련하지 않았다.



임금피크제 시행 및 기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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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급: 기본급 ⓒ이창수 대학노조 서울대지부 생협노조 대표 제공



  생협의 직원구성을 고려할 때, 임금피크제의 비용 절감 효과마저도 제한적일 수 있다. 임금피크제는 일반직(정규직) 직원에게 적용되는데, 2015년 기준 생협의 전체 직원 270명 중 일반직은 101명에 불과하다. 정년 연장 때문에 인건비가 상승하더라도 임금피크제가 적용되는 일반직의 수가 적은 만큼, 임금피크제가 인건비 부담을 완화하는 효과는 크지 않을 것으로 예측된다.


  노동생산성 저하에 대한 생협의 우려가 타당한지 의심되는 지점도 있다. 김인옥 실장은 “57세까지는 호봉만 동결하고 육체노동의 성격상 생산성 저하가 두드러지는 58세부터 60세까지 기본급을 삭감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미 생협은 신규 인력수급이 어려워 정년퇴직자 중 희망자를 58세까지 계약직으로 재고용해왔다. 58세 이상부터 노동생산성이 현저히 저하된다는 주장도 입증되지 않았다. 더구나 사무처 이웅기 총무팀장에 의하면 2017년에 임금피크제의 적용 대상이 되는 직원도 없다.


  임금피크제 도입이 필요할 만큼 인건비가 부담되는 상황이라고 판단하기도 어렵다. 생협은 식당부서 계약직의 월 임금 수준이 140~150만 원에 불과한 저임금 사업장이다. 영세사업장은 많지 않은 인건비마저 부담이 될 수 있지만, 생협은 2015년 20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고 7억이 넘는 성과급을 지급했다. 정확히 추산되지 않은 인건비 부담을 이유로 노동자들의 임금을 삭감할 만큼 불건전한 재정 상태가 아닌 것이다. 과연 생협의 임금피크제 도입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는지, 물음표가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