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호 > 특집
직선제와 선임제 사이, 기로에 선 총장선출제도 누가 대학의 주인인가?
등록일 2018.06.06 18:23l최종 업데이트 2018.06.08 14:56l 이선아 기자(l2jenv@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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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월 4일 제27대 총장선출 과정에서 단과대 학장 및 대학원장으로 구성된 학원장회는 “여러 그룹의 이해관계로 인해, 현재 서울대학교가 직면한 더 시급한 거시적 과제가 뒷전으로 밀리는 것”을 우려하는 내용의 성명서를 냈다. 선출과정을 통해 다양한 집단이 자신의 이해관계를 관철하려는 상황을 비판하며, 총장예비후보자들이 서울대의 장기적 목표를 위한 공약을 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이는 일각에서 총장직선제의 폐해로 지적한 대학 내 선거 과열, 파벌 조장 등의 문제와 맞닿아있다. 한편 현행 총장선출제도에 여러 제도적 요소가 혼합돼있기 때문에 부작용이 증폭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로에 선 총장선출제도, 무엇이 쟁점이고 '거시적 과제' 해결을 위해서는 어떤 방향으로 바꿔나가야 할까.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총장선출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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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경 교수



  현행 총장선출제도는 직선제, 간선제, 선임제의 특징이 혼재된 형태다. 직선제적 요소는 정책평가 단계에서 학부생 및 대학원생 모두가 참여할 수 있고, 교원도 무작위로 추출되어 평가할 수 있다는 점이다. 동시에 총장예비후보 명단 결정에 전권을 행사하는 총창추천위원회(총추위)를 이사회와 평의원회가 각각 3명, 27명씩 선출한다는 면에서 간선제적 요소를 갖고 있다. 또 정책평가에서 최종 3인의 총장후보자가 추려지고 나면, 법인 이사회에서 이중 최종 1인의 총장후보를 결정한다는 점에서는 선임제의 틀을 유지하고 있다.

  이처럼 현 선거제도는 세 가지의 제도를 혼합한 형태이기 때문에 각각의 장점을 살리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안도경 교수(정치학과)는 “(현행) 제도의 본질 자체가 애매하다”며 “참여하는 사람들이 제도를 쉽게 이해하고 제도를 통해 나온 결과를 수용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굉장히 크다”고 비판했다. 그는 현행제도가 “법적으로는 선임제면서 정책평가로 이사회의 결정을 보충하는 형태”라며 “선임제라는 제도와 정책평가라는 관행이 괴리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학생·교수·직원 모두 정책평가에 참여해 의견을 내지만, 법적 틀은 이사회가 최종권한을 가진 선임제에 가깝기 때문에 구성원이 이사회의 결정을 납득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서울대 민주화를 위한 교수협의회(민교협)’ 의장 유용태 교수(역사교육과)도 “(현행) 절차가 복잡하고 제대로 정비가 안 돼 있기 때문에 매 단계마다 민의가 왜곡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현 제도가 과도기에 있기 때문에 추후 개선이 필요하다는 점에서는 모두가 입을 모으고 있지만, 장기적으로 총장선출제도가 어떻게 바뀌어야 할지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다.


이분법에서 벗어난 총장선임제의 이상

  2011년 이명박 정부는 ‘국립대 선진화 방안’에서 총장간선제를 채택하는 국립대에 대학재정지원사업 가산점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간선제를 유도했다. 선거 과열로 인한 선심성 공약 남발, 파벌 형성 등 직선제의 부작용을 간선제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국립대가 추천한 총장후보자의 임용제청을 교육부가 뚜렷한 이유 없이 거부하거나 총장후보 2순위자를 임명하는 경우가 발생하면서, 사실상 정부친화적인 총장을 임명하기 위한 지침이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정권교체 후, 2017년 8월 교육부는 ‘국립대 총장 임용제도 운영 개선방안’을 발표해 국립대가 자율적으로 총장선출 방식을 결정할 수 있도록 했고, 이에 따라 대학 내에서 직선제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처럼 총장선출방식과 정권교체가 결부되면서 총장간선제와 선임제가 ‘교육계의 적폐’로 평가되고 있지만, 이분법에서 벗어나 선임제의 작동방식을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안도경 교수는 “총장선임제는 제대로 시행된다면 가장 이상적인 제도”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번 총장선거가 지난 선거보다 토론 측면에서 개선됐지만, 여전히 후보자의 인맥, 출신 지역 및 학교, 소속 단과대 등이 선거과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비판했다. 또 “예비후보자들이 (이익집단의) 요구를 거절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간호대 이전 문제 등 개별 단과대나 전문대학원의 특수한 이익을 관철하려고 했다”고 지적했다.

  안도경 교수는 “대표를 결정하는 과정은 조직의 문제 진단, 토론, 리더십 검증이라는 세 측면이 종합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며, 총장선임제가 제대로 실현된다면 이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하버드 대학의 경우, 법인 이사회와 감독관평의회가 총장선출위원회를 구성하면 총장선출위원회가 1년 동안 학생, 교수, 동문과의 토론을 거쳐 최종 1인의 총장후보를 결정한다. 안도경 교수는 “백여 명의 후보자 중 단 한 명을 추리는 과정에서 토론과 숙의가 보장돼 정치적 이해관계를 배제할 수 있고, 구성원이 결과를 납득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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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학생회와 대학원총학생회가 주최한 정책간담회에서 발언하는 이우일 교수 ⓒ최한종 기자



  총장선임제 주장에는 ‘대학이 어떤 공간인지’에 대한 고민이 바탕에 깔려있다. 안도경 교수는 “대학의 주인은 학생도, 교수도, 직원도 아닌 공공(public)”이라며 “주인이 아니라는 것은 대학 구성원이 국가의 국민이나 회사의 주주만큼 책임성과 인센티브를 갖기 힘들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이윤 배분이 중요한 영리조직과 달리, 국립대학은 정부와 기부자가 제공하는 자원으로 ‘교육’이라는 공공재를 생산하는 비영리조직이기 때문이다. 그는 총장직선제가 권위자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궁극적으로는 매번 전 구성원이 투표하는 것보다 이사회 같은 기구가 알아서 제대로 작동하는 상태를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학내에서 숙의와 의견 수렴 과정이 잘 작동하기 위해서는 선임제가 이상적일 수 있다”는 것이 요지다.

  하지만 안도경 교수는 현 학내 상황을 고려했을 때, 선임제가 현실적으로 시행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선임제가 이상적으로 실현되기 위해서는 구성원의 신뢰를 받는 이사회가 학내 이해관련자(stakeholder)의 의견을 수렴하고 토론을 이끄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그러나 안 교수는 현재 이사회가 의결권을 가진 최고기구지만, 전문성 및 참여에 대한 인센티브가 부족해 본부의 거수기 역할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사회의 권한과 책임이 지금보다 확대될 때, 각 단과대의 좁은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학내 문제에 대한 폭넓은 숙의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총장직선제, 견제와 화합의 첫걸음

  ‘대학민주화’ 기치 하에 총장직선제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민교협 유용태 교수는 “총장직선제는 한국 현대사의 맥락과 떼어놓을 수 없는 문제”라고 설명했다. 1987년 6월항쟁 때 대학총장 직선제가 대통령 직선제와 함께 주요 의제로 떠올랐는데, 대통령이 친정부적 인사를 국립대 총장으로 임명할 수 있는 당시 제도 때문에 대학의 자율성이 침해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선임제를 시행하는) 외국대학의 경우, 학문·정치·표현·학생 자치활동의 자유가 충분히 보장돼있었으므로 우리나라처럼 대학의 아픈 역사를 겪지 않았다”며 총장선출제도를 개정할 때 한국의 역사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전대넷)’ 이승준 임시의장도 “선임제는 정부나 이사회의 기호에 맞는 인물이 ‘내정’되는 것을 제도적으로 용인”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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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0일,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를 중심으로 한 '학생참여 총장직선제를 위한 운동본부'가 총장직선제 도입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



  최근에는 학생이 대학운영의 주체로서 총장선거 참여권을 주장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서울대의 민주주의와 공공성을 위한 학생모임(공공모임)’ 강유진(경제 13) 대표는 총장직선제는 “(학생이) 학교가 하라는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권·복지권·인권 등의 문제에서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계기”라고 강조했다. 그는 교수 갑질 사건에서 “학생은 교수징계에 영향을 미칠 수 없지만, 교수는 학생의 징계를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고 비판하며, “(총장직선제는) 학생이 학교에서 다른 권력집단을 견제할 수 있는 통로로서 의의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승준 임시의장도 “(학내 주요 의사결정에서) 학생의 의견이 ‘참고’만 되는 이유는 대학이 학생을 객체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학생은 학교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단순 소비하는 것을 넘어 학교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적극적 주체로서 행동”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이화여대에서는 입시·사학비리 문제를 공론화하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학생이 주축이 됐고, 지난해 5월 학생총투표로 김혜숙 총장이 선출됐다.

  이들은 직선제에서 여러 집단이 목소리를 내고 토론하는 과정 자체가 의미 있다고 주장한다. 모든 구성원이 공동체의 문제를 고민하고, 주체적으로 의견을 내는 과정이 능력 있는 대표자를 선출하는 것만큼 중요하다는 것이다. 강유진 대표는 “(학내 문제에 대해) 의견을 개진하고 합치하는 과정에서 세력이 형성되고 갈등이 생기는 것은 자연스럽다”며, 현재 의견 개진의 기회가 교수에게만 집중돼있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시흥캠퍼스 건립처럼 학교가 결정한 밑바탕에 학생이 의견을 던지는 정도가 아니라, (의견을 내고 결정할 수 있는)기회를 모든 구성원에게 동등하게 보장하고 토론을 통해 화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총장선출 후 필수과제는 지속적인 평가와 견제

  총장선출 방법에 대한 그림은 각자 다르지만, 인터뷰이들은 현행 제도에서 선출 이후 총장활동을 지속적으로 평가하고 견제할 수 있는 제도가 미비하다는 점에서 입을 모았다. 안도경 교수는 “선임제를 시행하는 외국 대학에서도 이사회가 총장해임권을 갖고 있어 견제가 가능하다”며, 서울대의 경우에는 평의원회가 총장이 임무를 방기하지 않도록 보충·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기구라고 주장했다. 그는 평의원회가 본부의 권한을 분담하고 학내 구성원의 의사를 수렴하는 역할을 해야 하며, 이를 위해 평의원회 구성방식의 투명성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유용태 교수도 “(총장이) 당선 공약을 지키지 못했을 때, 이유를 확인하고 책임을 묻는 제도가 필요하다”면서 “중간평가를 실시해 구성원의 평가가 일정 수치 이하면 자격이 없는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총장활동을 보충·평가하는 기구 외에도 평상시에 다양한 구성원이 학내 결정에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거버넌스를 개선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이승준 임시의장은 “지속적으로 구성원들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도록 기존의 거버넌스를 개편하는 작업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서울대 거버넌스를 살펴보면 학생은 평의원회와 재경위원회(재경위)에 참관할 수 있으나 심의·의결권은 없고, 이사회와 학사위원회에는 참관도 할 수 없다. 지난 2월 더불어민주당 전재수 의원이 대표 발의한 서울대법 일부개정법률안은 평의원회, 재경위, 총추위에 학생위원을 포함하는 조항을 두고 있으나, 현재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서울대저널> 총장선출 특집호, “총장선출을 앞둔 당신이 알아야 할 5가지”)

  직선제와 선임제는 서로 다른 방식을 택하고 있지만, 결국 대학 구성원의 목소리를 고르게 반영하고 견제의 원리가 구현되는 것을 이상으로 삼는다. 학생·교수·직원이 ‘정치로부터’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자유롭고, 누구나 평등하게 의견을 낼 수 있는 대학을 만드는 것이 총장선출 과정에서 추구해야 할 서울대의 ‘거시적 과제’다. 총장선출제도의 기로에 서 있는 서울대가 4년 후에 거시적 과제 해결에 한 발짝 다가갈 것인지, 아니면 다시 한 번 간신히 고비만 넘길 것인지는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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