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호 > 특집
교회 안에서 무지개를 그리는 사람들 그리스도인과 성소수자, 손 맞잡고 사랑을 전하다
등록일 2018.09.06 14:38l최종 업데이트 2018.09.12 17:56l 이누리 기자(nuriztoa@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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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퀴어문화축제에서도 성소수자 그리스도인 당사자 및 성소수자에 연대하는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인 ‘무지개예수’의 부스를 찾아볼 수 있었다. 그곳에 모인 이들은 서로를 축복하며 성소수자에 대한 사랑을 소리 높여 외쳤다. 부스 한편에 전시된 ‘무지개교회’ 지도에는 열아홉 곳의 교회들이 성소수자 친화적인 교회로 이름을 올렸다. “동성애는 죄악”이라는 개신교계의 목소리가 점점 힘을 키워가는 상황 속, 그리스도와 퀴어라는 두 단어가 함께 쓰일 수 있는 가능성을 온 몸으로 증명하며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로뎀나무 그늘 아래, 성소수자 그리스도인을 만나다

  8월의 한 일요일, <서울대저널>은 성소수자 그리스도인들의 예배에 함께하기 위해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의 사무실을 찾았다. 한국 최초의 성소수자 교회인 ‘로뎀나무그늘교회(로뎀)’는 이 공간에서 매주 예배와 기도모임 등을 진행한다. 예배에는 서른 명 남짓의 사람들이 참석했다. 모인 이들은 함께 찬양하고 성경을 읽고 목회자의 설교를 들었다. 찬송으로 시작된 예배의 순서는 여느 일반적인 교회에서 진행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낯설지 않은 풍경 속 울려퍼진 신앙고백문의 “우리는 성소수자를 비롯한 모든 사람을 환대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거룩한 공동체를 믿습니다”라는 문장이 로뎀의 정체성을 일깨웠다.

  오후에는 기도모임이 이어졌다. 여럿이 의자를 둥글게 놓고 둘러앉아 각자의 고민을 털어놓는 시간이었다. 누군가는 새로운 직장에 잘 적응하길 기도해달라고 말했고, 누군가는 마음과 몸의 건강을 위해 기도해달라고 말했다. 최근 주변에 조심스레 커밍아웃을 하기 시작한 한 성도는 친구들이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잘 받아들여줬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다. 이해해줄 것이라고 믿었던 선배가 “당황스럽고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여서 놀랐다는 그의 고백에 여기저기서 공감 섞인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모두의 이야기가 끝난 후, 이들은 진심을 담아 서로를 위해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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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의 사무실은 매주 일요일마다 로뎀나무그늘교회의 예배당이 된다.



“나는 그리스도인이고 게이지만, 그래도 괜찮다”

  기도모임을 마치고 사람들은 자연스레 카페로 향했다. 주로 신앙에 관한 대화를 나누던 예배나 기도모임에서와는 달리 일상적인 수다가 이어졌다. 원래 이렇게 늦게까지 모임이 계속되냐는 질문에 로뎀의 담임목사인 박진영 목사는 “예배가 시작하는 아침 11시에 만나서 막차가 끊길 때까지 노는 게 일상”이라며 웃었다. 카페에서의 대화를 통해 로뎀에 모인 이들이 각각 어떤 경로로 로뎀에 오게 됐고, 로뎀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들을 수 있었다.

  남성 성소수자인 성민 씨의 어머니는 다른 교회의 목사다. 어머니가 목회를 보시는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며 로뎀에 가끔 들르던 그는 최근에 교회를 로뎀으로 아예 옮겼다. 성민 씨는 “예전에는 나 자신을 치료하려 했었다”고 털어놨다. 오랫동안 동성애가 죄라고 배워왔기 때문이다. “내가 죄인인지 아닌지 혼란스러워하며 기도를 드리던 중 주님의 말씀을 듣고 히브리어와 헬라어로 성경을 보기 시작했다”는 그는 성경 원문을 3년간 독학하면서 성경에서 동성애를 명백한 죄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자신의 존재를 긍정하게 된 성민 씨는 이후 가족들에게 커밍아웃했고, 교회의 여러 성도들에게도 간증을 통해 성소수자임을 고백했다.

  하지만 동성애를 죄악시하는 공동체 안에서 성소수자 그리스도인으로서 있는 그대로 인정받기란 쉽지 않았다. 동생이 “오빠, 이건 죄야”라며 우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예배가 끝나면 면담에 이끌려가서 “너는 변태가 아니고, 바뀔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럼에도 그는 커밍아웃 후 “아직 두렵지만, 그래도 이전보다 더 살아있다고 느낀다”며 웃었다. 성민 씨는 “동생들이 나의 삶을 통해 동성애가 죄가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했을 때 마음이 벅차올랐다”며 “어머니께서는 여전히 연락하지 말라고 말씀하시지만, 동생들의 인식이 변했듯 어머니와의 사이도 괜찮아질 거라 믿는다”고 말했다.

  또 다른 남성 성소수자인 A씨는 이 날 로뎀에 처음 왔다고 했다. 한때 천주교 신학생이었던 A씨는 성정체성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은 채로 신부의 길을 지망했다. 그러나 자신의 ‘남다름’을 자각해가던 어느 날 그는 “너는 이 길을 걸을 수 없다”는 선고를 받았다. A씨는 “위에서 보기에 부족한 점이 있어서 내려진 결정이었겠지만, 이유를 명백히 전달받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그 후 A씨는 어떤 종교활동에도 참여하지 못하고 지냈다. “내가 가지 못한 길이라는 생각에 종교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보기만 해도 마음이 무너지던 시간이 있었다”고 밝힌 그는 지인의 소개로 5년 만에 용기를 내 로뎀의 문을 두드렸다. “아무리 친한 친구에게도 내 가장 큰 고민을 말하지 못하고 사는 삶” 속에서 위안을 구하는 마음이었다.

  어려운 길을 걸어 로뎀나무 그늘 아래 모인 이들에게 성소수자 그리스도인의 공동체가 갖는 의미는 각별하다. 현재 로뎀에서 총무를 맡고 있는 쌩 씨는 “살면서 누구와도 평생을 같이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나와 다르기 때문”이라며, 로뎀에서 처음으로 “이 사람들은 나와 평생 함께할 사람들이구나”라는 감정을 느꼈다고 말한다. 곰곰 씨 또한 로뎀에서 만난 사람들과 교류하며 “어릴 때부터 겪어왔을 정체성에 대한 고민들이 서로 다 다르지만 또 같다는 것을 봤다”며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를 많이 사랑하게 되고, 나 자신에 대해 더 알려고 노력하게 됐다”고 전했다. 끊이지 않는 대화와 쉼없이 터지는 웃음소리를 들으며, “내 존재를 가리는 데 익숙했고, 그게 불편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이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온전히 드러낸 채 숨쉴 수 있는 로뎀이라는 공간이 어떤 의미인지를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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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예수



나를, 그리고 너를 사랑하게 된 시간

  현재 로뎀의 회장을 맡고 있는 조이 씨는 “기독교 공동체에서 자란 성소수자들에게는 기본적으로 자기혐오가 깔려 있다. 워낙 어릴 때부터 (동성애는) 죄라고 주입받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자기부정의 시간을 끝내고 정체성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강단에서 아무렇지 않게 혐오발언이 오가는 환경 속에서 성소수자인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로뎀과 함께한 지 어언 20년이 됐다는 동훈 씨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동성애가) 죄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드러낼 수 있는 정체성도 아니라고 생각했었다”고 고백했다.

  지난해 로뎀에서 진행한 ‘성소수자 바로알기 프로젝트’는 자신이 성소수자라는 사실에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던 이들이 정체성에 대한 인식을 전환하게 된 대표적인 계기였다. 박진영 목사에 따르면, 이는 “삶 전체에서 소수자성을 띠고 살아왔지만 성소수자에 대한 지식적인 측면에서는 부족한 점이 많았던” 로뎀 구성원들의 성소수자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한 프로젝트였다. 조이 씨는 이 프로젝트가 “성서학, 정신의학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를 강사로 섭외해 다양한 관점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는 경험”이었다고 소개했다. “내가 잘못된 존재가 아니”라는 생각은 오랫동안 두 정체성 간의 충돌을 겪어온 성소수자 그리스도인들에게 큰 힘이 됐다.

  박진영 목사는 자기 자신을 알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거치고 난 현재를 두고 “자긍심이 폭발하는 시기”라고 표현한다. 조이 씨는 로뎀이 처음으로 퀴어문화축제에 참여했던 2010년에는 “부스를 차려놓고도 다들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랬던 이들이 올해 퀴어문화축제에서는 얼굴을 드러내고 행진에까지 참여할 정도로 변했다. 지미 씨는 “예전에는 퀴어라는 사실을 가리고 싶어했던 그리스도인들이 이제는 ‘퀴어 그리스도인’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 것 같다”고 했다.

  비성소수자 그리스도인이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겪으며 성소수자에 연대하는 앨라이(Ally)가 되는 경우도 있다. 비성소수자 그리스도인이자 ‘무지개예수’의 활동가인 이종혁 씨의 이야기다. 그도 과거에는 보수적인 신앙생활의 환경 속에서 동성애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살았지만, 성소수자 기독교인의 존재를 가까이서 만나는 경험을 통해 조금씩 변해갔다. 어느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다른 유저와 기독교에 대한 논쟁을 벌이던 중 그는 상대방에게서 “나도 모태신앙이었지만, 목사가 설교 시간에 “동성애자는 지옥에 갈 것”이라 말하는 것을 듣고 내가 믿는 신은 나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느꼈다”는 내용의 쪽지를 받았다. 성소수자인 친구가 세례를 받는 모습을 바로 곁에서 지켜보기도 했다. 세례문답의 “나는 앞으로 내가 짓고 있던 죄를 짓지 않기로 결심한다”는 문구에 성소수자가 긍정의 답을 내놓는 장면은 이종혁 씨에게 “과연 동성애를 죄라고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개신교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는 성소수자들의 상처를 마주한 이종혁 씨는 이후 여러 신학을 공부하고 고민하며 교계에 만연한 성소수자 혐오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게 됐다. 그는 지난 2016년 퀴어문화축제 부스에서 찬양을 인도했던 일을 계기로 ‘무지개예수’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 씨는 “성소수자 운동의 특성상 당사자가 아닌 사람이 더 적은 위험부담을 지고 할 수 있는 일들이 분명 있을 것”이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 역할을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혐오와 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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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퀴어문화축제에서의 이종혁 씨.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있다. ⓒ이종혁 씨



성소수자 그리스도인과 앨라이, 함께 걷는 길 위에서

  성소수자 그리스도인 혹은 앨라이로서 살아가는 삶은 평화롭지만은 않다. 이종혁 씨는 “네가 성소수자도 아닌데 왜 그런 운동을 하냐”는 질문을 받는다. 부모님과의 불화도 여러 번 겪었다. 로뎀의 퀴어문화축제 부스에 반대집회의 참가자가 찾아와 비난 섞인 질문을 쏟아내고 간 적도 있다. 박진영 목사는 “부모님께 한 커밍아웃이 상처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며 “(커밍아웃한 성소수자가) 부모님의 요구로 로뎀에 못 오게 되는 일도 있고, 심지어는 부모님을 위해 동성애 혐오에 앞장서는 목사의 교회에 나가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박진영 목사는 “그렇기에 더 할 일이 많다”고 말한다. 로뎀에서 만난 이들은 기성 교회에서 고통받고 있을 다른 성소수자 그리스도인들에게 “우리도 이렇게 하나님 안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조이 씨는 “퀴어문화축제에서 우리 부스의 포스트잇을 보고 우시는 분도 계셨다”며 “성소수자 그리스도인으로서 사랑받을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처음 해보신 분이 아니었을까. 그런 분들께 우리의 목소리가 들렸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전했다.

  성소수자 그리스도인과 그 앨라이들은 한 목소리로 사랑에 대해 강조했다. 이종혁 씨는 “이웃을 사랑하고 약자와 소수자에 연대하는 것이 내가 믿는 기독교가 이끌어준 인생의 길”이라며 자신이 성소수자와 함께하는 이유를 밝혔다. 박진영 목사 또한 “모든 종교는 추구하는 가치가 있는데, 기독교가 추구하는 것은 사랑”이라며 “그리스도인이란 그 사랑을 보여주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라 믿고 그 경지에 도달하려 노력하는 사람들이고, 우리는 그러한 우리의 존재 이유를 놓치지 않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성경이 전하는 메시지는 혐오가 아닌 사랑”임을 굳건히 믿는 이들은 오늘도 교회 안에서 무지개를 그리고 있다.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했건만