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호 > 특집
녹두, 새로운 예술공간이 되다 꿈꾸는 예술가들의 특별한 이야기를 들어보다
등록일 2017.12.03 20:02l최종 업데이트 2017.12.06 21:04l 김가람 기자(1004grk@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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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가의 활기찬 바람은 점점 잦아들어도, 새로운 색깔의 꿈이 녹두에 찾아들고 있다. 영화, 음악, 미술, 춤 등 저마다의 이야기를 가진 예술가들이 녹두에 모이고 있는 것이다. 홍대, 건대와 같이 예술가들이 기존에 선호하는 지역도 아닌, 녹두 고시촌에서 예술을 펼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녹두에 자리한 네 명의 예술가를 만나봤다. 


영화인과 관객이 만나는 30분, 자체휴강시네마

  녹두거리의 초입이라 할 수 있는 신림로 11길, 일명 ‘롯데리아 골목’. 무심코 지나칠만한 허름한 건물에 녹두의 특별한 영화관이 있다. 한 술집의 창고였던 지하공간은 올해 2월 박래경 ‘자체휴강시네마’ 대표의 손을 거쳐 조그만 영화관으로 탈바꿈했다. 직접 단편영화를 제작하며 매력을 느꼈다는 박 대표는 단편영화를 “상업영화 같은 극적인 전개나, 흥행에 대한 부담이 없기 때문에 신선한, 가장 날것의 영화”라고 소개했다. 그러나 단편영화제와 같은 일시적인 행사가 아닌 이상, 한 해 400편이 넘게 쏟아지는 단편영화를 만날 수 있는 장소는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박 대표는 이에 안타까움을 느껴 단편영화만을 상영하는 상설 영화관, 자체휴강시네마를 만들었다. 그는 자체휴강시네마가 단편영화를 찾는 관객은 물론, “배우나 연출자, 제작진에게도 영화제가 아닌 곳에서 일반 관객을 만날 숨구멍”이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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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관 벽면에 붙은 관람객들의 한줄평. '자체휴강시네마'에 대한 애정이 서려있다.


  자체휴강시네마에서 영화 한 편의 관람료는 3,000원. 이 중 1,000원은 영화 제작자에게 돌아가고, 남은 2,000원만이 박 대표의 몫이다. 박 대표는 지난 9월까지 관람료 2,000원을 받았던 것에 비해 훨씬 사정이 여유로워졌다며 웃었다. 영화관이 녹두에 위치하게 된 배경에는 비용문제가 컸다. 비싼 임대료 때문에 다른 대학가에서는 저렴한 가격에 단편영화를 상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자체휴강시네마라는 이름처럼, 박 대표는 대학생, 사회초년생, 고시생 등 녹두의 다양한 사람들이 잠시 일을 제쳐두고 부담 없이 단편영화를 즐길 수 있기를 바란다. “앞가림할 수 있을 정도의 돈만 벌면 충분하니, 좋은 단편영화를 많이 알아봐줬으면 하는 바람”이라는 박 대표는 녹두 주민들과도 특별한 인연을 만들었다. 박 대표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는 손님은 지난 11월 마지막 사법고시에 합격한 한 단골 고시생. 합격소식을 들고 찾아온 단골에게서 “후광이 나오는 것 같았다”며 웃던 박 대표는 “고시촌의 시대가 한 페이지 끝나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사법고시 준비생이 떠난 자리에 누가 들어올지 기대된다”며 새롭게 만날 녹두를 기다리고 있었다. 


누구도 할 수 없는 우리만의 이야기, 고시촌단편영화제

  자체휴강시네마 외에도 녹두에는 1년에 1번, 다양한 단편영화를 찾아볼 수 있는 영화제가 열린다. ‘고시촌단편영화제’는 2015년 처음 개최된 이래로 청소년회관, 카페 등 녹두의 여러 장소에서 다양한 단편영화를 선보이고 있다. 올해 제3회 고시촌단편영화제는 지난 11월 25일부터 이틀간 ‘내 말 들려?’라는 주제로 진행됐다. 출품작은 총 243편. 다른 지자체 영화제에 보통 100편 안팎의 작품이 접수되는 것과 비교하면, 고시촌단편영화제에 대한 창작자들의 반응은 뜨거운 편이다. 창작자의 자격요건에 아무런 제한을 두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고등학생부터 대학교수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고시촌단편영화제에 작품을 접수한다. 허경진 고시촌단편영화제 대표는 “‘정제되지 않은 이야기’를 모두 받기 위해” 자격조건을 열어놓는다고 설명했다. 허 대표는 많은 단편영화제가 장편 데뷔의 발판으로 사용된다며 “창작자 고유의 힘을 담은 영화는 이곳(고시촌단편영화제)에서밖에 찾기 힘들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놓고 B급 영화를 받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거칠기도 하지만 자신만의 색깔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허 대표에 따르면, 녹두는 고시라는 작은 희망에 울고 웃던 많은 이들의 사연이 담겨 있는 곳이다. 단편영화 속 ‘내 이야기’와 녹두의 이야기들이 많이 닮아있다고 말하는 허 대표의 눈에는 녹두에 대한 애정이 서려있었다.


(2)고시촌단편영화제.JPG

고시촌단편영화제의 특별 프로그램 '아시아포럼'. 단편영화 감독과 관객이 영화에 대해 토론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장소는 녹두에 위치한 카페.



  고시촌단편영화제는 상영방식 또한 기존 영화제와 다르다. 고시촌단편영화제는 정식 영화관이 아닌 녹두에 위치한 카페 여섯 곳에서 영화를 상영한다. 이에 대해 허 대표는 대기업 상영관의 스크린 독과점으로부터도 자유롭고, 지역경제와 공동체도 활성화시킬 수 있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카페에 방문한 주민들은 음료를 마시며 스크린으로 영화를 감상하고 대화를 나눌 수도 있다. 관심 있는 작품을 찾아 상영 중 다른 카페로 이동하는 사람도 있다. 또 영화제의 상징인 레드카펫 위 포토월에서 드레스를 빌려 입고 사진을 찍을 수 있으며, 영화를 상영하는 카페 역시 수익을 올릴 수 있다. 주민이 함께 참여하는 영화제에는 예상하지 못했던 에피소드도 종종 생긴다. 연령등급을 매기지 않는 단편영화의 특성상, 작년까지 고시촌단편영화제는 모든 영화를 연령제한 표시 없이 상영했다. 허 대표는 “아이와 함께 온 부모들이 영화의 폭력적·선정적인 장면에 놀라 항의한 적 있다”며, 지역주민의 축제인 만큼 올해부터는 연령등급을 표시했다고 말했다.


노래하는 예술계급, 브릿지칼라

  녹두와 신림역 사이로 흐르는 도림천, 그 다리 밑에서 노래를 부르던 청년들은 우연히 만나 서로의 음악에 반했고, 청년예술인단체 ‘브릿지칼라(Bridge Collar)'를 결성하기에 이르렀다. 음악이 주는 위로에 공감하며 가까워졌다는 멤버들은 현재 봉림교에서 함께 연주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브릿지칼라의 유주호 대표는 처음 녹두에 왔을 때 기타가 아닌 고시책을 들고 있었다. 힘든 고시 생활동안 유 대표에게 코인노래방은 유일한 해방구였고, 그는 고시실패 후의 우울함도 음악을 통해 극복했다. ‘좌절한 사람’에서 ‘음악 하는 사람’으로 변했다는 유 대표는 자신이 받았던 위로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고 말한다. 
  
  브릿지칼라의 멤버들은 서로 다른 이유로 삶의 어려움에 부딪혔지만, 음악에 대한 생각만큼은 같다. ‘평생 노래하는 사람’을 꿈꾼다는 이들은 왜 하필 녹두의 다리 밑에서 노래를 시작했을까. 유 대표는 1인 가구 비중이 높은 고시촌 일대가 음악을 통해 하나의 예술공간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믿는다. 그는 이어폰을 끼고 무심히 지나가던 사람들이 브릿지칼라의 노랫소리에 가던 길을 멈추고 음악을 듣곤 했다며 “음악을 통해 서로가 연결될 수 있다”고 확신했다. 이런 믿음 아래 유 대표는 “생활공간인 도림천을 놀이와 예술의 공간으로 변화시키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브릿지칼라는 관객이 하고 싶은 말을 즉석에서 받아 노래로 만들어 부르는 ‘막 쓴 곡 콘서트’도 구상 중이다.


(3)브릿지칼라.jpg

11월 19일 '브릿지칼라'의 버스킹 중 한 멤버가 도림천 다리 밑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하지만 음원수익도 낮은 실정에, ‘예술 불모지’인 녹두에서 활동하는 젊은 음악가들은 경제 문제를 떠안을 수밖에 없었다. 현실적인 어려움 속에서 이들은 스스로를 일종의 노동계급으로 정체화했다. 브릿지칼라의 ‘칼라(collar)'는 다리 밑에서 음악 하는 예술계급을 나타내는 이들만의 신조어다. 멤버들은 “음악은 예술이기도 하지만 우리만의 노동방식”이라며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공연을 하고, 이에 합당한 임금을 받겠다”는 목표를 이름에 담았다고 설명했다. 브릿지칼라는 ’값어치‘ 있는 음악을 하겠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수없는 연습을 통해 다양한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청년예술은 다채롭다, 작은따옴표

  “쓰레기를 가져오시면 캐리커처를 그려드립니다.” 예술단체 ‘작은따옴표’는 예술에 대한 대가로 화폐 대신 쓰레기를 받는다. 이들은 쓰레기와 예술을 맞바꾼다는 의미로 자신들의 활동에 ‘아트래시(artrash)’라는 이름을 붙였다. 아트래시는 장서영 작은따옴표 대표의 발상에서 처음 시작됐다. 축제에서 쓰레기를 어떻게 처리할 수 있을지 방법을 고민하던 중, 장 대표는 캐리커처와 페이스페인팅 부스를 만들고 방문자들에게 팁으로 쓰레기를 받기 시작했다. 그 결과 아트래시 부스로 현장의 쓰레기들이 모이면서 축제는 깨끗이 정리될 수 있었다. 

  장서영 대표는 3년 전만 해도 사회문제에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고 말했다. 2014년 4월 16일, 장 대표의 친구가 세월호 참사로 가족을 잃으면서 장 대표의 가치관도 바뀌었다. 세월호 참사 이후 그는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사회문제의 당사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한다. 이를 계기로 장 대표는 사회문제에 목소리를 내기로 결심했고, 작은따옴표는 현재까지 사회참여형 예술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쓰레기문제와 환경을 위한 아트래시,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는 ‘못다 핀 꽃 프로젝트’,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엔드 프로젝트’ 등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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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를 주워서 가져오시면 예술로 바꿔드립니다" 동네 주민을 상대로 바디페인팅 중인 아트래쉬 예술가. ⓒ작은따옴표 페이스북



  작은따옴표가 고시촌에 자리잡게 된 것도 예술을 통해 사회적인 의미를 표현하고 싶다는 철학이 반영된 결과다. 많은 청년들이 실패와 좌절을 경험하는 공간인 고시촌은 장 대표의 눈에 ‘문화불모지’로 보였다. 그는 고시촌에 한 뼘의 희망을 피워내기 위해서라도 “예술이 가장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