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호 > 특집
“시설 밖, 평범한 삶을 원한다” 장애인수용시설 철폐와 탈시설을 요구하는 이유``
등록일 2017.09.02 16:18l최종 업데이트 2017.09.07 17:06l 이하영 기자(heavenlee63@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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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시설(deinstitutionalization)’은 장애인수용시설에 있던 장애인이 시설을 나와 지역사회에서 자립함과 동시에 격리되지 않고 공존하며 살아감을 의미한다. 탈시설은 2000년대 중반 이후 장애인권운동계의 핵심 목표로 자리했을 뿐 아니라, 9월 5일 종료될 광화문 장애인권운동 농성 역시 ‘장애인수용시설 철폐’를 주된 요구사항으로 내건 바 있다. 장애인에게 숙식을 제공하고 안전한 생활을 보장한다는 측면에서 장애인수용시설은 일견 타당하게 들린다. 그렇다면 왜 장애인권운동은 10여 년간 수용시설의 철폐를 외치고 있는 것일까.



“좋은 시설이란 있을 수 없다”


  탈시설 논쟁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시설거주 장애인들의 탈시설 의지가 투쟁을 통해 드러나면서부터였다. 2006년과 2008년, 요양원에 거주하던 장애인과 직원들이 시설의 비리에 반발해 집단 탈시설 투쟁을 벌였고, 2009년에는 장애인 당사자 8인이 서울시에 탈시설전환시스템을 요구하며 노숙 농성을 펼쳤다. 그 결과 서울시에 ‘장애인전환서비스지원센터’가 세워졌고 이후 다른 지자체와 정부기관이 이를 표방해 탈시설 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8월 25일 광화문 장애인권운동 농성장을 찾아 장애등급제·장애인수용시설 폐지위원회 구성을 약속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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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5일 광화문 장애인농성장을 찾은 박능후 보건복지부장관 ⓒ천지일보


  시설거주 장애인들이 시설 밖의 삶을 갈망한 이유는 무엇일까. 짧게는 10년, 길게는 2-30년의 시간을 시설에서 보낸 당사자들은 무엇보다 자유를 원했다고 입을 모은다. 당사자활동가 한규선 씨는 “시설에서는 한 방에 10-20명이 생활하며 아침부터 저녁까지 철저한 규율에 의해 통제되고 식사, 휴식, TV시청, 취침으로 이뤄진 일과가 매일 반복됐다”고 회상했다. 한 활동가는 2008년 석암베데스다요양원에서 탈시설을 감행한 바 있다. 탈시설 이후 장애인권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김혜진 활동가 역시 “일과가 매일 정해져있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없었다”고 강조했다. 시설 안에서는 장애인들과 종사자들 사이 권력관계도 자연스레 형성됐다. 김 활동가는 “직원들에게 예쁨을 받기 위해 눈치 보며 살아야 했다”며 시설 내 수직적 관계를 지적했다. 실제로 보건복지부가 2015년 실시한 ‘장애인거주시설인권실태조사’에 따르면 조사 당시 47개 시설에서 폭행·결박 등 57건의 인권침해가 자행되고 있었다. 한 활동가는 “특히 인지 및 발달장애를 가진 장애인에 대한 처우가 열악했다”고 덧붙였다.


  시설의 문제를 시정하고 개선하는 일 자체가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조아라 상임활동가는 “시설이 외부와 단절돼있어 자연스레 폭력과 억압이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시설 형태를 변형해도 시설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는 요지다. 조 활동가는 “서울시가 ‘자립홈’, ‘체험홈’ 등 기존 대형시설을 가정집 형태로 축소해 운영하고 있지만 여기서도 장애인들과 직원들 간 권력구조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앞선 베데스다요양원 비리나 지난해 8월 불거진 대구시립희망원 인권유린사태 등 특정 시설이 문제가 되는 경우, 정부기관과 지자체는 해당 시설을 폐쇄하거나 피해 장애인들을 다른 시설로 이주시키는 등 단편적인 대응만을 해왔다. 조 활동가는 “‘탈시설’은 시설의 개선이 아니라 시설 밖에서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일한 권리를 향유하며 살아가도록 하려는 운동”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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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이 발표한 탈시설선언문



서울시의 구멍투성이 탈시설 정책


  장애인전환서비스지원센터가 설립된 이후 서울시는 2013년 7월 3,088명의 당시 시설거주 장애인 중 600명의 탈시설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중앙정부보다 발 빠른 움직임이었다. 2016년, 서울시는 2013년 이후 491명의 시설거주 장애인이 시설을 나와 자립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한편 장애인권운동계는 서울시의 사업이 탈시설과 자립을 가능케 하기보다 오히려 기존의 거주시설을 지원하는 데 그쳤다고 비판한다. 서울시가 주로 지원하는 체험홈과 자립홈은 기존 대형시설에 비해 규모도 작고 형태도 다르지만, 법적 소유자는 여전히 거주 장애인이 아닌 시설법인이며 행정상으로도 ‘장애인거주시설’에 해당한다. 따라서 여기에 거주하는 장애인은 개인 수급비나 활동보조서비스를 신청할 수 없고 시설의 고질적 문제인 권력관계와 통제시스템 역시 유지된다. 조아라 활동가는 “소규모 시설이 사실상 기존 대형시설과 다를 바 없음에도 불구하고 서울시 정책은 소규모 시설로의 입주를 ‘탈시설’로 분류했다”고 지적했다.


  장애인전환서비스지원센터의 자립지원 역시 탈시설에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많다. 탈시설을 신청하는 절차와 기준이 까다롭기 때문이다. 시설거주 장애인이 장애인전환서비스지원센터에 탈시설을 신청하면 상담과 심사를 거쳐 자립생활주택 입주 여부가 결정된다. 신청 시에는 거주시설 생활 요약서, 건강진단서, 자립생활계획 등을 담은 자기소개서, 일상생활능력 및 정서상태 등에 관한 재활교사의 기록 등 여러 서류가 필요하다. 해당 서류는 발달장애인이 이해하고 준비하는 데 지나치게 복잡하며, 결국 탈시설 의지보다는 역량을 우선시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신청 후 진행되는 심사 역시 걸림돌이 된다. 2016년 5월 기준 5년간 자립생활주택입주를 신청한 162명 중 41명이 심사에서 탈락했는데, 당시 탈락 사유로는 ‘자립생활 체험 부재’, ‘활동보조시간 미확보’ 등이 있었다. 이에 대해 조아라 활동가는 “자립생활체험이나 활동보조시간은 국가가 보장해야 하는 부분”이라며 “국가가 채워주지 못한 부분이 다시 자립 불가 사유가 되는 악순환이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중앙정부와 전주, 대구 등 여타 지자체의 탈시설 사업은 서울시를 표방하고 있기 때문에 서울시 사업의 맹점을 그대로 답습하게 된다. 지난해 대구시립희망원 인권침해사태 이후 대구시는 대구시립희망원의 규모를 대거 축소하고 탈시설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하지만 시설거주 장애인의 자립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지원할지 밝히지 않아 우려를 샀다. 시설 입장에서 탈시설을 적극 지원할 유인이 없다는 점도 문제다. 수용하고 있는 장애인의 수에 따라 정부 지원금, 장애인연금과 기초생활보장 수급액이 시설에 지급되기 때문이다. 한규선 활동가는 “시설 거주 당시 직원들로부터 ‘돈도 못 벌면서 나가서 어떻게 살려고 하나’, ‘나가봤자 고생만 한다’ 등의 말을 들어왔다”고 털어놓았다.



탈시설, 그리고 자립


  겨우 탈시설의 기회가 오더라도 평생을 시설에서 지낸 거주자가 시설 밖의 삶을 설계하는 일은 쉽지 않다. 김혜진 활동가는 “탈시설 직후 자립생활에 가장 큰 장벽은 거주지 마련이었다”며, 노들장애인야학의 도움을 받아 살 집을 구한 것이 자립에 결정적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탈시설한 장애인은 2-3개월 간 자립홈 혹은 체험홈에서 생활하고, 이후엔 임대주택을 구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부양의무제가 걸림돌이 돼 임대주택을 구하지 못하거나, 적절한 도움을 받지 못해 시설로 다시 돌아가기도 한다.


  지원되는 활동보조서비스도 자립해 살기에는 부족하다. 시설거주 장애인 다수는 화장실조차 혼자 갈 수 없는 중증장애를 갖고 있다. 이들이 탈시설 이후 자립해 살아가려면 24시간 활동지원이 보장돼야 한다. 보건복지부, 시·도, 지자체가 분담해 활동보조서비스를 지원하고 있지만, 지원받는 서비스를 모두 합해도 24시간을 보장받을 수 있는 경우는 드물다. 지원 시간 자체도 장애등급제에 따라 일괄적으로 차등 부여되고, 부양의무자에 해당하는 가족 구성원이 있으면 그나마도 받을 수 없다. 베데스다요양원에서 나온 직후 체험홈에서 생활했던 황인현 활동가는 “사실상 체험홈에서 지원하는 것이 없어 일상생활을 전부 혼자 하도록 방치됐었다”고 털어놓았다. 뇌병변장애를 가진 그는 전동휠체어와 활동보조인이 없으면 거동이 불가능하다. 체험홈에서 나와 자립한 현재, 황 활동가는 하루 14시간 활동보조를 지원받는다. 그는 “하루 중 14시간만 비교적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다”며 “시간을 늘려달라고 요청해도 예산 부족, 지원주체 중복 등의 대답만 돌아온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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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시설 장애인의 활동보조 등급 상향조정을 요구하는 기자회견 ⓒ천지일보


  비장애인에 비해 직업선택에 제한이 있는 탈시설 당사자에겐 생활비도 부담이 된다. 김혜진 활동가는 지난해까지 노들장애인야학에서 2년간 중증장애인인턴으로 근무했지만 지금은 프리랜서로 전환했다. 2년간의 이해특례 기간이 끝난 뒤 근무를 계속하면 장애인연금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황인현 활동가 역시 자유롭게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시간이 제한돼있어 상근활동가로 근무하지 못하고 특강이나 인터뷰 등 단발성 행사에 수시로 참여해 생활비를 마련한다. 그의 월수입은 2-30만 원 정도다.


  탈시설 당사자와 활동가들은 현재 정책이 장애인 자립사업 예산을 최소화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탈시설 정책이 시설거주 장애인의 탈시설 의지를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 못할뿐더러, 탈시설 이후 자립생활을 지원하는 데에도 여러 제한 조건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조아라 활동가는 “탈시설은 무능하고 불필요하다고 규정된 사람들이 자신의 역할을 찾아나가고 평등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운동”이라고 힘줘 말했다. 그는 탈시설을 통해 장애인에 대한 사회의 인식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장애인이 장애를 이유로 수용·관리되지 않고 지역사회의 구성원으로 공존하기 위해선 적절한 예산과 정책이 뒷받침돼야 한다.



장애인권운동, 다 끝난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