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호 > 특집
네가 약한 것도, 잘못한 것도 아냐 우울증과 양극성장애를 겪은 우리가 나눈 이야기
등록일 2018.03.08 16:52l최종 업데이트 2018.03.08 20:13l 유지윤 기자(jiyounu@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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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담회 질문 구성 시 기분장애 전문가 삼성 서울병원 전홍진 교수의 자문을 받았습니다. <서울대저널>에 도움주신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61만 명. 2016년 일 년간 한국에서 우울증을 경험한 사람의 숫자다. 보건복지부는 ‘2016년도 정신질환실태 역학조사’에서 우울증의 평생유병률이 5%라고 밝혔다. 살면서 스무 명 중 한 명은 우울증을 앓는 셈이다. 우리 주변에도 마음의 병을 앓은 이들이 있다. 〈서울대저널〉은 좌담회를 통해 우울증과 양극성장애를 겪은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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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양극성장애를 겪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자각했나?

C 일상적으로 하던 일들이 다르게 느껴졌다. 하루는 버스 기사님이 차를 과격하게 모시더라. ‘위험하다’는 생각보다 ‘사고가 나버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처음 이런 생각이 들었을 때는 거주지를 옮긴 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힘든 것인 줄 알았다. 그런데 휴학을 하고 쉬면서도 낫지를 않더라. 결국 학교 보건소 정신건강의학과에서 병을 진단받고 우울증을 겪고 있는 걸 알았다.
B 마음이 울적할 때 기르는 고양이를 보면 덜 우울해지곤 했다. 하지만 우울증을 겪을 땐 스스로를 돌보기도 힘들어 고양이의 존재가 짐처럼 느껴졌다. 시험기간에조차 공부하기 힘들고 주어진 일을 수행하는 것도 어려웠다. 맡은 일을 미루니 자괴감이 심해졌고, 죽음에 대해 자주 생각했다. 이런 증상이 2주 넘게 지속되자 ‘이건 병이구나’라고 생각했다.
A 초등학교 때부터 우울증을 앓았던 것 같지만 구체적인 증상이 나타난 건 고등학교 때다. 고등학교 2학년 때 학교에서 호흡곤란이 오고 눈앞이 뿌예진 적이 있다. 어릴 때부터 앓던 우울증이 발전돼 공황장애가 왔던 것이다. 1년쯤 지난 후 수능이 끝나고 정신과에 방문했더니 우울장애, 불안장애, 공황장애를 겪고 있다고 진단하더라.
D 양극성장애를 앓았다. 우울증이 조증 및 경조증과 번갈아 나타나는 정신질환이다. 병을 앓을 때는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들고 수업에 들어가도 잠이 와 반 이상을 흘려보냈다. 학업수행이 힘든 것은 내 의지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증상이 여러 번 반복돼 병원을 방문하고 나서야 양극성장애를 겪고 있음을 알았다.


우울증·양극성장애를 겪고 있음을 자각한 뒤 생각하는 방식에 달라진 점이 있다면?

B 힘든 시간을 보내는 것이 내가 약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병이라는 것을 알고 나니 내 잘못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애쓴다고 될 게 아니라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D 달라진 건 거의 없었지만 한편으로 속이 시원했다. 약물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병’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또 내 감정이 양극성장애에 따라 어떤 주기로 변하는지 파악하게됐다. 이제는 언제 일의 능률이 오르고, 언제 휴식이 필요한지 판단할 수 있다.
C 굳이 고생을 사서 하지 말자는 마인드가 생겼다. 원래 욕심도 많고 일을 많이 벌이는 사람인데 이제는 일의 양을 조절하는 편이다.
A 사람이 고꾸라질 때도 있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됐다. 이전에는 계속해서 발전하고 성공할거라고만 생각했는데, 인생에도 주기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때로는 깨끗하게 비워야 이후 다시 채울 시기를 잘 맞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울증·양극성장애를 겪는 동안 어떤 증상이 있었고, 어떤 점이 힘들었는가?

C 잠들기가 힘들어 늦은 시간에 겨우 잤다. 잠에 들더라도 깊게 자지 못해서 만성피로를 달고 다녔다. 힘들면 술에 의존할 때가 많았는데, 나중에는 술로도 감정이 해소되지 않아 흡연을 했다.
D 학업 수행이 힘들었다. 글이 한 문장도 안 읽히는 때도 있었고, 과제도 하루에 두 문장을 겨우 썼다. 집중력 저하가 양극성 장애의 증상이라고 하더라. 또 수면량이 비정상적으로 늘었다.
A 체중증가가 부작용이라는 항우울제를 먹는데도 급격히 살이 빠졌다. 활동량과 먹는 양이 적기도 했지만 우울증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가장 컸던 것 같다.
B 빨리 죽음을 앞당기고 싶어 의식적으로 흡연량을 늘렸다. 그러나 흡연을 할 때에도 대문 밖으로는 나가지 못해 현관과 대문 사이에서 폈다. 그만큼 집 밖으로 나가기 힘들고, 공황장애와 거식증이 같이 왔다. 거식증 때문에 배가 아예 고프지 않거나 음식을 먹다가도 ‘이걸 왜 먹고 있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언제 공황이 올지 모른다는 공포감에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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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느낀 심리학 썰] 우울증의 다양한 표정들' 중에서. ⓒ<서늘한여름밤의 내가 느낀 심리학 썰>



우울증·양극성장애를 겪게 된 이유를 얘기해줄 수 있다면?

D 한때 사시를 준비했는데, 공부에 집중하기 힘들었다. 이 때문에 스스로에게 실망했던 것 같다. 또 이과에서 문과로 진로를 바꾸며 스트레스를 받았다. 나 자신에 대한 실망감과 스트레스가 쌓이며 마음의 병이 된 것 같다.
A ‘암흑기’와 같았던 유년기의 경험이 우울증에 영향을 줬다. 이때 초기진화를 못해 이후 더 큰 병으로 발전한 것 같다. 중학교 때 아버지께 정신과에 가보고 싶다고 말씀드렸는데, 당시에는 우울증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부족했어서인지 실없는 소리처럼 받아들이셨다. 이때 정신과에서 전문적 도움을 받거나 가족들과 깊은 대화를 나눴다면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C 완벽주의같은 게 있는데, 대학에 와 전공이 적성에 맞지 않았고 성적을 그리 잘 받지도 않았다. 스스로에 대한 실망이 몰려왔고, 자존감이 낮아졌다. 시작은 학업 때문이었지만 이후엔 마치 거울에 비춰보듯 타인에게 내가 어떻게 보일지를 너무 의식한 것도 우울증 발병에 영향을 미친 것 같다.


병원에서 치료받거나 상담을 받는 등 전문적 도움을 받은 경험이 있다면?

A 정신건강의학과에 방문해 인지행동치료, 약물치료를 병행했다. 불면증과 식욕 감퇴가 눈에 띄게 개선됐다. 처음에는 병원의 진입장벽이 높다고 생각했으나 치료를 받으며 친숙해졌다.
B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약물을 처방받고 상담치료를 받았다. 병원을 방문한 건 치료보다 당장의 일상생활을 제대로 하고 싶어서였다. 의사가 “이번 주말까지는 과제를 끝내오세요” 같이 명쾌한 행동방식을 제시해준 게 도움이 됐다. 더불어 나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법을 배웠다.
C 행동을 지도해주는 게 나도 도움이 됐다. 나는 대학생활문화원과 학교 보건소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했지만 크게 도움을 얻지 못해 다른 정신건강의학과로 옮긴 후에야 치료효과를 느꼈다. 그곳은 학교 보건소와 달리 상담시간이 충분했고, 의사가 “통제할 수 있는 건 마음이 아니라 행동뿐”이라고 말한 것이 큰 도움이 됐다.
D 학교 보건소에서 병을 진단받고 이후 대학병원으로 옮겼다. 양극성장애는 유형과 정도에 따라 병역 등급이 달라져 대학병원의 정밀한 검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대학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이 효과가 좋았다. 약을 먹으며 감정기복이 줄고 과제 수행 능률도 올랐다. 현대 의학의 힘인가 했다.


병원과 상담시설 방문 외에 우울증·양극성장애에 대처하기 위한 나름의 방식이 있었다면?

B 소수의 주변 사람들과만 연락하며 내 얘기를 털어놨다. 하지만 우울의 정도가 심해지면 가까운 친구들에게조차 말하기 힘든 감정을 느꼈다. 이때는 일기를 쓰며 감정을 정리했다.
A 글을 쓰는 게 나도 도움이 됐다. 감정을 노트에 쓴 후 찢어서 버리면 마치 배설하듯 감정을 흘려보내는 느낌이 들었다. 목적의식을 뚜렷하게 가질 수 있는 운동을 하는 것도 마음을 쉽게 비우는 방법이다.
C 나도 몸을 움직이며 잡념을 없애고 싶어 요가를 다녔다. 힘든 자세를 따라가기 위해 오로지 요가에만 집중할 때 마음을 비울 수 있었다. 또 혼자 사는 것이 맞지 않아 동생과 자취를 시작했다. 귀가 후 내 얘기를 들어줄 누군가가 있다는 게 든든했다. 일기쓰기, 컬러링이나 스크래치, 독서와 영화감상도 도움이 됐다.
D 주변에 우울증, 양극성장애를 겪는 사람들이 많아 힘들어하는 이유와 대처 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나눴다. 처방받은 약이 효과가 좋아 지인들과의 대화 외에 특별한 조치가 더 필요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때때로 불안이 찾아오면 보라매공원에서 산책을 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터놓고 이야기를 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 이야기한 경우 힘이 되거나 반대로 힘들게 한 말과 행동이 있다면?

C 가족보다는 친구에게 털어놓기가 편했다. 친구들과의 단체카톡방에는 발병 때부터의 과정을 모두 보여줬다. 내 부정적인 모습을 보고도 옆에 있겠다고 말해준 게 힘이 됐다. 반면 가족들이 우울증의 이유를 반복해서 묻거나 “너만 힘든 게 아니다”라고 말할 때 힘들었다. 아직 발병원인을 정리하지 못했고,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안다고 우울증이 극복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B 가족 구성원의 분위기가 화목해 우울증을 알리기가 힘들었다.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읽으신 후 간접적으로 상황을 알게된 어머니께서 “많이 걱정되지만 네가 잘 일어설 거라고 믿는다”고 말씀해주신 게 힘이 됐다. “힘내”라는 막연한 위로보다는 항상 곁에 있다는 느낌을 주는 말이 든든했다. 한편 가족들이 “자살은 주변 사람들에게 민폐다”와 같이 말할 땐 마음이 무거웠다. 내 삶의 의미가 주변 사람에게만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D 운 좋게도 주변 환경이 정신질환에 친화적이다. 내 고충을 들은 선배는 곧바로 병원에 갈 것을 권유했었는데, 덕분에 치료시기를 앞당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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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담회 참가자들은 우울할 때 일기를 쓰고 나면 감정이 정리되거나 해소된다고 말했다. (연출)



겪어본 입장에서 우울증이 뭐라고 생각하나?

A 좋아하는 야구 명언 중에 “슬럼프는 푹신한 침대와도 같아서 들어가기는 쉬운데 나오기는 어렵다”는 말이 있다. 우울증도 야구 슬럼프와 같다. 우울증에 걸리는 경우는 많지만 이를 이겨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우울증 극복이 쉽지 않은 건 우울증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 때문이기도 하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우울증 관련 글을 볼 때마다 본인의 일이아니라고 함부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느낀다.
B 우울증에 걸리는 것은 장전된 총의 방아쇠를 당기는 일 같다. 누구나 마음속에 총을 가지고 있지만, 사람마다 잠복기가 달라 방아쇠를 당기는 시점이 다를 뿐이다. 우울증 발병은 그 사람이 약해서도 아니고, 그 사람의 잘못도 아니다.
우울증을 ‘마음의 감기’라고들 표현한다. 누구나 걸릴 수 있다는 점에서 알맞은 비유인 듯하지만, 치료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걸 보면 감기보다 독한 병처럼 느껴진다.


주변에 우울증·양극성장애를 겪는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B 아프면 병원을 가자. 혼자 끙끙 앓기보다 병원에서 툭 터놓고 얘기하기를 바란다. 병원에 가면 본인의 상태를 직면할 수 있다. 보통 힘들면 인정을 잘 안한다. 그러나 힘들고,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자기 자신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A 병원에 가는 게 큰 도움이 된다. 내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다는 점뿐 아니라 이에 대해 전문적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는 게 위안이 된다. 또 처방받은 약을 먹으면 증상이 뚜렷하게 호전된다. 약을 먹으면 감기가 낫듯 ‘마음의 감기’도 약을 먹으면 나을 수 있다. 더불어 주변 사람에게 기댈 수밖에 없다. 아프고 힘들어도 날 떠나지 않는 주변 이들의 존재를 분명히 인식하는 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