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호 > 특집
가장 간절한 곳, 팽목항의 기다림 몸도 마음도 멍들었지만 포기할 수 없었던 미수습자 가족들의 이야기
등록일 2017.04.16 15:45l최종 업데이트 2017.04.16 21:15l 한기웅 기자(surfpenguin@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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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서 가장 슬픈 항구. 3년 전부터 팽목항에 붙은 별칭이다. 이 슬픈 항구에서 미수습자 가족들은 약 3년간 돌아오지 못한 이들을 기다렸다. 세월호 인양을 앞두고 있던 지난 3월 18일, 누구보다 간절하고 힘들 그들을 만나러 팽목항에 갔다.


  목포에서 진도로 뻗은 길엔 노란 깃발들이 하염없이 이어져 있었다. 시민들의 이름과 그들이 보낸 문구가 적힌 깃발을 하나씩 읽고 있으니 팽목항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이 새삼 실감 났다. 도착한 팽목의 날씨는 맑았고 바람이 조금 불었다. 


  곧 인양이 진행될 것이라는 전망에 팽목은 분주했다. 앞바다에서는 인양준비가 진행되고 있었고 시민들도 여럿 눈에 띄었다. 세월호 인양 작업에 쓰일 재킹바지선과 반잠수식 운반선이 도착했고 세월호 밑에 설치된 33개의 리프팅 빔(선체 인양시 선체를 받치는 구조물)에 와이어 연결이 완료된 상태였다. 한편 시민들은 분향소를 찾고 ‘기억의 등대’로 이어진 길을 걸으며 각자 생각에 잠긴 듯 했다. 걸음걸음마다 마주친 노란 깃발과 현수막들에 3년이라는 오랜 시간은 빛바램을 새겨놨다.


  분향소 옆에 설치된 미수습자 가족 대기실에서 조은화 학생(단원고 2학년 1반) 어머니 이금희 씨, 그리고 허다윤 학생(2학년 2반) 어머니 박은미 씨를 만났다. 그들은 몇몇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점심을 먹고 있었다. 3월 19일 시험인양을 앞둔 상태라 그런지 대기실에는 약간의 긴장감이 맴도는 듯 했다. 가족들은 3년간 아이를 찾겠다는 생각 하나로 버텨왔지만 인양이 다가오자 기대감과 두려움을 동시에 드러냈다. “배가 아직 올라온 게 아니어서 무섭고, 아이를 찾지 못할까봐 또 무섭다”라고 미수습자 가족들은 하나같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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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이 기억의 등대로 이어진 길을 걷고 있다. ⓒ최한종 사진기자



몸도 마음도 아팠던 미수습자 가족의 3년


  2014년 4월 16일, 이금희 씨는 처음 사고 소식을 들었을 때만 해도 팽목항에 3년간 머무를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는 물에 젖었을 딸을 위해 갈아입을 옷을 들고 팽목으로 내려왔다. 그러나 전원을 구조했다는 보도와 달리 배는 침몰했고 딸을 비롯한 승객 304명은 돌아오지 못했다. 진도체육관에 모였던 단원고 학생들의 부모들은 시신이 발견될 때마다 자신의 아이가 아니길 바랐다. 이금희 씨는 “다들 내 아이는 살아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땐 시신을 확인한 엄마들을 불쌍하다고 했다”라고 당시 모습을 회상했다. 그러나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체육관을 꽉 채웠던 사람들은 하나둘씩 떠났고 남은 가족들은 아이를 찾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이 큰 체육관에 본인들만 남는 것은 아닌지 두려워졌다. 가족들의 이런 두려움을 뒤로하고 2014년 11월 11일, 9명의 미수습자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수중수색이 종료됐다. 


  미수습자 가족들은 아이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 하나로 3년 동안 팽목을 지켰다. 생업은 포기한 지 오래고 건강도 나빠졌다. 허다윤 학생의 어머니 박은미 씨는 난치병이 있어 한쪽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 조은화 학생의 어머니 이금희 씨는 혈압과 당이 너무 높아 이따금씩 극심한 피로를 느낀다. 이금희 씨는 최근엔 먹기만 하면 화장실에 가야 할 정도로 속이 좋지 않아 현장에 들어가는 배도 타지 못했다. 


  이들은 팽목을 지키느라 다른 가족들을 돌보지 못했다며 가족들에게 미안해하기도 했다.  조은화 학생에게는 한 살 위 오빠가 있는데, 오랜만에 이금희 씨를 보면 팔을 벌려 안고 좋아하면서도 항상 언제 팽목으로 돌아가는지 물어보며 아쉬움을 드러낸다고 한다. 그때마다 이금희 씨는 아들이 있어 힘든 시간을 견딘다며 그를 달래지만 아들과 함께하지 못하는 상황이 마음 편치는 않다.


  가족들은 아이가 있는 현장을 다녀올 때마다 몸과 마음이 특히 아프다. “해저를 보여주는 화면에 세월호 모양이 보이는데 저곳이 얼마나 추울지, 얼마나 지저분할지 온갖 생각이 다 들고 아이를 찾아서 나오지 못하고 또 두고 와야 하니 마음이 아프다.” 현장을 다녀온 뒤 박은미 씨에게 찾아왔던 복잡한 감정들이다. 최근 세월호가 무사히 인양되기를 비는 기도를 하기 위해 종교계 인사들과 현장을 찾은 박은미 씨는 평소 현장에 갈 때보다 특히 더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전과는 달리 재킹바지선과 반잠수함, 주변에 여러 작은 배들이 작업하는 것을 보니 인양이 정말 가까이 다가왔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벅찼다. 그러나 동시에 박은미 씨는 “(딸에게) 많이 기다려줬지만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고, 그러면 엄마가 꼭 찾아줄 테니까 힘들겠지만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고 부탁하고 나와야 했다”라며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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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수습자 조은화 학생 어머니 이금희 씨(좌)와 허다윤 학생 어머니 박은미 씨(우) 
ⓒ최한종 사진기자



추모도 진상규명도 멀게 느껴졌던 미수습자 가족들


  지난 3년간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며 강조돼 온 사안은 주로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와 사건의 진상규명이었다. 하지만 추모나 진상규명 모두 미수습자 가족들에게는 먼 이야기였다. 이금희 씨는 “많은 사람들이 분향소를 찾아 희생자들을 추모해주지만 우리는 아이를 분향소에 놓지도 못했다”라고 설명했다. 진상규명 요구에 대해서도 “우리도 누구보다 진상규명을 절실하게 원하지만 아이를 찾는 게 먼저 아니겠나?”라고 호소했다. 그는 미수습자를 찾고 진실을 밝힌 후에야 이 사건을 온전히 기억하고 추모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미수습자 가족들은 숫자가 적어 크고 작은 사안에서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했고 이로 인해 남모를 아픔을 겪기도 했다. 일례로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은 참사 이후 3년 이내에 국가의 배·보상을 받아들일지, 배상금을 거부하고 청해진해운이나 국가에 민사소송을 제기할지를 결정해야 했다. 아직 시신을 찾지도 못한 미수습자 가족들에게 이 상황은 가혹했다. 이금희 씨는 “내 아이도 찾지 못한 상태에서 배·보상을 받겠다고 할 수는 없는데 그렇다고 정부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하기에는 정부가 내 아이를 찾아주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쉽지 않았다”라며 곤란했던 상황을 돌이켰다. 지난 3월 30일 국회 본회의에서는 미수습자 가족들의 상황을 고려해 ‘4·16 세월호 참사 피해 구제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을 통과시켰고, 미수습자 가족들의 배·보상금 신청기한과 손해배상청구권 소멸시효가 연장됐다.


  미수습자 가족들은 이런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이 서로 다른 상황에 처해있는 가족들을 ‘희생자’라는 하나의 범주로 묶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생존자는 살아가기 위해 지원이 필요하고 희생자를 찾은 유가족들은 진상규명을 원하지만 미수습자 가족들은 미수습자 수습 외에는 다른 사안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런데 이런 입장과 상황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희생자들이 모두 같은 상황에 있다고 전제하는 인식 때문에 ‘피해자 속의 피해자’가 생겼다. 이금희 씨는 “팽목을 찾는 사람들도 우리를 만나고 이런 사정이 있다는 것을 몰랐다는 얘기를 많이 하는데 소수의 목소리도 제대로 대변되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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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수습자들을 위한 꽃이 놓여있다. ⓒ최한종 사진기자



선조위와 특조위, 그리고 앞으로 남은 과제는


  우여곡절 끝에 지난 3월 23일, 가라앉은 지 1073일 만에 세월호가 모습을 드러냈고 4월 11일 목포 신항에 육상거치가 완료됐다. 남은 작업은 세월호 조사를 통한 미수습자 수습과 진상규명인 만큼 ‘선체조사위원회(선조위)’의 역할이 주목된다. 선조위는 인양된 선체를 조사할 권한을 가지는 기구로서 8명의 위원과 50명가량의 직원으로 구성된다. 선조위는 해수부와 협력해 미수습자 수습을 담당하며 선내 유류품 및 유실물 조사를 바탕으로 사건의 진상규명을 진행한다.

  ‘세월호 변호사’로 활동해 오던 박주민 의원은 선조위가 상당한 권한을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선조위는 조사대상자와 참고인을 선정하고 출석을 요구할 수 있으며 불출석시 동행명령장을 발부할 수 있다. 또한 필요한 자료나 물건의 제출을 요구할 수 있으며, 동행명령장과 자료·물건 제출을 거부할 시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 범죄사실이 있을 경우 고발 및 수사요청을 할 수 있고 공무원에 대해서는 감사원의 감사를 요구할 수 있다. 


  선조위가 선체 조사에 필요한 대부분의 권한을 갖고 있지만 부족한 점도 있다. 박주민 의원은 선조위가 선체보존 방법을 결정할 권한이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박 의원은 “(희생자) 가족들이나 많은 국민들께서 세월호를 전시해서 안전에 대한 각성과 경계를 위한 상징으로 삼기를 원했기 때문에 선조위가 이를 결정할 권한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여당과 협상하는 과정에서 ‘권고’만 할 수 있도록 됐다”라고 설명했다. 

  미수습자 수습 이후 진상규명 과정에서 중요한 또 다른 기구는 2기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다. ‘4·16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세월호 특별법)’에 근거해 만들어진 1기 특조위는 2016년 9월 30일로 활동이 종료됐다. 최대 1년 9개월을 활동할 수 있었던 특조위의 활동 기간을 예산이 본격 집행된 8월부터로 보아야 한다는 반발이 거셌지만, 정부는 특별법이 시행된 1월부터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이런 논란 속에서 2기 특조위의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졌고 작년 12월 ‘사회적 참사의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안’이 신속처리안건으로 상정됐다. ‘국회법 개정안(국회선진화법)’에 의하면 신속처리안건은 예외적으로 여야 합의 없이도 해당 상임위가 60% 이상 찬성할 경우 330일 이내에 자동적으로 본회의에 상정될 수 있다. 이에 따라 2기 특조위가 올해 안에 구성될 예정이다.


  2기 특조위는 1기에 비해 독립성과 권한이 크게 강화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박주민 의원은 독립성 강화의 대표적인 예로 운영 방식의 변화를 지목했다. 1기 특조위에서는 운영방식을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돼있었지만 2기 특조위는 이를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다. 또한 1기 특조위는 해수부를 통해서만 기재부와 예산 협상을 할 수 있었던 반면, 2기 특조위는 기재부와 직접 협상할 수 있다.


  활동기간과 조사 권한 면에서도 긍정적인 변화가 있다. 1기 특조위는 활동기간이 1년 9개월로 정해져있었고 이마저도 활동 시작점에 대한 해석을 두고 갈등을 빚어 특조위원들이 단식 농성을 하는 사태까지 벌어졌었다. 이에 비해 2기 특조위는 기본 2년의 활동기간에 위원회의 자체적인 결정에 따라 1년을 연장할 수 있도록 돼있어 최대 3년까지 활동할 수 있다. 또한 1기 특조위는 특수검찰(특검)의 구성을 2회만 요구할 수 있었고 이마저도 국회가 의결을 거부할 수 있어서 세월호 특검이 무산됐다. 하지만 2기 특조위는 특검 구성을 무제한으로 신청할 수 있고 국회는 이를 의무적으로 의결해야 한다. 또한 2기 특조위는 1기와는 달리 특수검찰 후보를 정할 수 있어 조사 권한도 대폭 강화됐다.


  박주민 의원은 “2기 특조위가 침몰 원인, 구조실패의 원인과 책임, 대통령의 7시간, 청와대 대응의 적정성, 참사 이후 언론에 부당한 영향력 행사, 인양과정의 지연 원인 등 밝혀야 할 것이 많다”라고 지적했다. 세월호 참사의 가장 중요한 증거물이라는 선체가 인양된 만큼 선조위와 2기 특조위에 대한 기대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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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족의 모습 뒤로 아픔의 현장이 보인다. ⓒ최한종 사진기자



이제는 아무도 외로이 남겨지지 않도록


  세월호의 육상거치가 완료되고 이제 본격적인 미수습자 수습 작업이 시작된다. 이금희 씨와 박은미 씨는 누가 먼저 나올지 모르겠지만 9명을 모두 찾을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이금희 씨는 “혼자 남겨지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게 되니 누군가가 또 외로운 싸움을 하게 내버려두지는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라고 심경을 밝혔다. 박은미 씨는 “작년에는 왜 하필 (마지막으로 남은 이들이) 우리냐고 했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9명밖에 안 남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앞으로도 우리처럼 외롭고 아픈 사람들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끝까지 버틸테니 모든 생명을 다 찾을 수 있도록 힘을 모아줬으면 좋겠다”라고 간절한 마음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