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호 > 특집
퀴어문화축제, 낭랑 18세가 되기까지 나의 자긍심과 당신의 연대가 만나다
등록일 2017.06.22 00:27l최종 업데이트 2017.06.26 18:35l 송재인 기자(gooay@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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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명과 5만여 명. 주최 측이 추산한 2000년 제1회 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와 2016년 제17회 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의 참여인원 수다. 성소수자는 행진을 통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사회에 편견을 버려야할 때라고 말을 건넨다. 매해 더욱 많은 사람들이 행진에 참여해 작년에는 첫 해의 1000배가 넘는 인원이 을지로 일대를 채웠다. 그러나 퀴어문화축제는 지난 18년간 다채로운 변화를 겪어왔고, 이는 숫자의 변화만으로 설명될 수 없다. 현실적 어려움과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에도 수많은 사람들의 연대와 노력으로 성장해온 퀴어문화축제의 역사를 돌아봤다.



더 큰 ‘우리’가 되기까지

 

  퀴어문화축제는 2000년 서울퀴어영화제가 조직한 성소수자 문화행사들의 일환으로 시작됐다. 처음 ‘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조직위)’는 토론회와 공연만을 기획했지만 마침 ‘독립예술제2000(현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이 단체 행진 참여를 제안해왔고, 조직위는 이를 수락했다. 그런데 행진 당일 많은 비가 내리며 다수 단체가 예정돼있던 참여를 취소했고, 퀴어문화축제 참가자들은 예상치 못하게 단독으로 거리에 서게 됐다. 한채윤 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은 “우연한 계기였지만 무지개 깃발을 들고 거리를 걸으며 느낀 감동을 잊을 수 없었다”라며 “이듬해 축제에서도 거리행진을 이어가기로 결정했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거리행진 기획에서 비롯된 여타 국가의 퀴어문화축제와는 사뭇 다른 시작이었다.

 

  이후 퀴어문화축제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추가로 기획하며 현재의 행진-파티-영화제 구조를 갖춰 나갔다. 제2회 퀴어문화축제부터 고정행사로 정착된 파티는 참가자들이 행진 후 함께 모여 여흥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한채윤 조직위원은 “성소수자들이 자기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공간이 많지 않다”라며 “눈치 보지 않고 즐기는 경험 자체가 소중했다”라고 강조했다. 더불어 파티는 입장료를 통해 행사 비용을 충당할 수 있는 중요한 수입원이기도 했다. 지금의 퀴어영화제 역시 제2회 퀴어문화축제부터 시작됐다. 제2회 퀴어영화제는 당시 집행위원이었던 이송희일 감독의 신작을 상영하는 소규모의 영화상영회로 기획됐다. 이후 퀴어영화제는 규모를 점차 늘려나갔고, 지난해에는 나흘간 23개국 59편의 작품을 상영해 2000여 명의 관객이 찾는 등 큰 호응을 받았다.

 

  프로그램도 성소수자 공동체 안팎을 모두 포괄하는 방향으로 바뀌어나갔다. 한채윤 조직위원은 “초기에는 축제에 성소수자 당사자만 온다고 생각했다”라며 “성소수자와 관련된 정보를 접하기도 어려운 실정에, 성소수자 공동체에 올바른 정보를 전하고 내부 자긍심을 고취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주로 구성했다”라고 밝혔다. 에이즈(AIDS) 관련 전시회·토론회·수다회가 대표적이었다. 한 위원은 “당시 동성애자 공동체 내에도 에이즈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퍼져있었고, 이를 함께 얘기하며 개선할 필요가 있었다”라며 기획 의도를 설명했다. 2000년대 중후반에 들어 퀴어문화축제는 채식주의, 재테크 등 성소수자 당사자에 국한되지 않는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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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해 퀴어문화축제는 슬로건을 통해 '존재를 드러내자', ''아웃팅'에 대한 두려움을 넘어서자', '사랑이 혐오보다 강하다'와 같이 다양한 메시지를 사회에 전달한다. ⓒ퀴어문화축제홈페이지


  퀴어문화축제를 후원하는 주체 역시 다양해졌다. 초기에는 ‘아웃팅(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을 본인의 동의 없이 밝히는 행위)’에 대한 두려움, 정보 부족 등으로 성소수자 당사자들도 축제 참여를 꺼렸기 때문에 외부에서 지원을 받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퀴어 업소들의 후원만으로 예산을 마련하던 중 2010년과 2011년 서울문화재단에서 기금을 지원받기도 했지만, 해당 지원사업이 사라지며 다시 재정조달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이에 2012년 제13회 퀴어문화축제 개최를 위해 조직위는 온라인을 통해 모금활동을 벌였고, 240여 명의 시민들이 참여해 목표 금액의 133%가 넘는 기금이 모일 수 있었다. 성소수자 당사자들의 후원에서 시작해 공공기금을 거쳐 시민들이 후원으로 직접 퀴어문화축제를 꾸려나간 것이다.



혐오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기 있다


  재정적 어려움 외에 성소수자와 동성애에 대한 혐오 정서가 문제되기도 했다. 차별금지법이 중점 의제로 떠오르자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표하는 이른바 ‘혐오세력’이 법안 발의 반대 성명을 발표하는 등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2010년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는 “사회적 소수자 인권보호를 빌미로 ‘동성애차별금지법’과 같이 우리사회의 전통적인 사상적 근간과 사회적 통념을 무너뜨리는 입법에 대해서 적극 반대한다”라고 발표하기도 했다. 법무부는 2007년과 2010년 두 차례 차별금지법을 발의했으나 모두 국회 본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강명진 조직위원장은 “차별금지법 발의는 오히려 혐오세력이 조직화될 수 있었던 계기를 마련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차별금지법 제정시도와 실패는 성소수자 인권운동에도 중요한 분기점이 됐다. 2008년 성소수자단체 연대체인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이 출범했고 이전까지 노출을 꺼렸던 당사자와 지지자들이 공개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특히 당시 민주통합당이 차별금지법 발의를 철회했던 2013년에는 일반 시민들의 연대가 돋보였다. 축제가 열렸던 홍대 지역의 ‘걷고싶은거리 상인연합회’는 상점 앞에 무지개 깃발을 다는 등 퀴어문화축제에 대한 지지를 표하기도 했다.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지난 2월 문재인 당시 대선후보의 포럼현장에서 나온 “나중에” 발언은 화제가 됐다. 한 참석자는 성소수자 차별의 부당함을 규탄하며 나섰지만 일부 청중은 “나중에! 나중에!”를 외치며 발언을 저지하려 했다. 이에 조직위는 ‘지금 호소할 수 없는 인권이 나중에 보장될 수는 없다’라며 ‘나중은 없다, 지금 우리가 바꾼다!’라고 올해 축제의 슬로건을 정했다. 지난 5월 24일에는 육군보통군사법원이 동성과 성관계를 맺었다는 이유로 A대위에게 징역 6개월·집행유예 1년을 선고하기도 했다. 강명진 조직위원장은 “퀴어문화축제도 같이 손잡고 있음을 보여줄 것”이라고 말한다. 올해도 성소수자와 지지자들은 이전과 같이 거리로 나와 단단한 연대를 할 예정이다. 그리고 ‘우리가 여기 있다’며 18살을 맞은 퀴어문화축제를 무지갯빛으로 물들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