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호 > 특집
우울해도 괜찮은 사회를 위해 우울증 치료에 대한 적극적 지원과 편견 없는 시선 필요해
등록일 2018.03.07 21:46l최종 업데이트 2018.03.07 21:47l 이아영 기자(luna7@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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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보험으로 해드릴까요?” 우울증 환자가 진료 후 듣는 질문이다. 정신건강의학과 진료 시 약물을 처방받으면 보험 적용을 받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병력이 드러나는 것에 대한 거부감으로 비보험 진료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비보험으로 진료받을 때 환자는 진료비와 약물비용을 모두 스스로 부담해야 한다. 우울증 환자들이 비용 부담을 지고서라도 비보험 진료를 요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울증 환자가 사회적 시선과 제도의 한계로 인해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살펴봤다.


국내 61만 우울증 환자, 부정적 시선에 치료 망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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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정신건강센터



  ‘2016년 정신질환실태 역학조사’에 따르면 국내에서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 중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를 받은 사람은 22%에 불과했다.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이 자신의 병을 적극적으로 치료받기 힘든 원인 중 하나는 우울증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 인식이다. 국립정신건강센터의 ‘정신질환에 대한 인식 및 수용도 조사’에 따르면 ‘정신과 치료 경험이 있는 사람을 옆집 이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32%만이 긍정적으로 답했다. ‘누구나 정신질환에 걸릴 수 있다’는 문항에 응답자의 약 80%가 동의한 것에 비해 낮은 수치다. 보험연구원 이정택 연구위원은 “해당 조사는 정신질환을 앓는 이에 대한 사회적 수용도가 낮은 현실을 드러낸다”고 설명했다.


  우울증 치료 기록이 향후 진로에 불이익을 미칠 것이라는 걱정이 치료를 막기도 한다. 삼성 서울병원 홍진표 교수는 “우울증 병력이 구직 활동에 불리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치료를 꺼리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우울증 환자의 불안이 막연한 추측에 근거한 것은 아니다. 홍진표 교수는 “현대사회에서는 정신질환을 무능함의 소산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며 우울증을 앓는 것을 능력의 부재로 여기는 사회 분위기를 지적했다. 그러나 그는 “개인정보보호법에 의해 질병 치료력은 제3자에게 제공될 수 없다”며 우울증 치료에 막연한 불안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덧붙였다.  우울증 진료 경험을 나눌 사회적 공간이 부족하다는 점 또한 치료를 어렵게 한다. 의료서비스 이용 시 지인의 진료 경험을 참고하는 경우가 많은데, 정신과 진료 경험은 공유되는 경우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홍진표 교수는 “정신과 진료 경험은 물어보기도, 답해주기도 어렵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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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건복지부의 '2016정신질환실태역학조사'를 통해 한국의 정신건강서비스 이용률이 낮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보건복지부



상담센터와 정신건강의학과, 인력과 비용 문제 지적돼


  사회적 인식을 극복하고 우울증 치료에 임하더라도 또 다른 난관이 있다. 상담센터의 경우 서비스 비용이 높거나 상담의 질이 보장되지 않고, 정신건강의학과의 의료서비스는 불충분한 실정이다. 사설 상담서비스는 상담 1회기당 비용이 10-20만원에 이른다. 상담은 현행 의료법상 의료서비스로 분류되지 않아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상담원의 전문성을 확인하기 힘들다는 점도 사설 상담기관 이용을 어렵게 한다(‘심리상담서비스, 우리도 관리가 필요해’, 〈서울대저널〉). 한편 지역별로 설치된 공공 정신건강증진센터는 부족한 전문인력과 과도한 실적 경쟁으로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신건강증진센터 운영실태 및 발전 방안 연구’에 따르면 서울시 정신건강증진센터에 근무하는 정신건강요원 한 명은 평균 70여 명의 정신질환자를 관리한다. 전국보건의료노조는 “1일 8시간 근무도 부족해 시간 외 근로가 다반사”라며 과중한 업무부담을 지적했다. 실적 경쟁으로 인한 상담원의 스트레스 또한 공공 상담기관의 큰 문제다. 서울시에서는 상담 건수로 실적을 평가하고 이를 인센티브 지급 기준으로 삼는다. 상담의 질이 아닌 양으로 평가받는 현 체제에서 공공 상담요원은 내담자에게 집중된 상담서비스를 제공하기 어렵다.


  한편 저책정된 상담치료 진료비는 결과적으로 우울증 환자의 치료에 악영향을 끼친다. 정신건강의학과는 상담치료에 대한 진료비 보상이 충분하지 않아 약물처방 시 상담이 제한적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30분 동안 환자 1명을 집중적으로 상담 치료해도 진료비 수입은 3명을 10분씩 단순 약물 처방으로 진료할 때의 절반이다. 보건복지부 2016년 조사에 따르면 개인정신치료 중 73%의 환자 진료 시간이 15분 미만에 머물렀다. 또 인지행동치료는 진료비가 5만-26만 원으로 병원별 편차가 심한 데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환자가 짊어질 부담의 몫이 크다.



정신과 병력, 보험가입과 사회생활의 걸림돌


  정신과 진료기록은 이후 사회생활에 불편함을 낳기도 한다. 보험 가입 시 정신과 병력은 불리하게 작용한다. 보험사는 “정신질환이 다른 질병을 유발할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로 정신과 진료 경험이 있는 보험 신청자의 가입을 거부한다. 이정택 연구위원은 “보험사는 병의 정도에 관계없이 모든 정신질환자에게 까다로운 가입조건을 내세운다”고 말했다. 현재 보험사 가입 기준에 따르면 우울증이 완치된 경우라도 5년간 보험에 가입할 수 없다. 또 정신질환 병력을 고지하지 않은 채 보험에 가입한 경우 추후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기도 한다. “정신질환의 위험성과 다른 질병간의 관계에 대한 통계 자체가 없어 보험 가입과 보험금 지급 기준을 마련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정신과 치료기록을 이유로 보험 가입을 거부하는 것은 차별”이라 발표했지만 보험사는 여전히 까다로운 가입규정을 유지하고 있다. 이에 이정택 연구원은 “정신건강에 대한 통계가 마련돼 그에 따라 보험 가입의 합리적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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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보험회사의 질병보험 약관. 정신 및 행동장애로 인한 질병에는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다. ⓒ보험연구원



  정신질환자 중 병역대상자는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정신과 병력이 드러날 수도 있다. 정신과 병력이 있는 경우 사회복무를 마친 후 예비군 훈련을 가지 않아 공동체에서 정신과 병력이 알려질 우려가 있는 것이다. 우울증으로 인해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하게 된 A씨는 “예비군 훈련을 친구들과 함께 가는 분위기에서 혼자만 빠지면 정신과 병력이 드러날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정신질환자를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에 마음의 병을 앓는 이들은 사회에서 지워진다. 마음의 병에 유난히 가혹한 사회가 ‘우울해도 괜찮은’ 사회가 되려면 차별적 시선을 거두고 치료를 충분히 지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