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호 > 특집
150개의 밥솥으로 지은 6000명의 한 끼 학생회관 식당의 하루를 함께하다
등록일 2017.03.10 09:05l최종 업데이트 2017.03.10 20:00l 장은재 기자(kozkonj@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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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이 트려면 한참 먼 새벽 6시, 학생회관 식당에 불이 켜졌다. 전날 숙직한 조리사와 새벽같이 출근한 여사님들이 아침을 준비하는 소리만이 텅 빈 식당을 채웠다.

  학기 중이면 배식을 기다리는 줄이 건물 밖까지 이어지는 학생회관 식당은 캠퍼스에서 가장 붐비는 식당이다. 기다림 끝에 식판을 들고 배식을 받으면, 얼핏 배식대 너머의 풍경이 보인다. 그곳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2월 8일과 9일, 학생회관 식당의 ‘생활협동조합(생협)’ 노동자들과 함께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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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사님이 밥을 배식하고 있다. ⓒ김종현 사진기자



처음 배식을 한 사람들은 한동안 팔이 덜덜 떨린다고 한다

  학생회관 식당 1층에는 홀, 배식대와 수거실, 지하에는 조리실과 창고가 있다. 이곳에는 식단을 관리하는 영양사 2명, 메인 메뉴를 담당하는 조리사 7명, 식권을 판매하는 판매원 3명, 청소부 1명, 여사님 34명 등 47명의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 각자의 휴일이 달라 하루에 근무하는 사람은 서른 명 가량이다. 밥을 짓고, 반찬을 조리하고, 배식, 수거, 조리실 청소 등 다양한 일을 하는 여사님들은 학생들이 식당에서 가장 가까이 만나는 사람들이다.

  오전 8시, 가운과 모자를 착용하고 배식 현장으로 들어갔을 때는 이미 배식이 시작된 뒤였다. 매일 돌아가며 홀 청소, 야채 반찬, 밥을 담당하는 세 명의 아침 조가 가장 먼저 학생회관 식당의 하루를 시작했다. 8시부터 아침 식사가 시작되기 때문에 홀 청소 담당은 6시, 다른 두 명은 7시에 출근한다.

  배식이 시작되고, 어묵조림과 김치의 배식을 도왔다. 비교적 손님이 적은 아침이지만 세 명의 인원이 밥과 국, 세 가지 반찬을 배식하기 때문에 바삐 움직여야 했고, 반찬의 양을 고르게 배분하기 어려웠다. 무엇보다 반복되는 배식 동작이 손목에 무리를 줬다. 통증에 반, 반찬을 흘리지 않도록 조심하기 위해 반, 주의가 분산되다보니 “(어묵은 없고) 양파 밖에 못 받았다”라며 반찬을 다시 받아가는 손님들이 많았다. 옆에 있던 여사님이 “팔 아프죠?”라고 웃으며 말했다. 영양사에 의하면, 학생회관 식당에 취직하고 처음 배식을 한 여사님들은 한동안 팔이 덜덜 떨린다고 한다.

  9시 15분, 아침 배식이 끝나갈 때가 되면 점심 C조의 준비가 시작된다. 배식시간이 11시부터 2시까지인 A와 B조가 10시부터 조리하는 것과 달리, C조는 한 시간 일찍 조리하고 10시부터 4시 반까지 배식이 이뤄진다. 지하 조리실은 천장이 낮고 어둡다. 거대한 은색의 조리 기구와 사람의 키를 훌쩍 넘게 쌓인 재료가 조리실을 가득 채우고 있다. 조리실의 가장 안쪽에는 손질되지 않은 채소를 다듬는 공간이 있다. 다섯 명의 여사님들이 하루 종일 모여 앉아 채소의 껍질을 벗기고 썩은 채소를 걸러냈다. 조리실의 한 귀퉁이에는 한 무리의 직원들이 씻은 야채를 조리하기 알맞게 썰고 있었다. 칼에 베이기 쉬운 만큼 적어도 10년 이상 경력을 쌓은 직원들이다.

  허리까지 오는 크기의 원형 솥에서는 김이 나고 있었다. 튀김이 아닌 대부분의 조리는 스팀 솥에서 이뤄진다. 한 여사님이 1미터는 거뜬히 돼 보이는 주걱으로 스팀 솥에서 고기를 볶 았다. 점심 메뉴인 불고기를 위해 전날부터 재워놓은 고기였다. 여사님은 “양념도 어제 이미 만들어 놓은 거예요. 아까 와서 다시마 육수를 만들고 당면을 삶았으니 이제 고기를 양념과 함께 볶기만 하면 돼요”라고 말했다. 불고기는 배식대 옆에서 당면과 함께 즉석에서 다시 끓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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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리사가 거대한 튀김 냄비에서 탕수육에 들어갈 고기를 튀기고 있다. ⓒ김종현 사진기자


  A, B조의 조리가 시작되는 10시, 조리실의 직원들은 새로 밥을 지으며 바빠진다. 기계로 한 번, 손으로 한 번, 쌀을 씻은 후, 조리실 벽면을 가득 채운 수십 개의 밥솥에 밥을 안친다. 밥솥의 수에 놀라 “이 밥들이 오늘 하루 동안 나가는 거예요?” 라고 물었지만, “아니요, 더 있어요. 한 끼에 30-40개씩 해요” 라는 답에 머쓱해졌다. 밥솥 한 개당 40명이 먹는 양이니, 방학 중 점심에는 약 1600명이 이용하는 셈이다. 개강을 하면 몇 배로 바빠져서, 하루 평균 약 6000명이 오간다.


잠깐의 식사 후 찾아오는 가장 바쁜 시간

  점심시간이 가까워질 무렵, 다시 1층 배식대로 올라갔다. C조의 배식이 시작되기 20분 전인 9시 40분, 대부분의 반찬들이 카트에 실려 지하 조리실에서 운반용 엘리베이터를 통해 올라온다. 곧바로 배식되지 않는 음식들은 배식대 옆 온장고에 잠시 보관된다.
 
  배식이 시작되기 15분 전, 모든 반찬들이 검식을 위해 손바닥 크기의 은색 통에 담겼다. 검식은 지하 조리실에서 조리실장이 한 번, 배식 직전 영양사가 한 번 실시한다. 검식에서 문제가 발견될 경우, 즉석에서 수정 조리를 하거나, 드물지만 새로 조리하기도 한다. 검식이 끝나고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할 때, 영양사가 말했다. “상 올릴게요.”

  11시가 되자 여사님들이 배식대와 수거실 사이, 커튼을 쳐 놓은 5평 남짓한 공간에서 식사를 했다. 고정된 식사시간 없이 여사님들은 각자 덜 바쁜 시간에 15분에서 20분 정도 식사를 한다. 커튼 하나를 사이에 두고 식기가 부딪히는 소리, 손님들 웅성거리는 소리, 카트를 끄는 소리가 들리지만, 잠깐이나마 쉴 수 있는 시간이다. 서로가 만든 반찬을 ‘싱겁다’, ‘맛있다’ 품평하거나 어떤 메뉴가 인기 있을지 고민한다. 여사님들은 친구처럼 서로의 반찬을 집어먹기도, “프림 먹을래, 블랙 먹을래?”라며 입가심용 커피를 서로 타주기도 했다. 모든 인원을 동시에 수용하기에는 공간이 부족해, 한 사람이 들어오면 식사를 마친 사람은 나가야 한다. 식사가 끝나면 모두들 황급히 자기의 자리로 돌아간다.

  12시가 넘어가면 식당 안은 어느 때보다 바빠진다. 방학이지만 배식대부터 현관까지 줄이 늘어섰다. 틈틈이 담소를 나누던 아침과 달리, 배식을 하는 여사님들이 웃음기 없는 낯이다. 12시 50분, B조의 메인 메뉴였던 청국장의 재료가 떨어져, 지하 조리실에서 급히 김치찌개가 대신 조리돼 올라왔다. C조 배식대에는 뚝배기를 올릴 가스레인지의 자리가 가득 차고, 엘리베이터의 문은 쉴 새 없이 열리고 닫히며 반찬을 실어 올렸다.

  이 시간대의 수거실은 배식대만큼 바쁘다. 학생들이 퇴식구에 놓은 식판은 컨베이어 벨트를 통해 수거실로 들어온다. 평상시에는 한두 명, 바쁠 때는 세 명의 여사님이 사람 하나는 거뜬히 들어갈 빨간 대야를 옆에 두고 밀려오는 식기들의 잔반을 떨구다시피 넣는다. 식판 더미가 밀리지 않으려면 서둘러 잔반을 처리해야 한다. 한 여사님은 수거실의 일이 특히나 힘들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잔반을 한 곳에 모아주기만 하면 일이 쉬운데 (퇴식구 앞에) 써놨는데도 그걸 지키는 사람이 거의 없어”라며 섭섭한 마음을 드러냈다. 그렇게 비워진 식기들은 가로 2미터 정도의 거대한 싱크대에서 애벌로 헹궈진 뒤, 식기세척기에서 다시 한 번 세척, 건조된다.

  하지만 취재 당일, 물이 들어가 식기세척기의 작동이 중단 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지하 조리실에 있던 거의 모든 사람들이 올라와 수거실에 모여 찌꺼기 분리와 설거지를 손수 했다. 김으로 가득 차 앞도 잘 보이지 않는 수거실에서, 싱크대 3개를 모두 써도 퇴식구 너머에서는 식판이 끝없이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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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리실의 가장 안쪽에는 하루 종일 모여 앉아 손질되지 않은 채소를 다듬는 공간이 있다. ⓒ김종현 사진기자



“힘든 사정이 있는 사람들이 쉽지 않은 일을 택한 거예요”

  오후 2시, A, B조의 배식이 끝나고 여사님들은 배식대를 뜨거운 물로 청소하고, 남은 반찬들을 한 곳에 모아 지하 조리실 바깥에 버렸다. 수거실의 일이 마무리되자 조리실은 하루 중 거의 유일하게 한산한 시간을 맞았다. 3시가 가까워지자 여사님들은 지하 조리실 밖 휴게실에서 30분의 휴식 시간을 가졌다.

  5평 남짓한 이 공간에서 여사님들은 출퇴근 시 옷을 갈아입거나 휴식을 취한다. 앞치마를 잠시 벗은 여사님들이 솜이불 두 개를 깔고 따뜻하게 데워진 방바닥에 모여 앉았다. 한 여사님이 옷장을 열더니 가방에서 까만 비닐봉지에 싸인 통식빵 하나를 꺼냈다. 다른 여사님들은 건빵을 꺼내고 커다란 사발에 커피를 끓여와 조촐한 다과회를 열었다. 노동 공간에서 완전히 떨어져 휴식다운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었다. ‘아는 사람이 어디가 아프다더라’, ‘아까 이런 손님이 있었다’ 등 일상적인 이야기가 오갔다. 따뜻한 방 한가운데에 앉아 이불에 발만 파묻고 있기가 민망해 여사님들의 이야기에 동참했다. 여사님들은 배식을 하며 만나는 특이한 손님들의 이야기를 한참동안 깔깔거리며 들려줬다. 한 여사님이 “배식을 하다보면 대놓고 기분 상하게 말하는 학생부터 매번 감사하다고 말해주는 착한 학생까지 별별 사람을 다 만나요”라고 말하자 여기저기서 저마다의 경험을 꺼냈다.

  한 여사님은 학생의 말에 상처받은 일을 털어놓았다. 항상 식사시간인 학생회관 식당은 비교적 한가한 시간에 홀 청소를 하는데, 한 학생이 “아줌마, 지금 밥 먹는데 청소하지 마세요” 라고 날카롭게 말해 상처를 받았다는 이야기였다. 다른 여사님은 식당 게시판에 단순한 의견을 넘어 비난하는 말이 적혀 있을 때 가장 속상하다고 했다. 여사님들은 매 끼마다 영양사가 게시판을 보고 내리는 지시를 조리에 반영해야 하기에, 게시판의 한마디 한마디에 매우 신경을 쓴다고 말했다. 여사님은 “그래도 게시판에 따뜻한 글을 남겨주는 학생이 더 많다”라며 웃었다.

  한 여사님은 “그런데 좋은 기억도 많아요”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학생회관으로 오기 전 다른 학내 식당에서 일할 때, 늘 채소를 가득 달라는 학생이 있었어요. 어느 날, 그 학생이 학교를 그만두고 지방으로 내려갈 때, ‘늘 불평 없이 한껏 퍼 줘서 감사했습니다’라면서 음료수 한 박스를 줬어요. 어려웠던 형편에 조그만 것만으로도 힘이 됐던 거지”라고 말하며 미소를 지었다. 다른 여사님들이 “나도 그런 적 있어”라면서 저마다 따뜻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30분을 쉰 여사님들이 차츰 조리실로 돌아가고, 방 안에는 늦게 들어온 서너 명의 여사님이 남았다. 한 여사님이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어 “사실 힘든 일이죠. 다들 힘든 사정이 있는 사람들이 쉽지 않은 일을 택한 거예요”라고 말했다. 여사님은 “시간이 다 됐다”라고 살짝 웃고는 조리실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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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사님은 수거실의 일이 특히나 힘들다고 말했다. ⓒ김종현 사진기자



학생회관 식당에 고요가 찾아오다

  다시금 조리실에서는 저녁식사 준비가 시작됐다. 오전부터 썰어놓은 고기로 우거짓국을 끓이고, 내일 점심인 탕수육의 고기를 미리 재워놨다. 다섯 시에 배식이 시작되자, 지하 조리실은 조용해졌다. 세 명이 남아 조리 기구들을 뜨거운 물로 세척했다. 채소를 다듬던 공간은 오래도록 사람의 흔적이 없던 창고처럼 변했다. 여사님들이 하나둘씩 젖은 머리와 사복 차림을 한 채 나오며 인사했다. “먼저 갈게요, 내일 봬요”

  아침부터 캠프에 참가한 예약 손님으로 유독 바쁜 하루였다. 오후 7시, 배식대에서 마지막 손님의 밥을 차리자 “끝났다!”하는 소리가 들렸다. 뒷정리 조를 제외한 사람들이 퇴근할 시간이었다. 퇴근 시간이 된 여사님들 몇 명이 여전히 한창인 수거실의 일을 도우려 하자, 뒷정리 조의 여사님이 “7시 타임은 가!”라며 말렸다.

  8시, 수거실의 일거리도 끝나면 그제야 식당의 하루는 끝난다. “아직까지 안 갔어요? 힘들지 않아요?”라고 묻는 여사님에게 “일이 고되네요”라고 웃으며 휴일에는 보통 쉬냐고 되물었다.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아니요, 모임도 하고. 가족이랑 놀고. 계도 있고(웃음). 그러려고 일하는 거지.” 말을 마친 여사님은 소독함 안에 그 날의 마지막 장갑을 넣고 퇴근했다. 학생회관 식당에는 몇몇 조리 기구가 ‘윙윙’거리는 소리밖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고요가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