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호 > 특집
누구나 안전한 먹거리를 먹을 권리가 있다 식품산업에서 벗어나 먹거리 운동에 나선 시민사회
등록일 2018.04.12 00:07l최종 업데이트 2018.04.13 00:34l 박세영 기자(precieuses@snu.ac.kr)

조회 수:71

  지난 326일 국회에 발의된 문재인 대통령의 개헌안에는 <농어촌·농어민 지원의무규정>이 포함됐다. 이는 문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반복해 강조한 농산업 보호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정부의 강한 의지는 농업이 식량주권과 관련한 안보의 영역이자 국민의 건강과 생존에 직결되는 생명의 문제라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현재 농식품 산업계의 구조는 지속가능성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목소리가 거세다. 시민사회는 건강과 안정을 위협하는 현 식품구조를 비판하며 안전한 먹거리를 위한 움직임을 지속하고 있다. 시민사회가 비판하는 현 농식품 산업계의 문제는 무엇이고, 이에 대항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전개해왔는지 살펴봤다.

 

 

지속가능성이 결여된 한국의 농식품 산업계

 

  전후 상황에서 안정적인 먹거리 공급이 국가적 과제였던 1960년대, 화학약품과 석유에 의존하는 농업이 발전하며 산업적 농업과 공장형 축산업이 발전했다. 산업적 농업에선 식품기업이 농작물 수요처기 때문에 기업이 재배 작물과 가격에 대해 결정권을 지닌다. 한국의 농업구조는 곡물보다 상품성이 큰 과·채실류 중심으로 형성됐고, 농민은 종자·농약·비료를 점차 기업에 의존하게 됐다. 그 결과 현재 한국의 곡물 자급률은 30%에 미치지 못한다. 식품을 가공·유통하며 요식서비스업을 제공하는 식품산업에도 대기업 주도의 구조가 자리 잡았다. 농작물의 구매자인 식품기업은 점차 농업까지 장악해갔고, 그 결과 오늘날 대자본은 농장부터 가공, 제조, 요식서비스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지배력을 행사한다. 예컨대 롯데기업은 롯데마트, 롯데슈퍼, 세븐일레븐, 엔제리너스 등의 농식품 소매채널을 구축하고 있으며 신선채소류마저 롯데 로지스틱스가 배송을 담당한다.


  전문가들은 대자본이 지배하는 농식품 산업계의 가장 큰 문제는 지속가능성의 결여라고 지적한다. 서울시 공공급식위원회 윤병선 위원장은 기업이 주도하는 한국의 먹거리 체계는 자연 순환적이지 않으며 비료 등을 불필요할 정도로 과도하게 사용하는 자원 다소비형이다라고 밝혔다. 농민들은 종자·비료·농약 등을 구입하기 위해 빚을 지고,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농산물 가격을 낮춰 노동비용과 생계비용조차 충당하지 못하게 된다. 농업 수익 저하는 심화된 이농과 탈농 현상, 농촌인구의 고령화로 이어졌고 농촌의 지속가능성은 악화됐다



인포.PNG

2012년 기준 한국 식품산업 기업순위 ©한국식품산업협회



  화학비료 남용 등 저렴한 가격으로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먹거리 생산 방식 역시 문제다. 개체 간 거리가 확보될 수 없는 공장형 축산의 경우, 질병에 취약해진 가축의 진드기를 털어낼 방법이 없어 살충제와 항생제를 사용한다. 윤병선 위원장은 현재의 농식품 체계는 생산성을 위해 화학비료, 농약, 성장호르몬 등에 의존한다며 현 생산 체계에서 발생하는 환경 훼손과 건강상의 심각한 위해에 대해 우려했다. 특히 기업 주도의 농식품 생산체계에서는 제조·가공 상의 작은 실수가 불특정 다수의 대중에게 위험을 야기할 수 있다. 2006CJ푸드시스템이 위탁 운영중이던 학교 급식에서 발생한 1500여 명의 집단 식중독 사태는 이 위험성이 드러난 사례다. 호서대 정혜경 교수(식품영양학과)기업이 제조·가공한 식품들은 영양학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다대량생산체계가 구조적으로 공고화되면서 농민은 무기력해지고, 소비자들은 선택지가 없어졌다고 비판했다. 그는 기업이 농산물 가격결정권과 유통을 장악하기 때문에 소비자들의 선택지 또한 축소됐다"고 설명했다.

 

시민사회운동, 건강한 먹거리로 건강한 공동체를 꿈꾸다

 

  시민사회가 수동적으로 식품 산업계에 순응하는 것은 아니다.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 건강한 먹거리가 생산될 수 있는 지속가능한 생산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왔다. ‘유기 농업 운동은 생명 사상을 기치로 자연 친화적 농업을 통해 모두에게 건강한 먹거리를 생산하는 운동이다. 1970년대 정농회(正農會)와 가톨릭 농민회가 농약이 농민의 생명과 환경에 미치는 폐해에 맞서 화학비료 대신 효소를 사용하며 유기농업운동이 시작됐다. 고려대 김철규 교수(사회학과)“(1970년대에는) 정부에서 강력하게 산업적 농업을 추진해 화학비료 사용, 기계화 등을 하지 않으면 농민의 생계유지가 불가능했다며 유기농업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의 정신을 높이 샀다.


  유기 농업 운동은 유기농산물 직거래로 확대됐고, 유기농업운동의 정신을 이어받은 생활협동조합(이하 생협) 운동이 등장했다. 대표적인 생협 한살림은 농민들의 목숨까지 앗아간 농약에 대한 경각심에서 출발했다. 한 살림 박혜숙 이사장은 농민의 생명과 농작물을 소비하는 소비자들의 생명, 농약이 뿌려지는 자연환경 등을 보호하기 위해 시작했다며 한살림의 모토인 생명사상을 강조했다. 한살림은 1986년 차 한 대에 친환경 농업을 통해 생산한 쌀, 참기름, 유정란, 잡곡을 실어 알음알음 팔며 시작됐다. 현재는 64만여 세대가 한살림에 조합원으로 등록돼 있다.


  무농약 혹은 유기재배 농산물에 대한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한살림은 안정적 공급 판로를 확보하기 위해 농촌의 생산 공동체와 판매처인 도시를 연결하고자 했다. 이는 단순한 생산자-소비자 관계에 그치지 않고 지속가능한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연대로 나아갔다. 한살림 조합원들은 생산 농가에 직접 방문해 일손을 돕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이 경험을 마을 모임이나 강좌에서 나눈다. 가격 결정 역시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논의 끝에 이뤄진다. 박 이사장은 농사의 가치와 농촌 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을 지키고자 하는 소비자들이 오히려 가격 인상을 주장하기도 한다며 연대가 전한 농()의 가치를 강조했다. 김철규 교수는 한살림과 같은 생협운동의 가치를 “(대기업이 먹거리 유통·판매 구조를 장악한 현 상황에) 대안적인 먹거리 소비 경로를 소비자들에게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사진1.jpg

완주 로컬푸드 직매장 내부 모습 ©완주군청



  생산 공동체 안에서도 농촌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운동이 형성됐다. ‘로컬푸드(local food)' 운동은 전체의 68%를 차지하는 소규모 생산 농가(규모가 1헥타르 미만인 농가)의 생존이 어렵다는 문제의식에서 시작됐다. 소농들의 생존을 도와 피폐해진 농촌 공동체를 회복하려는 로컬푸드 운동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와의 연계를 통해 큰 성공을 거뒀다. 2007년부터 지속적으로 로컬푸드 운동을 진행해 온 전라북도 완주군은 직판매장의 형태로 성공을 거둬 주목받았다. 박근혜 정부는 완주군의 사례 등 로컬푸드 운동에 주목해 직판매장 개설시 인테리어 비용, 교육·홍보비용 등을 지원하는 로컬푸드 육성정책을 추진했다. 그 결과, 현재 전국에는 200여 개의 로컬푸드 직매장이 존재한다


  윤병선 위원장은 로컬푸드 운동은 단순히 생산한 농산물은 100마일 이내에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며 농민과 소비자 사이의 사회적·심리적 거리를 좁히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20175월부터 시행된 서울시 도농상생 공공급식 프로젝트가 그 예다. 나주시 등 농촌의 소농과 서울시의 특정 구가 연계해 급식 형태로 생산한 식자재를 보급하는 프로젝트다. 윤 위원장은 이에 대해 소규모 농가의 판매경로를 확보하는 한편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직접적 연결을 통해 지역 공동체들을 결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속가능성과 생산공동체와의 관계회복, 안전한 먹거리의 완성

 

  안전한 먹거리를 생산·소비하는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시작된 시민사회의 흐름에도 문제점이 지적된다. 로컬푸드 운동은 관련 법 제정을 통해 직판매의 급증으로 이어졌고, 공공급식 프로젝트, 정부 푸드플랜(식품 생산·유통·소비의 모든 과정과 식생활·영양·안전·환경 등의 이슈를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범부처 차원의 먹거리 전략 계획)의 형태로 제도화되고 있다. 윤병선 위원장은 로컬푸드의 가치에 대한 공유 없이 직판매장만 늘어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건강한 먹거리 생산과 지속가능한 생산 공동체라는 생협 운동의 모토 역시 조합원 수와 생협의 종류가 늘어나며 뒤로 밀렸다. 생협들 간 경쟁이 치열해지며 경쟁력 확보를 위해 소규모 농가 중심에서 단작, 대농 중심으로 변질됐기 때문이다. 유기농업의 경우, 1990년대 이후 유기농의 수익성에 집중한 상업화·제도화가 이뤄지며 운동이 품고 있던 생명사상이 퇴색됐다. 김철규 교수는 유기농이 고수익이라는 인식이 확대되며 지금은 초기 정농회가 가졌던 철학과 사상이 사장됐다며 풀무원, 청정원 등 기업이 브랜드를 앞세워 유기농 시장을 장악한 현실을 지적했다


  대안적인 시민사회의 움직임이 전체 구조를 바꾸는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정혜경 교수는 농식품 산업계 구조 변화를 위해서는 입법과 지원 제도가 강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과도한 기업논리, 기계화 대신 소농이나 유기농을 보호하기 위한 조례나 관련 입법을 보다 촘촘히 해야 한다며 소농 지원 시스템 구축을 통한 농촌의 지속가능성 확보를 제안했다시민사회의 자생적 움직임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도 도시농업, 슬로우푸드 등과 관련한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시민사회의 움직임이 전체 농식품 산업계 구조 변화로 이어지기 위해 생산자와 소비자 간 신뢰도 회복돼야 한다. 전문가들은 인증 제도처럼 결과만 보여줄 것이 아니라 생산자와 소비자가 서로 만나 대화하는 다양한 유통경로를 통해 어떻게 생산됐는지 알려줘야 한다고 제안했다. 윤병선 위원장은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가 단절된 지금의 상황을 벗어나 관계를 회복할 때 생산자들은 인증을 받기 위해 과도한 비용을 지출하거나 규격화된 상품만을 판매하지 않더라도 생계를 보장받을 수 있고, 소비자들은 보다 안전한 먹거리를 소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철규 교수 또한 농민이 최대한 농약을 덜 사용한, 신뢰할 수 있는 머거리를 팔고 소비자는 그것을 구매하는 구조를 확충해야한다며 농가마다 각기 다른 재배 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결과로만 판단하는 현 인증 제도를 비판했다


  정혜경 교수는 먹거리는 분명 상품이나 인간의 삶, 사회의 지속가능성과 직결되기 때문에 공적 영역에서 다룰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먹거리는 인간 삶에 필수적이며 건강과도 직결된다. 먹거리를 스스로 생산할 수 없는 사회는 자체 생존이 불가능하다. 더 나아가 먹거리 생산 과정은 지구의 건강, 환경과도 연결돼 있다. 삶의 기반이 되는 먹거리가 건강하고 안전하게 생산·소비되기 위해선 시민사회의 노력이 법과 제도, 나아가 농식품 산업계 구조 변화로 이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