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호 > 특집
학생 인권, 학생의 목소리를 통해 전해지다 학내 인권문제 해결의 주체가 된 학생들
등록일 2017.10.19 13:26l최종 업데이트 2017.10.23 10:49l 장은재 기자(kozkonj@snu.ac.kr)

조회 수:111

  사회학과 H 교수 사건부터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학소위)’ 인권주간 참여배제까지, 최근 인권센터의 결정이 수차례 논란을 빚었다. 이에 학생사회 내에서 인권센터의 제도와 운영방식이 학생인권을 보호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일었다. 인권센터 운영위원회 및 심의위원회에 학생참여가 이뤄지지 않거나, 이뤄져도 극히 적은 비중에 불과하다는 요지였다. 한편, 학내 인권문제 해결을 위해 학생사회가 직접 주체로 나서 학생인권을 대변하고 있는 곳들이 있다. ‘카이스트(KAIST) 대학원 총학생회 인권센터(카이스트 인권센터)’와 서울대학교 ‘인문대 반학생회장 연석회의’를 만나 학생인권 보장의 실마리를 물었다.



카이스트 인권센터, 교내 인권 기관과의 협력 관계에서 자리를 잡다


  카이스트 인권센터는 국내 대학 중 유일하게 학생회 산하에 인권센터가 설립된 경우다. 카이스트 인권센터가 설립되기 전, ‘카이스트 대학원 총학생회’로 수많은 고충이 접수됐고, 2012년 고충해결 전담기관을 설치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었다. 이에 학생회 정책부서가 고충해결 업무를 담당하다 그해 카이스트 인권센터라는 독립된 기관이 세워졌다. 변호사나 심리상담사로 구성된 여타 대학의 인권센터와 달리, 카이스트 인권센터는 대학원생들로만 구성돼있다. 상담 자격증이 있는 학생에 한해 센터장과 상담원 3명이 선발되며, 인권센터와 교내 상담센터가 함께 주관하는 10주 과정의 상담교육을 이수한 학생도 인권센터 상담원에 지원할 수 있다. 센터장과 상담원을 비롯한 인권센터 구성원 역시 대학원생이므로 상근을 하지는 않고, 개별 상담자와 약속을 잡아 상담을 진행한다. 상담원과는 전화, 메신저로 24시간 연락이 가능하며 메일도 24시간 이내로 답변을 준다. 여타 대학 인권센터와 마찬가지로 카이스트 인권센터는 피해호소인과 상담을 진행하고 사건을 공유하며 문제 해결을 맡게 된다.


  카이스트 인권센터는 대학원생이 일상적으로 겪는 인권침해 문제를 다룬다. 그중 지도교수와의 갈등, 지도교수 변경, 연구비 횡령 등 교수와의 관계나 연구실에서 발생하는 사건이 주를 이룬다. 카이스트 인권센터장 A 씨는 “대학원생들이 겪는 대부분 의 인권침해는 법률적인 근거를 들어 문제 삼기가 모호하다”고 설명했다. A 씨는 인권센터 위원들이 대학원생 당사자로서 문제가 발생하는 맥락을 누구보다 잘 공감하고, 학교와 논의하며 문제 개선을 위해 노력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사진1.png

▲카이스트 인권센터의 사건 처리 절차 ⓒ카이스트 대학원 총학생회


  한편 A 씨는 “하나의 기관만으로는 모든 인권 문제를 다루기 어렵다”고 밝혔다. 카이스트 인권센터는 대학본부 및 여타 인권 기관들과 긴밀한 협력 관계를 맺고 있다. 카이스트 내에는 대학원생으로 이뤄진 카이스트 인권센터 외에도 ‘인권윤리센터’, ‘옴부즈퍼슨’, ‘스트레스클리닉’, 상담센터의 4개 인권 기관이 존재한다. 카이스트는 이 기관들과 인권센터, 그리고 대학본부 처장단 2명으로 구성된 ‘인권벨트’를 운영하고 있으며, 인권벨트는 두 달에 한 번 회의를 열어 각 기관에 들어온 사안을 공유한다. A 씨는 “학교 부처 및 다른 기관들과 협력하며 한 쪽의 의견만 대변하지 않고 문제에 대한 전면적인 대응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인권센터는 인권벨트 안에서 대학원생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A 씨에 따르면, 학생들은 인권센터가 학생회 산하기관으로서 학생 입장을 공감해주리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인권벨트는 서로 자문을 얻고, 사건을 공동진행하거나 한 기관의 업무를 타 기관에 이관하기도 한다. 주로 상담센터가 심리적인 상담을 전담하고, 옴부즈퍼슨은 교수와 학생 간의 중재를 하며, 스트레스클리닉은 정신질환을 치료한다. 별개로 성폭력과 같이 초기 대처가 중요한 사건이 접수될 경우, 인권센터는 제보자의 동의를 구한 후 인권윤리센터에 사건을 이관한다. 전문 위원으로 구성된 인권윤리센터가 보다 전문적으로 사건의 진상을 조사하고 해결을 모색하기 위해서다. 진상조사가 끝나고 학교 심의위원회에 사건이 회부되면 인권센터장이 위원으로 참여하게 된다. 심의위원회는 교수 2명, 교직원 2명, 학부생 대표 1명 그리고 인권센터장으로 구성돼있다. 서울대에서는 학생이 인권센터 심의위원회에 참여할 수 없지만, 카이스트에서는 적어도 두 명의 학생이 위원으로 들어가 다른 위원들과 동등한 권한을 가진다.


  한편 인권센터는 사건을 전담할 경우, 개인적으로 중재를 시도하거나, 학과장 또는 지도교수를 직접 만나 문제행위의 근절을 요청한다. 보다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인권벨트에 참여하는 대학본부 처장단과 면담을 진행해 사건 해결을 촉구하거나, 총장을 통해 가해지목인 교수에게 공문을 전달하기도 한다. 하지만 신원 노출을 우려해 문제 해결을 포기하는 학생들도 많다. 사후조치를 위해서는 신고자의 신상이 어느 정도 공개될 수밖에 없는데, 그러면 자신의 졸업여부가 불확실해질 수도 있다는 걱정 때문이다. 이러한 고민 속에서 인권센터는 인권벨트 처장단과의 논의를 거쳐 카이스트 전체 교원이 모이는 연간 워크숍에 인권 세션을 추가하는 데 성공했다. 인권센터가 직접적인 조치에 나서기 전에, 학생들이 인권침해로 여기는 구체적 사례를 교수들에게 주지시키기 위함이었다. 또 인권센터는 매해 전체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인권 현황조사를 실시해 학교에 제도 개선책을 제안하고 있다.



인문대 연석회의, 학생이 만들어가는 공동체 인권


  인권센터와 같은 기관이 아니더라도, 학생 자치공동체 내에서 인권문제 해결을 모색하려는 노력도 있다. 서울대 인문대학에서는 지난해 11월부터 채 1년이 안되는 기간 동안 3명의 학생회장 및 학생회장 후보자가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되며 사퇴했다. 세 사안의 공론화부터 진상조사까지 모든 과정을 담당한 건 별도의 외부기관이 아닌, 각 반 대표자로 구성된 ‘인문대 연석회의’였다.


  작년 11월, 제33대 인문대 학생회장이 성폭력을 저질렀다는 의혹이 제기되며 탄핵안이 발의됐고, 결국 제33대 학생회장은 자진사퇴했다. 탄핵 사유에 해당하는 성폭력 내용이 피해호소인의 요청으로 인문대 대의원들에게만 공개되자, 전체 인문대학생대표자회의, ‘스누라이프’ 등에서 내용을 공개하라는 요구가 이어졌다. 결국 사건은 지난 4월 ‘진상조사위원회’가 발표한 진상조사보고서를 통해 공개됐고, 현재는 대리인을 통해 당사자 간 중재가 진행되고 있다. 제34대 학생회장과 제35대 학생회장 후보자는 진상조사에 비협조적으로 응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지난해 11월 제34대 학생회장은 폭행 및 성추행 의혹으로 사퇴를 권고 받은 후 12월 9일 자진사퇴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이후 그는 연락 두절됐으며 올해 1월 27일에야 사퇴문을 제출했다. 제35대 학생회장 후보자의 경우 ‘공명반 피해자대책위원회’가 데이트 폭력 혐의를 주장하며 사퇴를 권고했으나, 후보자가 본인 역시 피해자임을 강조해 현재까지 사건 조사 방법이 합의되지 않은 실정이다. 후보자가 피해호소인을 명예훼손으로 형사고발하며 중재 역시 지연됐다.


사진2.jpeg

▲인문대 연석회의에서 발표한 인문대 회장단 성폭력 사안들에 대한 입장문 ⓒ박윤경 기자


  최근의 사건들을 해결하며 인문대 연석회의는 여러 비판을 받았다. 제33대 학생회장의 경우 사건의 공개범위와 진행속도 에 대한 불만 여론이 일었고, 이후의 두 사건에서는 가해지목 인의 비협조 및 2차 가해를 방지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또 연석회의는 길어지는 조사 과정에서 가해지목인과 피해호소인의 신상을 충분히 보호하지 못했으며, 무엇보다 ‘공동체적 해결’에 대해 명확한 방법을 찾지 못했다. 인문대 학생사회는 피해 제보가 공동체 전반의 자성으로 이어지고, 피해자는 물론 가해자 역시 충분한 반성 이후 공동체로 복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하지만 김희지(철학 15) 인문대 연석회의 의장은 “실제로 그렇게 된 사례는 없었다. 항상 누군가는 공동체로부터 멀어지거나 쫓겨났다”고 털어놓았다.


  김희지 의장이 “성폭력 사건을 어떻게 공론화해야 하는지 정해진 형식조차 없었고, 학소위에서 도움을 받을 수도 없었다”고 밝혔듯, 인문대 연석회의는 아무 기반도 없는 상황에서 사건 해결을 모색해야 했다. 하지만 여러 한계에도 불구, 인문대 연석회의는 인권센터에 사건을 제소하지 않고 스스로 해결을 주도하려 했다. 인권침해 사건이 단순히 당사자 간 조정이나 가해지목인에 대한 징계에 그치지 않고, 인문대 공동체 전체의 문제로 인식돼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김 의장은 지난 1년의 과정을 통해 학생사회가 인권침해 사안을 공동체적으로 해결하는 역량을 키워나갔다고 평가했다. 그는 세 사건을 거치며 “어떻게 2차 가해를 방지하고 당사자의 신원을 보호할 수 있을지 고민이 확장됐다”고 말했다. 사건을 공론화하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학생사회 전체에 성폭력, 2차 가해 등 생소한 개념이 공유됐고, 학생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도 논의가 이어졌다.


  한편 학생사회가 인권 문제를 자체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선 사건 처리과정의 제도화, 가해지목인 및 피해호소인의 협조요청 조치 마련 등 아직 풀어야 할 과제가 많다. 김희지 의장은 이를 위해 “인권문제를 다루는 상설기구가 학생회와 독립된 형태로 단과대 마다 설치돼야한다”고 주장했다. 지금의 구조에선 사건 조사가 학생회 임원에 의해서만 이뤄지며, 따라서 사건 해결 단계에서 학생회를 견제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더불어 김 의장은 “공동체가 성폭력으로부터 안전하고, 인권이 지켜지는 공간이라는 사실을 재확인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공동체 회복을 위한 구체적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공감의 출발점은 학생이어야 한다”


  카이스트가 인권문제 해결을 위해 지금과 같은 협력 관계를 구축하기까지는 4년이 넘는 노력이 있었다. 인권센터 위원들은 학교에서 위원회가 열릴 때마다 인권센터의 존재를 계속해 알렸고, 설문조사 자료와 인권침해 사례를 제시하며 학교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소리를 높였다. 인권센터장 A 씨는 인권센터가 수년간 학교와 문제의식을 공유하기 위해 노력했던 건 같은 학생으로서 문제에 진정으로 공감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인문대 연석회의 역시 뚜렷한 가이드라인이 없어 문제 해결에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김희지 의장이 “제33대 학생회장 사건은 정말 아무 것도 없는 황무지”였다고 회상할 정도다.


  서울대 인권센터는 교내 유일한 전문 인권 기관으로서 서울대의 모든 인권 문제를 전담해왔지만, 학생참여 및 소통 배제 등으로 온전한 해결에 있어 한계를 보였다. 기관과의 협력, 구성원 전체의 고민을 통해 학생인권을 지켜나가고자 했던 카이스트 인권센터와 인문대 연석회의. 학생 입장에서 출발해 인권문제를 접근한 두 단체가 서울대의 현 실정에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학생이 인권센터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