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호 > 특집
‘정의로운 전환’, 에너지를 통해 민주주의를 말하다 에너지 전환, 환경과 노동 그리고 지역사회와 함께 해야
등록일 2018.03.08 16:02l최종 업데이트 2018.03.08 16:17l 허유진 기자(qq8779@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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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10월 20일, 약 3개월간의 공론화 과정 끝에 59.5%의 찬성률로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가 결정됐다. 공론화위원회를 통해 전문가의 영역으로 여겨지던 에너지 정책에 시민의 목소리가 반영되기 시작했다. 이에 공론화를 시작으로 중앙 정부 중심으로 결정·집행되던 기존의 에너지 정책을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된다. 에너지 사업의 당사자지만 지금까지 정책에 반영되지 못한 이들의 목소리는 이 주장에 힘을 싣고 있다. 정부가 친환경 에너지로의 전환을 계획하고 있는 지금, 에너지 전환은 시민의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을까. 민주적인 에너지 전환 개념 ‘정의로운 전환’을 중심으로 최근 에너지 전환 공론화 과정에서 소외된 목소리와, 앞으로의 에너지 전환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짚어봤다. 


지역사회와 노동계, 에너지 정책에 담겨야 할 목소리

  이번 공론화 과정은 중앙 정부와 전문가만이 참여하던 에너지 정책 결정에 시민들이 참여했다는 점에서는 고무적이나, 이해당사자의 참여 없이 단기간에 이뤄졌다는 비판도 있다. 신고리 5·6호기의 부지가 들어선 울산 울주구 서생면, 40년 동안 원전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이곳 주민들은 이번 공론화 과정에 참여하지 못했다. 이상대 ‘서생면 주민협의회’ 회장은 “주민들이 공론화 결과에는 동의하지만 그 과정에 불만이 있다”며 주민들의 입장이 공론화 과정에 반영될 통로가 없던 것을 지적했다. 공론화위원회는 외부 이해당사자 단체와의 협의 채널인 소통협의회를 운영했지만, 이 회장을 제외한 주민 참석의 기회는 보장되지 않았다. 이 회장은 공론화위원회 참여단 선정 등의 과정이  민들과 공유되지 않은 부분 역시 불만이 라고 전했다. 그는 “사람들이 잘 살지 않는 원전 주변에 살면서도 지역 발전 혜택을 보지 못했다”며 이해당사자인 지역주민들의 입장 역시 에너지 계획에 고려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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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론화 과정에서 이해관계자 소통협의회에 참여한 단체 ©신고리5·6호기공론화위원회



  또 다른 이해당사자 ‘한국수력원자력 노동조합’은 이번 공론화 과정 자체에 반발하며 참여하지 않았다. 노조 측은 법에 의해 진행되던 원전공사의 지속 여부를 정부 임의대로 공론화 결과를 참고해 결정하는 게 위법하다는 입장이다. 이병기 한국수력원자력 중앙노조 집행위원장은 “스위스는 33년 간 5번의 국민투표를, 독일은 25년간의 공론화 과정을 거쳐 탈원전 정책을 마련했다”며 “한국처럼 탈원전 정책을 정부의 말 한 마디에 뒤엎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얘기”라고 지적했다. 지금의 에너지정책은 필요한 때마다 급히 논의해 결정하는 주먹 구구식 과정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해당사자를 포함해 다양한 사회 구성원들의 장기적인 합의를 거친 에너지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에너지 기본 정책과 노동조합 모두 인간 삶의 질 향상을 목표로 한다”며 “미래 세대를 위한 에너지 기본 정책 공론화에는 당연히 참 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에너지기후 정책 연구소’ 김현우 연구부소장은 단기간 시민들의 합숙으로 진행된 이번 공론화 과정에 대해 아쉬움을 표하며 “앞으로는 만나서 같이 논의하고 결정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기간의 다양한 논의를 위해서는 국가 수준의 협상 테이블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 부소장은 "토론 과정 등을 통해 같이 고통과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계기들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각자도생할 수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소외되는 이 없이, '정의로운 전환'

  김현우 부소장은 이번 공론화 과정의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에너지 정책에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 개념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의로운 전환은 미국의 노동운동가 토니 마조치(Tony Mazzocchi)가 주창한 개념으로, 기후위기 등 환경문제에 대응하는 산업 및 에너지 전환 과정이 지역사회와 노동과 친화적이어야 한다는 의미다. 김 부소장은 "친환경 에너지로의 전환은 필연적으로 지속가능한 산업경제 발전과 병행돼야 한다"며 "그 과정과 결과가 모두 정의로워야 한다는 것이 곧 정의로운 전환"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말하는 정의란 곧 노동자와 지역사회가 고용이나 인간관계 등의 희생이 없는 것을 의미한다. 노동과 환경의 연대로 시작한 이 개념은 현재 국제노동조합총연맹을 비롯한 세계 주요 노동조합의 기조 중 하나로, 파리기후협정 전문에 포함되기도 했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정의로운 전환이 쉽게 이룰 수 있는 목표는 아니다. 정의로운 전환을 위해서는 지역발전과 노동, 환경의 연대가 불가피함을 깨달을 수 있는 계기가 필요한데, 아직 국내엔 이런 계기가 충분히 마련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김현우 부소장은 탄광지역의 사 례를 들며 국내에서 시도됐던 연대의 경험이 왜 ‘미완’으로 끝났는지 설명했다. 석탄산업합리화정책이 시행된 후, 태백·정선의 탄광 노동자와 지역 사회는 지역 개발 대책으로 카지노를 비롯한 종합 관광단지를 설립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지역 고용 창출의 효 과는 적었고, ‘강원랜드’ 입지 선정을 둘러싼 갈등이나 도박 중독 등의 부작용이 발생했다. 김 부소장은 짧은 시간 안에 대책을 마련한 나머지 다양한 선택지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부족했던 탄광지역의 사례를 반추삼아 정의로운 전환의 세 원칙을 제안했다. 그에 따르면 지역사회·정부·노동계가 함께하는 자리에서 ‘지역에 좋은 일자리가 얼마나 보장되는지’, ‘40년 동안 지역에서 작동할 수 있는 산업 설계인지’, ‘사회적 동의를 얻을 수 있는지’, 세 가지 원칙이 고려돼야 연대의 성과가 쌓여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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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타닉 유람선을 건설했던 벨파스트(Belfast)의 할란드앤울프(Harland&Wolff) 조선소에서 풍력터빈을 조립하고 있다  ©http://www.belfasttelegraph.co.uk/business/news/shipyard-secures-new-wind-turbinesdeal-28494297.html



  아일랜드의 벨파스트(Belfast)의 산업 전환 사례는 대표적인 정의로운 전환 사례로 꼽힌다. 타이타닉 유람선을 건설했던 할란드앤울프(Harland&Wolff) 조선소는 조선업이 쇠락하자 조선소 노동자들과 선박 조립에 사용하던 크레인을 활용해 풍력터빈조립공장으로 거듭 났다. 스웨덴 말뫼(Malmö)의 친환경 도시로의 전환 역시 정의로운 전환 사례로 볼 수 있다. 조선업이 쇠락한 이후 코쿰스(Kockums) 조선소 터에 친환경 주거 단지가 들어서고, 빗물, 태양열, 가정의 쓰레기 등을 연료로 활용하는 저탄소 도시로 거듭나며 관광수입도 증가했다. 국내의 강원도 삼척시 또한 친환경 관광 산업과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동시에 꾀해 지역 사업에 성공한 정의로운 전환 사례다. 20년간의 반핵 운동으로 원전 부지 고시 취소를 이끌어낸 강원도 삼척시는 스킨스쿠버나 해양 레일바이크 등 지역 경관을 이용한 관광산업을 기반 삼아 지역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또한 삼척시는 폐광산부지를 활용한 7MW 규모의 태양광발전소 건설, 마을회관·경로당에 태양광발전시설 설치, 18개 마을 876가구를 대상으로 태양광, 태양열, 지열 등을 복합적으로 설치하는 ‘에너지 자립 마을 조성사업’ 등 신재생에너지 기반 성장 도시를 조성하고 있다. 김현우 부소장은 이 사례들에 대해 “친환경 관광 산업과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 함께 이뤄지면 사람들을 불러 모아 지역 재생 사업을 성공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의로운 전환, 민주주의로 나아가다

  전문가들은 정의로운 전환의 첫 걸음으로 에너지 정책 결정 시스템의 변화를 꼽았다. 박용신 ‘환경정의’ 포럼운영 위원장은 중앙정부가 모든 사항을 결정 하는 것이 아니라, 에너지 분권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정부가 개별 지역 환경과 주민들의 의견을 고려해 지 역에 맞는 정책을 펼쳐 에너지 자립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은 중앙정부가 발전소 건설, 관리 및 전기 공급 등을 모두 담당하는 중앙 집행체제 로, 지방자치단체가 에너지 공급소를 소유하거나 지역별로 에너지 요금을 정하는 시스템이 존재하는 독일과 비교된다. 일례로 독일 뮌헨은 태양열 전기와 원자력 전기 요금을 별도로 부과해 소비자가 환경보호 의지에 따라 어떤 에너지를 쓸지 결정할 수 있게 한다. 에너지 분권과 더불어 중앙정부 내 부처를 잇는 사회적 기구의 필요성 또한 제기됐다. 김현우 부소장은 현 의사결정의 문제로 정부부처 간의 소통 단절을 꼽으며 이제는 정부부처끼리 칸막이를 없애고 경제, 산업, 고용, 사회적 복지에 대한 사회적 담론을 형성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정의로운 전환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들에 대해서도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박용신 위원장은 “에너지 전환의 가장 중요한 개념이 정의기에, 에너지 빈곤층이 현재보다 더 어려움에 처해서는 안 된다”며 에너지 빈곤층이 받을 고통을 완화시키는 에너지 복지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에너지로 운영되는 현대사회에서는 최소한의 생활 유지를 위해 필요한 에너지를 이용할 권리, 즉 에너지 기본권의 보장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하며 실현 방안 중 하나로 최저 생활수준의 에너지는 최소한의 비용으로 공급하는 정책을 제언했다. 김현우 부소장은 재생에너지도 화력·원자력 발전소처럼 수익 분배, 경관 문제 등 갈등을 촉발시킬 수 있다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시민 참여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구체적인 방향으로 “지역의 재생에너지에 투자하는 제도, 에너지 정책 수립 시 시민 참여 의무화 등을 통해 시민들이 재생에너지의 이해당사자가 되는 경험이 쌓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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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건설 중인 신고리 5·6호기 조감도 ©한국 수력원자력 홈페이지(http://www.khnp.co.kr/content/179/main.do?mnCd=FN05040501)



  현대인의 일상은 에너지로 만들어진다. 식료품도, 공산품도, 에너지가 없다면 우리 손 안에 올 수 없다. 그렇기에 에너지를 어떻게 만들고, 어떻게 나눠 쓸 것인지는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마주할 수밖에 없는 고민이다, 김현우 부소장은 “에너지를 제외하고는 좋은 사회로 갈 수 없기 때문에, 에너지를 통해 정치, 경제, 사회를 아우르는 가장 넓은 민주주의에 대해 얘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2050년까지의 탈원전 실현을 발표한 지금, 우리 사회는 에너지 전환을 통해 더 나은 민주주의로 나아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