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호 > 특집
깔창 생리대 1년 후, 대한민국 여성 건강의 현주소 여전한 가격논란과 당사자 배려 없는 지원사업…생리대를 필수품으로 바라봐야
등록일 2017.09.03 11:06l최종 업데이트 2017.09.06 15:30l 허유진 기자(qq8779@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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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5월, 생리대가 비싸 신발 깔창으로 대신한다는 한 청소년의 사연이 인터넷에 올라왔다. 생리대 유통 기업 ‘유한킴벌리’가 생리대 가격 인상을 발표한 직후였다. 이후 두루마리 휴지, 수건 등을 사용한다는 저소득층 여성 청소년들의 고백이 잇따랐고, 생리대 시장의 구조적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일부 여성들은 생리대를 거리에 전시하는 캠페인을 진행했고, 정부와 지자체는 생리대 지원 사업에 착수했다.


  1년이 지난 지금, 더 이상 ‘깔창 생리대’와 같은 사건이 발생하지 않을 수 있을까. 생리대는 합리적인 가격에 판매되고 있는지, 저소득층 청소년에 대한 생리대 지원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여성 건강권의 현실을 알아봤다.



변화 없는 독과점 구조, 해결되지 않은 가격 문제


  생리대 가격의 적정성 논란은 여전하다. 한국에서 유통되는 생리대는 다른 나라에 비해 여전히 최대 두 배 이상 비싸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날개 중형 기준으로 한국의 생리대는 개당 331 원인 반면, 일본과 미국은 181원, 덴마 크는 156원, 캐나다의 경우 202원이다(2016년 7월 기준). 또한 여성은 1년 동안 평균 330개의 생리대를 사용하며, 1년에 최소 11만원, 폐경 전까지 최소 400만원을 생리대 비용으로 부담한다.


  깔창 생리대 논란 이후 생리대 가격은 오히려 상승했다. 논란 직후 유한킴벌리는 가격 인상계획을 철회한다고 밝혔으며, 지난해 11월 중저가형 생리대 '좋은느낌 순수'를 출시했다. 1년이 지난 지금, ‘좋은느낌 순수’는 동네마트에서 유통되지 않는다. 유한킴벌리는 가격이 동결된 구형 제품 대신 신형 제품의 가격을 인상해 판매하고 있다. 현재 유한킴벌리의 주력 상품 ‘화이트 NEW 시크릿홀 울트라 날개 중형’은 가격동결을 발표했던 때에 비해 약 4% 인상 된 가격으로 유통된다. 반면 생리대 주자재의 가격은 하락하고 있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6년까지 펄프와 부직포 가격은 각각 29.6%, 7.8% 하락한 반면, 생리대 가격은 25.6% 상승했다. 같은 기간 소비자 물가 상승률을 두 배 이상 앞지른 수치다. 주자재의 가격이 하락하는 상황에서 다수 기업들은 신제품 개발을 이유로 생리대 가격을 인상하고 있다. 그중 유한킴벌리는 3년을 주기로(2010년, 2013년, 2016년) 생리대가 가장 많이 사용되는 여름 직전에 가격을 인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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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업들이 이런 가격 정책을 내놓을 수 있던 배경은 무엇일까. 여성환경연대 고금숙 여성환경팀장은 생리대 시장 의 독과점 구조를 지적했다. 그는 “한국의 생리대 시장은 독과점이 심해 높은 가격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만이 반영되 기 힘들다”고 비판했다. 2016년 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입수한 ‘유한킴벌리 가격인상 내부자료’에 따르면 국내 생리대 시장은 유한킴벌리(57%), ‘LG유니 참(21%)’, ‘한국P&G(9%)’, ‘깨끗한 나라(8%)’ 네 기업이 독점하고 있었다. 독 과점 구조에 따라 유한킴벌리가 생리대 가격을 올리면, 다른 기업들도 잇달아 가격을 인상하는 일이 빈번하다.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가 이에 조사의 필요성을 느껴 검토하겠다고 밝혔으나, 아직 결과를 내놓지 않고 있다.


  복잡한 유통구조로 인해 판매점에 따라 생리대의 가격이 제각각인 것 역시 문제다. 전통시장, 대형마트, 백화점, 기업형 슈퍼마다 생리대의 가격이 달라 혼선을 빚고 있다. ‘화이트 NEW 시크 릿홀 울트라 날개 중형’의 경우 최저가격(6000원)과 최고가격(11800원)이 2배 가량 차이가 난다. 소셜벤처기업 ‘29일’의 홍도겸 대표는 “시장에 유통되는 생리대의 경우 전체 가격이 10이라면 유통비가 4에 해당한다”며 “온라인 판매 가격의 20-30%, 오프라인 판매가격 의 40-50%가 수수료”라고 설명했다. 29일은 지난 2월 유통과 마케팅에 들어 가는 불필요한 비용을 줄여 반값생리 대 '29Days'를 출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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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 벤처 '29일'이 올해 2월에 출시한 반값 생리대 '29Days'



일방적인 생리대 지원사업? 보편적 여성 건강권으로 접근해야


  깔창 생리대 논란 이후 지자체와 기업들은 저소득층 생리대 지원사업에 나 섰다. 정부는 2016년 추가경정예산 30억 원을, 2017년 보건복지부 예산 30억 원을 저소득층 여성 청소년 위생용품 지원에 배정했다. 더불어 지난 2월 국민의당 김승희 의원은 필요시 여성 청소년에게 보건위생물품을 지원하는 ‘청소 년복지지원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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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시행된 저소득층 여성 청소년 생리대 지원사업 포스터  ⓒ(위)보건복지부, (아래)서울특별시



  한편 지자체가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생리대 지원사업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현재 다수의 지원 사업이 기업의 후원을 받아 진행되고, 이 경우 여성 청소년이 직접 지원을 신청한 후 보건소에 방문해 생리대를 수령한다. 고금숙 팀장은 “(이러한 방식이) 시혜적이며, 여성 청소년의 사생활이 침해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사생활 침해가 지적된 후 이메일이나 보호자, 대리인을 통해서도 신청할 수 있도록 수정됐으나, 신청자에게만 지원하는 방식 자체가 문제라는 의견도 있다. 지원 사실을 접하지 못한 청소년들은 신청조차 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 여성가족정책실 원미혜 늘푸른여성팀장은 “저소득층만을 특정한 후 신청자에 한해 수령하게 하는 방식은 주는 사람 의 입장만 생각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또 그는 생리대 지원사업은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수령방식 이 아닌 택배 배송 방식으로 지원하는 등의 정책을 예시로 들었다.


  전문가들은 “결국 깔창 생리대 사건 해결을 위해 필요한 건 여성 건강권에 대한 사회적 논의”라고 입을 모은다. 여성 생필품인 생리대를 선별적으로 지원 하는 정책은 생리 문제를 저소득층 복지에만 국한시키며, 여성 전반의 생리 대 사용을 보장하기 위해선 생리를 여성 건강권의 일환으로 바라보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원미혜 팀장은 생리대 가격 논란으로 시작된 움직임이 저소득층 지원에서 그쳐선 안 된다며 “사회에서 여성의 몸과 건강에 대해 충 분히 얘기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깔창 생리대 사건 이후 생리용품 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일례로 생리대 성분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자, 유한킴벌리는 생리대 전 성분을 자발적으로 공개했다. 고금숙 팀장은 “이전까지 여성 건강권에 대한 논의는 임신과 출산 위주였으나, 깔창 생리대 사건 이후 개인의 일로 치부되던 생리 역시 논의되고 있다”고 바라봤다.


  여성 건강권에 대한 관심은 높아졌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지난해 4월 22일 국민안전처는 ‘재해구호법 시행규 칙 일부개정안’을 입법예고하며 구호세트에서 생리대를 제외해 논란이 됐다. 생리대가 활용도가 낮은데다 사용 연령대도 제한적이며 개인 취향의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는 이유였다. 이에 일부 시민들은 생리대 제외 반대 서명을 진행했다. 논란이 거세지자 국민안전처는 “생리대가 구호세트보다 유통기한이 짧아 변질 위험이 있어 제외했다”고 해명 하며 생리대를 개별구호물품으로 전환했다. 사태에 대해 홍도겸 대표는 정책 결정자들이 남성 중심적 사고를 넘어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금숙 팀장은 “건강, 특히 생식 건강 문제는 언제나 남성 신체를 기준으로 논의된다”며 “생리가 여성만의 이슈가 아니라 사회 보편의 문제로 여겨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구체적 방안으로 공공장소에 생리대를 비치하고, 공교육에서 생리를 자세히 다뤄야 한 다고 제안했다. 지난해 6월 공립학교, 교도소, 쉼터 등에 생리대와 탐폰을 무료로 제공하는 법안이 뉴욕 시의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빌 드 블라지 오 뉴욕시장은 “생리는 기본적인 신체 현상”이라며 “이 법안은 생리대를 ‘사치품’이 아닌 ‘필수품’으로 고려한다”고 밝혔다. 생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고, 생리가 여성 건강권으로 고려될 때, 비로소 깔창 생리대에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나 오늘 생리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